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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문화 컨텐츠1

한반도 철 문화의 시작
철이 처음 사용된 것은 기원전 4-3세기 경이지만 본격적인 생산은 기원전 1세기 경으로 알려져 있다. 철광석이 많은 낙동강 유역(현재 김해 지역)에 있던 한반도 고대국가 가야에서는 풍부한 철광석과 우수한 기술로 철을 대량 생산하였고, 주변 국가 및 외국과 철 교역을 활발하게 하며 철 문화를 발전시켰다. 제철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도구, 무기 등이 만들어지고, 고대국가 발전과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함안 마갑총 출토 말갑옷, 고리자루, 큰칼 이미지

함안 마갑총 출토 말갑옷, 고리자루, 큰칼

사진출처 : 문화재청

부산 복천동 출토 철제 갑옷 이미지

부산 복천동 출토 철제 갑옷

사진출처 : 문화재청

쇠 재갈 이미지

쇠 재갈

사진출처 : 문화재청

한국 철문화 컨텐츠2

우리나라 철은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철광석이나 사철을 녹여 철을 생산하고 제련하는 작업공정을 제철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채광지와 철기를 제작하던 시설, 관련 생활시설 등이 모두 제철유적에 포함된다. 제철지는 야철지(冶鐵地) 또는 쇠부리터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철기 도입 시점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나, 전국적으로 삼국시대~조선시대에 걸친 제철유적이 조사되었으며 유적지 주변에는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뜻하는 쇠똥(슬래그)이 많이 발견된다.

한반도 제철유적 현황

  • 32.4%

    충북

  • 21%

    경북

  • 12%

    경남

  • 9.3%

    강원

  • 7.9%

    경기

  • 7.9%

    울산

  • 2.0%

    부산

  • 2.0%

    전남

  • 1.7%

    충남

  • 1.2%

    대구

  • 1.2%

    서울

  • 1.2%

    전북

  • 0.3%

    광주

자료 출처: 한반도 제철유적(『한반도의 제철유적』,한국문화유산협회, 2012

전체 조사된 제출유적 중 가장 많은 유적이 분포된 곳은 충청북도 지역으로 전체 343개의 32.4%인 111개가 발견되었으며, 주로 충주 지역이 중심이 된다. 다음으로는 경상지역이 151개(경북 72개, 경남 41개)로 경북에서는 경주와 청도, 경남에서는 울산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등에 분포하고 있다. 전라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철유적이 많지 않지만, 계속해서 제철과 관련한 유적이 밝혀지고 있어 앞으로도 그 수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한국 철문화 컨텐츠3

삼한시대 철 생산의 중심지, 울산 달천철장
울산 달천철장은 삼한시대부터 근현대 이르기까지 철광석의 원산지이자 제련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리나라 철기 역사를 대변하는 달천철장은 울산이 공업도시로 도약하는 기반이 되었다. 철을 채취하고 가공하는 것을 경상도 방언으로 ‘쇠부리’라고 하였는데, 쇠를 부리며 불렀던 노동요 ‘울산 쇠부리소리’가 전해져오고 있다.

한국 철문화 컨텐츠4

오늘날 철강 강국으로의 원동력, 제철소
고대부터 철광자원과 기술을 이용하여 철 문화를 발전시켜온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철강설비가 도입되면서 철강산업이 시작되었다.

1943년 일본 고레가와제철이 강원도 삼척 공장에 세운 포항 구 삼화제철소고로가 남아있는데, 포항제철이 설립되기 전까지 국내 유일한 용광로였고, 현재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용광로로 남아있다. 삼화제철소는 1971년 문을 닫았지만, 고로는 1993년 포스코가 인수하여, 현재(2021년 기준)는 포스코 역사관 야외 전시관에 전시되어 우리나라 제철 역사의 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

