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고 책을 만드는 고창 책마을해리

    사람들이 떠난 폐교에는 쓸쓸한 적막만이 가득 찬다. 과거에는 떠들썩했을 교실에 고요함과 먼지만이 켜켜이 쌓여가고, 아무도 오가지 않는 학교 건물에는 지저분하게 자란 수풀만이 우거진다. 아이들이 없어 문을 닫는 시골학교의 모습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외로움을 남긴다. 전북 고창 해리면 나성리 월봉마을에 위치한 나성 초등학교 또한 그러한 장소였다. 1933년 광승 간이학교로 문을 열고, 2001년 나성 초등학교로서 그 막을 내리게 되기까지 수많은 아이들이 이곳을 거쳐 가고 자라왔다. 누군가에게는 유년기의 즐거운 추억이 잔뜩 담겨있을 이 소중한 학교가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장소인 ‘고창 책마을해리’로서 다시 싹을 틔운 것은 2006년의 어느 날이었다.


    목적지를 향하여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바다로 길게 이어진 강의 끝자락과 완만하게 솟아있는 언덕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는 작은 저수지가 보인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은 월봉마을을 찾아온 여행객들의 뺨을 간질이며 어딘지 낯익은 푸근함으로 손님을 반긴다. 책마을해리 앞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푸른 잔디가 깔린 운동장과 그 외곽의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다. ‘책뜰’이라고 불리는 푸른 운동장의 너머를 가만히 둘러보면 여러 동물 동상들과 조형물들이 사람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책마을해리 오래된 건물 이미지
    책마을해리 오래된 건물

    그 중에서도 오래되어 보이는 사자상은 등이 하얗게 벗겨져있어, 과거에 수많은 아이들이 이 사자상 위에서 말 타기를 하며 신나게 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면에 있는 붉은 벽돌로 된 건물의 외벽에는 무성하게 자라난 담쟁이덩굴과 ‘승공없이 통일없고 방첩없이 평화없다’라는 문장과 ‘바로보자 거짓평화 막아내자’라는 글귀가 남아있다. 1950년대 반공 교육이 한창이던 때에나 볼 수 있었던 그 문장들은 이 학교가 얼마나 오래된 건물인지 쉬이 짐작하게 한다.

     

    제 할아버지께서 설립해 기증했던 이곳이 폐교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귀향해 곧바로 인수했습니다.


    서울에서 출판사에 몸담고 있었던 ‘책마을해리’의 이대건 촌장은 자신의 선친이 세웠던 학교가 폐교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 땅으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2006년 ‘책마을’을 만들겠다는 오랜 꿈을 안고서 고창으로 온 그는 폐허가 된 학교를 하나둘씩 가꿔나가며 모두가 쉬고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준비하였고, 아예 서울에 살던 가족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여 ‘책마을해리’를 만들었다. 오래되어 삐걱대는 복도를 새롭게 깔고, 지저분한 교실을 깔끔하게 단장했으며 건물의 벽에는 예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는 차곡차곡 책장에 책을 모았다. 책마을해리에 있는 수많은 책들은 그렇게 늘어나 어느덧 15만 권 가량이 되었다.

    책마을해리 버들목도서관 이미지
    책마을해리 버들목도서관

    고창 책마을해리에 있는 것은 수많은 책들이 다가 아니다. ‘바람언덕’이라 이름 붙여진 조그만 야외강연장과 암벽타기 벽이 설치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자랑하는 ‘동학평화 도서관’, 다양한 마을신문과 각 지역의 책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해둔 ‘책숲 시간의숲’과 전국의 어린이 청소년 양서들을 모아둔 ‘버들눈 도서관’, 직접 글을 쓰고 책을 찍어낼 수 있는 ‘누리책공방’등의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또한 매주 토요일 운영되고 있는 나만의 책 만들기를 비롯하여 한지만들기 체험, 그림책 작가 교실, 출판캠프 등의 다양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고창 책마을해리는 단순히 책만을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라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수많은 볼거리와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20년 넘게 출판업계에 몸을 담았던 이대건 촌장은 책마을해리에 대해 “책이 있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삶, 이야기를 한 권으로 묶어내는 장소를 만들었으면 했다.”고 말한다. 겉보기엔 낡은 학교 건물처럼 보였던 장소가 천장까지 빼곡이 쌓인 책들을 계기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은 그야말로 마법 그 자체였다. 원하는 책들을 자유롭게 펼쳐볼 수 있는 독자가 되기도 하고, 내가 바라는 책을 써보고 직접 출판하는 작가가 될 수도 있는 마법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마치 ‘해리포터’ 같은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꿈이 마을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대건 촌장의 바람이었다. 그가 ‘해리면’에 있는 ‘책마을해리’라고 이름을 정한 것도 그러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다. 

     

    책마을해리가 생겨난 것으로 10가구 남짓한 자그마한 월봉마을에는 새로운 활기가 돌고 있다. 지역민들을 물론 타지에서 찾아온 방문객들마저 문화의 생산자가 되고자 하면 언제든 될 수 있다. 책을 기획하고, 쓰고, 편집하는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을 함께 꾸려나가고 접하는 것으로 이곳은 단지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지역공동체가 함께 하는 복합적인 쉼터가 되었다. 

