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어떤 시기마다 치러야 하는 대표적인 의례로
출생부터 관례, 혼례, 환갑/회혼례, 상장례, 제례를 일컫는 관혼상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배경사진:사람의 일생(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금줄은 부정을 막기 위해서 집 대문이나 길 어귀에 걸어두는 신성한 공간을 구분하는 새끼줄이다.
일반적으로 집안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거나 중요한 제의를 준비할 때 집 대문의 양쪽 기둥 사이에 걸어두며, 기간은 삼칠일(21일)정도이다.
금줄은 왼새끼를 사용하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숯과 종이, 성별에 따라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일 경우 금줄이 다르다.
금줄은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민속으로 검줄 · 검석 · 금색 · 금구줄 · 금계줄 · 금기줄 · 건구줄 · 금새기 · 동줄 · 송침 · 새내기 · 좌삭(座索) · 문삭(門索) 등 지역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집안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거나 집안이나 마을에서 중요한 제의를 준비할 때 집 대문이나 마을 입구 양쪽 기둥 사이에 걸어둔다. 금줄의 가장 큰 의미는 ‘금지’이다. 상가집과 같은 궂은 장소에 다녀온 사람이나 몸이 아픈 사람 등 새로운 생명에게 자칫 해가 될 수 있는 사람의 출입을 금지한다. 금줄에는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해 정화와 여러 의미를 담긴 물건을 꽂아서 걸어두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부터 삼칠일 동안 금줄을 걸어둔다. 삼칠일은 출산 후에 7일 3번 돌아오는 기간으로 총 3주, 21일을 의미한다.
숫자 7은 좋은 기운이 있는 숫자라고 여겨졌고, 숫자3은 하늘·땅·사람을 담는 음양의 조화가 완벽한 숫자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금줄에 다는 빨간 고추는 남자아이를 상징하며, 빨간색과 매운맛은 귀신을 몰아낸다는 뜻이 있다.
솔가지를 걸어놓으면 여자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솔가지는 뾰족한 바늘같이 생겨 부정한 것을 찔러 막는다는 의미와 태어난 여자아이가 바느질을 잘하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의미가 있다.
숯은 땅속에서도 썩지 않으면서 모은 것을 깨끗하게 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걸어두었다.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보면, 시대 상황이나 선호하는 가치에 따라 아이의 이름을 짓는 방식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 이전에는 영수, 영철, 영숙 등 오래 살라는 의미에서 길 영(永)자를 사용한 이름이 많았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성공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남자 이름에 이룰 성(成)자를 사용한 이름이 증가하였고, 여자 이름에는 아름다울 미(美)자가 들어 간 미경, 미숙, 미영 등의 이름이 많아졌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지훈, 지혜, 지은 등 알 지(知)자가 들어간 이름이 눈에 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남아의 이름은 민준, 여아의 이름으로는 상서로울 서(瑞)가 들어간, 서연, 서현, 서윤 등의 이름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참고자료: TV조선, 낭만논객 88회, “우리나라의 시대별 선호 이름”, 방송일 2015.11.01)
출처:대법원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가지는 것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의례를 말한다.
크게는 아이를 가지기 위한 기자의례와 출산을 기준으로 산전의례와 산후의례가 있다. 이러한 의례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경기도의 출생의례
아이를 낳고 나서는 삼신할머니께 올리는 ‘삼신상’을 차렸다. 이를 경기도 광주에서는 ‘산밥’ 이라 하고, 하남에서는 ‘삼밥’ 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 산모가 처음
먹는 밥을 ‘첫국밥’은 수원에서는 ‘젖국밥’, 의왕에서는 ‘첫국첫밥'이라고 부른다.
충청도의 출생의례
아이의 운을 점쳐보고 명이 짧거나 팔자가 사납다는 점괘가 나올 경우 두 어머니를 삼아주면 좋다고 하여 아이에게
어머니를 만들어주었다. 이를 ‘시영어매’라고 하는데 충청도 사투리로 ‘수양어머니’라는 의미이다.
