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집대성한 유교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유교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의 기본 사상은 인간적 가치를 중시했던 공자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에 기반한 도덕적 완성을 위한 지속적인 수양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여러 사상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기본적인 유교의 가르침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유교는 '모든 사람은 처음부터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 공부하고 수양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선한 마음을 잘 키우고 그 향기를 품는 것이라고 하였다.
맹자에 의하면 사람은 본성을 깨닫고 완성할 수 있는 단서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곧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이다. 이 4단의 마음을 확충 시켜 나아갈 때, ‘인의예지’의 네 가지 덕성을 완성하게 된다. 맹자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지금 사람들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장차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모두 놀라고 측은한 마음을 가지니, 이는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귀려 함도 아니며, 마을 사람들과 벗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하여 그러는 것도 아니며, 악명을 듣기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두려워 근심하고 깊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달려가 구하려고 하는 현실 상황을 들어 사람에게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있음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넷으로 구분하여 다음의 사단설을 주장한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불선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이고 사양지심 예의 단서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이다.“
이러한 맹자의 사단설은 사회윤리적 측면으로 적용되어 인정론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사단이 발현하는 이기론과 연관하여 이황과 기대승의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는데, 이를 사단칠정논쟁이라고도 한다.
자세히보기유교는 개인의 인격 완성이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끊임없는 개인의 수양을 강조하였고, 그러한 가르침이 기본 사상으로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學이란 글자는 위에 부분은 양 손안에 나뭇가지를 엇갈려 놓은 효가 들어있다. 효는 본받을 효로 본받는다는 의미를 지녔다. 아래는 집을 상징하는 글자인 멱이고 그 안에 어린 아이를 뜻하는 자가 들어있다. 종합하면 아이가 들어가서 무엇인가를 본받는 집인데 바로 학교(學校)이다. 『순자』는 배움과 관련하여 머리[지능]와 가슴[심성]과 몸[실천]을 통합적으로 지행의 일치를 강조하였다. 순자는 “군자의 배움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붙어서 온 몸에 퍼져 행동으로 나타난다. 단정히 말하고 하나하나 행동하여 일관되게 법칙을 삼을 만하다.”고 하였고 반면 “소인의 배움은 귀로 들어와서 입으로 나간다. 입과 귀 사이는 4치 밖에 안되니 어찌 7척이나 되는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유교의 대표 경서인 『논어』의 첫 구절도 “배우고 때때로 실습하면 기쁘지 않은가?”라 하여 꾸준히 배우고 실습하는 것을 통해 완성됨을 말하였다.
또한『중용』에서는 “배우기를 좋아함은 지성에 가깝고 실행함은 어짊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용기에 가깝다”라고 하였고 『논어』에도 “아는 자는 이론에 의혹됨이 없고 어진 자는
실천에 근심이 없고 용기 있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하여 덕을 강조했다. 학문이 지식을 추구하는 이론과 실제 행동하는 실천을 추구한다고 할 때, 지식을 제대로 축적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배움과 생각/질문을 병행해야 하니 이를 학문이라 한다. 『주역』에서는 “군자가 배워서 지식을 모으고 물어서 분별한다.”라고 하여 學은 問과 병행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논어』에서는 크게 자기와 남으로 대별하기도 한다. 자기는 己이고 남은 人이다. 위기(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 등 자주 쓰이는 상대적 표현이다. 공자는 “옛날의 배우는 자는 자기를 위한 공부를 했는데 지금의 배우는 자는 타인을 위한 공부를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자신을 닦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특히 마음의 문제와 연관하여 간점의 문제가 중요하다. 유교에서는 남의 나쁜 점을 꾸짖거나 남에게 좋은 것을 권하기 전에 자기 몸을 철저히 성찰해보라는 수기의 경계를 자주 한다.
사람살이에는 감정도 있고 가치도 있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은 다양하지만 예기에서는 희노애구애오욕(憙怒哀懼愛惡欲)의 7정으로 통틀어 말했다.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의 4정으로 정리하였고 대학에서는 호오라는 사물에 대응하며 발현하는 2정으로 표현하였다.
자기와 남의 관계는 『주역』에서 음양의 관계이다. 태극 속의 음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밤·낮, 남·여의 음양이다. 음양은 상대를 용납하지 않고 배척하는 상승적 일면과 상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보적 일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는 모두 ‘내 속의 너’, '너 속의 나’ 라는 음양적 개념으로 이해 가능하다. 남을 다스린다는 의미도 그런 음양조화의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치인대신 안인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유학의 목적이 修己安人이란 의미이다.
유교는 기본적으로 가정의 확장이 사회라고 여겼고, 따라서 가정과 사회가 긴밀하게 연결된 가르침이 많았다. 나아가서는 국가 정치의 한 축인 임금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까지 표현되었다.