  • 25년 2대째 운영 중인 우리 동네 대중서점, 세종 문고

    어느 덧 독립서점이란 말이 우리에게 익숙해지는 지금, 대형서점과 독립서점의 중간 정도에 있는 대중 서점이라 불리기 원하는 서점이 인천 연수동 상가 골목을 25년 지켜온 세종문고이다.

     

    2대째 서점을 맡은 젊은 부부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새로 들어온 참고서들이 서점 한 켠에 쌓여있다. 이 곳 서점 1층엔 흔히 대형서점에서 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 코너 대신 참고서와 잡지들이 가득하다. 주로 근처 중고등 학생들이 손님이기 때문이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야만 일반 단행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은 요즘들어 흔히 볼 수 있는 서점의 풍경은 아니다. 

    서점이 호황기를 누렸던 1990년대에 연수동은 교육열이 높은 탓에 참고서를 파는 서점들이 연수구 안에만 30군데가 넘게 있었다. 주 매출이 참고서였고,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온 가족이 총출동해 가게 일을 도와야 할 정도로 바쁘고 매출도 높았다. 하지만 대형 프랜차이즈와 온라인 서점의 활성화로 5년 전에 비하면 지금 매출은 반 토막에 불과하다. 또한 책을 사서 보는 문화가 점점 줄어들어감에 따라 참고서가 아니고선 동네 서점들은 자리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세종문고 이미지
    세종문고


    그럼에도 이들 젊은 부부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이 서점을 오늘도 성실함으로 이끌어간다. 아침 9시 30분부터 밤 10까지 일 년에 추석과 설날 당일만 쉬고 항시 열려있는 생계형 자영업 사장님들이다. 이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주변에 있던 동네 서점이 2군데나 문을 닫은 탓에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인근 스퀘어원에 입점한 대형서점도 부담으로 다가왔고, 최근 새로운 트렌드에 따라 생겨난 독립서점들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정체성의 문제였다. 큐레이션의 전문성과 공간의 독특성과 개성을 지닌 소규모 독립서점들이 생겨나면서, 참고서를 주로 팔았던, 대부분의 모든 책을 취급하고 있는 이곳 서점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기존의 대중서점이 장점인 모든 서적들을 판매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나름의 개성을 지닌 서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했고 그에 맞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낭만 제비꽃 IN 세종문고

    그 변화의 시작은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취미있는 책모임도 열었다. ‘취미있는 책모임’이란 바느질, 뜨개, 자수, 그림 등의 취미 활동을 책과 함께 해나가는 모임이다. 즉 수공예 도서를 가지고 함께 뜨개나 자수를 배워나가는 프로그램이다. 재료비와 음료 등은 모두 무료로 제공되고, 책만 한 권씩 구입해서 진행되는 문화 교실이다.

     

    문화공간에서 만든 작품들 이미지
    문화공간에서 만든 작품들


    이런 노력들은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서 세종 문고만의 정체성과 이곳을 찾는 또 다른 이유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동네를 거점으로 한 서점들을 살리기 위한 정책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좋은 분위기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서점 학교’, 경기도의 ‘북적북적 경기서점학교’ 등이 있고, 춘천과 용인시에서는 원하는 책을 각 지역의 도서관 홈페이지에 신청하고 동네서점에서 직접 구매, 대여하는 시스템인 ‘희망도서 바로대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올 하반기에는 인천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반갑다. 

    이런 정책들에 더 힘을 실어주는 출판사들도 있다. 전국 동네서점과 협업하여 문학동네에선 동네서점 에디션을 출간하고, 민음사에서는 ‘쏜살문고X동네 서점 에디션’을 출간했다. 이런 기획들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혹은 모르고 있었던 우리 동네 서점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이끌 것을 기대한다.

  • 만화카페가 있는 안성 보개도서관

    학창시절 공부를 할 때 지긋지긋하게 다니던 도서관. 책장 넘기는 소리도 눈치를 봐야 하고 발자국 소리도 내면 안 되는 곳. 딸깍딸각 하는 시계 소리도 신경 쓰이는 곳. 졸업을 하면 도서관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빌려보기 보다는 아이들 책이든 내 책이든 도서관에서 대출을 하기 보다는 사서 읽었다. 도서관은 내 인생에서 그다지 친해지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안성에 만화 도서관, 카페 도서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준 사람에게 처음 물은 말은 “도서관에 진짜 만화책이 있다고? 예전에 보던 그런 만화책?”이었다. 그렇다는 상대방의 말에도 의심을 했다. 

     

    안성시립 보개도서관 이미지
    안성시립 보개도서관


    지난 토요일 아이들을 데리고 보개 도서관을 갔다. 이런 작은 도서관에 있을 만화책방은 어떤 곳일까 하는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1층에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 다섯 살 막내가 알록달록한 이 공간을 그냥 지나갈 리 없다. 잠시 들어가 보니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이 자료실에는 8세 정도까지의 아이들이 볼 수 있는 도서와 각종 DVD 자료가 있었다. 방바닥에도 앉을 수가 있어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앉아 책을 볼 수 있다. 

