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 참여 도서관이 있는 마상근린공원

    마상근린공원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근린공원이다.

    101,180㎡의 넓은 면적에 야외무대와 풋살구장, 농구장, 실내 배드민턴장, 게이트볼장 등 각종 체육시설과 휴게시설, 600m의 산책로를 갖추고 있다.

    산책로의 초입에는 재치 넘치는 속담이나 시를 적은 돌들이 놓여 있어서, 그걸 읽으며 걷다 보면 빙그레 웃음을 짓게 된다. 나무가 울창한 숲길에 마련된 원두막들은 인기가 좋아서 여름엔 언제나 만원이다.


    마상근린공원은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피신해 있을 때 물을 마셨다는 대궐고개 약수터와 노비가 풍수지리를 배워 복수했다는 병풍바위의 전설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배다리 누리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마상공원 입구 이미지
    마상공원 입구


    이곳에서 시작된 배다리 누리길은 숲길뿐만 아니라 황토길, 군사도로와 철책길, 공원길, 논밭길로 이어지며 지루하지 않게 2시간 정도 걸을 수 있다.

    특히 마상근린공원에서 원당중학교까지 1km 정도 길게 이어진 벚나무 길은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명소로, 봄에는 벚꽃이 화사하게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곱게 든다. 번잡하지 않고 고즈넉한 마을길이기 때문에 혼자 조용하게 사색하며 걷거나 데이트하기에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도 좋다.


    이 아름다운 벚꽃 길이 있는 마을이 바로 마상근린공원 이름의 연원이 된 마상골이다.

    마상골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로부터 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는 설과, 마을의 생김새가 말을 탄 사람의 모양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마을의 산세가 말과 코끼리 모양이라 마상(馬象)골이라는 설도 있지만, 1911년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원당면 주교리 마상곡(馬上谷)’이라는 골짜기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상공원 작은 도서관 이미지
    마상공원 작은 도서관


    마상근린공원이 다른 근린공원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점이 있다면, 2016년에 개관한 ‘마상공원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것이다.

    마상공원 작은 도서관은 주민참여예산으로 건립된 최초의 공립 작은 도서관이다.

    주교동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이 뭔지 고민한 끝에 작은 도서관 건립 사업을 추진했고, 시의 타당성 검토를 거쳐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선정되어 지을 수 있었다. 주민들의 능동적인 행정참여의 결과물이라 더욱 의미가 깊은 도서관이다.

    작은 도서관이긴 하지만 규모만 작을 뿐 3,500여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고 신착도서 코너와 유아열람실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알찬 도서관이다. 2017년 증축공사 때 한쪽 공간을 전면 폴딩도어로 만들었는데, 날씨가 좋을 땐 완전히 개방할 수도 있고, 문을 닫아도 유리창을 통해 공원의 자연풍경을 도서관 안에서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친환경 공간이 되었다.


    종종 야외무대와 작은 도서관에서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마상근린공원. 주민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든 운동을 위해, 산책을 위해, 책을 보기 위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어 우리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46년만에 찾은 평화, 행주산성 역사공원

    행주산성 역사공원은, 1970년대 초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했던 한강 하류의 군 철책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조성한 공원이다. 고양지역 한강변 철책선 12.9km 중 가장 먼저 철거된 곳으로, 처음 철책이 설치된 지 46년만인 2016년에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고양시정연수원 앞 한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33,000㎡이다. 3.73km에 달하는 행주산성 누리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행주산성 앞의 한강을 조선시대에는 행호(杏湖. 살구나무 호수)라 불렀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 살구나무가 많았고, 행주산성 인근으로 창릉천이 흘러들어오면서 강폭이 넓어지고 물살이 약해져서 마치 호수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길게 늘어선 입구를 지나 공원으로 들어가면, 넓은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행주산성 역사공원이 나온다. 행주산성 역사공원에는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행호관어도’를 토대로 행주마을의 옛 모습을 재현한 것들이 곳곳에 있다. ‘행호관어도’는 겸재 정선이 강 건너 양천현감으로 있을 때, 어부들이 강에서 작은 배를 타고 웅어잡이 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그림 속에 보이는 빨랫돌 머리, 버드나무류, 고기잡이배가 공원에 사실적으로 복원되어 있다.


