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축구전용경기장 앞쪽으로 옛 건물들이 이어져있다. 시장을 찾으려하지만 한눈에 띄지 않는다. 골목으로 들어서야 시장 골목들이 보이는데, 문을 닫은 몇몇 가게들 사이로 생선가게, 방앗간 등의 오래된 가게에 불이 켜져 있다. 가게들을 사이에 끼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제야 새롭게 단장한 평화시장의 모습이 보인다.
이 시장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49년 전이다. 1980년대 이곳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이는 동네 시장이었지만, 점차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갔다. 하지만 이 잊혀진 공간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새로운 활기를 찾는 중이다. ‘숭의평화창작공간’이 문을 열면서 이곳은 오래된 도시의 잊혀진 공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평화시장의 옥상에 오르면,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내려다보이고, 그 주변으로 주상복합 건물을 세우는 공사들이 진행 중이다.
이곳에 남아있는 생선가게 할머니는 마트가 생기면서 손님들이 확 줄었다고 말씀하신다. 이 시장에서 40여 년 동안 생선가게를 하신 사장 할머니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던 이곳을 추억하셨다. 호황기였을 때만해도 골목에 생선가게만 8개가 있었다고 한다. 바글바글대는 손님들에 대한 기억들이 여전히 생생하신 듯하다. 하지만 이제 이 가게만 유일하게 남았다. 장사가 되지 않지만 집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기 뭐해서 가게에 항상 나오신다고 한다. 할머니는 가게 유리창에 붙은 손글씨로 된 가게 팻말을 보면서 창작공간의 샥시들, 그러니깐 입주 작가들이 만들어줬다면서 좋아하셨다.
1971년 시작한 숭의평화시장은 숭의동과 도원동 일대의 주민들이 모여드는 농수산물 재래시장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100여 개 상당의 점포들이 들어와 시장이 활기를 띄었고 안마당에는 좌판들이 가득 차서 지역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이 일대가 변두리로 밀려나면서 주민들은 점점 떠났다. 더욱이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시장의 기능을 잃어버린 이곳의 상점들은 텅 비어버렸다. 이제는 평화시장 생선가게, 그리고 쌀집, 방앗간 등 몇 점포만이 유일하게 남았다. 그렇게 완전히 사람들로부터 잊힐 뻔했던 시장엔 젊은 작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금씩 활기를 만들어갔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도로변과 상점들 사이로 작은 골목을 지나 들어가면 조금은 낯설고 예상치 못하는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색색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다.
잊혀졌던 공간과 지역사회와의 공존을 위해서 2015년 인천시와 미추홀구는 8억 45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시장의 빈 점포 6개 동을 창작공간으로 만들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이곳은 기존의 상점들과의 공존을 통해 새 숨을 쉬기 시작했다. 지역 작가들과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주민들이 어우러져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생기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마을과 가게 주인들이 젊은 작가들의 존재를 경계했다고 한다. 구도심의 발달로 인해 원래 주민들이 갈 곳을 상실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우는 잠시였다. 지금은 기특하다고 격려해주시고 어깨를 두드려주시며 많이 가까워졌다고 한다. 현재 숭의창작공간은 입주 작가 6개 팀, 레지던시 작가 7개 팀 그리고 문화예술단체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리사이클, 전통술과 차 만들기, 도자기 공예, 공공미술 등 다채로운 창작영역이 함께 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1시에 원데이 클래스인 ‘숭의문화예술시장’도 열린다.
서울에는 많은 재래시장이 있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이 활성화되며 재래시장에 위기가 오는가 싶었지만,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성한 시장만의 고유한 매력은 빼앗지 못했다. 최근에는 레트로 열풍을 타고 시장을 찾는 젊은층이 늘어나고 있다니 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몇 천원에 패션 피플이 될 수 있는 동묘시장, 수십 년 된 물건들로 꽉 찬 서울 풍물시장, 마약김밥과 빈대떡 같은 전통 음식으로 유명한 광장시장, 전국 온갖 한약재가 집결한 경동시장까지 특색 있는 시장이 너무 많다. 그중 입이 즐겁기로 으뜸이라는 마장축산물시장을 소개해볼까 한다.
