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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공간, 사찰

「 신성한 공간, 사찰 」
종교의례를 집행하는 신성한 장소인 사찰. 전국 곳곳에 약 900여 개의 전통사찰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찰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우리 선조들이 기록한 ‘사찰연기설화(寺刹緣起說話)’에는 사찰의 역사와 사찰에 대한 수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찰연기설화는 사물의 유래나 원인을 뜻하는 연기(緣起)를 중심으로 하는 단어로 사찰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절터를 잡게 된 유래, 사찰의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부터 사찰연기설화의 매력을 확인해보자.

사찰은 어떻게 세워졌을까?창건설화

사찰 창건설화는 특정한 사찰이나 암자 등이 어떻게 처음 만들어졌고 절터를 잡게 되었는지 또는 절 이름의 유래 등이 주요 내용이다.
대부분의 사찰 창건설화는 교리를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여기에 설화적 영험성 등이 추가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전승되었다.

보덕이 백제 땅에 창건한 공주 신원사
보덕이 백제 땅에 창건한 공주 신원사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신원사는 651년 고구려 승려인 보덕이 백제로 와서 창건한 사찰이다. 신원사는 계룡산에 있는 4대 사찰 가운데 남쪽 사찰에 해당한다. 1866년 심상훈이 중수하면서 절 이름을 신정사에서 신원사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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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이 일곱 왕자의 성불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하동 칠불사
김수로왕이 일곱 왕자의 성불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하동 칠불사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칠불사는 쌍계사의 말사이며 지리산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가락국 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외삼촌인 장유화상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하다가 성불한 것을 기념하여 수로왕이 세운 사찰이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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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과 원효가 세운 양양 낙산사
의상과 원효가 세운 양양 낙산사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에 있는 낙산사는 의상과 원효가 관음보살의 진신을 만나기 위해 찾았다는 사찰이다. 의상과 원효가 관음보살의 진신을 만나러 낙산사 동굴을 찾지만, 원효는 관음보살의 진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의상만 관음보살의 진신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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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창설화

낡은 사찰을 고치다, 중창설화

사찰 중창설화는 시간이 흘러 낡아버린 사찰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짓는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왕의 명령에 따라
중창하기도 했으며, 임진왜란 등 큰 전란이 일어나 사찰을 수리해야 할 때는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 사찰 중창에 참여했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명으로 창건되고 조선 태종 왕명으로 중창된 서울 청룡사
고려 태조 왕명으로 창건되고 조선 태종 왕명으로 중창된 서울 청룡사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청룡사는 고려 태조 때 왕명으로 창건되고 조선 태종 때 왕명으로 중창된 사찰이다. 청룡사는 창건된 이래 주지로 비구니 스님만 주석하고 있다. 청룡사에는 17세기에 조성된 석지장삼존상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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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고난을 겪고도 중창되어 남은 대구 남지장사
수차례 고난을 겪고도 중창되어 남은 대구 남지장사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위치한 남지장사는 양개가 창건했다는 말 이외에 다른 창건설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찰의 이름은 인근에 위치한 북지장사를 염두에 두고 최근에 붙여졌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훈련장으로 썼으며, 오랜 기간 폐사와 중건을 반복한 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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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 모셔진 십팔나한을 보고 감응해 세종이 중창한 남양주 수종사
동굴에 모셔진 십팔나한에 감응해 세조가 중창한 남양주 수종사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수종사는 1459년 세조 때 크게 중창하였다. 세조가 오대산에 갔다가 돌아올 때 들은 종소리를 따라간 동굴에 십팔나한이 모셔져 있었다. 세조가 동굴에 가보고 신묘한 조화로 자신을 오게 한 부처님께 감응해서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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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설화

사찰이 망하다, 폐사설화

사찰 폐사설화는 사찰이 망해 터만 남거나 사찰에 승려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된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폐사설화의 경우 폐사의 원인을 승려와 승단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설화적인 요소로 풀어내어 사람들이 사찰의 쇠망을 진단할 수 있게 한다.