전라도의 출생의례
기자속을 전라도에서는 ‘지앙맞이’라고 한다. 남근형 입석이나 깊은 계곡의 절을 찾아 간절하게 기도를 올린다. 또한 아들을 많이 낳은 집의 식칼이나 밥주걱, 요강 등을 몰래
훔쳐와 사용을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강원도 출생의례
강원도 지역에서는 아이를 기원하는 기자의례로 ‘산메기’가 대표적이었다. 산메기는 자연 마을 단위나 동족이 함께 삼짇 날, 초파일, 단오, 칠석 등 명절이나 봄과 가을 중에 좋은 날을 받아 산을 모시는 의례로 삼신을 받는 과정이다.
간단하게 치성을 드리거나 비손을 하는 곳도 있지만 지역에 따라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했다.
경상도의 출생의례
경상도에서는 집안에 삼신이 없으면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하여 따로 날은 받아 삼신을 모시는 ‘삼신받기’를 했다. 삼신받기를 할 때에는 따로 날을 받아서 이루어졌다. 아이가 생기면 집수리를 함부로 하지 않는 등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조심했다.
자세히보기제주도의 출생의례
제주도에서 아이를 얻기 위해 치성을 드리는 대표적인 곳은 한라산의 영실, 아흔아홉골, 성산읍 오조리의 식산봉, 가파도의 개미왕들, 대정의 산방산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자의례를 통해서 아이를 가졌다면 아이를 낳는 과정까지 산모는 몸가짐을 조심한다고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도 부지런히 일상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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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돌’이라고 부른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이라는 의미와 성장을 해나가는 하나의 통과의례적인 의미가 있다.
돌을 맞이한 아이에게 예쁜 돌복을 입히고 음식을 풍성히 차려 잔치를 하며 아이의 장래를 예측해보는 돌잡이도 한다. 그리고 여러 이웃집에 돌떡을 돌림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아이의 생일을 알리고 축하 받는다.
배경사진:사람의 일생(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관례는 아이가 어른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례이다. 우리나라의 관례는 고려 말에 『주자가례』가 유입되면서 사대부 계층에 정착되었다.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에서는 『주자가례』 등의 예서에 따라 관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널리 행해졌으며, 관례를 해야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관례는 가문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성대하게 치르는 경우도 있었으나, 집안 형편에 맞게 간략하게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관례의 절차는 ‘택일- 준비-시가례-재가례-삼가례-초례-자관자례-현우사당’ 순으로 진행되었다.
중종 때부터 조정의 주도 하에 『오례주의』의 「문무관관의」와 『주자가례』에 의한 관례가 일반인에게 권장되었다. 이로 인해 왕실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가에서도 관례를 행하게 되었다. 관례는 가문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성대하게 치르는 경우도 있었으나, 집안 형편에 맞게 간략하게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중시하는 가문에서는 관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가계례는 혼례하기 전에 여자가 쪽을 찌어 올리고 비녀를 꽂는 것을 말한다. 계례는 혼인이 정해지면 하였으나, 15세가 지나도록 혼인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15세에 계례를 행하였다. 혼례로 성인의식을 대신하였으므로 혼례 전에 계례를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남자의 관례에 빗대어 계례를 ‘여자관례’ 라고도 한다. 남자는 관과 의복을 세 번 씌우고 갈아 입히는 삼가례(三加禮)인 데 비해 여자의 계례는 머리를 올려 비녀를 꽂고 관으로는 족두리를 씌우며 의복으로는 당의나 배자로 한 번 갈아입게 되는 단가례(單加禮)였다. 여자의 계례는 남자에 비해 매우 간소하게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히보기자관자례(字冠者禮)는 관례와 계례를 행할 때 관자(冠者) 혹은 계자(筓者)에게 자(字)를 지어주던 의식이다.
자관의례는 관자 혹은 계자에게 성인으로서 혹은 인격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 마지막 단계에 행했던 의례였던 것이다. 관자 혹은 계자에게 새로운 이름인 자를 주는 것은 당사자들이 성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성년식의 시련은 다양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외줄 새끼에 매달려야 했고, 양주 지방에서는 백운대 정상에 있는 낭떠러지를 뛰어 건너야 했다. 그리고 호남 지방에서는 무거운 들돌을 들어야 했고, 개성 지방에서는 바위를 안고 혹은 등에 지고 돌았다. 이러한 행위들은 성인이 갖추어야 할 힘과 담력, 용기와 인내 등을 시험했고, 성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한 시험을 통과하여 자신이 성인의 자질을 갖고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자세히보기지역 농가에서는 일반적으로 15~20세 청년들이 힘겨루기하며 성년식을 치르며 온전한 어른으로 인정을 받는다.