    행주산성 역사공원 이미지
    행주산성 역사공원


    또한 ‘생태공원’과 ‘평화공원’을 지향하고 있는 공원인 만큼 생태광장에서는 살구나무와 갈대, 수크령, 털부처꽃 등 자생식물을 볼 수 있고, 과거 군 초소 건물을 보수하여 만든 초소전망대에서는 적군의 침투를 감시하는 대신 한강과 철새를 평화롭게 조망할 수 있다. 그중 팔각정 초소전망대는 한강으로 들어오는 무장공비를 24시간 감시하기 위해 인근 초소건물 중 가장 높이 설치돼 있었던 덕분에, 지금은 한강을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 되었다. 왼쪽으로는 방화대교, 오른쪽으로는 행주대교가 막힘없이 보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일몰은 인근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밤이 되어 두 대교에 조명이 켜지며 펼쳐지는 야경도 상당히 멋지다. 공원 안에는 군 철책선의 일부를 남겨놓았는데, 이곳이 과거 남북분단의 상징이었음을 알리는 동시에 평화 시대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팔각정 초소전망대로 향하는 길목에 이가순 관개 송덕비(고양시 향토문화재 제64호)가 있다. 1930년대 고양지역에 양수장을 건설하고 수로 연결사업을 통해 해마다 고질적으로 되풀이되던 가뭄과 물난리를 해결한 양곡(陽谷) 이가순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0년에 세운 것이다. 이가순 선생은 3.1 운동과 신간회 활동 등으로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행주산성 역사공원의 인근에는 권율 장군을 기리기 위한 행주서원, 현존 사례가 많지 않은 한옥성당인 행주성당, 임진왜란 당시 민관군이 힘을 합쳐 왜군을 물리친 유적지 행주산성 등이 있어서, 함께 연계해 교육공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왕 공원에 왔다면 공원뿐만 아니라 행주산성 누리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공원 주차장은 항상 무료로 운영되고 있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 고려 공양왕이 마셨다는 샘물, 대궐고개 약수터

    이 약수터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에 위치해 있다. 군부대와 작은 농장들을 제외하고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야산 한 가운데에 대궐고개라는 지명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심상찮다. 이 장소는 고양시에서 조성한 ‘배다리 누리길’이라는 이름의 둘레길이 지나지 않았다면 찾는 사람도 별로 없을 외진 곳이다. 하지만 이곳으로부터 500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의 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뭔가 짐작 가는 바가 생기게 된다. 한반도 땅에는 걷는 길마다 역사가 묻어나는 곳이 수없이 많지만, 이 외진 산속의 좁은 오솔길도 그중 하나라는 사실이 새삼 감탄스럽다.


    대궐고개 약수터 이미지
    대궐고개 약수터

     

    후에 조선 태조가 되는 이성계는 공민왕의 적자 우왕과 창왕을 죽인 뒤, 고려 왕실 직계에 포함되면서 자신에게도 가까운 왕족을 왕으로 내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왕이 된 것이 이성계와 먼 사돈뻘이었던 왕족, 바로 공양왕이다. 직접 모은 재산도 상당해서 편안한 말년을 기다리던 사람이 갑자기 왕까지 되었으니 기분이 좋았을까? 시절이 하 수상하던 그때 왕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공양왕이 모를 리 없다. 죄 하나 짓지 않고도 언제 처형당할지 모르는 사형수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 노국공주와 신돈이 등장하는 극적 스토리를 가진 공민왕에 비해 공양왕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어 그저 무력하게 꼭두각시 노릇을 하다가 스러진 왕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실제 사료를 보면 나름대로 이성계에게 저항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아마 그것이 그의 죽음을 앞당겼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왕이 된지 3년도 못 되어 처형당한다.

    실록에서는 그가 삼척으로 유배되고 거기서 처형되었다고 하나, 민간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공양왕이 삼척에서 탈출하여 쫓기다가 결국 이곳 고양시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저 민담이라고 무시할 수만 없는 것이, 실제로 공양왕릉은 삼척과 고양 두 곳에 있는데 조선 왕조는 고양시의 능을 공인했기 때문이다. 

    민간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공양왕은 이성계의 병사들에게 쫓기다 최영 장군의 묘지가 있는 고봉현(현재의 고양시)까지 오게 되는데, 산속에서 헤매다 작은 절을 발견하고 몸을 의탁하고자 했다. 그러나 스님들은 쫓아오는 병사들이 분명 이 절을 놓치지 않을 것을 알고, 공양왕에게 근처의 골짜기에 숨어 있으면 밥을 날라 드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공양왕은 골짜기를 찾아가려 했으나 날은 어둡고 초행길이라 그날 밤은 어느 고개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이 뒤는 자세하지 않다. 골짜기에 숨은 공양왕에게 몇 차례 밥을 가져다줬던 스님들이 어느 날 시신이 된 공양왕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 근방 백성들이 왕이 머물렀던 고개를 대궐고개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양왕이 피신해 있는 동안 꼭 한 곳의 샘물만을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바로 그곳이 훗날 대궐고개 약수터가 되었다. 

    기구한 운명으로 객사한 어느 왕의 사연도 안타깝고, 그를 불쌍히 여겨 왕의 발길이 닿았던 곳마다 대궐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백성들의 마음도 짠하다. 스님들이 왕에게 밥을 주었던 골짜기는 식사골로 불렸는데, 그곳의 이름은 ‘식사동’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다.

     

    대궐고개 이미지
    대궐고개


    현재 대궐고개 약수터는 식수 부적합 판정을 받아 가끔 이용이 금지되기도 한다. 또 바로 근처에 국도 대체 우회도로가 건설되고 있는데 2016년에는 이 우회도로가 역사적 사연이 많은 산책로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집단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 유물 증거 없이 사연만이 존재하는 작은 오솔길과 샘물이 현대 문명의 개발 바람을 얼마나 오래 버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아직은 공양왕과 백성들의 모습을 충분히 그려볼 수 있을 만큼 숲은 울창하고 골은 깊으니 한번쯤 산책이 필요할 때 지나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 기차가 달리던 길이 도심 속 숲길로!