한국전쟁 후, 국가 재건을 위한 철강수요가 증가하면서 정부에서는 철강 생산시설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3년 포항제철소(현, 포스코) 제1기 설비가 완공되면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철강강국으로 발돋움한다. 산업발전의 기초소재인 철의 안정적인 공급은 우리나라 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 최고의 생산성과 품질로 세계우위에 서게 되었다.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한국 철문화 컨텐츠5

철 유물로 보는 생활사
고대국가에서는 철을 소재로 한 다양한 생활도구와 농기구가 만들어지면서 생활의 편리함과 농업생산력이 높아졌고,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더불어, 철제 무기 제작으로 국가 간 정복 전쟁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철은 점차 생활 뿐만 아니라 산업 발전을 위한 주재료로 활용되며 교통과 운송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고, 건축을 비롯한 의학이나 과학 분야에도 널리 사용됐다.
다양한 농기구의 발전은 청동제 농기구보다 생산력을 높여 고대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청동으로 만들어 사용했던 화폐는 이보다 값이 저렴한 철로 만들기 시작했다.
작두 이미지

작두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농기구에서 신령의 도구가 된 쌍작두

두는 원래 말이나 소에게 먹일 풀이나 짚 등을 잘게 썰거나 한약방에서 약초를 잘게 썰기 위해 만든 연장이다. 쇠로 된 날에 한쪽은 나무로 된 자루를 끼운워 움직이가 만들었다. 작두는 무속에서도 사용되는데. 무당들이 사용하는 작두는 보통 두 개의 작두날을 연결한 쌍작두이다.

자물쇠 이미지

자물쇠

사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내 것을 지키는 보호구, 자물쇠

우리 역사 속에서 자물쇠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 사비도성 내의 철기 공방지에서 발견된 대량의 열쇠편은 삼국시대부터 자물쇠가 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자물쇠는 신분의 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상에서 사용하던 도구였다.

철제 약연 이미지

철제 약연

사진출처 : 가천박물관

약재를 곱게 가는 철제 약연

한약 재료를 빻거나 갈아내는 데 쓰는 도구가 약연(藥碾)이다. 약연은 가루가 된 재료를 담아두는 그릇과 재료를 갈아내는 연알로 구성된다. 철제 약연은 목제 약연보다 단단한 재료를 갈아낼 수 있고 석제 약연보다 재료를 더 곱게 갈아낼 수 있어 일반적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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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

사진출처 : 국립진주박물관

조선시대 화폐, 상평통보

오수전은 중국의 화폐이나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오수전은 구리나 철로 만들어졌으며, 풍남토성, 무령왕릉 등 한반도 내륙 지역과 남부 해안 지역 등에 걸쳐 출토되면서 명도전보다는 더 많은 지역에서 오랜기간 동안 사용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작두 이미지

광주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사진출처 : 문화재청

공주 갑사 철당간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光州 證心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은 조각 수법에서 볼 때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통일된 균형미를 보이는 점이 우수하게 평가된다. 이상적인 부처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에 가깝게 표현된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물쇠 이미지

공주 갑사 철당간

사진출처 : 문화재청

공주 갑사 철당간

통일신라 중기 양식을 보이는 공주 갑사 철당간은 원래 28개였으나, 현재는 4개가 없어지고 24개만이 남아있다. 공주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의 당간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다. 당간이란 사찰 행사를 위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뜻하며, 이 장대를 지탱하는 양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철제 약연 이미지

인천 전등사 철종

사진출처 : 문화재청

인천 전등사 철종

인천 강화 전등사 철종은 특이하게 중국에서 만들어 진 종이지만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 북송 시대 인 1907년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에서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는 철종은 우리나라 와 중국 종 비교 연구 자료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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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개태사 철확

사진출처 : 문화재청

논산 개태사 철확

철확(鐵鑊)은 철로 만든 솥을 말한다. 개태사는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개국사찰로 창건한 사라찰이다. 직경 약 3m의 거대한 가마솥인 철확은 개태사가 폐허가 되면서 방치되고 떠돌아다니던 것을 다시 개태사로 놓아두었다.

