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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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철암시가지는 죽탄길 진창으로 변했다. 철암역두 저탄장에서 날아온 탄가루가 빗물에 반죽이 진창이 되면서 장화 없이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철암역두 부근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장화를 신고 다녔다. 대부분 탄과 같은 색인 검정 장화를 신었지만, 멋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꽃무늬 장화를 신었다. 나이트클럽에서 검정장화를 신고 춤추는 청년들을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탄광촌 사람들은 누구나 장화 한두 켤레씩은 갖고 있었다. 탄광촌에 비가 오는 날이면 장화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마누라는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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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에서 통용되는 인감증은 읍·면·동사무소에 등록하는 인감증명이 아니라 광업소 신분증이다. 광업소에서 발해한 인감증은 신분증 끝에 끈으로 광업소에 등록한 도장을 연결했다. 인감증에는 직종에 따른 고유한 번호가 쓰인 직번과 사진이 붙어 있다. 직번은 보통 6∼8자리로 구성되는데, 앞의 두 자리는 입사년도, 나머지는 직종을 뜻한다. 그래서 직번만 보면 관리직·기계직·전기직·생산직·사무직 등의 직종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인감증은 회사 내에서는 신분증이지만 탄광촌에서는 현재의 신용카드 같은 기능을 했다...
방송이 중단되면 경거망동하지 않는...
1980년대 중반까지 장성지역 주민들은 같은 음악, 같은 뉴스 등 같은 방송을 매일 들으면서 생활했는데, 장성광업소가 사택별로 스피커를 설치해 놓고 아침 출근시간·점심시간·퇴근시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뉴스를 틀어주기 때문이다. 이 스피커를 통해 광업소나 국가에서 알려야 할 중요한 사항을 방송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갱내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면 방송을 중단하였다. 갱내사고로 방송이 갑자기 중단되면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탄광촌 전체가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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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파트의 베란다를 터서 방이나 응접실을 넓히는 것처럼, 1970년대 탄광촌 사택에서도 주거 공간을 넓혔는데, 이렇듯 사택의 공간을 넓히는 것을 가작이라 한다. 이렇듯 사택을 불법으로 넓히는 것을 광업소에서 단속을 했으나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가작을 하지 않은 집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8평도 못 되는 방 두 칸의 사택에서 3대가 함께 사는 딱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단속을 그만둔 것이다. 장성광업소에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가작을 권하는 분위기였다. 광업소에서 가작을 단속하지 않고 묵시적으로 용인하면 좁은 사택에 대한 광부들의 불만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사끼야마 권한이 대통령보다 더 세다, 막장일도 아비를 잘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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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 신발 관련 탄광 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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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국가기록원
갱구를 새로 열 때마다 지내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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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자기 집의 불을 다른 사람이 가져가서 쓰면 불이 꺼지듯 가세가 서서히 줄어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탄광촌에서는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연탄불을 꿔주지 않는다. 이 금기어는 “아침에 불을 주면 그 날은 재수 없다”거나 “이웃집에서 연기 나는 불덩이를 가져오면 그 집과 싸운다”같은 금기와 교섭하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널리 전해지는 “며느리가 불씨를 꺼트리면 집안이 망한다”는 금기가 탄광촌에서 “새댁이 연탄불을 꺼트리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이 연탄불로 치환되어 나타난다...
갱내에서는 휘파람을 불지 않는...
안전을 중시하는 갱내에서는 ‘휘파람을 불면 굴이 무너진다’라고 경계했다. 탄광 막장이 무너질 때 나는 소리와 흡사하다는 이유를 들어 휘파람을 불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휘파람을 불길하고 재수가 없는 일의 징조로 보았다. 어촌에서도 작업 중의 휘파람을 금했다. 어촌에서는 ‘휘파람은 태풍을 연상시키고, 바다의 신을 자극하여 센 바람을 더 세게 한다’고 믿어, ‘조업 중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는 금기를 지킨다. 휘파람 소리는 귀신을 부르는 소리로 널리 알려져 올 만큼 어둠과 휘파람은 상극이었다...