    경춘선은 서울과 춘천을 연결하던 철길이다. 당시 경인선 등 철도가 일제 침탈용으로 연결된 반면 경춘선은 민족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우리 상인들이 ‘경춘철도 기성회’를 조직해 1939년 완공했다. 그 후 경춘철도주식회사에서 운영하다 국철로 편입했고, 2010년 경춘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쓰임이 다한 경춘철교~담터마을 구간 6km는 경춘선 숲길 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해 2018년에 개방, 지금은 인근 주민들의 숲길 공원 겸 문화 공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경춘선 텃밭 이미지
    경춘선 텃밭


    경춘선이 시작되는 경춘 철교부터 담터마을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경춘 철교를 건너니 과거 고3시절 들었던 기차 소음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의 환한 표정에 어울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경춘철교를 건너면 주민들의 텃밭이 보인다. 텃밭을 신청한 사람들에게 도시 농부의 삶을 제공하는 곳으로, 정식 명칭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가꾸는 참여(생산) 정원’이다. 텃밭 위에 허수아비를 대신하여 지키는 새로운 조형물이 재미있어 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는 귀여운 토끼모형이 보이고, 레일바이크가 있어 아이들이 즐겁게 뛰논다. 


    경춘선 숲길은 걷고 운동하는 숲길에 문화 공원의 역할까지 더해지고 있다. 「기찻길 옆 빗물 정원」, 「70년의 기억」 등 작가들의 경춘선 숲길 정원이 한창 제작 중이라 미술관에 온 기분마저 들게 한다.

    경춘선 숲길은 도심 속 공원으로 주변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선멈춤이라 표시된 건널목도 있고, 벽화들과 「함께 가꾸고 나누는 마을의 뜰」이 있어 도심 속에서도 숲길을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숲길을 걸으면 어릴 적 할머니께 들었던 정겨운 도깨비가 그려진 벽화가 반기고, 그 벽화에 어울리는 도깨비 시장의 입구가 바로 보인다.

    이곳을 벗어나 화랑대역 구간으로 향하면 「우리 꽃들이 반기는 철길 들꽃길」도 있다. 철길은 다소 척박한 땅이지만 그곳에서 강한 생명력을 가진 들꽃들이 자라고 있다. 


    화랑대역 이미지
    화랑대역
     

    한 시간쯤 걷다보니 어느덧 화랑대역에 도착했다. 등록문화재 제300호인 화랑대역은 1939년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어 서울에 지금도 남아있는 보기 드문 간이역이다. 건립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어, 어릴 적 기차를 타고 여행하던 기분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또한 과거의 열차들도 볼 수 있다. 미카 5-56호는 1952년 도입하여 경부선 구간에서 운행하다, 1967년 디젤 기관차가 나오며 운행이 중단된 화물용 증기기관차이다. 1975년부터 어린이대공원에서 전시하다, 2017년 5월 이곳 화랑대역 경춘선 숲길 공원으로 옮겨왔다. 그 외에도 1960년대까지 운행하던 일본 노면전차를 닮은 노면전차의 내부가 공개될 예정이라, 규모가 작은 기차 박물관 느낌도 난다. 

    폐차란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는 기차를 보면 과거를 걸어온 느낌이지만, 어느새 기차가 달리던 철길은 사람들이 걷는 숲길이 되었고,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책을 읽는 공원이 되었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가는 길 같다. 그 숲길에는 도시 농부의 꿈이 영글어가고, 아이들이 뛰놀며, 기차 박물관이 꾸며지는 등 새로운 공간으로 계속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 갈 곳 잃은 나무들의 쉼터, 하남 나무고아원

    경기도 하남에는 하남 나무고아원이 있다. 1999년 하남에서 ‘한국국제 박람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환경을 생각하고 실천하기 위해 각종 도로 공사나 아파트 공사로 필요 없게 된 나무들을 베어버리지 않고 옮겨 심을 수 있는 나무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이런 취지로 2000년에 개장한 곳이 하남 나무고아원이다.

     

    처음 나무고아원에 오게 된 나무는 버즘나무, 외래어로는 플라타너스라고 불리는 나무다. 열매가 동그래서 방울 나무로도 불린다. 버즘나무는 도심의 매연에 강한 나무로 각광받아 가로수로 많이 심었으나, 꽃가루가 날릴 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미관상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다. 또한 성장이 빨라 보도블록 위로 뿌리가 솟아나서 사람들이 걷기에도 불편하고, 가게 간판을 가린다는 시민들의 불만도 폭주했다. 버즘나무 대신 이팝나무로 가로수를 교체하면서 베어지거나 뿌리째 뽑힐 운명이었던 이 나무는 나무고아원이 생기면서 안전하게 옮겨져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지금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유치원에서 단체로 나들이 와 서 버즘나무 낙엽으로 가면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자연물로 미술 활동도 하는 등 어린이들의 훌륭한 놀이 친구가 되고 있다. 