마장축산물시장은 수도권 축산물 유통의 60~70%를 담당하고 있는 축산물 전문 도.소매시장으로, 1500여 개 점포에 연간 이용객 수가 20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축산물시장이다. 1963년 도축장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장동 우시장은 1998년 주변 개발로 도축장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마장축산물시장으로 발전했다. 아직 축산물 시장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곳을 방문하면 깨끗하고 현대화된 시설에 놀랄 수도 있다. 시장 내부에 들어서면 오토바이가 다른 시장보다 확연하게 많이 다니는데, 오토바이 때문인지 몰라도 시장의 활기가 다른 시장과 남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장 축산물 시장은 기존 전통 재래시장의 구조가 아닌 빠르게 변해가는 유통환경과 고객의 요구에 대처하고자 첨단 시스템을 갖추어 자율적으로 상거래가 형성된다. 전국 축산 농가에서 매시간 배송되는 축산물과 수입고기를 취급하며 정확한 원산지와 가격표시제가 의무화되어 소비자가 믿고 먹을 수 있다. 좀 더 저렴하면서 양질의 육류를 공급하여 시중 대형 마트보다 0~30%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민의 건강과 직결된 먹거리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 의사협회도 인정한 곳이라니 더욱 신뢰가 간다.
고기를 전문으로 팔며, 정형도 즉석에서 행하다 보니까 온갖 종류의 고기를 다 살 수 있으며, 한 마리당 얼마 나오지도 않는 희귀 부위도 운이 좋으면 구할 수 있다. 소와 돼지의 온갖 부위를 싱싱한 상태로 취급하는 점포들이 운집해있어 갈비, 등심, 안심은 물론이고 시중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아롱사태, 차돌박이, 토시살, 홍두깨살, 제비추리 등을 이곳에서는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30년의 시간을 고유의 재래시장 체취를 담고 있으면서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흔치 않은 부위를 마음껏 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단골 뿐 아니라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시장의 매력에 금방 빠진다.
명절 등 집안 행사를 앞두고 찾은 사람들 뿐 아니라 해장국집이나 정육점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즐겨 찾고,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에게 단체급식을 하는 병원, 기업, 정부종합청사까지 이곳에서 고기를 구해가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다.
질 좋은 고기를 구입해 집에서 요리해 먹을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 찾아온 김에 시장에 있는 육류 취급 식당을 방문하면 어떨까? 수산물 시장에서 구입한 해산물을 조리해주고 먹을 수 있는 초장집처럼, 시장에서 구입한 고기를 식당에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시장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맛있고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고 쌈 채소와 소주 등 술과 밥을 파는 식당들이 많은데, 마트나 정육점에서 쉽게 살 수 없는 생 내장이나 특수 부위를 가져와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시장만의 보너스인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숯불 위에 올려진 한우 한 점을 입에 넣으면 삶이 풍요로워지며, 잘살 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잠깐의 마법이더라도 의심 없이 푹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불판 위가 깨끗해진다.
식당을 나와 이대로 가기 아쉽다면 시장 옆에 있는 청계천 산책을 추천한다. 마장축산물시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청계천을 만날 수 있는데, 광화문이나 종로에 있는 청계천과 사뭇 느낌이 다르다. 시내 중심가의 청계천과 달리 넓고 한적한 공간이 펼쳐지는데 내가 알던 청계천이 맞나 싶을 정도다.
겨울을 제외하고 저녁에 펼쳐지는 마을 주민 대상 에어로빅 수업은 또 하나의 재미를 준다. 수십 명의 사람이 강사를 따라 운동하는데, 구경하던 나도 어느새 덩실덩실 몸이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소화도 오케이다.
마장축산물시장에는 '나눔의 거리'가 있다. ‘나눔의 거리’는 축산 시장 내의 점포들이 매월 1근씩의 고기를 기부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행사다. 성동구 사회복지사가 가게 앞 '나눔' 표시가 있는 곳에서 고기를 걷어 가는데, 가입 점포만 200개가 넘는다. 시장의 푸근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전통적인 볼거리, 먹을거리, 정까지 푸근한 마장축산물시장은 서울 시내에 있는 축산물도매시장 중 가장 유서가 깊다고 한다. 마장축산물시장 외에 축협 중앙회 축산물 공판장(가락동), 협진식품 축산물 도매시장(독산동)을 방문해 비교해보는 것도 재래시장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 같다.