빈대로 인해 사찰이 폐사되었다고 전해지는 원주 동화사
빈대로 인해 사찰이 폐사되었다고 전해지는 원주 동화사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에는 동화사 터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동화사는 ‘빈대’로 인해 폐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빈대로 사찰이 훼손되었다는 얘기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따라서 전설에서 말하는 빈대는 ‘기생충’이 아니라 사찰 주변의 유림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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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봉우리에 길을 내고 다리를 놓아 소실된 산청 덕산사
산봉우리에 길을 내고 다리를 놓아 소실된 산청 덕산사

경상남도 산청군에는 덕산사가 있다. 이 절은 광해군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화재 때문에 폐사되었다고 하며, 그에 관한 설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 주지 스님이 절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자 이들을 막기 위해 명당을 훼손하였고, 그로 인해 절이 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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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바위의 구멍을 더 크게 하려다 막혀 폐사된 거창의 한 암자
쌀바위의 구멍을 더 크게 하려다 막혀 폐사된 거창의 한 암자

경상남도 거창군에는 한 암자와 쌀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사람 주먹 한 개 정도 들어갈 만한 쌀바위의 구멍에서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어 암자를 지키는 사람들도 떠나 암자도 폐사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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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연기설화 속 신비한 존재들의 정체를 밝혀라!

「 사찰 연기설화 속 신비한 존재들의 정체를 밝혀라! 」
연기설화는 주로 사찰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변해왔는지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사찰이 변화하는 환경 중심에는 사찰뿐만 아니라 사찰의 석탑과 불상 등
탑상(塔像)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또한 사찰에서 학덕을 높이 쌓은 승려들인 고승(高僧)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연기설화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주인공들을 통해 연기설화의 정체를 확인해보자.
사찰
寺刹
사찰은 연기설화의 주요 소재이다. 사찰에 관한 다양한 부분을 다루면서 사찰을 더 신성하고 영험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또한 사람들이 쉽게 불교를 접할 수 있도록 사찰의 역사에 대한 설화적인 면을 강하게 부각시키기도 한다.
남원 대복사
남원 대복사
전라북도 남원시의 대복사에는 대복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복이가 구렁이에 홀려 아내에게 쏜 화살이 아내의 어깨에 명중했으나 아내는 아무렇지 않았다. 후에 아내가 스님들께 시주할 법의인 가사를 펼치자 화살이 날아와 가사의 어깨에 꽂혔다. 이 일을 계기로 대복이는 불교에 귀의했고, 전재산을 들여 후에 대복사로 불릴 대곡암을 중수했다.
진주 청곡사
진주 청곡사
경상남도 진주시의 청곡사에는 영험한 청학과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도선국사가 진주 남강변을 지나갈 때 청학 한 마리가 나타나 강 위로 날아갔다. 청학이 날아가 앉은 곳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했다. 이에 도선국사는 그곳을 천하의 명당이라 여겨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는 것이다.
서산 죽사
서산 죽사
충청남도 서산시의 죽사에는 바위와 대나무에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대나무와 바위는 누가 먼저 높이 올라가는지 내기를 했다. 바위가 거의 승리를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 산에 살던 용이 바위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다. 바위가 주춤하는 틈을 타서 대나무가 내기에서 이기게 되었고 사람들은 절 이름을 ‘죽사(竹寺)’로 부르게 되었다.
탑상
塔像
탑상은 『삼국유사』에서 주로 쓰이던 단어로 탑과 불상, 사찰의 유래 이야기가 섞여 있다. 즉, 불상과 불탑, 범종 등 불교 사원의 조형물에 얽힌 이야기를 불교 신앙과 연결해 설명하고 있다.
경산 선본사와 약사여래좌상
경산 선본사와 약사여래좌상
경상북도 경산시 선본사의 약사여래좌상은 원광의 제자 의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638년에 조성하였다. 약사여래좌상에 정성껏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꼭 이루어지며, 영험함이 많다는 의미로 ‘갓바위 부처’ 라고도 불린다.
울산 동축사와 아소카왕이 보낸 불상
울산 동축사와 아소카왕이 보낸 불상
울산광역시 동구의 동축사에서 ‘동축’은 인도의 동쪽에 지은 절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동쪽에 있는 부처의 나라’를 뜻하는 이름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인도의 아소카왕이 보낸 모형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신라시대 진흥왕 때 창건된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부여 대조사와 미륵보살입상
부여 대조사와 미륵보살입상
충청남도 부여군 대조사는 미륵보살입상과 큰 연관이 있다. 전해지는 설화들은 큰 새가 바위에 앉아 부처로 변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대조사의 건물은 이 미륵보살입상을 중심으로 들어서 있고,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고승
高僧
고승은 덕이 높은 승려들을 말한다. 고승에 관한 연기설화에는 주로 불교 교리의 이해에 대한 내용과 고승들의 전기가 담겨있으며, 몇몇 설화에서는 은둔했던 고승들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서울 도선사와 도선국사
서울 도선사와 도선국사
서울특별시 강북구의 도선사는 862년(신라 경문왕 2)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도선이 명산 승지를 두루 답사하다가 이곳의 빼어난 산세를 보고 1,000년 후에 말세 불법이 다시 일어날 곳임을 예견하고 절을 창건하였다.
광주 원효사와 원효대사
광주 원효사와 원효대사
광주광역시 북구의 원효사는 6세기 초에서 중반 무렵인 중반 무렵인 신라의 지증왕, 법흥왕 때로 추측될 뿐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후 원효대사가 산자수려함을 사랑하여 이곳에 머무르면서 암자를 개축한 후부터 원효사·원효암·원효당 등으로 불렸다고 전해온다.
창원 성주사와 무염국사
창원 성주사와 무염국사
경상남도 창원시의 성주사는 무염(無染) 국사가 창건하였다. 당시 해안지대에서는 왜구의 피해가 극심하여 왕이 항상 근심하였는데, 지리산에 있던 무염이 이 산에 와서 신통력으로 신병(神兵)을 불러 물리쳤으므로 왕이 기뻐하고 밭 360결(結)과 노비 100호(戶)를 내려서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연기설화의 다양한 매력 속으로!