    나무고아원과 아이들 이미지
    나무고아원과 아이들


    버즘나무 다음으로 나무고아원을 대표하는 나무는 1950년생 버드나무다. 옮겨질 당시 줄기에 상처가 많아 성장이 어려웠지만 하남시청 녹지과 담당자들과 나무외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세 번의 외과 수술을 받고 지금은 나무고아원의 터주대감으로,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푸르고 튼튼한 나무로 잘 자라고 있다. 그 밖에도 하남뿐만 아니라 수원에서 옮겨진 은사시 나무, 청와대와 군대에서 옮겨진 소나무, 은행나무, 홍단풍, 감나무, 산수유 등이 하남 나무고아원에서 링거도 맞고, 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


    갈 곳 잃은 나무들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나무고아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아이들을 보육해주는 곳으로 알고 문의 전화가 오기도 했다. 한 때는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하남 수목원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지만, 갈 곳 잃은 나무들을 보호한다는 개장 초기의 취지를 살려 지금은 하남 나무고아원으로 부르고 있다. 흙먼지만 날리던 처음 모습과는 다르게 이제는 푸른 숲이 무성하여 시민들의 산책로, 아이들의 체험교육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봄이면 봄맞이꽃, 제비꽃, 민들레, 양지꽃이 활짝 피고, 여름비가 내릴 때는 멸종위기보호종인 맹꽁이가 웅덩이에 알을 낳느라 맹~꽁 맹~꽁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가을에는 고라니, 꿩, 겨울에는 박새와 참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사람에게도 누려야할 인권이 있듯이 동물과 식물들에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식물과 동물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품어 안아주는 하남 나무고아원이 있어 우리동네가 더 따뜻한 것 같다. 

  • 일산의 허브, 일산문화공원(구 미관광장)

    일산문화공원 전경 이미지
    일산문화공원 전경



    일산은 호수공원과 정발산 공원 등 녹지가 많으며, 녹지의 면적도 신도시 전체 면적의 22.5%로 월등하다. 이 정발산 공원과 호수공원을 연결해주는 공원이 바로 일산문화공원이다. 면적은 59,048㎡이며 야외무대와 광장 조형물을 갖추고 있다.


    일산문화공원은 신도시 개발 당시 조성되어 제5호 미관광장으로 불리다 지난 2004년 시민들로부터 명칭공모를 받아 ‘일산문화광장’이 됐다. 일산문화공원은 남과 북으로 3호선 정발산역과 일산동구청, 아람미술관, 아람누리도서관 등의 공공시설과 호수공원이 마주하고 있으며, 동과 서로는 홈플러스와 롯데백화점 등의 쇼핑센터와 웨스턴돔, 라페스타 등의 문화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장점으로 인해 일산의 수많은 공원 중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공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산 문화공원에서는 매년 고양시에서 추진하는 다채로운 행사와 축제가 열리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참여하는 공연 역시 끊이지 않는다.




    각 지방의 토속 음식을 소개하는 행사를 비롯해, 막걸리 축제, 호수문화 축제 등 매주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펼쳐진다. 또한 지역 학교학생들과 동호회 등에서 공연을 하고 정기적으로 벼룩시장이 개최된다. 자유로운 버스킹과 스케이트 보드, 자전거, 줄넘기 등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산문화공원에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있다. 가장 남쪽에 위치한 어묵꼬치 모양의 큰 탑은 ‘일산 신도시 건설기념탑’이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된 탑은 높이 30미터로 1997년에 세웠다. 이 탑은 일산 신도시 건설 사업의 성공적 완수를 기념하고 입주민들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고자 한국토지공사에서 제작, 윤동구, 이형우 작가가 설치했다.


    이 작품은 전통적 풍수의 음양조화를 바탕으로, 양적 요소인 정발산과 음적 요소인 호수공원 사이에 위치하여 천지의 중간자를 상징하면서, 우주의 기가 바람을 받아 회전하는 원통형 모빌과 어우러지며, 재생의 기운이 수직으로 솟아 일산 신도시가 끊임없이 번영함을 의미한다.

    일산문화공원 표지판 이미지
    일산문화공원 표지판

    그리고 건설기념탑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오면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원래는 호수공원 내 고양 600년 기념관 앞에 있었으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2016년 일산 문화공원으로 이전했다. 그 밖에도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벤치와 가로수가 있고, 중앙의 넓은 광장을 지나 북쪽 끝에는 고양독립운동기념탑이 서있다.


    고양시는 일본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곳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애국선열들의 위업을 기리고자 일산문화공원에 ‘고양독립운동기념탑’을 건립했다. 31m 높이의 기념탑은 3.1 독립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2018년 8월에 세웠다. 이처럼 일산 문화공원은 언제든 찾아와 쉬고, 보고,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고양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위치가 좋고 유동인구가 많아 만남의 장소로도 애용된다. 호수공원이 일산의 자랑이라면, 문화공원은 사랑이다. 

  • 제주 도심 속에 위치한 명품 힐링 공간 한라수목원

    제주에 살면 늘 바다를 보며 살 것 같지만, 노형동이나 시내로 들어서면 여느 대도시 못지않게 많은 편의시설과 자동차들로 오염된 환경을 접하곤 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까지 팍팍해질 때 찾는 곳이 바로 한라수목원이다.