경기도 부천의 자유시장은 현재 부천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으로 부천역 남부철도를 따라 대규모로 발달된 종합 시장이다. 1947년 문을 열었고, 1970년대 후반까지 부천 유일의 시장이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 큰 호황을 누린 자유시장은 오후 4시가 되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어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당시 부천주민들 외에 인접한 도시인 김포와 광명, 시흥에서도 고객들이 찾아올 정도로 경기도 내에서도 손꼽히는 시장의 하나였다.
현재도 부천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고, 500m 넘는 시장길을 따라 채소와 청과, 축산, 수산물 등 싱싱한 식자재는 물론 식당, 의류, 잡화, 생활용품을 파는 점포수가 250개가 넘은 대규모 시장으로 부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해방 이후 자유시장 인근에 함께 개설된 것이 깡시장이다. 자유시장이 소매시장이라면 깡시장은 과일과 채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도매시장이다. 깡이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할인을 의미하는 ‘와리깡’에서 유래한 말이다.
깡시장에서 청과물 경매가 이루어질 때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시장을 꽉 메웠다. 특히 복숭아가 출하되는 여름이면 이 지역은 복숭아 향기로 가득 찼다. 부천을 복사골이라고 부를 정도로 과거 부천의 대표특산물은 복숭아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에 부천역에서 자유시장 쪽으로 나오면 복숭아를 파는 노점들이 즐비했다.
깡시장은 차츰 규모를 키워서 2006년에는 시장 인정을 받아 ‘부천청과물시장’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하지만 아직도 주민들은 깡시장이라고 부른다. 부천청과물시장은 바깥에서 보면 시장처럼 보이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도매시장의 모습이 드러난다. 자유시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거래 규모는 자유시장보다 크다.
1990년대에 후반부터 인근에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생기고, 신도시와 소사역 중동역 등으로 교통이 분산되면서 2000년대 들어 자유시장도 다른 전통시장들처럼 장세가 약화되었다.
장세회복을 위해 자유시장은 2009~2012년, 2014~2015년까지 2단계 사업을 통해 아케이드 시설과 간판 정비 등 쾌적한 쇼핑 환경을 조성하였다. 또한 추석, 설 등 명절 행사 뿐 아니라 계절별로 가을축제, 보물찾기, 할로윈 대축제 등을 열어 시장이 단지 물건을 사는 곳을 넘어 지역의 문화 공간이며 즐길거리가 있는 곳이란 인식을 심어 주고 있다. 시장행사들을 여러 SNS로 알리고, 점포 대부분이 대형마트처럼 가격표시제를 시행하고 있어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쇼핑을 하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에 현재 자유시장은 가족 단위 고객들과 젊은 층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주말권에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특히 많아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늘이 높아지고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10월 말, 나들이하기 좋은 장소로 수원 화성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정조의 원대한 꿈이 서린 기품 있는 유적지가 관광의 우선순위기는 하지만,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그것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모름지기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고, 정신과 육신의 오감이 만족해야 완전히 충족되지 않겠는가.
현지의 생생한 생활감을 느끼기에 수원남문시장 만한 곳이 없다. 수원행궁에서 수원천을 끼고 팔달문 방향으로 5분여 걸어 내려오면 수원남문시장에 다다른다. 수원남문시장은 총 9개의 시장이 모여 있으며 역사가 무려 220년이나 된다. 여느 시장처럼 번듯한 점포부터 노점상까지 북적이지만 잘 정비된 팔달문과 버드나무가 흐드러진 수원천을 끼고 있어 정취가 있다.
재미있는 건, 서울의 시장들이 일반적으로 한두 가지 특화된 품목으로 경쟁력을 갖춘 데 반해, 수원남문시장은 먹거리부터 공구까지 생활상에 필요한 거의 모든 품목을 취급하는 점이다. 9개 시장마다 주요한 품목을 달리 취급해서 수원시민의 생활을 책임진다.
대장간 문화를 간직한 구천동공구상가시장은 기계공구류, 공산품을 판매한다. 패션1번가·시민상가는 패션과 잡화를, 못골종합시장과 미나리광장시장은 농수산물과 각종 식재료를, 영동시장과 팔달문시장은 포목, 의류를 각각 판매한다. 군것질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데, 팔달문시장은 가마솥에 튀겨내는 통닭으로 이름난 통닭거리에 맞닿아 있다. 지동시장은 특히 순대가 유명하니 꼭 먹어보도록 하자.