「 연기설화의 다양한 매력 속으로! 」
연기설화는 사찰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설화’를 기반으로 한 만큼 흥미와 재미요소가 담겨있기도 하다. 이러한 연기 설화의 매력은 설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로 발산되었다. 연기설화를 바탕으로 설화에 담긴 이야기를 한껏 뽐낸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들을 만나보자.

곡성 관음사

고전소설 심청전

고전소설 심청전
1
관음사와 효녀 원홍장

『관음사사적』에는 「심청전」의 근원설화로 알려진 원홍장 이야기와 처녀 성덕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원홍장이 진나라의 황후가 된 후, 아버지를 그리워하여 만들어 보낸 관음보살상이 처녀 성덕에게 발견되어 그 관음상을 지고 가다 머문 곳에 관음사가 창건되었다.

2
연기설화의 매력포인트
포인트 一
정성을 다하여 장님 아버지를 봉양하는
효녀 홍장(洪莊)
포인트 二
스님의 간청에 16세 딸을
데려가 팔아 쓰도록 한 아버지,
이별의 눈물로 멀었던 눈을 뜨다.
포인트 三
조선의 소녀, 빼어난 미모로
중국의 황후마마가 되다.
3
연기설화,
고전소설 『심청전』으로

심청은 어머니를 여의고 눈이 먼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공양미를 시주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심청은 몸을 팔아 인당물에 빠지고, 용궁에서 전생의 일과 앞으로의 운명을 알게 된다. 심청은 난징 상인들에게 발견되어 새 왕비가 되었고, 맹인축제를 열어 심봉사를 다시 만난다. 심봉사는 딸을 만난 기쁨으로 눈을 뜨게 된다.

낙상이대성관음정취조신

이광수의 소설 『꿈』

이광수의 소설 『꿈』
1
낙산사와 조신

『삼국유사』 제4탑상(塔像)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에는 ‘조신의 꿈’ 설화가 나온다. 이 설화에서 조신은 스님으로 살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 둘이 야반도주 후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둘 다 밑천이 없어 수십 년간 가난에 허덕이며 살다 첫 아이를 잃고, 자식들도 고생길을 걷는다. 조신 부부는 서로의 만남이 고통의 시작임을 깨닫고 이혼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는 모두 꿈이었고 조신은 깨달음을 얻어 정토사를 세우고 선행을 베풀며 살았다.