    부모들이 솔깃할 만한 행사가 하나 있었다. 하루에 한 권씩, 3년간 총 1,000권의 책을 읽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사서들이 선정한 책을 꾸러미로 대여해 주기 때문에 책을 고르기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이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어린이 자료실 방문 후 신청서를 작성하고 나면 10권 단위로 책을 빌릴 수가 있는데 10권이 가방 하나에 담겨 있어 100개의 가방을 모두 읽으면 1,000권을 읽게 되고, 모두 다 읽은 것이 확인되면 도서관에서 일종의 수료증을 줘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2층에는 종합자료실이 있다. 일반 도서 및 간행물, DVD 자료, 인터넷 사용 및 문서 작성이 가능한 공간까지 작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있다. 2층에 올라가면서 설레는 이유는 바로 만화책방 이정표 때문이다. 어떤 분위기의 공간에 어떤 책들이 있을까 상상하며 3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아이들과 나의 표정 모두가 밝아졌다. 

    2018년 리모델링을 해 현대적인 느낌의 공간에 40여개의 좌석을 만들어 이용자들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해 놨다. 만화, 추리, SF, 무협, 판타지, 로맨스 등 만화방에 가야 접할 수 있는 도서들이 있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책에 빠져들 수 있다. 좌석도 딱딱한 의자가 아니라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소파부터 가족 단위로 이용할 수 있는 4인실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다. 혹시 유료 이용인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당연히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또한 도서회원증을 지참하고 오면 40여개의 보드게임도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책장 넘기는 소리도 신경 써야 하는 일반 도서관과 다르게 어느 정도의 수다와 소곤소곤 이야기 소리는 다들 이해해 주는 허용적인 도서관이다. 그리고 책다락 만화책방에는 감성을 더해주는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다. 창가 쪽 좌석에서는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어 커피 한 잔 하며 일을 하기 위해 커피숍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적극 추천한다. 만화책방 내에 카페 공간도 있지만 음료나 커피를 판매하지는 않고 자신이 가져온 커피나 음료를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4인 가족실은 조그만 다락의 형태인데 ‘4인부터 이용 바란다’는 안내문구 때문인지 다른 의자에는 사람이 많은 것에 비해 비어 있었다. 다자녀 혜택 이용! 우리는 책을 뽑아 들고 가족실에 누워 한참이나 책을 봤다. 

     

    만화책 방 이미지
    만화책 방


    주말이 되면 아이들에게 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주기 위해 어디를 갈까 고민한다. 다른 특별한 것이 없어도 같이 누워 책 읽고 같이 웃고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무척이나 대단한 것을 함께 했다는 느낌이 든다. 2시간이나 있다 나오는데도 큰아이는 “엄마, 여기 언제 다시 올까?”하고 묻는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는 것이 의무감이 아닌 재미가 되지 않을까? 

    보개 도서관은 토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운영한다. 어린이 자료실과 종합 자료실은 오전 9시부터 18시까지 자료를 대출할 수 있으며 열람실은 22시까지 이용 가능하다. 소개한 공간 외에도 1층에는 49석으로 된 문화 강좌실도 있다. 이곳에서는 각종 문화강좌 및 강연, 전시회, 인형극 등의 행사도 진행되고 있어 도서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다양한 행사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 평범한 동네서점의 평범한 오늘 - 인천 서구 ‘동아서점’

    ‘동아서점’이라는 평범한 이름의 서점이 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여러 동네에 각각의 동아서점이 자리 잡고 있다. 개중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곳은 강원도 속초의 동아서점일 테지만, 인천 서구 마전동·당하동 인근 주민이라면 인천 서구 완정로 26에 위치한 동아서점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형 서점 및 온라인 서점이 아닌, 동네 한 편 작은 책방이 ‘동네 서점’으로 불리며 소소하게 부흥 중이다. 획일화되지 않고 개성이 살아있는 콘셉트,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도서 큐레이션, 카페를 겸하는 가게 구성 등의 요소가 동네 서점을 ‘힙’하게 만들어주는 경쟁력이다.

    하지만 ‘힙’하지 않은 동네 서점도 많다. 오래 전부터 동네의 한 자리를 지키며 주민들의 독서 생활과 공부를 책임지던 서점들. 인테리어가 특별히 예쁘지도, 맛있는 커피를 팔지도 않지만 언제나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동아서점도 그 중 하나다.

     

    동아서점 이미지
    동아서점


    어릴 때는 동아서점에 잘 드나들었다. 학업을 위한 교재를 사기도 하고, 좋아하는 만화책과 잡지를 사 모으기도 했다. 대학교 진학 이후에는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을 주로 이용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겼다. 아마 많은 주민들이 같은 노선을 밟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동아서점에 방문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동네에서 만났다가 귀가하는 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몇 년 전에 장소를 이전해 다소 넓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크다고는 할 수 없는 공간에 많은 책이 빽빽하게 꽂혀있었다.

    책을 고르는 동안 서너 명 정도의 손님이 서점을 드나들었다. 무협 소설을 고르다가 전화가 오자 “서점이니 나가서 받겠다”라며 조용히 밖으로 나간 중년 남성이 인상적이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녀의 문제집을 사러 온 학부모였다.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하고 서점에 방문했다는 한 손님은 카운터에서 사장님과 담소를 나눴다.

     

    참고서, 문제집을 찾는 학생·학부모는 예나 지금이나 동아서점의 주 고객층이다. 나도 시험 기간이 되면 서점에 방문하곤 했다. 내용 요약과 출제 예상 문제 등이 정리된 시험 대비용 문제집이 그때에 맞춰 출간되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를 사용했기 때문에, 동아서점에서는 각 학교에 맞는 문제집을 과목별로 구성해 준비해두었다. 동네 서점에서만 누릴 수 있는 맞춤 서비스인 셈이다.