이렇게 시장이 번성한 건 애초에 수원이 상업도시로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화성 건조 시 성내 생활이 가능하도록 인삼과 갓에 대한 독점권을 제시하며 유상(柳商)을 불러들여 시장을 조성하였고, 이후 이 일대는 경기 남부를 대표하는 상권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여느 전통시장과 같이 수원남문시장도 도시개발로 인한 상권의 이동, 경기침체 등 다양한 이유로 고락을 거듭한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살리고 지역주민과 상생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돋보인다.
2016년 수원화성 일대가 수원화성관광특구로 지정되고, 이어 중소벤처기업부의 글로벌 명품시장 육성사업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후 변화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의미 있는 건 시장 상인들의 자체적인 노력이었다.
90년대까지 압구정에 못지 않은 ‘힙한’ 거리였던 남대문로데오시장은 수원역 개발의 영향으로 폐업한 가게가 속출, 우범지대로 전락할 위기였다. 그때부터 남문로데오상인회가 앞장서 지역 예술가와 2012년부터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아름다운 테마거리를 가꾸는데 이어 수원청소년야외공연장, 남문 로데오 아트홀, 남문 로데오 갤러리를 잇따라 개관하여 예술과 문화의 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영동시장 내의 ‘28청춘 청년몰’과 팔달문 차없는 거리부터 지동교에 걸친 ‘청년 푸드 트레일러 존’도 빠질 수 없다. 여기서는 젊은 감각을 앞세운 글로벌 퓨전음식과 공예품 등을 판매한다. 푸드 트레일러 존은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운영하며 야시장도 함께 연다.
지자체가 마련한 다양한 무료 문화체험과 공연도 놓치지 말자. 남문시장 고객센터 2층 유상박물관 & 관광상품 체험장에서는 당일 시장에서 5만원 이상 구매한 영수증 소지자와 외국인에게 무료로 24K 금박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 체험객은 최소 하루 전 예약 시 이용 가능)
정조가 풍족한 백성의 삶을 그리며 건배사로 사용한 표현인 불취무귀(不醉無歸: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음)의 뜻을 창조적으로 해석한 금박체험은 직접 금박을 입힌 술잔, 캔버스를 가져갈 수 있어 인기가 높다고. 정조가 꿈꾸었던 화성은 백성이 배부르고 평안한 실존적인 세상이었다. 이를 위해 왕이 직접 세운 유일한 시장이 모태가 된 수원남문시장. 온전한 화성을 음미하고 싶다면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파주에는 임진각, 판문점 등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소가 있지만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문산자유시장도 있다. 문산자유시장은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예로부터 문산시장이라 불려왔다. 2015년에 공식적으로 문산자유시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문산자유시장의 기원은 조선시대 문산포장이다. 문산포는 과거 임진강을 통해 들어온 수많은 선박이 활발히 움직였던 교통의 요지였다. 한양과 밀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임진강을 통한 각종 유통이 발달하여 장단과 포천, 개성, 강원도 철원 등지까지 화물을 공급했고 다양한 물자들의 집산지 시장으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던 물자 요충지 시장이었다.
조선시대로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까지 함께 겪은 긴 전통의 시장이기도 하다. 이후 5, 10일장으로 명맥을 이어오다 1966년부터 정기시장으로서의 문산장 폐쇄 후 장터 주변에 소매상들이 밀집한 형태로 상설시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 1989년 정기시장은 4, 9일장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2015년 '문산자유시장'으로 명칭을 변경 후 새로운 전통시장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문산자유시장은 문화관광형 시장으로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 육성사업은 각 시장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찾고 개발시켜나가며 관광과 쇼핑이 상호작용을 이루는 시장을 목표로 한다. 2017년 이 사업에 선정되어 2019년까지 사업을 진행해왔다. 이후 문산시장은 주민만이 아닌 관광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문산자유시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즐길 수 있다. 실내시장과 상설시장, 그리고 4.9일장이 그것이다.
상설시장은 기존의 전통시장과 달리 빵집, 프랜차이즈 떡볶이, 디저트 카페 등 젊은 층이 좋아하는 가게가 즐비하여 인기몰이 중이다. 물론 문산시장의 세월만큼이나 오래 자리를 지킨 전통 있는 가게들도 많다.