2
연기설화의 매력포인트
포인트 一
낙산사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좋아하는 여자와 인연을 맺어달라고
기도하자 현실이 되다.
포인트 二
야반도주 후 가정을 꾸렸으나
가난으로 인해 결혼을 후회하고
이혼을 결심하다.
포인트 三
이 모든 것은 꿈이었고,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다.
3
연기설화,
이광수의 소설 『꿈』으로

이광수의 『꿈』은 1947년 면학서관(勉學書館)에서 간행하였다. 『꿈』은 용선화상(龍船和尙)으로 표상되는 섭리에 따라 욕망을 이루지만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살인과 배반으로 파멸하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구조로, 현실의 욕망→욕망의 성취→파탄→자아 인지의 갈등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진다.

통교사와 미황사 설화

뮤지컬 『미황사』

뮤지컬 『미황사』
1
인도의 왕과 미황사

「미황사 사적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적혀 있다. 사자포 앞바다에 돌로 된 배가 나타나 승려 의조가 이를 이상히 여기고 제자들과 같이 배에 올랐다. 배에는 금인(金人)과 금으로 된 상자에 불경과 불상 등이 있었다. 의조는 배를 내려 이들을 임시로 모셨는데, 그날 밤 꿈에 자신이 인도의 국왕이라면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춘 곳에 절을 짓고 이 불상을 안치하면 국운과 불교가 흥할 것이라 했다. 이에 의조는 이를 실천하여 통교사(通敎寺)를 창건하고, 소가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2
연기설화의 매력포인트
포인트 一
바다에 갑자기 등장한 배 한 척,
그 안에는 금으로 된 사람과 금 상자가!
포인트 二
금으로 된 사람이 꿈에 나와
자신을 인도의 왕이라 말하다.
포인트 三
인도의 왕의 말에 따라
소가 멈췄던 곳에 절을 짓다.
3
설화에 현대 음악을 더하다,
뮤지컬 『미황사』

창작 뮤지컬 미황사는 해남을 중심으로 인근에 세력을 형성했던 마한 54국 중 하나를 배경으로 창건설화에 나오는 검은 소와 돌로 만든 배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미황사는 설화 내용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재구성하고 음악을 작곡하였다. 이를 통해 마음에 그늘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려 한다고 한다.

관음암 암자 설화

애니메이션 오세암

애니메이션 오세암
1
오세암과 관세음보살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설악산에 관음암(觀音庵)이라는 암자가 있다. 관음암을 오세암(五歲庵)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설정이란 스님이 암자에서 어린 조카와 지내다 양식이 떨어져 아랫마을로 양식을 구하러 길을 떠났다. 그런데 그 무렵 폭설이 내려 조카는 봄까지 암자에 혼자 있게 되었다. 놀랍게도 아이는 살아있었는데, 조카가 말하길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보살펴주었다는 것이다. 스님은 관세음보살의 신력(神力)에 감동해 암자의 이름을 오세암으로 바꾸었다.

2
연기설화의 매력포인트
포인트 一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절에 데려다 키우다.
포인트 二
먹을 것이 다 떨어져 조카에게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외우며
지내거라."라고 말하고 길을 떠나다.
포인트 三
폭설로 인해 혼자가 된 조카,
관세음보살의 신력(神力)으로 살아남다.
3
오세암 설화,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되다

오세암 설화는 동화 작가 정채봉에 의해 각색되었다. 먼저 조카는 떠돌이 거지로 바뀌어 거지를 뜻하는 길손이가 되었고, 시각장애를 가진 ‘감’이라는 인물이 누나로 추가되었다. 동화 속 길손이는 관세음보살과 함께 승천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오세암에는 전국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믿음 없는 기도를 올린다. 이처럼 오세암 설화는 관세음보살의 신력을 칭송하지만, 자신의 욕심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