    동아서점 내부 이미지
    동아서점 내부

     

    교재가 주력 상품인 이곳에서 별 기대 없이 문학 코너를 훑어봤다가 약간 놀랐다. 이제 막 출간된 신간을 포함해 요즘 화제에 오른 서적을 다수 갖춘 트렌디한 구성이었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 페터 한트케의 책도 있었고, 출판사에서 동네 서점 입고를 위해 표지 디자인을 달리 제작한 ‘동네서점 에디션’도 눈에 띄었다.

    권수에 비해 책장이 턱없이 작아, 바로 꽂힌 책들 위에는 어김없이 다른 책들이 누워있었다. 대형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겨운 디스플레이였다. 정렬은 모든 책에게 평등했다. 잘 나가는 책을 따로 배치하는 등의 장치 없이, 모든 책이 가나다 순으로 자리했다. 그 흔한 배경음악과 향기도 없었다. 단지 책을 뒤적이는 소리와 책 냄새만이 공간을 조용하게 채웠다.

     

    2001년 4월 개점한 동아서점은 그렇게 오늘을 보내고 있었다. 동아서점에 들른 날, 내가 고른 책은 김세희 작가의 신작 『항구의 사랑』이었다. 2000년대 초 목포에서 여고시절을 보낸 화자가 그때를 회상하며 당시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이야기다. 어릴 때 즐겨 찾다가 멀어진 곳이 아직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그곳에서 2000년대 초를 돌아보는 2019년의 소설책을 사 읽는 경험이 어쩐지 묘하게 느껴졌다. 과거인 줄만 알았던 장소가 실은 나와 똑같이 시간을 보내고 현재에 속해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돼 기뻤다. 종종 들러 책 냄새를 맡고, 계획에 없던 책을 안고 나와야겠다. 

  • 울산 지역의 첫 서점, 언양 하나서점

    하나서점 외관 이미지
    하나서점 외관


    동네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세상이 변화되고 인터넷서점이 부상하면서 추억어린 동네 서점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동네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이들이 귀한 세상이라 동네책방 지키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상황이다. 그만큼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동네서점 중에서 한자리를 60여년 지켜온 곳이 있다고 하여 울산을 찾았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서점이고 언양읍에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동네 서점인 ‘하나서점’이다. 


    하나서점 과거모습 이미지
    하나서점 과거모습


    언양읍의 중심가에 위치한 ‘하나서점’은 한 자리에서 오롯이 60년이 넘는 세월을 지키고 있는 언양의 터줏대감이다. 서점 주인인 김충열 씨는 일년 중 하루도 서점 문을 닫지 않는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녀들이 결혼식을 올린 날도 결혼식이 끝나고 오후에 서점 문을 열만큼 고객들과의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통이 불편했던 옛날에는 인근 마을에 사는 학생들이 책 한권을 사기위해 차도 없이 걸어 와야 했고, 그처럼 힘들여 왔다가 헛걸음 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도 안타깝고 처연해서 매일 책방 문을 열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언양읍도 점점 옛 건물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고층건물들이 하나 둘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오랜 세월 제 자리를 지켜온 ‘하나서점’은 주인장의 나이만큼이나 건물자체도 오래되고 역사가 깊다. 언양읍 농협과 나란하게 자리잡은 작고 아담한 단층의 건물인 하나서점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적산가옥이다. 지금의 주인이 서점을 하기 전에는 방앗간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김충열 씨는 지금의 건물을 인수받아 책방을 차리고 책방을 운영하며 1남 4녀를 키워냈다.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해방과 함께 한국에 넘어와 두서국민학교를 졸업한 김충열씨는 당시 방송국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큰 형 덕분에 언양중학교를 다니게 된다. 학구열이 높았던 형의 도움으로 형에게 개인 과외까지 받아가며 열심히 공부했고, 언양중학교에서 전교1등을 하고 급장을 할 만큼 우수한 인재였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책을 사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던 김충열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한의사가 되고자 대학에 진학했지만 가난한 형편이라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울산에서 지금의 하나서점 자리에 책 몇 권을 쌓아 놓고 책방을 시작했다. 당시엔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라 책이 귀했고 울산에 서점이 없었기에 유일한 서점이었던 ‘하나서점’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책방이 한참 잘 될 때는 수입도 괜찮은 편이었다. 김충열 씨는 책방에 앉아서 오는 손님에게만 책을 팔지 않았다. 한참 참고서가 필요한 새 학기에는 직접 학교마다 찾아가서 참고서를 주문받아 배달해주기도 했다. 본인이 조금만 수고하면 여러 학생들이 편하게 책을 받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서점 사장님 이미지
    하나서점 사장님


    그는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의 규율담당인 선도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살아온 그였기에 건강에 좋지 않은 담배를 어려서부터 시작하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담배 피는 학생들을 직접 선도했다. 때로는 호랑이 선생님처럼 동네 아이들이 바른 인성으로 자라나도록 지도했으며, 때로는 마음 아파하며 가난한 학생들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줄 만큼 인정 많은 마을 어른이었다. 

