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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의 꿈이 영근 곳들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공간들은 현재도 사용 중이거나, 초기의 시설들이 교체되어 사라진 곳이 많다. 산업화의 장소를 통해 산업화의 꿈이 어떻게 잉태되고, 성장해 갔는지를 알아갈 수 있다. 농업의 근대화를 이끈 배수펌프장에서부터 공장 건축을 예술과 접목시킨 사례에 이르기까지 산업화의 꿈을 키워간 공간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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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산실, 학교

학교는 한국의 근대를 기른 공간이었다. 기울어가는 약소국가가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근대 교육이 절실했다. 게다가 전근대 신분제 사회가 해체되고, 교육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 기제가 되자 교육열은 급팽창했다.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각종 학교는 근대 교육을 소개하고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백성에게 초보적인 근대 교육만을 실시해 ‘황국 신민’ 으로 묶어 두려고 했으므로 더 많은 교육, 더 높은 교육을 갈망하는 조선인과 마찰과 갈등이 이어졌다. 해방 후 한국인의 교육열이 폭발하면서 각급 교육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다. 학교는 순응하는 근대인과 저항하는 근대인을 동시에 길러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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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보듬은 종교 시설과 건축

전국 방방곡곡에는 격랑의 근현대사를 헤쳐 오느라 지친 민중의 삶을 보듬고자 애쓴 종교적 공간이 많이 남아 있다. 길고 모진 박해 기간을 견뎌내고 선교의 자유를 얻은 천주교는 공소와 성당을 지어 성스러운 공간을 마련했다. 한옥을 성당으로 변형하여 전통과 근대의 접합을 시도하기도 하고, 서양 건축 양식으로 성당을 짓기도 했다. 개신교 역시 한옥 예배당 시기를 거쳐 교회 건축 양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병원과 학교를 열어 근대 의료와 근대 교육을 민중에게 보급하고자 했다. 1910년대에 등장한 원불교와 동학에 뿌리를 둔 수운교 등도 독자적 방식으로 종교적 위로와 위안을 전하는 공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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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들의 자취

한반도의 보통사람들은 서구 문물의 등장과 일본인의 대거 유입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실감했다. 일본은 전국 곳곳에 이주촌을 형성해 자국민들을 집단 이주시켰다. 경상남도 통영에는 일본 어민들을 위해 해저터널을 만들기도 했다. 전라북도 전주의 3층 짜리 일본 음식점은 일본인 상권의 규모를 짐작케 해 준다. 조선인 서민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가는 상황에 적응해야 했고, 그런 가운데서도 생활과 삶을 이어가야 했다. 양조장 막걸리 한 잔으로, 공장 생산 궐련 한 개비로 시름과 걱정을 달래면서,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다녔다. 다양한 근대 공간 속에는 서민들 삶의 자취가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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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인물들의 공간

역사적 인물은 역사적 공간을 남긴다. 기억과 공간이 얽혀 역사의 매듭이 하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공간은 개인의 공간이자 공공의 장소다. 문학과 예술 분야의 인물들이 창작에 몰두한 장소 또한 소중하다. 근현대 인물들의 공간을 마주치게 되면 역사의 굽이와 근대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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