성년식은 전국적으로 부르는 말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돌을 들어 힘겨루기를 하는 등의 비슷한 과정을 보인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성년식
진세례
진세례는 주로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부지역에 전승되는 풍속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농경지가 넓어 과거부터 인구밀도가 높았다. 또한 논농사의 비중이 높아 남성 노동력이 집약적으로 요구되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많은 일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 두레를 내거나 품앗이를 하려면 일정한 자격 또는 교환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일종의 성년식의 장치로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이러한 풍속이 많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세히보기충청도의 성년식
들돌들기
충청남도 논산시에서는 마을에 들돌을 들어야만 한명의 온전한 장정으로 인정받는 풍습이며, 주로 백중날 이루어졌다. 백중은 농민들이 힘겨운 농사일에서 쉬어가는 날로 흔히 머슴날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농사일을 하던 농민들이 힘자랑을 하기도 하고, 무거운 돌을 들어올려 장정으로 인정받는 날인 것이다. 돌은 마을마다 다소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손잡이가 없는 완전한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무게는 쌀 한 가마니 정도의 무게이다.
자세히보기제주도의 성년식
남자들의 힘겨루기,
제주도 뜽돌들기
제주도의 뜽돌들기는 내륙에서의 들돌들기와 유사하다. 옛날 머슴들이 힘겨루기를 통해 품삯을 정하거나, 농촌의 청소년들이 성년식이었다. 현재는 이러한 놀이가 전승되는 마을은 없으나 체육대회나 축제에서 놀이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자세히보기어른이 되어 내는 음식과 술
진세턱
두레에 들어가는 청소년을 진세, 진서라 부르기 때문에 두레에 내는 술을 ‘진서술’이라고 부른다.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전라남도 여수에서는 ‘손더듬’이라고 한다. 충청도에서는 두레에 들어가는 사람을 조무래기라는 뜻의 ‘꽁배’라고 부른다. 따라서 진서술을 꽁배가 내는 술이라 하여 ‘꽁배술’이라고 한다. 진세턱을 통한 신입례는 양반층의 관례(冠禮)와 대비되는 농민들의 성년식이라고 할 수 있다. 농민들은 노동력을 상징할 수 있는 힘, 육체적 노동 능력에 대한 검증을 통해 공동 노동 조직인 두레에 들어가 온전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자세히보기우리나라의 혼례의 조선시대에는 사회통치이념인 성리학의 영향으로 혼례에 많은 절차와 제한이 있었다. 조선시대 전통적인 혼례식은 사모관대를 차려 입은 신랑과 족두리에 원삼을 입은 신부가 서로 절을 하면서 일생을 함께할 것을 맹세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이런 전통적인 유교식 혼례를 구식 혼인이라 부르고 교회에서 하는 기독교식 혼례가 유행하였다.
혼례는 ‘인륜지대사’라고 부르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이다. 그래서 혼례는 가장 큰 경사로 신랑과 신부가 부부가 되는 것을 알리는 중요한 의례였다.
혼례의식은 크게 중대한 예식이라는 의미로 대례(大禮)라고 하는데, 좁은 의미로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 얼굴을 보고 절을하는 교배례와 잔을 주고받는 합근례를 뜻하고, 넓게는 신붓집에서 진해되는 혼례의 모든 절차를 말하기도 한다.
전안례
奠雁禮
혼례의 가장 첫 의식으로 신랑이 신부 부모에게 기러기를 드리는 의식을 전안례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신부 어머니가 기러기를 받으나 지역마다 차이가 나타난다. 조선 초기에는 살아있는 기러기를 사용했지만 구하기 어려워 나무로 깎은 기러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자세히보기교배례
交拜禮
전통사회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 얼굴을 모르고 혼인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진행되던 혼례 중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의례가 바로 교배례이다. 교배례는 서로 절을 주고받는 의식으로 신붓집에서 이루어지는 신랑이 신부를 맞는 절차이다.