시장의 묘미는 시장을 둘러보다 출출해진 배를 채우는 일이다. 그런 때엔 아무 분식집이나 찾아 들어가도 훌륭한 맛을 볼 수 있다. 현지인의 주관적인 추천이 들어간다면 '수원떡볶이'를 찾아가라 하고 싶다. 할머님 두 분께서 운영하시는 분식집으로 우리의 부모님 세대서부터 함께해온 맛집이다. 분위기 있게 시장 골목 구석에 놓인 야외테이블에서 어묵 국물 한 사발을 들이키는 기쁨이 있는 곳이다. 떡볶이 1인분에 2,000원 가량으로 가성비 또한 좋아 현지 학생들도 많이 찾기도 하고 학창 시절의 기억을 찾아 아이의 손을 잡고 방문하는 이들도 종종 보인다.
4, 9일 장날이 되면 상설시장 앞 도로를 꽉 메우는 천막들이 설치되고 장터가 열린다. 하교한 학생들과 주민들이 뒤섞여 걸으며 장터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싱싱한 해산물과 어묵 구이, 김구이, 양말 판매 트럭 등 상설시장과는 또 다른 활기가 넘친다. 어느 시장이나 그렇듯 그곳에선 목청껏 외쳐가며 가격을 부르는 상인과 간절하게 가격을 깎는 소비자들이 있다, 상인분이 결국 한 줌 더 얹어주며 상황을 무마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사람의 정이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맛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또한 계절마다 장터에서 사 먹는 음식도 바뀌게 된다. 봄에는 국화빵과 크림과 사과잼이 발린 와플을, 여름에는 오렌지 맛과 포도 맛을 반반 섞은 슬러시와 컵떡볶이, 가을이면 통통한 핫도그와 오징어 튀김으로 살을 찌우고, 겨울이 되면 갓 화통에서 꺼낸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사시사철 생동감이 넘치는 장터이다.
2017년부터 육성사업으로 나날이 시장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대형마트의 시대에도 전통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조선시대의 문산포장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긴 역사를 지켜온 문산자유시장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현재 고양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일산신도시의 호수공원 근처나 덕양구에 새로 만들어진 신도시 지역이다. 그렇다면 30년 전 고양시에서 가장 번화했던 지역은 어디였을까? 바로, 원당이다. 일산에서 약 20분, 서울에서는 약 30분 떨어진 지역으로 아직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원당. 원당역 근처 1984년에 세워진 리스쇼핑몰 앞에 원당 시장이 있다.
원당 시장은 1970년대 세워져 다른 재래시장에 비해 역사가 길지 않다. 크기 역시 64개의 점포로 이루어져 있는 작은 시장이다. 원당 시장에선 반찬, 떡, 식재료,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구매할 수 있다. 작지만 만물상인 이 시장에는 꽃의 도시 고양시답게 향기로운 꽃시장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 중에서 추천해주고 싶은 상점은 즉석식품과 반찬 코너이다. 여러 반찬가게가 있지만 겹치는 반찬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가면 이미 반찬을 샀어도 그 다음 가게에 가서는 또 다른 반찬을 사기 일쑤이다. 이모님께 포장을 부탁하고 기다리면 그 자리에서 만들던 맛깔스러운 반찬을 종이컵에 담아 주신다. 고소한 나물 무침부터 운이 좋으면 윤기 가득한 떡갈비도 맛볼 수 있다. 국내산 재료와 이모님 손맛이 어우러진 반찬은 그 어느 음식점보다 훌륭한 한끼 식사가 되어준다.
명절이 되면 원당시장의 활기가 배가된다. 최근 제사상의 음식들을 직접 하기보다는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원당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원당 시장의 장점은 원하는만큼 음식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전집에서도 원하는 전을 골라 다음 다음, 그 그릇을 저울에 재고 정해진 가격을 내면 된다. 얼마어치를 주인이 담아놓은대로 사올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만큼만 값을 치러도 된다는 건 매력적이다. 전 뿐만 아니라 떡, 과일 역시 집집마다 무게 당 가격을 매겨 자신이 원하는 만큼 구입알 수 있다.
