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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工藝)는 인간의 본능과 함께 생겨나고 발전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손에 무엇인가를 쥐면 이런저런 모양으로 물건을 만들었다.
그리고 손에 쥐어진 재료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들이 나왔다. 한국에서도 고대부터 시작해 우수한 공예문화를 이어왔다. 삼국시대의
토기·금속공예·석공예, 고려시대의 청자와 나전칠기 그리고 조선시대의 백자, 목공예 등 한국만의 개성이 담긴 다양한 공예는
현재까지도 인간문화재와 공예가 손에서 전승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한국 공예의 아름다움을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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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알아보는 일상생활 속 목공예
목공예는 지방 특산의 목재와 생활양식에 따라 지방색이 강한 목가구들로 제작되어 쓰였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평좌(平坐) 생활이 중심이 되어, 천장이 낮고 방의 넓이도 좁아 자연히 작고 낮은 목공 가구들을 벽 쪽에 붙여놓고 사용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목재의 단단한 특성을 살려 여러 생활용품부터 가마까지 다양한 물품이 만들어졌다.
목가구
19세기 책가도 병풍에는 다양한 문방구, 연적, 칠기, 골동품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나무를 재료로 만든 목가구들은 목재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어 그 매력이 더 부각된다.
목경대(거울)
조선시대에 경대는 여인들이 화장하거나 머리를 빗을 때 사용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여인들에게 경대는 필수품으로 여겨졌다. 다양한 풍속화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목가마
가마는 주로 나무로 만들었으며, 그 모양은 조그만 집 모양이다. 사람을 태우거나 물건을 싣고 둘 또는 네 사람이 가마를 어깨에 걸어 메고 옮기는 형태로 운영했다.
02
목공예를 더 화려하게, 장식과 문양
자연 그대로의 목재는 색이 밝아 사용하면서 때가 묻게 되고 표면이 연약하여 흠이 나기 쉽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목공예품에 기름칠, 옻칠을 하여 내구성을 높이고 표면에 윤기를 주어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그 외에 조각 기법으로는 문양을 돌출되게 하는 양각, 이와 반대로 문양을 파내 판면을 돌출되게 하는 음각 기법이 있다.
한국 전통 목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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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알아보는 일상생활 속 짚풀공예
짚풀공예로 만든 물건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민구(民具)이다. 민구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말하는데 짚풀공예에 해당되는 것으로는 가마니, 거적, 광주리, 방석 등이 있다. 그 외에 제웅과 띠배 등 의례용품이나 종교적인 색을 지닌 공예품도 있으며 가축과 관련된 닭둥우리, 누에섶, 여치집, 통발, 쇠신 등도 있다.
초가집
우리나라 서민들은 볏짚, 갈대, 왕골 등으로 이엉을 이어 지붕을 만들어 초가집을 지었다. 위 풍속화에서도 가을을 맞아 가족들이 볏짚으로 지붕을 정비하고 있다.
자리
자리는 등메를 비롯해 돗자리, 짚자리, 대자리 등의 종류가 있다. 풍속화 속 남성은 자리틀과 자리를 적당히 아래로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고드랫돌로 자리를 짜고 있다.
바구니
옛날 사람들은 짚풀로 가마니, 소쿠리, 골망태, 등태, 광주리 등의 운반도구를 만들었다. 풍속화 속 여인들도 바구니를 생선, 채소 등을 담아 운반하는 데에 사용했다.
02
짚풀공예의 다양한 재료들
짚풀공예의 주재료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구분이 된다. 짚과 풀은 물론이거니와 짚풀공예의 명칭에 포함되지 않은 나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재료이다. 짚과 나무의 경우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지만, 풀은 그 지방의 특색에 따라 조릿대, 억새, 갈대, 신서란, 왕골 등 다양한 재료로 세분화된다.
01
한국 고유 미(美)의 집합, 한지공예
한지공예는 한국만의 방식으로 만든 종이인 한지를 활용한 공예를 말한다. 종이를 사용한다고 하여 종이의 한자어인 ‘지(紙)’ 자를 사용하여 지공예라 칭하기도 한다. 한지공예는 한지를 활용하여 제작하는 기법에 따라 지호공예, 지승공예, 지화공예, 전지공예 등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지화공예는 꽃을 활용한 지화(紙花)공예와 종이를 활용한 지화(紙畵)공예로도 세분화된다.