충(忠)은 나라에 대한 윤리이지만 자기자신에게 충실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효에 관해서는 『논어』의 문답을 살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자하가 효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낯빛이 어려우니 일이 있거든 자식이 그 수고스럽게 일을 하고, 술과 음식이 있거든 부모가 이것을 드신다. 일찍이 이런 것이 효가 될까?”하였다. 집안에 어떤 일이 있으면 실질적으로 자식이 일을 다 하고, 그걸로 밥도 해서 부모님께 드리면 부모님은 먹는데, 이것만 가지고서 효도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낯빛이란 안색인데, 부모님 낯빛도 안 살피고 밥만 드리고 하는 것이 어떻게 효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부모의 안색을 살피라는 것은 곧 부모의 마음을 살피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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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는 유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제사 지낼 제(祭)자는 고기를 뜻하는 육잘 월(月=肉)과 손을 뜻하는 우(又)와 제단을 뜻하는 시(示)가 합해진 글자이다. 손으로 고기를
잡아 제단에 올려놓고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글자이다. 제단을 뜻하는 보일 시(示)는 신의 영역이고, 손을 뜻하는 또 우(又)는 인간의 영역이고, 고기를 뜻하는 육달월(月)은
제물의 영역이다.
고전의 제례(祭禮)는 아무리 복잡해도 크게 신과 인간과 제물이라는 세 가지 영역의 이야기이다. 돌아가신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는 그것이 기제사든 차례든 모두 감사의 표현이며 유교의
경전에서는 제사의 의미에 대해 밝혀 놓았다. 『중용』에서는 “신의 덕은 성대하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지만 모든 만물의 근간이 되어 빠짐이 없다. 사람들이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제사를 받들되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위에 있는 듯하며 좌우에 있는 듯하다. 『시경』에 이르기를 사람이 신이 강림함을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신을 꺼려 제사를 지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사를 지내는 정성이 신을 감동시켜 은미한 가운데 드러남을 누구도 막지 못한다.”고 하였다. 제사는 신에게 드리는 정성으로 본 것이다. 『논어』에서의 제사는 효(孝)의
일종이다. 부모와 조상은 나의 근본으로 효는 근본에 보답하는 것으로 제사 또한 그것의 일종인 것이다.
인간 사이의 관계와 도덕적 완성을 중시했던 유교의 사상을 잘 나타내는 것이 인의예지신일 것이다.
각각의 의미와 함께 오행에서 나타내는 특성을 함께 보면서 이전과 다른 측면으로 이해해보자.
유교에서 인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서 인륜 도덕의 근원인 동시에 유교사상의 중심이다. 원래 인자는 ‘두 사람 또는 한 쌍의 사람’ 이라는 의미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마땅히 서로 친애하고 협력해 야만 비로소 인간된 도리를 다할 수 있 음을 말한 것이다. 넓은 의미로는 사덕 의 의·예·지의 모든 덕목을 포괄 하는 총칭이다. 좁은 의미로는 남을 사 랑하는 것이다. 덕목은 예외없이 이 핵심에서 근 원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 다. 오행에서 목(木)은 ‘인’이 어질다는 의미를 특성 으로 할 수 있다.
자세히보기유교에서 의는 국가나 사회의 일원으로 서의 인격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이다. 의는 인간의 생활 속에서 옳은것 을 지키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도덕적 인 행위의 기준이다. 사람, 일, 때와 장소 에 따라서 마땅한 바를 쫓아 판단 하고 실천에 옮길 뿐이다. 이처럼 스스로 옳다 고 믿는 바를 따라서 행하는 도덕적 주체 이며, 옳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외부 로부터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이를 실천에 옮겨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발휘 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세히보기유교에서 의가 도덕적 실천에 있어 내 면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면, 예는 외면적이고 형식적인 측면을 대표한다. 예는 인간 생활에 있 어서의 외부적 형식과 내면적 규범으로 나타난다. 외부적 형식은 대개 고정화 된 형식으로 표출되는 각종 의식이나 예절이며, 내면적 규범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합리적 요구를 의미하는 것이 다. 사회에 있어서의 합리적 타당성의 요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예’와 ‘법’ 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자세히보기유교에서 지는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슬기, 즉 지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올바른 가치관의 있음으로 가능한 형성 과 사물에 대한 통찰력도 이러한 지적 능력이 것이다. 그러나 유교에서 지는 이론의 영역을 넘어서서 실천의 영역 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옳고 그름 을 판별하는 목적은 그릇된 것을 버리 고 옳은 것을 지켜 실천에 옮기는데 있으며, 이러한 실천의 영역에까지 도 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는 참된 ‘지’ 로서의 가치와 의의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자세히보기신에 관해 유교의 경전가운데 『논어』 와 『주역』에 나타나 있는데 『논어』 의 소거무월이라는 내용이다. 공자는 신 뢰가 없으면 수레에 멍에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주역』 에서도 “신의를 이행하고 순리를 생각한다” 고 하여 믿 음을 강조하였다. 이는 오행 중 토(土) 의 특성이 된다. 단순히 사람의 말을 믿 어야 한다는 것을 넘어 상대방에게 믿 음을 줄 수 있는 입장을 의미하는 바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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