원당시장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하면, 물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는 재미이다. 시중의 마트나 백화점에서는 랩이나 포장지로 포장이 되어 있어 직접 물건을 보고 고르기 어려웠던 수산물이나 쌀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그것을 직접 담아가거나 만져보고 냄새 맡고 고를 수 있다. 가끔 수산물 코너에서는 싱싱한 전복이나 게를 바닥에 깔아놓은 뒤 "8개에 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내놓곤 한다. 이때 복작복작한 사람들 틈에서 나만의 수산물을 고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원당 지역은 일산신도시가 생긴 후 쇠퇴하다가 최근 도시 재생 사업 구역에 포함되었다. 원당 지역의 부활 가능성 기준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원당 시장이었다. 이처럼 원당 시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단순히 경제활동의 장을 넘어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당 시장이 지역 거점이 된 이유는 365일 쉬지 않고 운영하는 상인들과 이용하는 손님들 덕분이 아닌가 싶다.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정을 느끼기 어렵게 된 요즘, 한 손에는 떡볶이, 다른 한 손에는 반찬을 들고 시장 한바퀴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육거리종합시장은 명칭 그대로, 여섯 갈래의 길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자연 발생적 시장이다. 무심천변에 우시장이 있었고, 농산물과 땔나무 장사가 있었으며, 국밥집, 대장간이 있었는데 이것이 육거리시장의 시초라고 한다. 조선 후기 청주 읍성 남문 밖에서 음력 2일과 7일에 ‘청주 장날’이 열렸다고 한다. 한강 이남에서 열린 3대 시장 중의 하나였는데,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육거리종합시장은 현재까지도 청주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으로 전국 5대 재래시장에 꼽힌다. 기와지붕과 청사초롱을 달아놓은 입구에서부터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전체 규모는 99,000㎡로, 축구 경기장 15개에 맞먹는 크기이며, 입점해 있는 점포수는 약 1,200개, 종사자 수는 3,300여 명. 하루 10,000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으며, 연 매출액도 3,000억이 넘는다고 한다.
육거리종합시장에는 “여기서 돈을 못 벌면 어떤 곳에서도 돈을 벌 수 없다.”는 말이 전해진다고 한다. 그만큼 장사가 잘 되는 곳이다. 청주가 고향인 이희숙 씨(66세)의 말에 의하면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시장에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집안에 큰 행사가 있거나 구하기 힘든 물건이 있으면, 육거리시장에 가면 다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육거리종합시장의 심볼은 ‘남석교’를 상징한다. 6가지 색깔로 나누어진 돌다리는 각각 붉은색은 정육, 노랑색은 가공식품, 주황색은 청과, 초록색은 농산물, 보라색은 공산품, 파란색은 수산물을 상징한다. 남석교는 고려 말쯤 만들어진 80m가량의 국내 최장 길이의 돌다리로, 1936년 시장 바닥에 묻혔다. 시장 근처의 무심천이 범람할 때마다 피해를 보았고, 일제강점기 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남석교도 서서히 묻힌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해마다 시장에서는 대보름을 맞아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남석교 답교놀이’축제를 열기도 한다.
이곳은 여섯 갈래의 길이 만나는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12개의 시장이 합쳐진 곳이다. 농기구 거리, 농축수산물 거리, 산나물 채소 거리, 방앗간 거리, 약제 거리, 닭 전 거리, 혼수 거리, 한마음 패션 거리, 먹자 거리, 꽃다리, 도깨비시장이 그 12개의 시장으로, 전통시장의 현대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시장으로도 꼽힌다.
12곳의 품목에 따라 구획이 나누어져 있다. 2002년에는 전국 최초로 시장 전 구간에 10m 높이의 아케이드(반원형의 천장)를 설치했고, 2003년에는 전국 최초로 시장 상품권 이용을 시작하기도 했다.
‘일일테마가 있는 거리’사업으로 시장 주변에 간판을 개선하고 깨끗한 가로환경을 가꾼 결과, 2016년 국토경관디자인대전에서 국토교통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육거리종합시장의 특이점 중 하나는 새벽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명 ‘도깨비시장’. 옛날에는 잠깐 시장이 섰다가 도깨비불처럼 사라진다 하여 도깨비시장이라 불렀으며, 현재에는 새벽시장이라 불린다.