    지금도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김충열 씨를 기억하고 찾아와서 용돈을 건네주는 언양 출신의 사람들이 있다는데 그 이야기만 들어도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지 지난 시간들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이제는 백발이 내려앉은 머리와 아픈 다리, 흐릿해진 기억이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는 나이가 되었지만 “서점은 책을 통해서 지식을 배우는 것 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추억을 쌓아가는 곳이다.”라고 말하는 김충열 씨의 서점 인생이 100세까지도 계속 되길 응원한다. 더불어 울산 언양읍의 유일하게 남은 ‘하나서점’의 밝은 불이 꺼지지 않기도 바라본다. 

  • 지역주민들이 만들고 관리하는 구산동도서관마을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구산동 주택가의 연립주택 세 채를 이용해 만들어진 도서관이다. 구산동도서관마을에 들어가면 넓은 내부와 밝은 인테리어, 그리고 자유롭게 펼쳐진 독서공간이 눈을 사로잡는다. 내부가 딱딱하게 나누어진 다른 도서관과 달리 구산동도서관마을에는 열람실이 없고 모든 곳이 자료실이고 독서실이다. 이 도서관은 연립주택을 이용한 도시재생 건축물이라는 것 이외에도 주민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여 완성한 도서관이어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

     

    구산동 도서관마을
    구산동 도서관마을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신남희 관장은 도서관을 건축하던 사람들이 “이름 없는 건축가들의 협업이다.”라고 말하던 표현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을 지어달라는 주민의 요구를 듣고 구청에서 예산과 부지를 확보해 도서관 건축을 시작한다. 보통은 건축이 시작되면 주민들의 목소리는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주민들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에 참여해 예산을 확보하고 구청과 협력해 건축에도 개입한 이후 운영까지도 주민에게 맡긴 전국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이런 주민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도서관은 건축에도 신경을 썼다.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연립주택의 거실과 방이었던 공간이 자료실이 되고 아이들이 뛰어 놀던 골목은 서가가 되었다. 층마다 발코니를 살려 건물이 높고 넓게 구성되었다. 연립주택의 모양도 내부에 그대로 남아있어 그 이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마을 안에 가까이 자리한 덕분일까, 주택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어서일까. 도서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역시 슈퍼에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도서관이 주민의 생활과 어우러진 풍경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구산동 도서관 내부 이미지
    구산동 도서관 내부

    그래서인지 도서관 내부에는 도서관 건립 당시에 찍은 사진이나 주민들이 직접 찍은 마을 사진 등으로 꾸며져 있다. ‘마을 자료실’에는 구산동의 역사와 마을 사람들에 대한 자료가 따로 보관되어 있어 열람이 가능하다. 도서관 프로그램 ‘도서관 스케치’에 참여한 주민들이 구산동도서관마을을 그린 그림이 남아 있기도 하다. 또 마을 주민이 연립주택에서 찍은 어린 시절 사진을 신 관장에게 보내온 일도 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집이 도서관이 되어 기분이 좋다는 편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어린 아이가 연립주택 마당에서 그네를 타는 흑백사진은 지금 도서관 계단 벽에 전시되어 있다.

     

    신 관장은 그 외에도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찾아오는 특별한 이들을 기억한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이 세금 내는 보람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폭염과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도서관을 지켜주어서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밖 주차공간에 있는 나무들이 제대로 관리되는 것 같지 않다며 직접 관리해주겠다고 나선 주민도 있다. 신 관장은 도서관을 찾는 이들의 애착과 관심 덕분에 도서관 직원들도 힘이 나고 보람차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자료실과 주민들이 예산을 확보하며 기획했던 ‘청소년 힐링 캠프’는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자랑거리다. ‘청소년 힐링 캠프’는 강연을 하는 강당으로, 극장처럼 천장이 높고 멋있게 구성되어 있어 외부 강연자들이 강연을 하러 오면 ‘도서관 강당이 이렇게 멋진 것은 처음이다’라며 감탄을 한다. 또 일반적인 자료실과 신문자료실 외에도 ‘만화자료실’, ‘마을자료실’, ‘청소년자료실’이 따로 갖춰져 있는 것이 구산동도서관마을의 특징이다.

     

    신 관장은 다른 지역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도서관 운동을 해왔다. 외국의 공공도서관은 건물도 멋있지만 그 안의 분위기도 따뜻하고 지역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시나 구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가운데 구산동도서관마을은 민관 협치의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신 관장은 그러한 지역 시민들의 힘을 배경 삼아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도서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골목 끝의 변방과 현장, 광주 동네책방 ‘소년의 서’

    “낮은 바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고, 독립기획자이며, ‘소년의 서’란 작은 책방을 꾸리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임인자(43)씨. 그의 이력인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광화문 공공극장 ‘블랙텐트’ 운영위원, 형제복지원 생존자모임 총무 등의 직함에서도 그녀가 겪어온 시공간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녀가 서 있는 곳, 해 온 일들의 주소는 거개 ‘변방’이었다. 떠밀려난 변방이 아니라 스스로 택한 변방.

