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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활 속 석조문화
    01

    암각화암각문

    암각화와 암각문은 단어 그대로 바위에 새겨넣은 그림이나 글씨를 말한다. 바위에 그려진 그림은 그 시대의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 된다. 울주 대곡리 반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다양한 고래 그림으로 그 당시에도 울주 바다에 많은 고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동 수곡리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 후기에서 철기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한국에서 가장 큰 암각화 유적이자, 가장 오래된 제천의식 거행 장소로 알려진다.

  2. 02

    석장승

    장승은 나무나 돌을 사람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거나, 지역 간의 이정표의 역할을 했다. 장승은 지역과 모시는 대상에 따라 장생, 장생우, 미륵 할아버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나무로 만든 목장승은 전국에서 볼 수 있지만, 돌로 만든 석장승은 주로 경상·전라·충청도에서 볼 수 있다.

    •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석장승

      태백시의 옛 이름은 ‘장생(長生)’으로 장생(장승)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고, ‘소도동’은 고대시대에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지역의 이름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석장승은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이 천하대장군, 오른쪽이 지하여장군이다. 석장승 중 특히 오른쪽 석장승의 코가 많이 마모되어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장승이 민간신앙의 대상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충북 음성 마송리 석장승

      충청북도 마송리 오미마을의 석장승은 ‘장성님’, ‘미륵할아버지’, ‘정계대장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1기는 미륵불, 2기는 사모를 쓴 문관의 모양이며, 3기는 특별한 장식은 없이 ‘정계대장군(靜界大將軍), ‘신묘정월일(辛卯正月日)’이 새겨져 있다. 정확한 때는 알 수 없지만, 이 글씨로 신묘년에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미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에 좋은 날을 잡아 제사를 올리는데, 설을 세고 늦어도 정월 보름 이전에는 장승제를 지낸다.

  3. 03

    선돌

    선돌은 ‘서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선바위, 선돌이라고도 한다. 이 외에도 선돌의 모양이나 돌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갓바위’, ‘미륵바위’, ‘할아버지’, ‘할머니’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린다. 민간신앙과 연결된 입석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마을 제사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자식을 바라는 사람들의 기도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4. 04

    생활도구

    인류는 구석기 시대부터 무겁고 튼튼한 돌을 이용해 생활에 편리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농촌에서 흔히 사용하는 생활도구로 맷돌과 연자방아 등이 있는데, 오래된 맷돌로는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남아 있다. 연자방아는 동물의 힘으로 곡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는 생활도구로, 지역에 따라 ‘연자마’, ‘돌방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기도 하남에는 상사창동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연자마가 남아 있다.

  1. 불교 석조문화
    01

    석불

    우리나라의 불상은 금동이나 나무로도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석불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도가 강한 화강암을 주로 사용했는데 조각의 어려움 때문에 마애불이
    많이 만들어졌다. 마애불은 암벽이나 대형 석재 표면에 부조기법으로 불상을 조성한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산악신앙과 불교의 교리가 어울리면서 유행했다.
    통일신라 불상은 생동감 있고 듬직하게 표현되었고, 고려시대의 석불은 크고 투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은진미륵의 보은으로 결혼한 모시장수

    ‘은진미륵’은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灌燭寺)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불로는 가장 크며, 특히 토속적인 생김새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은진미륵에는 미륵의 보답으로 결혼을 하게 된 서울의 모시장수를 내용으로 하는 설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모시장수가 한산장에서 모시를 구입해 지게에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가다가 그만 소나기를 만나 모시가 다 젖게 되었다. 모시장수는 비에 젖은 모시를 어떻게 말릴까 고민하다가 모시를 펴서 은진 미륵에다 입혀 놓았다. 그랬더니 은진미륵이 오랜 시간 헐벗고 있었는데 옷을 입혀주어 고맙다고 하며, 그 보답으로 모시장수에게 “떨어질 락(落)에 붙을 부(附)자를 기억해라!” 라는 말을 남긴다. 모시장수는 그 말을 기억하였다가 필요한 상황에 사용해서 위기를 넘기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2. 02

    석탑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예배의 대상물이다. 불상과 함께 불교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주요 조형물로 사찰의 법당 앞에 세운다. 불교가 전해진 4세기 무렵에는 목탑이 많이 건립되어지만, 전란을 겪으며 불에 타고 파괴되어 현재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7세기부터는 백제가 독자적인 석조 기술을 이용하여 석탑을 만들기 시작했고, 신라에서도 많은 석탑이 건립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은 중앙 집권적 성격으로 불교 건축물이 주로 도성인 경주 부근에 많이 세워진 것에 비해, 고려시대에는 지방 곳곳에서 개인이 석탑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 건축이 위축되었지만, 대리석으로 만든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남아 불교석탑의 아름다움을 이어가고 있다.

    • 백제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에 건립된 세 개의 석탑 중 하나이다. 639년에 세워졌으며,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2001년 해체·복원을 시작해서 2019년 5월 공개되었다.

    • 통일신라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자연 암반을 기단 삼에 건립한 최초의 석탑이다. 경주 남산의 용장사 터에 있으며, 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을 계승하였다.

    • 고려

      사자빈신사지 석탑은 1022년 거란족의 두 번째 침입을 받은 후 부처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고자 하는 기원으로 세워졌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부도
    불탑과 구분되는 것으로 승려의 사리를 보관한 탑을 말한다. 불탑을 법당 앞에 세우는 것에 비해, 부도는 사찰에서 한적한 곳에 세우며, 승려들의 부도를 모아부도군을 만들기도 한다.
  3. 03

    석등

    석등(石燈)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히기 위해 만든 석조물로 석탑 및 부도와 함께 불교 석조문화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 된 이래 금당(사찰에서 부처님을 모신 곳) 또는 석탑 앞에 석등을 배치해 부처에게 광명과 공양을 드리는 의미가 있다. 불교에서의 석등은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 중생을 구한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담은 불교의 중요한 상징물이다. 석등은 사찰 이외에도 능묘, 궁궐이나 저택 등에도 세워졌다.

  1. 조선시대 석조문화
    01

    조선왕릉의 석조물

    능이나 묘에 설치된 무덤 앞에 설치한 석조물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왕릉의 석조물에는 석인상, 석수, 장명등이 있다. 이런 석조물은 대부분 단단한 성질을 가진 화강암으로 제작되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잘 보존될 수 있었다. 한양 도성과 가까운 곳에 남아있는 40기의 조선왕릉은 역사적 〮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1. ① 석인(石人)

      무덤을 지키는 사람 형상의 석물

    2. ② 석수(石獸)

      무덤을 지키는 동물(말·양·호랑이 등) 모양의 석물

    3. ③ 망주석(望柱石)

      봉분의 왼쪽과 오른쪽에 세우는 돌기둥

    4. ④ 혼유석(魂遊石)

      봉분 앞에 놓아 영혼이 나와서 놀게 한다는 의미의 석물

    5. ⑤ 장명등(長明燈)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사후세계를 밝힌다는 의미의 석등

  2. 02

    서원의 석조물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 시설로 크게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으로 구분된다. 서원에 남아있는 문화유산 중 대표적인 석조물은 ‘정료대’와 ‘관세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