    한라수목원은 제주의 복잡한 도심 노형동에 위치하여 공항에서도 가깝고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다. 한라수목원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걷고 있노라면 쉼과 건강을 얻을 수 있고 어느새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느낌이 든다.

    넓은 주차장이 있고, 한라수목원 입구까지 가는 길이 꽤 먼 편이지만 많은 시민들이 차를 이용하지 않고 편안한 복장과 신발 차림으로 걸어간다. 멀리 차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한라수목원은 제주시민들에게 인기만점인 모임장소이다.

     

    한라수목원 산책길 이미지
    한라수목원 산책길


    한라수목원에는 자연생태체험학습관, 교목원, 난 전시실, 삼림욕장, 이끼원, 제주희귀식물전시실, 잔디광장, 죽립원, 화목원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등산, 산책과 더불어 다양한 생태체험을 할 수 있다.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된 한라수목원 구역확장사업이 3년차를 맞이하여 2022년부터는 제주식물자원 체험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니 명품수목원으로서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수선화, 참꽃, 맥문동, 수국 등 사계절 꽃도 볼 수 있으며 광이오름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350여 종류의 다양한 나무를 심어 4계절 변화하는 아름다운 오름을 감상할 수 있다. 힘차게 걸음을 옮겨 땀을 쭉 빼며 오르다보면 광이오름 정상에 다다르고 눈앞에 펼쳐지는 제주시내와 뒤쪽의 한라산 봉우리를 보며 감탄하게 된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바다풍경까지 볼 수 있다. 

     

    한라수목원 나무 이미지
    한라수목원 나무


    힘들면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곳곳에 운동시설에서 굳은 몸을 풀기도 하며, 약수터에서 마른 목을 축이고 내려오면 인간은 자연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사이로 뚫고 들어오는 빛과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에 작은 기쁨이 차오른다. 운이 좋으면 숲에서 노루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다가서는 것은 노루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니 금물! 뱀이 출몰하는 지역이기도 하니 반바지는 비추, 긴바지 착용을 추천한다. 

     

    곧게 뻗은 대나무숲과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잔디광장 등도 사랑받는 곳이다. 덕분에 가족단위의 관광객과 시민들이 보이고, 봄가을엔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서 소풍 나온 아이들도 만날 수 있다. 오며가며 등산객, 관광객들과 말없이 눈인사, 웃음인사를 나누다보면 각박했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산책하며 걷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 할 정도로 숲길하면 한라수목원이지만, 그냥 그런 뻔한 공원이 아니라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발전을 거듭하는 장소이다. 그 때문에 관광객과 제주시민에게 사랑받는지도 모른다. 생명이 살아 숨쉬는 한라수목원에서 4계절 변화하는 자연을 감상하고, 땀흘리며 맞는 신선하고 시원한 바람도 느껴보자. 

  • 시비(詩碑)가 많은 용두근린공원

    나는 우리 동네 토박이다. 현재 이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 지금 대형 마트가 있는 곳이 예전에는 시외버스터미널 자리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 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는 예전에 한옥 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용두역 지하철역도 그때는 없었다.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서 아쉬운 것들이 있고, 예전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어서 고마운 곳이 있다. 용두 공원이 그렇다. 

     

    용두근린공원은 용두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확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이전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이곳에 어느 날 마법처럼 아름다운 공원이 생겼다. 마을에 공원이 있는 것이 무슨 큰 자랑인가 하겠지만 마땅한 휴식 시설이 없었던 시절, 공원의 출현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어느 날 짠하고 나타나 푸른 나무와 초록 잔디들이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나를 반겼다. 부름에 응하듯 나는 당연하게 공원을 걸었고 당연하게 잔디밭에 앉아 하늘을 쳐다봤다. 우리 마을에도 드디어 공원이 생겼다.

     

    용두근린공원 시 이미지
    용두근린공원


    누구와 약속하지 않아도 하루가 멀다 하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귀갓길에는 멀더라도 괜히 공원을 돌아 집으로 왔다. 우리 마을에 공원이 있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점점 공원에 가는 횟수가 줄더니 난 공원을 잊어버렸다. 바쁜 생활로 인해 공원을 찾을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마트를 가더라도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 눈길조차 줄 생각을 못했다. 추석 명절에 어르신들이 화사한 옷차림으로 동네를 지나다니시면 오늘 공원에서 누가 공연을 했었나 보다 했고, 모자 쓴 직장인들이 우르르 지나가면 오늘 공원에서 행사가 있었구나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찬바람이 불자 나는 더 추워지기 전에 가을밤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어 무작정 집을 나섰다. 언제나 그렇듯 공원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큰 기대 없이 그때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 생각했는데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시비(詩碑)를 발견했다. 

     

    흔들리는 꽃 -도종환- 

     

    흔들리잖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면서 꽃망울 고이

    고이 맺었나니

    흔들리잖고 피는 사랑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서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비바람 속에 피었나니

    비바람 속에 줄기를 곧게

    곧게 세웠나니 

    빗물 속에서 꽃망울 고이

    고이 맺었나니

    젖지 않고서 피는 사랑

    어디 있으랴.