    지리적 위치도 때론 그렇다. 흥행이란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영화들을 고집하며 8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단관으로 생존하고 있는 ‘광주극장’의 옆구리 골목에 들어서 몇 번 굽이돌면 작은 책방이 뜬금없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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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의 서 외관(사진출처:전라도닷컴)


    문을 열면, 책의 밀도가 확 느껴진다. 일고여덟 평의 공간에 책들이 집적돼 있다. 이 책짐을 떠메고 곧 이사가거나 방금 이사온 것 같은, 무질서의 질서가 에너지가 되어 흐른다. 인문사회과학예술서점인 이 서점에 들어오는 책의 자격은 무엇일까.

    “광주 오월 관련 책들, 형제복지원 사건처럼 차별과 배제에 관련된 책들, 여성에 관련된 책들, 연극에 관한 책들, 도시에 관한 책들 등등. 출입문 쪽은 신간이고 안쪽엔 지금은 구하기 힘든 책들이 많아요. 판매는 안하지만 보여드리려고요. 일종의 도서관 같은 역할이랄까요.” 서점을 하면서도 꼭 읽어야 할 책, 있어야 할 책을 신중히 발굴하고 전하려는 산책자로서의 자세가 보인다. 변방을 “제도권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거점”으로 바라보듯, 서점 역시 그에겐 함께 읽고 알아가며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실천하려는 작은 씨앗 같은 공간인가 보다.

    이상호 작가가 그린 녹두장군 전봉준의 얼굴 너머로 불끈 쥔 주먹과 함께 ‘We Will Not Be Silent’란 구호를 새긴 포스터가 보인다. 2016년 가을에 문 연 ‘소년의 서(書)’. 하지만 자주 문이 닫혔다. 그녀가 서점 바깥 세상에 나설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대적인 급박함 속에서 서점이 운영되다 보니까 뭔가 서점으로서 성실하지 못한 느낌이 있었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 중 1인이기도 한 그녀는 국가폭력인 블랙리스트 사태에 맞서 싸우면서 ‘김기춘 재판’을 꾸준히 방청했다. 또한 서점 문을 열고 얼마 안돼서 광화문 블랙텐트 활동 때문에 광화문에서 겨울을 났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오늘 서점 문 닫음’이란 소식이 올라온다는 것은 그녀가 서점에 부재한 대신 무언가 긴박한 현장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년의 서’에 닿으려면, 골목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도 또 하나의 짧은 여행이 된다. 하지만 깊숙한 골목에 서점을 열면서 일말의 걱정은 없었을까. 그녀는 ‘아니오’라고 즉답한다. 

    “골목을 좋아해요. 광주극장에 영화 보러올 때 행복했던 기억들 때문에도 이 골목이 맘에 들었고, 소위 ‘핫하다’는 동네들과 달리 광주에서 숨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팔아보니 문화로서의 책 판매도 있고 상업행위로서의 책판매도 있는데 대로에 있으면 상업행위에 더 충실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애초에 서점을 연 의도와도 멀어질 것 같아요.”

     

    임인자 씨가 서점을 열게 된 것은 2013년 서울변방연극제에서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란 작품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년의 서’란 간판은 잊혀진 과거, 소외된 진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하지만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않은 존재가 소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붙인 이름이다. 책방 진열장에는 한종선의 「살아남은 아이」가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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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의 서 책장(사진출처:전라도닷컴)


    초록색의 동그란 원이 겹겹을 이루는 간판도 직접 만들었다. 동그란 원은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광장을 생각하면서 디자인했다. ‘소년의 서’ 위층인 2층엔 ‘원앙자수’가 세들어 있다.

    “드륵드륵 소리가 나죠. 일상의 배경음으로.”

    ‘원앙자수’는 전기세를 같이 내는 사이다.

    “작년에 제가 제때제때 못내서 미안했죠. 참고 기다려주셔서 늘 고마웠고요.”

    또 긴밀한 이웃으로는 광주극장이 있다. 서점 문을 열지 못할 때도 책 택배상자가 오면 받아주는 사이다.

     

    작년 ‘소년의 서’의 목표는 책 판매로 월세를 내는 것이었고, 목표를 달성했다. 2018년 판매 결산은 1300권 정도. “한 달에 100권은 되잖아요. 열심히 판 결과, 책을 파는 즐거움도 알게 됐고 책과 사람을 잇는 재미도 누렸어요.” 북토크나 독서회도 부지런히 꾸리면서 사람들이 점점 연결되고 연대의 씨앗들도 움트고 있다. 골목이란 공간적 자산을 활용한 행사들도 자주 해볼 생각이다.


    올해 목표는 바깥 일을 많이 줄이고 서점에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과 사건들이 해결돼야죠. 서점에도 나에게도 일상이 돌아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연대하고 있어요.” 골목 안 작은 책방 역시 그녀에겐 변방이고 광장이고 거리이다. 억눌리고 사라지고 삭제된 목소리들을 불러오고 ‘모두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 흥해 유일의 도립도서관, 영일공공도서관

    영일공공도서관은 1990년 영일군 공공도서관으로 개관하여 1991년 3월 경상북도립 영일공공도서관으로 개칭하였다.