상가 점포 60여 개, 노점 상인 300여 명, 조사자 수 600여 명이 함께하는 일터로, 오전 5시부터 8시까지 3시간 동안 열리는데, 농민들이 직접 생산하고 수확한 신선한 농산물들을 직접 거래할 수 있다.
주차는 청주시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에 할 수 있다. 주차공간도 꽤 여유로운 편이고, 요금은 30분 500원, 1시간 1000원 선이다. 장애인 차량이나 경차인 경우는 50% 할인이 적용된다. 연중무휴로 9시~22시(점포별 상이)까지 영업하며, 무료와이파이와 카드거래 또한 가능하다.
북평장은 동해의 중심부에서 200여 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오며 삶의 숨결이 묻어 있는 장소다. 장터를 지나는 발걸음마다 느껴지는 사람 냄새와 정겨움은 북평장의 오랜 역사를 증명한다. 그러나 최근 북평장은 변화의 물결을 타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 2024년 9월 7일, 북평 오일장에서 열린 '위크앤드, 달빛포차'가 그 시작을 알렸다. 그날 밤, 북평장은 사람들과 추억을 나누는 장소로 변모했다. 달빛 아래 소머리국밥과 포장마차가 불을 밝히고, 사람들은 그 빛에 이끌려 북평장으로 모여들었다. 한적했던 장터에 다시 생기가 돌고, 시장은 더 많은 사람에게 문을 여는 공간이 되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부르는 '뒷두르장' 혹은 '뒷뜨루장'이라는 이름은 북평 민속 오일장의 또 다른 애칭이다.‘뒤쪽의 평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이름은 북평장이 동해의 자연과 함께 숨 쉬어 온 생활의 터전임을 보여준다. 북평장은 동해 사람들의 삶과 일상이 녹아 있는, 그들의 시간을 간직한 공간이다. 오늘날, 북평장은 과거의 흔적을 지키면서도 현대화와 도시화의 변화 속에 나름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여전히 북평장은 농어민과 상인들이 생산한 물품을 직접 거래하는 장터로 남아 있으며, 당일 배송과 한정판매, 현장 할인 같은 현대적인 서비스가 더해져 그 가치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인의 따뜻한 정서가 살아 있는 '덤'문화, 즉 물건을 사면 조금 더 챙겨주는 인심은 북평장이 간직한 전통적인 매력이다. 그 매력 덕분에 시장을 찾는 이들은 단순히 상인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사람 사는 맛을 느끼기 위해 다시 찾아온다.
북평장의 역사는 200년 전으로 알려져 있었다. 1963년 발행된 삼척읍지 『진주지』에는 1796년(정조 20)에 "북평 민속 오일장이 매월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에 장이 열렸고, 이를 통해 장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번 ‘달빛포차’에서 출연한 윤종대(동해역사문화연구회 회장)은 북평장의 역사는 228년이 아닌, 무려 34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밝혔다. 허목의 『척주지』에 따르면, 3일과 8일에 장이 섰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는 북평장이 동해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그 뿌리가 더욱 깊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북평장의 역사와 함께한 '북평원님답교놀이'는 이곳의 자랑거리다. 이 민속놀이는 2022년 제63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또한 현재(2024년 10월 기준)는 도 문화유산 등재 신청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북평장이 우시장으로도 유명했던 만큼, 소머리국밥은 이 장터의 대표적인 먹거리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맛은 지금도 많은 사람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북평장의 매력을 이야기하며 상인회 사무장으로 근무하는 사공미선 씨는 "동해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고, 직접 재배하거나 채취한 농수산물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북평장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장터 고유의 모습을 간직한 채 기나긴 시간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상인들의 넘치는 인심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사공 씨의 말처럼, 북평장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장소로 자리하고 있다.
북평장은 긴 세월을 견뎌내며,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켜 왔다. ‘달빛 포차’와 같은 새로운 시도가 장터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더 많은 이들이 북평장을 찾아오고 있다. 새로운 모습이 추가되어도, 여전히 그곳의 상인들은 오래전부터 지켜온 전통과 인심을 나누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북평장은 오래된 전통과 현대적인 변화가 어우러지며, 동해를 찾는 이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그곳에서 소머리국밥을 맛보거나 대추와 생강의 향긋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오랜 시간 쌓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북평장의 진정한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