자세히보기합근례
合巹禮
합근례는 교배례가 끝난 후에 진행된다. 근은 하나의 박을 갈라서 두 개의 바가지로 만든 것이다. 신랑과 신부가 하나의 표주박으로 만든 잔을 들고 술을 주고 받는 의식으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세히보기사진출처:대한민국역사박물관
“씨집 장게 안 강 살민 저승 강 망데기 쓴다“ 혼사를 치르지 못하고 죽은 처녀 총각은, 저승가면 인간 본연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로 벌을 받는다는 제주도의 속담이다. 문중 조직이 발달하지 않았던 제주도에서는 혼인의례보다 잔치가 더 중심적이었다. 따라서 혼례는 친인척이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이자 마을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동네 잔치이기도 했다.
제주도에서는 혼례를 ‘일뤠잔치’ 혹은 ‘이레잔치’라고도 한다. 제주도 지역 혼례의 특징으로 풀이하면 일주일에 걸칠 정도로 잔치가 여러 날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혼례를 치루는 과정에서 잔치는 결혼식 전날 준비를 하면서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가문잔치’, 결혼식 날 신랑네 집과 신부네 집에서 열리는 ‘잔치’, 결혼식 다음 날 신부 집의 ‘사돈잔치’, 그 다음 날 신랑 집의 ‘사돈잔치’가 있다. 이렇듯 나흘에 걸쳐서 양가에서 세 번씩 모두 여섯 번의 잔치를 한다.
자세히보기사돈열맹은 신랑과 신부의 친인척이 인사를 나누는 의례를 의미한다. 사돈열맹은 신부집에서 먼저 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신랑집에서도 진행된다. 서로 인사를 하고 간단히 술잔을 주고 받는다. 신랑네 집에서 진행될 때는 신부가 가진상이라는 신부상을 받는다. 이때 신부는 세 숟갈 정도 먹고 상을 물리는 것이 관행이다. 이렇게 남은 음식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또한, 사돈열맹 후에는 친인척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잔치를 연다.
자세히보기제주도에서는 혼례 준비 중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새끼돼지를 키우는 일이다. 혼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부모가 미리 1~2년 전부터 ‘통시’에서 어린 돼지를 키우며 미리 준비하였다. 여기서 통시는 변소, 즉 화장실을 의미하고, 아기 돼지는 ‘자릿도새기’라고 부른다. 잔치에는 음식이 필요한데 갑자기 준비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잘 키워서 혼인날이 되기 이틀 전에 집안 가족들이 모여 돼지를 잡는데, 이날이 바로 돼지를 잡는 일명 ‘돗 잡는 날’이다.
자세히보기1960년대까지만 해도 신랑집은 청렴함을 의미하는 대나무, 신부집은 일보종사의 삶을 의미하는 소나무로 솔문을 만들었다.
육십갑자의 갑이 돌아왔다는 뜻으로 만 60세를 의미한다. 61세, 만 60세가 되는 해를 환갑년 혹은 갑년이라고 하고, 그 해 생일을 환갑날 또는 갑날이라 부른다. 환갑을 맞이한 사람은 갑주(甲主) 또는 환갑주라고 한다. 환갑날에는 아침부터 갑주의 집에서 환갑잔치가 열린다. 회갑은 태어난 해가 돌아왔다는 의미도 있지만 과거 평균 수명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장수를 축하하는 의미를 담아 다른 생일과 달리 특별하게 여겨 성대하게 잔치를 열었다.
자세히보기20세
[남] 약관(弱冠) [여] 방년(芳年)
[남] 갓을 쓰는 나이 [여] 꽃다운 나이
30세
이립(而立)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
40세
불혹(不惑)
세상 일에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50세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깨닫는 나이
60세
환갑(還甲)
태어난 간지의 해가 다시 돌아온다
70세
고희(古稀)
중국의 시인인 두보의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라는 시문에서 유래. 예로부터 사람이 일흔 살까지
사는 것은 드문 일이라는 뜻
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회혼례는 회혼을 맞이한 부모를 위해
자녀들이 마련하는 잔치이다.
회혼잔치는 회갑잔치와 마찬가지로 부부의 연을 맺은 지 60년이 되어 그 해가 다시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자리이다. 회혼례를 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한평생을 함께 살았고,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녀가 없어야 한다.