굴속에서는 죽은 사람만 바...
탄광사고로 광부가 사망하면 회사에서는 망자에게 안전사고 책임을 물어 보상금을 줄였다. 동료 광부들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며 한숨만 쉴 뿐 도와줄 방법이 없다. 그래 일하다 죽은 노동자만 억울하다고 하여 탄광촌에서는 “굴속에서는 죽은 사람만 바보!”라는 말이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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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색상 관련 탄광 속...
갱내 작업장에는 4자를 붙이지 않는다. 탄광 막장에서는 광부들의 무사고에 대한 기원이 첫 번째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알려진 모든 것은 피하는 심리가 팽배하다. 그리하여 죽을 사(死)와 같다는 숫자 4를 갱내 작업장에는 적극적으로 피했다. 탄광 막장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굴속으로 가져가는 도시락 보자기를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사용했다. 파란색 보자기를 통해서는 안전한 생명을 기원하고, 붉은색 보자기를 통해서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기를 기원한 것이다...
개고기를 먹고 입갱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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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전사 위령제는 초기에 석탄산업 역군으로 종사하다가 순직한 영령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데서 시작되었으나, 이후 순직한 광부와 직업병인 진폐증을 얻어 순직한 광부들의 영혼을 함께 위로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순직한 광부의 위령제는 오래전부터 여러 탄광에서 실시했으나, 산업전사 위령제는 1975년 산업전사위령탑 제막과 함께 태백시 광공제에서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현재는 정선군 사북읍 사북석탄문화제와 영월군 강원도탄광촌문화제 등에서도 문화제를 진행하기에 앞서 산업전사 위령제 먼저 실시한다...
강릉단오보다 컸다는 함태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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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주민들이 지내는 단오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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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은 출근하면서 부모·아내·자식 등 그 누구에게도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탄광에 출근하는 광부가‘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면 아들·남편·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족들 또한 탄광에 출근하는 사람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곧 출근하는 사람만 말없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보내는 가족도 아무 말 없이 보냈다. 이 또한 ‘잘 다녀오세요.’라는 인사를 하면 광부인 아버지·남편·아들이 돌아오지 못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입갱할 때는 뒤돌아보지 않는...
광부들은 입갱하면서 뒤돌아보면 죽어 나온다고 믿었다. 이 금기는 절망적이던 예전의 삶을 돌아보지 않기 위해 앞만 보면서 살아가는 ‘막장 인생’의 삶과 닮아있다. 과거인 뒤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인 앞만 보면서 살아가려는 광부들의 막장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사진출처: 한국광물자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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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에게 막장은 숭고한 의미가 있다. 채탄 작업장의 공간적 막장은 마지막 기회로 선택하는 노동의 막장으로 인식되고, 또한 인생의 막바지에 선택하는 삶의 막장과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생명의 막장이다. 광부가 스스로 선택한 막장인생은 자의적 선택이지만 지독한 가난이 등을 떠민, 어찌 보면 사회구조적 경제적 약자에게 강요된 선택에 가깝다...
사진출처: 한국광물자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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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몽을 꾸면 출근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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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바가지 추방 운동과 광부의 인...
계급 구분이 엄격한 광업소에서는 갱내에 입갱할 때 쓰는 안전모의 색깔로 신분을 구분한다. 장성광업소를 비롯해 석탄공사 산하 광업소에서 하얀색 안전모는 광업소의 귀족으로 불리는 관리직이 썼는데 새카만 탄가루가 날리는 갱 속에서도 하얗게 빛이 났다. 반면에 탄광 노동자들은 노란색 안전모를 썼다. 노란색 안전모는 단순한 색상의 차이가 아니라 엄격한 신분 구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탄광 노동자는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직원 대우를 받지 못한 셈이다. 탄광 노동자들은 갱내에서건 밖에서건 신분의 격차에 따른 멸시를 느낄 때마다 하얀색 안전모를 뜻하는 ‘백바가지’란 단어를 힘주어 말하는 것으로 울분을 풀었다...
