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화예술은 서울을 중심으로 꽃피고 있는 것 같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각 지역마다 활동하는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꾸준히 활동하며 유파를 만들어냈다. 때로 지역에서 올라온 문화예술인들이 서울에서 꽃을 피우기도 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너른 들녘을 배경으로 최서희라는 희대의 여걸을 만들어낸 박경리 작가, 평생 통영 앞바다를 그렸던 전혁림 화가 등 각 지역에서 활동해온 문화예술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한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븟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장똘뱅이 허생원이 가는 달빛 환한 밤길은 강원도 봉평에서 대화까지 70리나 이어진다. 척박한 땅 강원도의 메밀꽃과 달밤을 이토록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묘사한 작품은 만나보기 어려울 것이다.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 <솥> 등의 작품들은 춘천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는 구절로 유명한 유치환의 시 <행복>은 통영 중앙우체국에서 쓰였다. 시인은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20여년의 사랑 이영도에게 이 시를 썼다. 통영 바다를 그린 화가도 있다. 섬이 군데군데 떠 있고, 배가 총총히 들어서 있는 통영 앞바다를 향토적이면서 조형적으로 그린 전혁림의 그림 속 다양한 푸른색은 남해의 쪽빛이다.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이 부른 가장 유명한 노래는 <목포의 눈물>와 <목포는 항구다>이다. 당시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으로 시작하는 <목포의 눈물> 첫 소절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 이 노래들에는 노적봉, 유달산, 삼학도, 영산강 등 목포 곳곳이 배경으로 나온다. 애수에 젖은 이난영의 목소리에 실려 목포항과 유달산은 영원히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정지용의 시 <향수>는 노래로도 만들어졌고, 교과서에도 실려 한 때 입시의 단골문제로 출제되었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일반적인 시골마을에 대한 향수를 노래했다고 수업시간에 배웠겠지만, 정지용이 일본유학 당시 썼던 이 시는 자신의 고향 옥천을 떠올리며 쓴 시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과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은 옥천의 것이다.
서울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은 너무나 많지만, 그 중 조선시대 화가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상향의 산수가 아니라 우리나라 산수를 직접 보고 그대로 그린 진경산수 작품으로 유명하다. 인왕제색도의 인왕산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건재하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 중에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산책자의 관점에서 느긋하게 보여준다. 그 시절 서울이 어땠는지 구보 씨의 산책길을 따라가다 보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다.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은 삼일빌딩, 세계평화의 문 등 다양한 건축을 설계했다. 그 중에는 공장도 있었는데, 유유제약 안양공장이 김중업의 작품이다. 이곳은 현재 김중업 건축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장지대가 있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인천 공장지대의 모습을 잘 그린 작가로 강경애가 있다. 그녀의 대표작 <인간문제>는 인천에서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나갔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장편소설이다.
화가 이중섭은 6.25가 터진 뒤 1951년 제주도에 피난 내려와 온 가족이 함께 살았다. 불우했던 짧은 생애에서 그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제주도에서 온 가족과 함께 살았던 시절이라고 회고한다. 그때 그렸던 <서귀포 환상>의 따뜻한 노란색과 해 맑은 아이들의 모습은 그의 행복한 심정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이중섭 거리에서 내다보이는 섶섬을 그린 <섬이 보이는 풍경>에서도 그 시절 서귀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선 굵은 대하소설은 남성 작가들만 쓴다는 편견은 버려야 할 것 같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하소설 <토지>는 여성작가 박경리의 작품이다. 평사리 최참판댁 최서희의 만주까지 아우르는 불꽃같은 생애는 한국의 대표적 대하소설로 추앙받고 있다. 최명희의 <혼불> 역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비견될 정도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기생들의 조합인 권번에서 노래를 배우거나 판소리 명창에게 사사 받은 판소리 명창들 중에 여성들이 많았다. 동편제의 장인 박녹주, 심청가의 이화중선, 춘향가의 김여란, 흥보가의 배설향 등이 그들이다. 판소리 뿐 아니라 서양가요에도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이자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은 박남옥이다. 그녀는 갓난아기를 업고 메가폰을 잡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 홍은원은 <유정무정(1959년)>의 각본을 썼고, 실화에 바탕을 둔 <여판사(1962년)>로 감독 데뷔를 했다.
<로맨스 빠빠(1960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년)>, <상록수(1961년)>의 주연으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최은희는 <민며느리(1965년)>외 여러 편의 영화를 감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