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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기억과 근대의 건축

근대 건축은 근대의 기억이 응축된 타임캡슐이다. 2001년부터 지정되기 시작한 등록문화재 가운데 근대 건축이 단연 많은 이유는 건축 공간 속에서 풍부한 역사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근대 건축물에는 파란만장한 영욕의 역사가 배어 있다. 근대 건축과 근대 문화유산에 관한 관심이 최근 높아지기는 했으나, 아직도 전국 곳곳에는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채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는 공간이 많다.

역사는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시간의 궤적은 공간에 흔적을 남기고, 사람의 이야기는 공간에 녹아 든다. 공간은 역사의 무대인 동시에 역사의 필수 구성요소다. 집단기억에 남은 공간은 역사적 장소가 되고 이러한 공간에서 풍부한 의미를 읽어낼수록 역사 인식은 깊어진다.

외교관들의 사교장소 였던 손탁호텔(사진출처: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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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반도에 발을 딛다 개항기

1876년 강화도 조약 이래 강제 개항한 항구에는 일본과 서양에서 바다를 건너온 근대인들과 근대 문물이 속속 도착했다. 일본은 한반도의 해운을 장악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고, 천주교와 개신교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함께 근대 의료와 근대 교육을 선보이고 퍼뜨리고자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조선의 유서 깊은 궁궐이 식물원으로 개조되는 식으로 모멸적인 일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으나, 근대는 한반도 구석구석으로 침투하였고, 한국인들의 내면은 근대적으로 바뀌어 나갔다. 많이 남아 있지는 않으나, 개항기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들은 한국 근대사를 다각도로 되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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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 ‘뒤틀린 근대’ 일제강점기

해방 후 일본은 다양한 지배와 수탈의 공간들을 남겨 놓고 철수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근대 산업국가로 도약하는 역사 속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공간들은 한국 근대의 굴절과 극복 노력이 얽힌 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근거지였던 장소들 역시 뒤틀린 근대를 바로잡으려고 도전한 공간으로서 깊이 읽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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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일제강점기)(사진출처:문화재청)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현재)(사진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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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에서 전쟁까지 해방 이후

해방에서 전쟁에 이르는 역사는 한국의 근대가 열병을 앓던 시기다. 전쟁은 개항 이래 한반도에 들어온 근대가 남긴 긍정적-부정적 유산들을 상당수 잿더미로 만들었다. 분단의 비극과 전쟁의 상처를 드러내 주는 공간들은 폐허로 남은 곳들이 많다. 근대에 내장된 어두운 측면과 한국 근대의 특수성을 드러내 주는 공간들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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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신문으로 보는 음식

1876년 개항이후 우리나라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변화가 음식과 식생활에도 많이 반영되었는데 지금까지 없었던 음식이 들어오거나 원래 있었던 음식이 변화를 겪기도 했다. 이러한 음식의 변화는 자본주의가 개항기 이후 한반도에 정착된 것과 깊은 관계가 깊다.
이러한 근대의 사회문화적 변화는 이 당시 신문을 통해 비교적 상세하게 나타난다. ‘근대 신문으로 보는 음식’ 에서는 신문 속에 나타나는 근대의 시대상과 우리 음식의 변화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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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정 설넝탕(사진출처:동아일보, 192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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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식생활의 변화

근대의 전통 음식과 식재료의 가장 큰 변화는 막걸리나 약주 생산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국가에서 술 제조를 통제하고 많은 세금을 매기면서 약주와 전통소주가 거의 사라졌고, 이 영향으로 제사에는 약주 대신 청주를 올리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온 외래음식으로 맥주·포도주·청주 ·사이다 등의 음료와 빵·사탕·과자·양갱 등 간식거리가 있다. 이 음식들의 특징은 공장에서 대규모 생산을 한다는 것이었다.

근대에 수입량이 많아지면서 우리의 식생활에 자리잡은 식품도 있다. 설탕과 밀가루가 대표적이다. 설탕은 대만의 사탕수수를 수입해서 평양의 제당공장에서 만들었고, 밀가루는 미국이나 호주 등지에서 밀을 들여와 용산등의 제분공장에서 만들었다. 설탕과 밀가루는 원료의 원가가 워낙 쌌기 때문에 근대기부터 대중화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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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음식점의 등장

근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음식점이 생긴다. 임오군란이후 조선으로 이주한 중국인 중 영세한 사람들은 호떡집 등 음식점을 운영하였고 당시 새롭게 선보인 음식은 시간이지나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음식이 주목받고 또 소멸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베트남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가 전문 음식점으로 자리 잡았고,웰빙 열풍을 타고 유기농 채소가 주목을 받고 있는 한편 인스턴트 음식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농축된 바닷물을 솥에 끓여 만들던 자염은 이제는 거의 생산되지 않고 일제강점기까지 동짓날 특별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던 전약(쇠족을 고아 굳혀 만든 음식)도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이러한 음식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고 오늘날 사라졌던 음식이 어떤 필요에 따라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음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은 과거나 현재의 사람들 나아가 그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