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소련고문단과 함께 작성한 작전 계획에 따라 북한 인민군의 기습 남침이 일어났고, 38도선 전 지역에 걸쳐 야포와 박격포의 공격준비사격이 일제히 시작되었다. 북한군의 공격을 받은 한국군 전방 사단들은 사단장들이 불과 며칠 전 단행된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었거나 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습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웠다. 한국군은 소련이 북한군에 공급해준 T-34 탱크를 멈추게 할 무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전투기도 보유하고 있지 못하였다. 한국군은 취약한 전력으로 인해 기습의 충격력을 흡수하지 못하였고 결국 3일 만에 서울을 상실하였다. 한국군은 도강수단도 없이 경황 중에 한강을 건너 방어선을 형성하고 가능한 빠른 시기에 반격한다는 막연한 목표로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려 하였다.전쟁발발 직후 유엔 안보리는 6월 26일 공산군에게 무력도발의 정지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6월 28일에는 한국에 대한 원조의 제공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각각 채택하였다.
(출처: 국가기록원 6.25전쟁 기록정보콘텐츠 / 『한국전쟁(상)』, 국방부 국방군사 연구소,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