지호공예 각시탈
지승공예 지승항아리
지화공예 종이꽃
전지공예 지함
02
한지공예품에 의미를 담다, 문양
한지의 색지와 문양(文樣)은 한지공예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실제로 한지공예 가운데 예술성이 뛰어난 것들 대부분은 다양한 문양이 사용되었다. 한지공예에 사용되는 문양은 분류하면 동물, 식물, 기하학, 문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십장생 문양을 동물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따로 분류한다.
01
흙으로 빚어 구워 만드는, 도자공예
도자는 도기(陶器)와 자기(磁器)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도기는 붉은 진흙으로 만드는 것이며, 자기는 고령토 따위를 원료로 빚은 그릇을 의미한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도자기의 형태를 만드는 성형(成形)을 하고 실온에서 말린 뒤 가마에서 초벌하고 이를 식힌다. 이후 유약을 입혀 다시 가마에서 재벌을 하고 식혀야 하나의 도자가 완성된다.
도자기 성형
도자기 초벌
도자기 채색
도자기 유약 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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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한 도자기, 청자와 백자
청록색 빛을 띠는 고려청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나, 12세기 무렵에 이르러 정교하고 화려한 독자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실용적인 그릇에 대한 요구가 커져 분청사기를 주로 제작하였으며, 이후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백자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도자기의 새로운 변신, 현대의 도자공예
한국에서 도예는 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며 활발하게 발전하였으나 조선시대 관요[관아에서 운영하던 도자기 제조장] 폐지 및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그 맥이 끊어졌다. 그러다 1950년 후반부터 전통도예가 활발해졌으며 외국 도예를 경험하면서 도예의 지평이 넓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전통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서 도자를 통해 현대적인 예술을 구현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한국 전통 도자기
화려한 형태의 도자공예품
도자기로 만든 잉어와 올빼미
일상용 도자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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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알아보는 역사 속 금속공예
금속공예는 재료와 기법, 형태 그리고 문양 배치 방법에 따라 장신구, 일상용구, 불구(佛具), 사리구(舍利具) 그리고 고고학적 유물 등으로 구분된다. 장신구는 대표적으로 권위를 상징하는 왕족에게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후대가 되어 서민들에게도 보편화되었다는 것을 풍속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일상용구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이 대표적이다.
장신구 금관조복
금관조복 중 금관(金冠)은 양관이라고도 불리며 조선시대 관리가 제복이나 조복을 입을 때 착용하였다. 양관에 금칠을 했기 때문에 ‘금관’이라고 불렸다.
장신구 귀걸이
조선시대에는 여자와 남자 모두 귀걸이를 했다. 귀걸이의 크기가 클수록 신분이 높았으며, 젊음과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귀걸이를 착용하기도 했다.
일상용구 청동거울
무령왕릉의 청동거울은 3개의 큰 원으로 구성되며, 안쪽 원은 9개의 작은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 원에는 이중원 7개와 함께 사신(四神)을 비롯한 동물들이 있다.
02
다양한 금속공예 기법
금속공예는 청동기제작을 위해 거푸집으로 물품을 만드는 주조기법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금속을 두드려 펴거나 금속판을 잘라내면서 형태를 만드는 단조법으로도 공예품을 제작한다. 금속공예품 표면에 장식과 무늬를 새겨넣는 방법도 오목새김, 돋을새김 기법이 있으며, 금속에 상감기법인 입사기법도 함께 발달했다.
주조법
단조법
입사수법
금속공예의 명맥을 잇는 사람들
유기장
유기장은 놋쇠를 다루어 각종 기물을 만드는 기술 및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이다. 유기(鍮器)는 놋쇠로 만든 그릇으로 유기[놋그릇]를 만드는 곳을 ‘놋점’이라고 한다. 유기의 제작은 크게 부질법과 방짜법으로 나뉜다.
장도장
장도장은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인 장도(粧刀)를 제작하는 장인이다. 광양의 장도가 가장 유명하며 광양 장도의 공정 기간은 짧게는 3일, 길게는 수백일이며 수많은 공정을 통해 장도장의 기술과 미적 감각이 집약된 장도가 제작된다.