     

    흔들리잖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서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시를 잊고 살던 내게 산책길에서 만난 시 한 구절이 유행가처럼 입가에 맴돌았다. 단지 잊었던 것은 시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이 많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웃음 한 조각, 친구들과의 전화 한 통화, 가끔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 이 모든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가을 산책길에서 만난 시 한 점이 나의 반성을 이끌어 내던 순간 또 다른 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용두근린공원 시 이미지
    용두근린공원 시

     

    이렇게 또 다른 시를 웅얼거리며 몇 걸음을 걷는데 박경리 시인의 '사마천', 이상교 시인의 '빗방울의 발', 하청호 시인의 '어머니의 등' 시비(詩碑)들이 가을 달빛에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전에 다닐 때는 보지 못했었는데.. 최근에 생겼을 수도 있고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공원은 이렇게 나를 다시 위로해주었다는 것이다. 잰 척하지 않고 묵묵히, 언제나 그랬듯이. 내일이 되면 일상생활에서 공원을 또 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난 또 공원을 찾을 것이고 공원은 나를 위로해 줄 것이다. 이 시들과 함께. 시비(詩碑)가 많은 우리 동네 공원이 너무나 좋다. 

  • 강남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삼성 배수지 공원

    강남구 삼성동에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강남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공원이 있다. 경기고 사거리에서 아이파크 아파트 후문으로 가다 보면 가파른 언덕이 보이는데, 그 언덕길로 계속 직진하면 일방통행도로에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에 봉은초등학교 후문이 보이고, 열 걸음 쯤 더 올라가면 ‘애견 동반 금지’라고 못 박은, 풍파에 조금은 흐릿해진 플래카드 옆에 '삼성배수지'라는 궁서체가 쓰여 있다. 이곳이 공원의 입구이다. 

     

    배수지공원 풍경 이미지
    배수지공원 풍경


    강남수도사업소에서 관할하는 삼성 배수지는 1977년 한강과 삼성동에 인접한 나지막이 솟은 구릉 위에 세워졌다. 삼성동, 청담동, 논현동 일대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배수지 상단부에 조성된 이 공원은 삼성동 마을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산책 코스이며 한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뛰어난 전망, 아름다운 들꽃 등을 볼 수 있어 편안한 휴식 공간이다. 다만 배수지의 청결을 위해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어 반려인 입장에선 아쉬운 점이 있다. 

     

    삼성 배수지 공원은 자그마한 공원이지만 봉은 초등학교와 봉은 중학교에 인접해 있고 주변에 어린이집도 있어서 어린 학생들이 종종 놀러와 자연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일출을 맞이하는 마을 사람들의 명소이기도 해서 매해 1월 1일은 작은 공원이 사람들로 꽉 차 발디딜 틈이 없다. 사방으로 뚫린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하늘은 일출뿐 아니라 일몰을 감상하기에도 이만한 장소가 없다. 사방이 형형색색 붉은빛으로 물들어 도시를 삼킬 듯 하다가 해가 서쪽으로 깜박 자취를 감추면 형용하기 힘든 아름다운 도시의 불빛이 몰려든다. 삼성배수지 공원의 백미는 여기에 있다. 어두운 밤 가로등 불빛만을 보며 공원 언덕에 오르다 평지를 만나게 되는 도시 불빛의 불야성에 반한다. 


    가장 잘 보이는 초록빛의 청담대교, 주광등 불빛의 잠실대교, 가까이 퇴근길에 열지어선 올림픽대로 전조등과 후미등의 불빛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동쪽 하늘엔 잠실주경기장의 오륜기 불빛이 예쁘고 멀리 있지만 트로피 모양의 우뚝 솟은 롯데월드타워는 간간이 빌딩 조명쇼를 하기도 한다. 시원하게 뻗은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배수지공원 전망 이미지
    배수지공원 전망

     

    얼마 전에 배수지공원에 있는데 잠실구장의 함성소리와 불꽃놀이를 보고 한국시리즈 우승이 두산인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배수지 공원의 넓은 시야 덕이다. 나도 이 동네에 살면서 일주일에 4번은 가는 곳이며, 공원이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주민 중의 한분이 일주일에 한 번은 쓰레기 봉투를 치우신다고 들었다. 


    이 동네에서 50년을 사셨다는 신사분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배수지 공원의 지리적 위치를 설명하셨다. 한강이 유유히 흐르다 머무는 자리에 모래사장이 있는데, 그 위에 작은 뒷동산 같은 이 공원이 있어서 풍수적 관점에서 보면 물이 머물고 산이 솟아 모든 것이 회전하다가 들어오는 재물운이 기가 막힌 자리란다. 그래서 배수지 공원 주변에는 부자들이 많다는 주장을 하셨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풍수지리는 모르겠지만, 탁 트인 서울의 야경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 성남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 희망대공원

    성남에 1년 이상 살아온 사람, 특히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거의 다 알만한 희망대공원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에 있다. 성남이 시로 승격한 직후 시민의 보건, 휴양 및 정서생활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놀이시설을 갖춘 공원으로 1970년대에 조성되었다. 한때 인근 초등학교의 소풍 장소로 애용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도서관과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성남시민들의 숨겨진 우리동네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1983년 공원 내에 경기도립성남도서관이 설립되었고, 1990년대에 들어 지역 주민들의 공원 이용도가 높아지면서 공연장, 분수대, 놀이터 등을 새롭게 설치했다. 책을 읽기 좋은 도서관과 아이들과 함께, 혹은 홀로 걷기 좋은 산책로는 신흥동 시민들이 수십년 간 사랑해온 장소이다.

