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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방문화 컨텐츠1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시설,성곽 · 보루 · 돈대 · 진영
우리 영토를 지키기 위한 관방시설로는 성곽 · 보루 · 돈대 · 진영 등이 있다. 관방시설은 시대와 방어〮 군사체제에 따라 변화하였고, 오래전 만들어진 시설을 개조하면서 다시 활용하기도 하였다.
거제 둔덕기성 거제 둔덕기성
산성(山城)과 성곽(城郭)

성곽은 적의 침입에 대비한 방위를 위해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구조물로 외침에 가장 효과적인 방어 시설이다. 지형, 지리적 위치, 축성 재료, 구조 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특성상 산성이 발달하였다.

홍련봉보루 홍련봉보루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루(堡壘)

삼국시대부터 외적을 막기 위한 성곽이 설치가 되었다. 그 중 ‘보’라고도 부르는 보루는 성곽의 시설 중 하나로 주로 중요한 거점을 보호하기 위한 작은 규모의 성을 의미한다. 현대의 군사시설인 ‘참호’의 역할과 비슷하며,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적의 움직임을 살피며 공격태세를 준비하던 시설이다.

강화 북일곶돈대 강화 북일곶돈대사진출처 : 문화재청
돈대(墩臺)

돈대는 현대의 감시초소와 같이 해안으로 접근하는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시설이다. 공격에 대비, 경보, 정찰 등의 활동을 위해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하였다. 돈대는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적은 높은 곳에 만들어졌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만들고, 안쪽은 낮게 하여 포를 두었다. 해안 돌출부 구릉이 가장 좋은 위치였다고 한다.

강화 덕진진 강화 덕진진사진출처 : 문화재청
진영(鎭營)

진영은 조선시대 지방 군사 시설로 군사 요충지에 설치되었다. 총 책임자가 머물던 곳으로 최초의 진영은 한산 진영이었다. 한산 진영은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 통제하던 진영이었다.

한국 관방문화 컨텐츠2

군사통신체계,봉수
삼국시대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해안과 산정상에 설치한 군사통신시설로 횃불과 연기로 변방의 긴급한 군사정보를 중앙으로 알렸다. 봉수대는 정보 통신 기능과 더불어 지역 주민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보 기능도 하였다. 봉수제는 1894년(고종 31년) 전보통신의 등장으로 폐지되었다.
  1. 01

    횃불과 연기, 봉수 신호체계

    봉수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소식을 전했다. 1시간에 100km 이동하였고, 12시간이면 전국의 봉수가 한양 목멱산 봉수까지 도달하였다고 한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봉수를 관리하는 봉졸이 직접 달려 보고를 하기도 하였다. 봉수대에는 주로 다섯 개의 봉수가 있었고, 위급 정도에 따라 연조라고 부르는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개수를 달리하여 소식을 알렸다.

    • 5개중1개
    • 5개중2개
    • 5개중3개
    • 5개중4개
    • 5개중5개
    신호방법 - 5개중 1
    신호방법 활성화 횃불 신호방법 빌활성화 횃불 신호방법 빌활성화 횃불 신호방법 빌활성화 횃불 신호방법 빌활성화 횃불
    아무 일도 없는 평화 시
    ※ 봉수의 종류
    • 경봉수

      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는 중앙봉수로
      서울 남산의 봉수를 말한다

    • 연변봉수

      국경과 해안가 및 도서 등에 설치된 봉수이다.

    • 내지봉수

      육지 내륙지역의 봉수로 연변봉수와 경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이다.

  2. 02

    소식이 전해지는 길, 조선시대 5대 봉수로

    전국의 봉수는 5대 봉수로를 통해 빠르게 최종 목적지인 목멱산(현, 서울 남산) 봉수대까지 빠르게 집결되었다. 5대 봉수로의 제1로, 제3로, 제,4로는 몽고, 여진, 중국의 북방의 침입 대비하였고, 남쪽의 제2로와 제5로는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조선시대 5대 봉수로 위치 지도
    1. 제1로
      아차산 봉수대
      • 함경도 경흥-강원도-경기도-아차산 봉수대
      • 현, 서울 중랑구 목동 봉화산 정상(복원)
    2. 제2로
      천림산 봉수대
      • 동래 다대포-경상도-충청도-경기도-천림산 봉수대
      • 현, 경기 성남시 금토동 천림산 정상(남아있지 않음)
    3. 제3로
      무악산 동봉수대
      • 평안도 강계-황해도-경기도-무악산 동봉수대
      • 현,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안산(무악산) 정상(복원)
    4. 제4로
      무악산 서봉수대
      • 평안도 의주-황해도-경기도-무악산 서봉수대
      •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안산(무악산) 서쪽 정상(남아있지 않음)
    5. 제5로
      개화산 봉수대
      • 전남 순천-충청도-경기도-개화산 봉수대
      • 현, 서울 강서구 개화동 개화산 정상(남아있지 않음)

한국 관방문화 컨텐츠3

다큐멘터리 영상 부산 간비오산 봉수대
해운대문화원에서 제작한 영상으로 조선시대, 남쪽 바다 최전선에서 군사적으로 긴밀한 연락관계를 유지하면서 막중한 임무를 띤 간비오산 봉수대를 기록하였다. 당시의 봉수의 모습과 역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한국 관방문화 컨텐츠4

조선시대의 군역
조선시대에는 현지 관리, 학생을 제외한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모든 양인(천민인 노비를 제외한 모든 계층)은 군역의 의무가 있었다.
  • 무관

    무과시험을 통과한 고위 직업군인

  • 직업군인

    무예 시험을 통해 선발된 집단

  • 일반병사

    군역의 의무를 부담하는 양인

  • 의병

    자발적으로 싸운 민간인 병사

※ 조선시대에서도 예비군이?
  • 조선 전기에는 ‘잡색군’이라하여 군역을 하지 않은 양인, 천인들로 구성되었고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나라에 비상사태가 일어나면 동원될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 잡색군은 내륙지방을 방위하였다.
  • 조선 후기에는 양인, 천민으로 편성된 지방 군사 조직인 ‘속오군’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1년에 한 번은 군사훈련을 받으며 유사시 동원될 수 있도록 대비하였지만, 영조(1724~1776)초에 천민으로만 군대가 편성되면서 점차 기능이 약해졌다.

한국 관방문화 컨텐츠5

조선시대의 무기
환도장
환도 제작은 국가의 군기감(軍器監)에 소속된 환도장들이 만들었다. 현재 환도장 ‘홍석현’은 대표적인 전통 도검 제작자로 평가받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2호 환도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