    영일공공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문화, 취미 강좌들이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나에게 마음의 여유와 생각하는 힘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생활에도 신선한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도서관은 많은 읍민들에게 각종 문화소식과 특강을 통해 새로운 의식과 생각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주민들이 서로 이웃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영일공공도서관의 1층에는 종합자료실, 자유열람실, 휴게소가 있고, 2층에는 디지털자료실, 어린이 자료실, 평생학습실이 있다. 디지털자료실에서는 컴퓨터 사용뿐 아니라 프린터와 복사기도 사용가능 해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프린트는 한장에 50원, 복사는 40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다른 곳보다 절반 정도 싼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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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일공공도서관 내부


    영일공공도서관은 흥해종합복지문화센터, 새마을금고, 농협에서 주부교실을 운영하기 전부터 문화와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했었다. 야생화 키우기, 매듭공예, 서예, 동화구연 외에 도서관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댄스스포츠 수업도 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는 상상 만으로도 멋진데 실제 몇 개월 수업이 이루어졌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음으로서 마음만 살찌는 것이 아니라 각종 수업을 통해 몸도 건강하게 가꿀 수 있어 좋았다. 

    도서관의 날 행사로 있었던 도서교환전은 내가 다 읽었거나 읽지 않은 책들을 보고 싶은 책들과 바꿔 올 수 있어 기억에 남는 행사다. 음악회나 시낭송회 등 각종 놀이와 문화를 접하고 주민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었다.

     

    흥해는 2017년 11월 15일 일어난 지진으로 도시재생, 도시재건 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일공공도서관이 지진으로 인해 금이 가고 무게 지탱이 힘들어 책을 많이 쌓을 수 없다고 한다. 도시재건의 일환으로 흥해에 지어지는 복합건물 안에 도서관이 들어선다. 시에 들어오는 도서관과 규모상 큰 차이가 있어 경쟁이 되지 않으므로 도립도서관은 없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고 한다. 

    흥해 주민들의 문화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던 영일공공도서관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30년간 이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30년 아니 50년, 100년은 더 있었으면 좋겠다.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가 되자는 가치 아래 많은 독서활동 지원과 각종 문화 행사를 열어주었던 것처럼 주민들을 위한 평생 강좌 운영을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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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일공공도서관


    영일공공도서관에는 20년이 넘은 ‘글항아리 독서회’,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 하는 ‘생각나누기와 상상놀이터’, 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힐링시네마’, ‘어린이 가온독서회’ 등의 동아리가 있다. 이런 동아리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그 외에도 각종 강연회, 전시회, 문화행사 및 평생교육과 관련된 행사들을 주최했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대출해 주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문화교육, 위탁교육, 평생교육을 넘어 서비스도 제공한다. 공공도서관은 도서대출, 정보의 보관과 제공, 지역사회를 위한 적극적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지역주민의 교류, 지역공동체 문화를 지원해야 한다. 시립도서관이 들어오니 도립도서관이 없어지는 것은 맞지 않다. 흥해 문화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고 사랑방 역할도 넉넉히 했던 영일공공도서관이 지금 그 자리에 계속해서 있었으면 좋겠다.

  • 책밭서점,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에 가다

    서점을 좋아해서 제주에 여행 와서도 서점투어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여서 그런지 유독 헌책방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이 반갑다. 헌 책방 입구에서부터 솔솔 풍겨나는 헌 책의 냄새나 그 특유의 분위기에 설레고, 세련된 진열은 없어도 낡은 것들이 자아내는 자태와 고상함에 늘 감탄하곤 한다. 

     

    이제 육지에서도 희귀해진 헌 책방. 다행히 제주도내에는 헌 책방의 명맥을 40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책밭서점이 있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헌 책방인 책밭서점은 제주시 중앙로(구주소 : 이도일동 1260-26)에 자리잡고 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책밭서점은 주인아저씨가 도대체 얼마나 책을 사랑하고 있으면 이토록 오랜 시간 한 공간을 지켜낼 수 있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곳이다. 제주의 보성시장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을 지나가다 보면 책밭서점 입구가 보인다. 오래됐지만 아주 크고 선명한 글씨로 적힌 간판이 보이고, 책밭서점에 들어서면 빛바랜 오랜 책들에서 이상하게 어떤 빛과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책밭서점의 내부 이미지
    책밭서점의 내부

    그렇게 사로잡혀서 여기저기 둘러보면 책밭서점 안엔 종류도 다양할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고서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신기하기만 하다. 어릴 적에 보던 만화잡지에서부터 대학교재, 수능특강 교재,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최근의 만화책까지 장르와 연령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책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입구에서 보면 책방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구석구석 내부를 둘러보면 안쪽 공간이 꽤 넓고 엄청난 책의 양에 결코 작게 느껴지는 곳이 아니다. 아주 깊게 진열되어 있는 책을 찾아보며 유레카!를 외치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책 분류는 천장에 해놓으셨으니 놓치지 말길! 유리책장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인데, 바로 고서가 전시 되어 있어 보려면 주인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훼손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쪼그려 앉아 책을 보는 사람들, 책에 푹 빠져 집중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이것도 있네, 어머 저것도 있어” 하면서 책을 집어들다 보면 나올 때 꽤 두툼한 봉지를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곳은 카드결제도 가능하다. 카드 결제를 하려고 카운터에 가니 주인 아저씨가 놓아두신 감귤바구니가 보인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진심과 마음이 느껴진다.

    책밭서점은 그렇게 나만의 공간에 콕 처박혀 있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이다. 운이 좋으면 새 책보다 더 깨끗한 책을 저렴한 가격에 득템할 수 있고,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숨어있는 좋은 작가, 좋은 서적을 만날 수 있다. 헌책방이 주는 편안함에 중독되고 주인의 고집스러운 정성에 반하게 되면 떠날 때 발걸음이 아쉬울 정도로 오래오래 있고 싶어진다. 

