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오랜 전쟁을 겪고,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민족과 남쪽 해안의 일본으로부터 수 없이 많은 침입을 받았지만,그때마다 지혜롭게 극복해냈다. 지형적 특성을 활용하여 산과 해안가에 성곽을 쌓고, 지방과 중심의 정보통신체계인 봉수대를 만드는 등외침에 대비하였다. 여러 지역에 남아있는 자료와 유적을 통해 관방문화를 알아본다.
봉수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소식을 전했다. 1시간에 100km 이동하였고, 12시간이면 전국의 봉수가 한양 목멱산 봉수까지 도달하였다고 한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봉수를 관리하는 봉졸이 직접 달려 보고를 하기도 하였다. 봉수대에는 주로 다섯 개의 봉수가 있었고, 위급 정도에 따라 연조라고 부르는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개수를 달리하여 소식을 알렸다.
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는 중앙봉수로
서울 남산의 봉수를 말한다
국경과 해안가 및 도서 등에 설치된 봉수이다.
육지 내륙지역의 봉수로 연변봉수와 경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이다.
전국의 봉수는 5대 봉수로를 통해 빠르게 최종 목적지인 목멱산(현, 서울 남산) 봉수대까지 빠르게 집결되었다. 5대 봉수로의 제1로, 제3로, 제,4로는 몽고, 여진, 중국의 북방의 침입 대비하였고, 남쪽의 제2로와 제5로는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영상출처 : 부산의 야혼 간비오봉수, 해운대문화원)
무과시험을 통과한 고위 직업군인
무예 시험을 통해 선발된 집단
군역의 의무를 부담하는 양인
자발적으로 싸운 민간인 병사
조선 선조 때 이장손이 발명한 조선의 독창적 무기이다. 지름 20cm 정도되는 무쇠 탄환 속에 화약과 철조각을 넣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 폭발하게 만든 당시의 최첨단 무기이다. 2019년 전라북도 고창군의 무장현 관아와 읍성 발굴조사 당시 비격진천뢰 11점이 새롭게 출토되었다.
완구는 불씨를 손으로 점화하여 비격진천뢰 등의 탄환을 발사하는 화포이다. 완구와 비격진천뢰는 임진왜란 경주성전투에서 경주성을 탈환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총통은 불씨를 손으로 점화하고 발사하는 화포이다. 우리나라 화포 중 가장 큰 보물 제647호 ‘천자총통’에는 제조년도가 음각되어 있어 1555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에도 장착되었다고 알려진다.
환도란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전통무기이다. 조선 시대에는 칼자루가 짧은 외날의 칼을 대부분 ‘환도’라고 하였다. 주로 군인이나 관원이 사용했고, 국가에서 제작하여 관리하였다.
(영상출처 : 우리 마을 고양의 문화재이야기 ‘환도장’, 고양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