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는 거대한 암벽에 그림을 새기거나 비석에 글자를 새기고 종이에 글을 쓰고나무에 글자를 새겨 종이에 찍어내는 등 주어진 환경과 조건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생활과 역사를 기록했다.이렇게 기록된 자료는 오늘날 우리의 유산이 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고 있다.
종이자료는 대표적인 기록유산이다. 종이에 직접 쓰거나 인쇄된 것으로 서적이나 문서, 병풍이나 부채, 영정 등 다양한 글과 그림으로 기록되었다. 이 중에서 서적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종이는 닥나무를 주원료로 한 ‘한지(韓紙)’를 사용했다. ‘닥종이’로도 부르는 한지는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만들어 사용했는지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중국 기술을 받아들여 삼국시대부터 독자적인 방법으로 생산했다고 알려진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자료는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신라시대)으로,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기도 하다.
나무를 사용한 기록자료는 크게 목간과 목판으로 나뉜다. 목간은 막대 모양의 나무에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린 것으로 종이가 발명되기 전 사용되었다. 목판은 인쇄용 판으로 나무에 내용을 새겨 종이자료를 대량을 제작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 외에도 현판, 목활자, 도장 등 목재를 사용한 다양한 자료가 남아있다.
목간은 나무를 잣대나 막대의 모양으로 다듬어 그림이나 글자를 기록한 것으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주로 쓰였다. 대부분 붓으로 쓴 것이 많고 간혹 칼로 새기고 그 홈에 붓으로 덧칠하기도 하였다. 물품 내역, 행사 내용, 낙서 등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이후로 경주 안압지, 하남 이성산성, 함안 성산산성 등의 지역에서 목간이 출토되었다.
목활자는 나무 조각에 하나의 글자를 새긴 각각의 자형을 말한다. 나무판에 필요한 문구대로 목활자를 배열하여 인쇄하는 형식으로 한 판에 한 면에 해당에는 내용을 모두 새긴 목판과 구별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목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이 국가 기관은 물론 절이나 서원, 민간에까지 보급되면서 민간에서도 책을 제작할 수 있었다.
목판은 어떤 내용을 인쇄하기 위해 새겨놓은 나무판이다. 개인의 문집이나 족보, 의학서, 과학서, 경전, 지리지, 그림 등 매우 다양하다. 목판인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조선시대에는 213개 지역에서 4,605종의 서적이 간행되었다고 한다.
현판은 성문이나 사찰, 누각 등 건물의 문이나 처마 밑에 걸린 액자를 의미한다. 주로 건물의 이름이나 건물과 관련된 기록이 담겨 있다. 현판은 주로 나무 널빤지에 글자를 쓰고 틀에 무늬를 새겨 꾸미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돌과 쇠붙이에 기록된 유산을 금석자료라 한다. 금석자료는 철이나 청동과 같은 쇠붙이에 기록된 것과 비석이나 석벽과 같은 돌에 기록된 유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흔히 금석문이라고 부른다. 토기나 기와에 새겨진 것, 옛 무덤이나 도자기에 붓으로 글씨를 쓴 것, 옷감과 같은 천에 쓰인 기록 등도 넓은 범위의 금석자료에 포함되는데, 우리나라의 금석자료 중에서는 비석이 가장 많다.
1702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화공인 김남길에게 그리게 하여 화첩인 『탐라순력도』을 만들고, 『남환박물』을 저술하여 제주도의 자연, 역사, 풍속 등을 생생하고 상세하게 기록하여 남겼다. "순력"은 지방관이 매년 봄‧가을마다 관할 지역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이 잘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을 의미한다. 『탐라순력도』 에는 순력 행사 장면을 담은 그림 28면과 일상적인 행사 장면을 담은 11면 등 당시 제주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주왕산지』는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주왕산과 관련된 시, 유람 기록 등의 문학작품을 한 데 수록하여 문학사적으로 위상이 높은 자료이다. 조선 후기 청송군 출신의 학자인 서원모가 책을 만들었으며, 붓으로 직접 글씨를 쓴 필사본의 형태로 되어 있다. 이 서적에는 주왕산의 명칭 유래를 알 수 있는 주왕 설화를 비롯해 주왕산을 다녀간 선비들이 남긴 유람 관련 기록, 90여 수의 시, 주왕산과 관련된 지명 등이 실려 있다.
『청구영언』은 1728년 서울 지역에 명성 높은 가객(歌客)이었던 김천택(金天澤)이 580여 수의 시조(時調)를 엮어 편찬한 노래집이다.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노래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청구영언(靑丘永言)』의 청구(靑丘)는 조선을 가리키는 또 다른 말이며, 영언(永言)은 긴말, 즉 노래를 뜻한다.
『해동가요』는 『청구영언』, 『가곡원류(歌曲源流)』와 함께 조선의 가곡 문화를 대표하는 노래집이다. 『해동가요』를 편찬한 인물은 노가재(老歌齋) 김수장(金壽長, 1690~?)으로 병조에 소속된 서리 출신으로 알려진 그는 당시 가객으로서 명성이 대단하였다. 현재 원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이본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곡원류』는 박효관(朴孝寬, 1800~1880)과 안민영(安玟英, 1816~?) 이 당대를 대표하는유명한 가객들의 시조를 수집한 노래집이다. 이 노래집은 편찬 이후, 꾸준한 재편집을 거치며 전해지고 다양한 이본이 만들어져, 19세기 가곡문화의 형성과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조들의 삶을 알게 해주는 감성적인 기록문화인 시전지(詩箋紙)는 시나 편지를 적는 종이를 의미한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조선 후기에는 개인들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시전지 목판에 다양한 그림을 새기고 여러 가지 색의 염료를 묻혀 종이에 인쇄하여 꾸몄다.
매향은 말 그대로 향나무를 묻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향나무를 묻게 된 동기나 이유에 대해 글자를 비석에 새긴 것을 매향비라고 한다. 향나무는 주로 불교에서 미륵불에 바치는 침향을 얻기 위한 것으로 힘들고 고된 삶을 사는 민중들이 미륵세계를 염원하는 미륵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되어 남아 있는 매향비는 10여 점으로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사천 흥사리 매향비’와 ‘영암 엄길리 매향비’, 조선시대의 ‘영암 채지리 매향비’, ‘예산 효교리 매향비’ 등이 있다.
UNESCO는 1995년에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인데도 훼손되거나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있는 기록 유산의 보존과 이용을 위하여, 기록 유산의 목록을 작성하고 효과적인 보존 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사업을 시작하였다.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16개가 지정되어있다. 조선시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부터 국가를 일으키기 위한 국민적 기부운동이었던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1983년의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방영 당시 기록물 등은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기록한 소중한 자료이다.나의 기록, 우리의 기록이 우리나라를 기록하는 것이 되고, 현재와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원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