     

    희망대공원은 성남시의 도심 중앙 해발고도 133m의 독립 구릉 산지에 자리잡고 있어 활기차고 의욕 넘치는 성남시의 발전상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시 발전의 역사와 함께한 공원의 모습은 시민헌장비와 더불어 겸허한 시민상을 되새기게 하는 공간이다.(향토문화전자대전)

    희망대공원 산책로 이미지
    희망대공원 산책로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산책로는 걷기에 그만이고 산지 안에 자리잡고 있어 안락한 느낌마저 든다.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성남시민들은 희망대공원으로 봄나들이 오며 “군항제, 여의도 갈 필요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여름엔 초록이 무성하고 가을엔 단풍과 낙엽으로 옷을 바꿔 입는다. 


    또 군데군데 오를 수 있는 계단과 편안하고 완만하게 올라갈 수 있는 평지길, 쉴 수 있는 벤치와 화장실, 용수대, 체육시설 등으로 인해 동네 시민들이 편안하게 찾기 쉽다. 어르신들이 중간중간 바둑, 장기를 두고, 중앙 광장에서 아이들이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며 노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여름엔 분수쇼가 펼쳐져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즐기고 애정하는 곳이다. 

     

    계단이나 비탈길을 통해 희망대공원 정상에 오르면 성남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정상 중앙에는 팔각정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옆으로는 건강을 위한 여러 시설들이 있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하기에도 좋다. 또 농구 코트와 축구장, 배드민턴장, 어린이 놀이터, 야외공연장도 있어서 아이들, 젊은친구들이 즐기기에도 좋고 조경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서 신흥동 주민들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으레 “희망대공원이나 올라가 볼까?” 한다. 

     

    희망대공원 광장 이미지
    희망대공원 광장

    여름이 되면 최고로 시끌벅적한 곳은 뭐니뭐니해도 희망대공원 물놀이장이다. 희망대공원 물놀이장은 여러 지역에서 아이들과 가족들이 원정 올 정도로 인기가 좋고 입소문이 나있는 곳이다. 뜨거운 태양아래 잘 갖춰진 시설과 깨끗한 물이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여름 내내 오전을 지나가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이는 곳이다. 


    청명한 날씨의 낮에 보는 전경도 좋지만 희망대공원은 야경을 즐기기에도 흘륭한 장소이다. 그래서 여름엔 텐트를 치거나 돗자리를 깔고 밤을 즐기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고성방가나 위험한 행동은 금물이다. 이곳은 성남시민들이 바쁜 일상 가운데 자연과 함께 힐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희망대공원은 도시 중심에 위치하여 활기 넘치는 시가지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서관과 청소년 수련관 또 각종 시설이 연접하여 문화와 학습, 휴식까지 연계해 나가며 성남시민들에게 쾌적한 정서를 제공하고 있는 장소이다. 또 2007년에는 희망대공원 남쪽에 있던 성남산업단지 제1공단이 철거되면서 시민사회단체가 희망대공원과 연계한 도심공원화를 추진하고 있어서 더욱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 문화, 역사, 힐링, 건강이 한곳에 모인 남선공원

    남선공원은 대전의 둔산지구 번화가 지역에 위치한 도심 생태공원으로 대전광역시 서구 남선로 66에 위치하고 있다. 그야말로 복잡한 도심 속에 오아시스처럼 떡 하니 자연을 선물해 준다. 

     

    남선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여러 곳이다. 그 중 집에서 가까운 대전 서구 노인복지과 쪽으로 올라가본다. 꽤 높은 계단을 올라가니 명학소 기념탑이 나온다. 탑이 제법 높아  고개를 한참 들고 봐야 한다. 

     

    탑에는 명학소(망이.망소이) 민중봉기 기념탑이라고 쓰여 있다. 학교 다닐 때 역사책에서 망이. 망소이의 난을 배운 적이 있는데, 망이.망소이의 난은 고려 명종 때 무신들의 집권 하에 수탈과 횡포가 심해지자 항거하여 일어났던 민중봉기다. 농민운동, 또는 천민 해방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전근대 사회 민중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높은 탑 밑에는 커다란 칼을 든 민중들의 동상도 있다. 

    아이들과 같이 가서 설명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면서 역사의 한 장면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탑 밑에 명학소민의 봉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있으니 같이 읽어보면 역사 공부도 될 것 같다. 