작두 이미지

금은 상감 경대

사진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철제금은임사 거울걸이

단단한 철제 걸이에 금실과 은실로 정교하게 새겨 넣은 문양이 당시의 숙련된 금속공예기술의 수준을 보여준다. 임사기법은 고려시대에 불교 공예품에 활용되며 유행하였다.

자물쇠 이미지

청자철화당초문매병

사진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철회(철화)청자

고래시대 도자기로 청자의 표면에 산화철이 함유된 붉은 흙을 물에 개어 붓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철분이 섞여 있어 검붉거나 검푸른색을 띈다. 왕실과 상류층이 사용한 상감청자와는 달리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던 도자기이다.

철제 약연 이미지

서울 은입사 철퇴

사진출처 : 문화재청

은입사 철퇴

철퇴는 조선시대 무기의 하나이지만, 의장용 무기로도 사용했을 거스로 추정된다. 은입사란 기물에 홈을 파고 은을 끼우는 공예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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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은입사 담배합

사진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은입사 사각담배함

조선시대에는 담뱃잎을 잘게 썰어 이를 담뱃대에 넣어 피웠기 때문에 썬 담배를 담기 위해 철, 나무 등으로 담배합을 만들었다.

한국 철문화 컨텐츠6

지명 속 철(鐵) 이야기
우리나라 지명의 철과 관련된 이야기나 의미가 들어있는 곳을 소개한다. 주로 철 생산지나 대장간이 있던 곳으로 대표적으로는 고대 가야 때부터 철 생산지로 유명한 지역인 ‘김해’가 있다.

경상남도

경남 사천시 정동면 소곡(所谷)

조선 초기 쇠를 캐던 철장이었던 까닭에 쇠실[金谷]이라 부르다가 후에 사기그릇을 굽던 자기소가 설치되어 소곡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김해시(金海市)

김해라는 지명은 ‘쇠가 생산되는 바닷가의 고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변한 때부터 철의 산지로 유명했고, 가락국의 시조 수로 왕이 금합에서 나온 황금알에서 탄생해 지명에‘쇠 금(金)’자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경남 거제 대금산(大錦山)

신라시대에 쇠를 생산했던 곳이라 하여 ‘쇠 금(金)’자를 썼으나, 조선시대에 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비단 금(錦)’자로 바뀌었다 한다. 『해동지도』에는 대금산(大金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경남 합천군 야로면(冶爐面)

일설에 의하면 야로(冶爐)는 고대사회에 ‘대장간이 있었던 지역’이라고 전한다. 현존하는 ‘불맷골’, ‘불미골’, ‘쇠정들’은 그 기능과 관련된 지명이다. 야로의 옛 지명인 신라의 적화현(赤火縣)도 ‘대장간의 불’을 지칭하는 지명으로, 같은 맥락에서 지적되고 있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원, 2008~2011

서울특별시

서울 성동구 금호동(金湖洞)

이곳에서 선철을 녹여 농기구 등을 주조하여 무쇠막, 무시막 또는 무수막이라고 불렀다. 이를 한자로 옮긴 것이 수철리이다. 현 마포구의 신수동·구수동도 수철리(水鐵里)라 부르고 있어서 이와 구분하기 위해 수철리의 철(鐵)에서 금(金)을, 수(水)에서 호(湖)를 인용하여 금호라고 부르게 되었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 / 수철리(水鐵里)

『동여도』, 『대동여지도』에서는 노고산(老古山)과 흑석리(黑石里) 사이에서 수철리(水鐵里)라는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수철은 무쇠를 뜻하는데, 옛날 이곳 일대에 무쇠솥과 농기구를 제조하던 공장이 있어 무쇠막 또는 무수막이라 불렀으며, 그것을 한자화하여 수철리라 하였다. 후에 신수철리와 구수철리로 분리되었고 신수철리가 신수동이 되었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원, 2008~2011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金谷洞)

예전에 철을 파낸 곳이라 하여 ‘쇠푼’, 즉 ‘금곡’이라 하며, 일명 ‘쇠골’이라고도 한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원, 2008~2011