두석장
두석장은 장석을 만드는 장인이다. 장석은 목조가구, 건조물에 붙여서 결합 부분을 더 견고하게 하거나 여닫을 수 있는 자물쇠 등의 금속제이다. 장석의 다양한 문양은 자손의 번창과 무병장수, 부귀영화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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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알아보는 일상생활 속 매듭공예
한국의 매듭공예는 문헌에 따르면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일제강점기와 오늘날에 이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조선시대 상이 고스란히 담긴 풍속화와 그림을 통해 당시 남녀노소 모두가 장식으로 착용한 매듭공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미인도 속 노리개
「미인도」의 미인이 지닌 노리개는 굵은 구슬을 엮은 삼천주이다. 이 여성은 옷고름에 장도로 보이는 노리개를 착용하였으며, 붉은색의 딸기술과 매듭장식이 달려있다.
환도와 세조대의 매듭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에서 흥선대원군은 허리에 자색 세조대(도포 끈)를 두르고 환도는 붉은 술로 장식했다. 조선시대 때는 여성보다 남성이 매듭을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혼례복과 노리개
보통 여성들이 혼례복을 입을 때는 크고 화려한 매듭으로 만들어진 노리개를 착용했다. 노리개는 신분에 따라서 달랐는데, 양반계급에서는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을 쓰기도 했다.
혼례복과 노리개
보통 여성들이 혼례복을 입을 때는 크고 화려한 매듭으로 만들어진 노리개를 착용했다. 노리개는 신분에 따라서 달랐는데, 양반계급에서는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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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장식에 얽힌 다양한 의미들
한국의 전통매듭공예는 그 형태가 대략 30여 가지가 넘는다. 이들 형태는 그 모습에 따라 크게 동물형과 식물형, 그리고 기타로 구분한다. 동물형에는 매미와 잠자리가 대표적이고 식물형으로는 국화와 매화를 손꼽을 수 있다. 이들 구분에 포함되지 않은 장고매듭, 도래매듭, 납짝이매듭 등은 기타에 해당된다. 매듭의 다른 형태인 술의 종류에는 딸기술, 낙지발술, 방울술 등이 있다.
아시아 문화에서 함께 즐기는 매듭공예문화
매듭공예는 동서양 어디에서든 접할 수 있으며 개별 국가마다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접한 중국과 일본의 매듭과 확연히 다르게 두드러지는 속성을 가진다. 한국은 여러 가닥의 끈목을 이용하여 입체적이며, 손 이외에 송곳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탄탄하게 제작된다. 한국의 매듭과 비슷하면서 다른 중국·일본의 매듭도 확인해보자.
한국
중국과 일본에 비해 단단하고 입체적
중국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며 화려하고 다채로움
일본
한국과 형태는 비슷하나 느슨하게 매듭을 마무리함
01
여러 기법으로 만드는 반짝임, 유리공예
유리공예는 크게 열간가공과 냉간가공으로 나뉜다. 열간가공은 유리를 가열하는 기법으로 주취법, 형취법(블로잉), 취입법, 램프워킹, 벤딩, 슬럼핑 등이 있다. 냉간가공은 상온의 유리를 사용하는 기법으로 컷팅, 인그레이빙, 라미네이팅 등이 있다. 유리공예가는 각 기법을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여러 기법을 혼합하여 유리 조형물과 공예품을 만든다. (하단 이미지 : 주취법, 형취법, 취입법, 색 추가공정 순)
02
역사 속 빛나던 유리공예품
한국의 여러 유적에서 유리 관련 장식품, 용기 등 고대사회의 생활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유리유물이 출토되었다. 국내에서 가장 시대가 오래된 유리유물은 청동기시대의 것이며, 그 외에 신라와 통일신라의 유물들이 뒤를 잇는다. 주로 경주에서 출토되었으며 유리잔, 목걸이, 유리구슬, 사리병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유리잔
유리제대부배
상감유리구슬
금 마개가 있는 유리 사리병
예술로 다시 태어난, 현대의 유리공예
한국의 고대 유리공예는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나 11세기 이후에 단절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말에 유리공장이 세워지며 1980년대 말부터 현재의 한국 유리공예의 명맥이 다시 이어졌다. 작가들이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유리를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1990년대 이후부터 유리공예의 지평이 크게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