회혼례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주변 사람들을 초청한다. 과거에는 집에서 많이 했지만 현재에는 예식장이나 음식점에서 하는 일이 더 많다. 집에서 하는 경우에는 마당에 혼례상을 준비한다. 회혼례 날에 노부부는 혼례를 올리는 것처럼 혼례복을 곱게 갖춰입고 혼례상을 차려놓고 혼례의식을 재현한다.
회혼식을 한 후에는 회갑잔치와 같이 큰 상을 차려놓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장수를 기원하는 술을 올린다.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술을 올리는 것을 헌수(獻壽)라 한다. 그 이후에는 친척을 포함해 여러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다. 이날 자녀들은 모두 어린아이처럼 색동옷을 차려입고 부모 앞에서 춤을 추는 등 재롱을 부려 즐겁게 한다.
자세히보기유교에서는 장수를 뜻하는 ‘수(壽)’, 풍족한 삶을 뜻하는 ‘부(富)’, 건강하고 하는 강녕(康寧), 덕을 좋아한다는 의미의 ‘유호덕(攸好德)’, 깨끗하게 일생을 마치고자 하는 바람이 담긴 ‘고종명(考終命)’을 오복(五福)이라 하였는데,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장수를 으뜸으로 여겼다.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 방을 장식하거나 회갑 축하연에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그림으로 대표적인 것이 ‘백수백복도’와 ‘수성노인도’이다.
사진출처:국립민속박물관
백수백복도 百壽百福圖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는 백 개의 수(壽)자와 백 개의 복(福)자가 그려져 있는 그림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백의 의미는 단순한 숫자 100이 아닌 ‘많다, 꽉 차다, 가득해서 풍족하다’는 뜻으로 완성과 전체를 의미한다. 숫자 100을 이용한 그림들은 일반적으로 장수나 다복, 다남을 상징한다. 백수백복도 중에는 가옥, 꽃, 화분, 가마를 탄 인물, 범선帆船, 승려 등의 여러 모양을 다양하여 도안으로 만들기도 한다. 수복 문자의 둘레에는 박쥐문양을 주로 배치하였다. 박쥐는 수복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수 자 혹은 복 자를 중앙에 두고 박쥐 두 마리가 감싸고 있는 그림은 쌍수(雙壽)와 쌍복(雙福)을 상징한다. 더욱 오래 살고, 복이 겹쳐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백수백복도는 그림뿐만 아니라 자수병풍으로도 많이 꾸며졌다. 장수를 축하하고 기원하는 회갑잔치나 회혼례를 할 때 차려지는 큰 상에 뒤에 장식용 병풍으로 많이 사용된다.
자세히보기사진출처:국립민속박물관
수성노인도 壽星老人圖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는 회갑 축하와 장수를 축원하는 축수용(祝壽用) 그림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수성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인 남극성 뜻하며, 노인성으로도 불린다. 이 수성을 의인화하여 그린 그림이 수성 노인도이다.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모습은 작은 키와 몸에 비해 과장되게 이마가 길고 커다란 머리, 긴 수염, 발목까지 덮인 도의(道衣) 차림의 노인이다. 손에는 두루마리 책이나 불로초 혹은 복숭아와 같은 장수를 상징하는 것들을 들고 있거나, 나무를 배경으로 사슴이나 학 또는 선동자(禪童子)와 함께 그리기도 한다.