인천광역시

인천 동구 금창동(金昌洞)

구한말 인천부 부내면 금곡리와 우각동에 해당했던 지역이다. 쇠가 난다고 하여 ‘쇠골’이라고도 불리었는데 이를 한자로 하여 ‘금곡’이 되었다. 우각동은 1936년에 창영동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1985년 금곡동과 창영동을 병합하여 금창동이 되었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원, 2008~2011

강원도

강원 태백시 동점동 (현 구문소동 求門沼洞)

구문소동은 장성1동과 동점동을 통합한 지역이다. 동점(銅店)은 옛날 ‘퉁점’이라 부르던 마을인데, 고려시대부터 이곳에서 구리와 납, 아연을 생산하였다. 동점역 앞 병밑에서 구리를 캐고, 동광석(銅鑛石)을 퉁점의 점터에서 녹여 주석과 섞어 놋쇠를 만들었다.

강원 태백시 철암동(鐵岩洞)

철암동은 ‘쇠바우’라고 불리는 큰 암석에서 유래하였다. 철암 북쪽의 철로변에 위치하며 높이가 20m, 넓이는 30m가량 된다. 철의 함량이 많아 그 바위에서 돌을 떼서 녹여 쇠를 얻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쇠바우 마을’이 한자로 변하여 ‘철암리’가 되었고, 인근의 하천도 ‘철암천’이라는 지명을 얻었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원, 2008~2011

충청북도

충북 청주 명암천(明岩川)

쇠내개울은 철이나 금이 나는 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쇠내개울의 상류에 금광이 있었으며, 내에서 사금을 채취하였다고 전한다. 『여지도서』의 청토(靑 土)와 관련된 설명에서 “관아의 동쪽 5리에 있는 금천에서 나온다.”라는 내용이 있다. 『대동지지』에 철이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보아 청토가 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충북 충주 쇠골고개

충주시 이류면 금곡리와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지명은 인근의 쇠실마을과 관련된다. 이 마을은 신라시대 전국 규모의 철산지였던 데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충북 옥천 철봉산(鐵峰山)

옥천군 동이면 우산리와 적하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 449m). 『한국지명총람』에는 철봉산의 지명 유래에 대해 ‘산에 쇠가 많이 산출’되어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같은 문헌에는 다른 이름으로 ‘쇳봉산’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원, 2008~2011

충청남도

충남 태안 불무골(야곡(冶谷))

태안군 남면 양잠리에 있는 골짜기로, 테미재 동쪽의 망재 북사면에 위치한다. 옛날 이곳에 풀무를 설치하여 놓고 시무쇠를 다루어 여러 연장을 만들던 대장간이 있었는데 여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풀무의 옛말인 ‘불무’에서 유래한 ‘불무골’을 한자로 표기하여 야곡(冶谷)이 되었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원, 2008~2011

울산광역시

울산 북구 달천(達川)

달천(달내)은 ‘쇠를 달구는 터전이 있는 곳’으로 해석하고 있다. 울산 지역의 달(達)은 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오며, 천(川)은 사람이 사는 터전으로 보고 있다. 이곳은 삼한시대부터 철 광산지로 있었던 지역인데, 1993년에 폐광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울산)에는“철장(鐵場)은 군 북쪽 달천리(達川里)에 있으니, 백동(白銅), 철(鐵), 수철(水鐵), 생철(生鐵)이 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달천을 중심으로 한 울산 인근지역에 많은 쇠부리터가 산재해 지금도 그 흔적 을 찾아볼 수 있고, 철의 생산과정을 민속놀이로 승화시킨 ‘쇠불이놀이’도 전해오고 있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원, 2008~2011

부산광역시

부산 사상구 금용산(金湧山)

부산의 연제구 거제동에 소재한 산이다(고도 150m). 지명은 쇠미산의 한자식 지명으로, 이 산에 쇳물이 많이 나왔다는 데서 비롯된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원, 2008~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