     

    책밭서점


    예전엔 주인아저씨가 농사를 지으셔서 오후 3시 이후에 문을 여셨고 2006년 한겨례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문학에 심취하여 신춘문예에도 여러번 응모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 간판엔 ‘일요일엔 농사지으러 갑니다’라고 적혀있기도 했다. 산굼부리 목장 근무를 하시던 중 이 책방에 들른 것이 인연이 되어 아예 인수를 하게 됐고, 농사와 병행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글을 쓰셔서 일까, 아저씨의 손글씨가 예술적으로 멋지게 느껴진다. 요즘은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영업하고, 일요일엔 쉰다. 

    언제나 묵묵히 카운터에서 책을 읽거나 정리를 하시는 아저씨를 보면 오랜 세월 이곳을 일구고, 책을 수집하며 가꾸어왔을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문을 열고 나설 때마다 주인아저씨에게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를 마음 속으로 외치곤 한다. 주인아저씨가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책밭서점이 몇몇 유명한 제주의 헌책방들과 함께 하며 가장 오래된 제주의 헌 책방 타이틀을 계속 지켜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지켜온 계림동 헌책방 거리

    사람의 키를 넘는 높은 책장에 가득 꽂혀 있는 헌책, 책을 내리기 위해 세워둔 사다리, 헌책방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묵은 종이 냄새.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책만’ 판다면 헌책방에는 ‘책과 책을 둘러싼 것’들이 있다. 

     

    광주 동구 광주고등학교 앞에 있는 ‘계림동 헌책방 거리’는 1960~1970년대를 주름잡던 중고 책방의 메카였다. 가난한 고학생이 책을 도둑질하고, 그 마음을 아는 책방 주인은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책으로 성공한 고학생이 책방 주인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미담은 서점마다 있는 흔한 일이었다. 고학생이 중고 책도 없어서 쩔쩔맨 기억이 있다면, 서점 주인은 물량이 모자라 못 판 기억이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유림서점 외부 이미지
    유림서점 외부


    해방 직후에서 시작된 헌책방 거리에는 1980년대만 해도 헌책방이 60곳 넘게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인터넷을 통해 책을 팔고 사게 되면서,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한 주인들이 장사를 포기하기도 하고 경영난도 있어. 지금은 달랑 몇 곳(유림서점, 백화서적, 학문당, 광일서점, 대교서점, 광주 고서점, 문학서점 등)이 남아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마저도 언제 문을 닫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손님이 뜸해 종일 가게를 지키다 들어가는 날이 더 많아 한숨 세월을 보내지만, 계림동 헌책방 거리의 몇몇 가게들이 우리의 추억을 붙잡아 주고 있다.


    광주에서 공부 좀 한 나이 지긋한 어른이라면 광주고 오거리에서 계림오거리에 이르는 700m 구간의 이 길목에 ‘보물찾기의 기적’을 체험했던 숱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무질서하게 꽂혀 있는 책들 사이에서 기가 막힌 재주로 원하는 책을 찾아주던 책방 주인, 잃어버린 교과서를 사려고 애쓰던 학생, 희귀한 고서적을 찾는 어른이 책방과 함께하던 풍경이 남아 있다. 헌책도 인터넷으로 사는 젊은이들은 이 골목의 존재조차 모른다. 옛날에 책을 팔러 왔던 까까머리들이 어른이 돼 자녀들 손을 잡고 다시 찾아온다는 유림서점 주인장의 말처럼 어른 손에 이끌려 와야 이 보물창고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림서점 주인장은 아이 낳기 전부터 지금껏 헌책방 일을 하셨다. 50년 가까운 세월이다. 처음엔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책에 둘러싸여 종일 일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 감옥살이 같다고 하셨다. 그나마 단골이 꾸준히 와 주기 때문에 그들과의 신의로 가게를 이어가고 있다고. 그런데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곳에서 딸은 희망을 찾았을까. 유림서점 2세대인 딸 유수진 씨는 몇 년 전 서점 옆 창고 공간에 핸드드립 커피집을 열었다. 조금 느리지만 손수 커피를 내려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유수진 씨는 올 초에 헌책방을 찾는 젊은 단골인 책문화기획자 유휘경 씨와 공동기획으로 이 오래된 헌책방 거리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도 시도했다. 광주고서점, 광일서점, 문학서점, 유림서점 등 1970년대부터 이곳에서 꾸준히 장사를 한 헌책방 주인들이 ‘계림동 처방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헌책방을 둘러싼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헌책방 단골 네 명이 결성한 시민밴드 보크콰르텟은 공연을 했다. 


    유림서점 내부 이미지
    유림서점 내부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경로가 책밖에 없던 시절의 영화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추억을 함께 하고, 또다른 미래를 꿈꾼다면 이루어지지 못할 이유도 없다.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나 관광명소로 지정된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처럼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광주 계림동의 헌책방 거리도 미래를 꿈꾸고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현대식 인테리어로 손님을 유혹하는 대기업의 대형 중고서점이 헌책방 골목에 자리잡았지만, 세월은 그냥 쌓이는 게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