강아지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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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태백석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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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의 인감증은 집문서·땅문서보다 더 중요했으며, 주위에서는 신분을 확인할 때 주민등록증보다 인감증을 더 신뢰했다. 쌀밥 먹기가 쉽지 않았던 1960~1970년대 농촌에서는 탄광촌의 인감증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이에 인감증만 보면 주변에서는 맞선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총각이 인감을 뒷주머니에 차면 서로 딸 주려고 했다.”는 말이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이다. 남편이 지하막장에서 얼마나 힘든 일을 하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던 새댁은 인감증의 위세만 믿고 남편을 최고라고 여겼다...
여자는 굴속에 들어가지 않는...
남존여비의 오랜 풍습이 여자를 ‘재수 없는 존재’, ‘부정 타는 존재’로 새겨졌는데, 갱내는 ‘부정 타는 여자’가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금기의 공간이었다. 따라서 탄광에서 입갱하는 여자는 석탄 속에서 돌이나 나무 따위를 선별하는 작업자인 선탄부 뿐이며, 이 금기는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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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멍, 이슬이 온다, 짐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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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가 생겨나고 외상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외상 생겨나고 황지 생겨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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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문학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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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업소에서는 탄광노동자들을 위해 교회·절·산제당을 세우기도 했다. 함태광업소는 소도당골 지역에 청원사라는 사찰을 세웠고, 경동탄광에서는 1983년에 도계읍 황조리 소재 도덕정사를 건립하여 탄광에서 순직한 광부의 위패를 모셔놓고 사월초파일이면 위령제를 지낸다. 장성광업소는 장성·영월·함백에서 순직한 사우들에 대한 위령제가 장명사 명부전에서 진행하고, 도계광업소에서는 단옷날 광부의 안전과 무재해를 기원하는 산신제 및 위령제를 도계읍 대계사에서 광업소장과 노조지부장, 직원 그리고 순직 유가족이 참석하여 거행한다...
석공쌀과 광산...
석공쌀은 대한석탄공사가 품질 좋은 쌀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싸게 공급하는 쌀이다. 이에 반해 광산미는 민영 탄광에서 월급대신 공급하던 쌀이다. 탄광측이 쌀 생산지에 가서 값싼 백미만 구하려고 하자 쌀 생산지에서는 질이 낮은 값싼 쌀을 광산미라고 불렀다. 이에 탄광촌에서는 불평등한 일을 당할 때 석공쌀과 광산미를 대비시켜 말하곤 한다...
갱내에서는 쥐를 잡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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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전에는 여자가 방문하지 않는...
아침에만 출근하는 것이 보편적인 다른 지역사회와 달리 갑방·을방·병방 3교대로 출근이 이뤄지는 탄광촌에서는 출근 전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낮이나 저녁 시간이라 하더라도 집 밖에서 출근 전후의 정황을 살펴보고 방문했다. 그리고 남편이 광업소로 출근하기 전에 아내가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 또한 금했다. 이것은 아침에 여자가 남의 집에 가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시키는 금기와 맥락을 같이하는데, 탄광촌의 이 금기는 아내의 내조를 강조하는 측면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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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자들이 노동 후에 술을 즐기는 편이지만 광부들이 술을 즐기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탄가루를 마시는 광부들에게 생기는 직업병인 진폐증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광부들은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면 몸속에 있는 탄가루가 씻겨나간다고 믿었다. 술집에 들르지 않고 집으로 곧장 퇴근한다 해도 아내가 나서서 막걸리 한 사발부터 건넨다...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작업 도구 관련 탄광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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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에서는 1980년대 초반까지 공동수도를 통해 공급되는 공동우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2개 건물 10가구를 중심으로 양쪽에 공동화장실과 공동우물이 있었다. 옆집의 비밀은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모인 아낙네들에 의해 온 동네에 순식간에 퍼졌다. 우물을 중심으로 정보가 생산된다고 하여 ‘우물방송’이라고 불렀다...
탄광 돈은 햇빛만 보면 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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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돼지 잡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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