자세히보기상장례란 주검을 처리하는 모든 의례절차를 말한다. 우리 선조들은 죽은 후에도 영혼은 생전과 같이 살아갈 것이라는 내세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장례에 대한 처리 절차를 마련하여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또한 사후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후장(厚葬)이나 순장을 당연한 섭리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레 조상숭배로 이어지는 상장례 절차를 만들어내게 하였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장묘 풍습으로 ‘초분’을 들 수 있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돌이나 통나무에 관을 얹어 놓고 탈육이 될 때까지 이엉과 용마름 등으로 덮은 초가 형태의 임시무덤이다. 초분을 만든 후에는 소나무 가지를 엮은 울타리로 주변을 둘러 짐승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해마다 이엉을 교체하는 등 보수하며 가꾼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살피는 지역도 많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다니는 길에 보고 관리할 수 있도록 마을 근처의 산 중턱이나 밭 근처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초분은 본격적인 장례를 치르기 전에 시행하는 빈장의 일종이자 복장제(復葬制, 시체를 가매장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 발굴해 내어 그 뼈를 깨끗이 씻고 장례 의식을 행한 후 다시 매장하는 장례 방법의 하나) 라고 볼 수 있다. 풍습은 일제강점기부터 줄어들기 시작했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초분이 행정적으로 금지되어, 현재는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
충청도의 지역의 초분
충청남도 보령시 녹도에서는 사람을 일정기간 안치하는 초분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어업을 나가기 전에 땅을 파면 부정을 탄다는 풍습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해안의 산비탈에 초분을 하였으며, 녹도를 미롯한 충남 서해의 여러 도서에서는 ‘덕대초분’이라 하여 집처럼 크게 만들어 한쪽에 출입구를 만들고 상주가 드나들며 관을 점검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자세히보기전라도의 지역의 초분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에서는 초분이 1980년대까지도 섬 전체에서 시행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일부 지역에서 밭이나 산언덕에서 초분을 볼 수 있었다. 2000년대까지 조사된 바로는 청산도가 가장 많은 초분을 볼 수 있는 지역이다. 이 외 전라도 여수, 신안, 영광 등에 초분이 남아있다.
자세히보기강원도 지역의 출병
강원도에서는 ‘출병’이라는 가매장법이 있었다. 적당한 묫자리를 찾을 때까지 2,3개월부터 2,3년까지 장례를 지내지 않고 매장만 해놓고 기다렸다고 한다.
자세히보기경상도의 지역의 초분
부산시 동래구 북면 두구동에서는 시신을 베로 싸서 삿자리 로 묶어 말뚝 2개를 교차시켜서 매듭을 지어 만든 다리에
올려두고 지붕을 만들어 위를 덮고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친 ‘채봉’을 하였다. 이는 2월 영등할미가 내려오는 달에는 땅을 파고 묘를 쓸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 시기에 땅을 파고 장례를 치르면 부정을 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죽사리 마을의에서는 초분을 치봉이나 우봉이라 불렀다. 경상남도 퉁영시 사량면 옥동에서는 초분을 출벤, 샘봉, 샘뱅 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1980년대 까지는 초분이 많았다고 한다.
가가례(家家禮)를 풀이하면 집안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나 절차가 다르다는 뜻이다. 송나라의 학자 주희가 가정에서 진행되는 예절을 모아 만든 『가례』는 우리나라 의례의 가장 기본이 되는 도서로 이 예서를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세부적인 사항이 달라지거나 지역에 따라 다르게 변화할 수 있다. 이렇게 변화한 부분이 하나의 관습과 전통이 되어 가가례가 된다.
자세히보기조상이 돌아가신 날을 ‘기일(忌日)’ 또는 ‘휘일(諱日)’이라고도 한다. 기제사는 매년 고인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로, 일반적으로 제사라고 한다.
제사를 지내는 날은 가장 이른 시간인 자시(子時)부터 시작한다. 자시는 오후 11시 30분부터 새벽1시 30분 까지로 전통적으로 날이 바뀌는 시간으로 인식된다.
또한, 자시에 기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우선 조상이 돌아가신 날 가장 이른 시간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가장 최우선적으로 조상을 모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자시는 조상신이 활동하는 데 가장 좋은 시간대라고 여겨졌고, 늦은 밤 조용한 시간이기 때문이라고도 전해진다.
『가례』 의 상차림에는 과일, 고기, 생선이 올라간다고 되어있는데, 올라가는 과일이나 고기의 구체적인 종류나 개수는 정해져 있지 않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제사상에 생선으로 숭어가 올라간다. 하지만 경상북도 안동지역에서는 고등어와 문어를 올린다. 또한 차례상은 특별하게 조상이 당부한 유언이 있거나 특별히 좋아하신 음식이 제물로 올라가면서 변화하여 가가례로 자리잡는 경우도 있다. 경상북도 안동의 이황 종가에서는 평소 검소함을 강조하셨던 선생님의 뜻을 받아서 과일을 높게 쌓아서 올리지 않고, 삼색나물도 한 그릇에 모아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