     

    명학소 기념비 이미지
    명학소 기념비


    명학소 기념탑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이어진다. 운동기구, 어린이 놀이기구도 보인다. 약간의 쌀쌀함이 느껴지는 늦가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어디 태권도 학원에서 나왔는지 도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줄지어 달리기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다지 높지 않은 능선이지만 충분히 숲이 주는 상쾌함이 느껴진다. 밑으로 보이는 도심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숲의 향기가 짙다. 이렇게 도심과 가까운 곳에 이런 생태 공원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다. 

     

    공원에는 공연장도 마련되어 있어 봄, 가을에 주민이 참여하는 축제가 열린다. 주민들이 제각각 특기를 선보이고, 문학 작가들을 초대해 이야기도 듣는다고 한다. 

     

    남선공원 안에는 도산서원이 있다. 명학소 민중봉기가 고려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도산서원은 조선의 역사를 보여준다. 도산서원은 유생들의 강당과 숙소로 쓰이며 지역과 국가의 인재를 배출해냈다.

     

    자, 이제 공원에서 나와 남선공원 종합체육관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남선공원 안에 있는 체육관은 옥상에 인조 잔디 축구장, 실내에 사계절 빙상장, 파도풀장 및 헬스장, 스쿼시장 등 다양한 운동시설이 있어 많은 시민들의 체력 증진 및 여가선용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빙상계의 월드스타 배기태 선수를 영입하여 우리 빙상 꿈나무들을 세계적인 선수로 육성하는데 힘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계절 빙상장은 여름에 꼭 한번 이용해 보시라 추천드리고 싶다.

    만약 대전에 온다면 자연 속에서 마음의 힐링과 함께 몸의 건강도 챙기고, 문화생활과 역사체험까지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남선공원에 들러 보는 것도 좋겠다. 

  • 바쁜 일상의 쉼표, 대전 갈마공원

    요즘 캠핑이 유행하는 것은 삭막한 도심에서만 생활하니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 자연 속에서 힐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런데 일부러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원이 우리 동네에 있어서 다행이다. 

    갈마공원은 대전광역시 갈마동 820번지에 위치한 근린공원으로, 지하철 갈마역 1,2번 출구로 나오면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공원 안에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이라는 체육시설을 비롯해 광장, 운동시설,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다.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은 스포츠센터로, 88올림픽 대회의 성공을 후대에 전승기념하기 위하여 1991년에 건립되었다. 체육, 문화, 예술 등 다목적 복합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수영, 헬스, 어린이 태권도 교실, 회화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의 나이가 얼추 30년 가까이 되니 갈마공원의 나이도 꽤 되었다. 그래서인지 공원 숲 속의 나무들이 울창하다. 

     

    번화한 도심에서 걸어서 5분. 공원입구에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 건물이 보인다. 건물을 지나  공원으로 진입하니 향긋하고 상쾌한 숲 냄새가 머리를 맑게 깨워준다. 지금은 늦가을이라 단풍이 반 정도 남아있는데, 사각사각 밟히는 낙엽 소리도 귀를 즐겁게 한다. 공원은 사계절 내내 계절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봄이면 이팝꽃, 튤립을 비롯한 갖가지 야생화. 초여름의 아카시아 냄새, 여름날의 짙푸른 녹음,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눈꽃 등 자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움을 선사한다. 

    산책로를 따라 계단을 타고 숲 위에까지 한바퀴 돌면 가볍게 운동 했구나 느낄 정도의 적당한 규모이다. 산책로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있고, 가볍게 운동할 수 있는 기구들도 설치되어 있다. 꼭 산책로 끝까지 걷지 않더라도 벤치에 앉아 새소리를 벗삼아 차 한 잔 해도 좋을 것 같다.

     

    갈마공원 올림픽기념관 이미지
    갈마공원 올림픽기념관


    공휴일에는 강습을 끊지 않아도 1일권으로 국민생활관의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수영을 끝내고 공원에 들러 자연과 함께 휴식하다 돌아가면 완벽한 휴일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공원에서 가끔 문화 축제나 벼룩시장도 열린다. 우연히 공원에 들렀다가 그런 행사를 만나게 된다면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원의 월평동쪽 끝자락에는 월평도서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2019년 12월 개관이라는데, 아름다운 외형만큼 내부도 기대된다. 도서관이 개관하면 갈마공원의 매력이 또 하나 추가될 듯하다. 

     

    산책을 마치고 숲에서 나오면 넓은 광장에서 남학생 몇몇이 축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주변으로 게이트볼장도 있고, 화장실도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햇살이 따뜻했던 늦가을날의 산책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잠깐의 휴식이 일상에 에너지를 준다. 복잡한 일상 속에서의 쉼표 같은 우리 동네 갈마공원이 있어 좋다. 

  • 대한민국 공군의 요람에서 시민의 휴식처로 변신한 보라매 공원

    보라매 공원에 대한 첫인상

    2007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자리를 잡은 곳이 관악구 신림역 부근에 어느 고시원이었다. 답답한 고시원을 벗어나 넓고 조용하고 탁 트인 공간이 찾기 위해 인터넷 지도를 뒤지다 ‘보라매 공원’을 알게 되었다. 보라매라니! 설마 공군의 상징 보라매? 

    공군 출신이던 내가 호기심을 가지고 달려간 보라매 공원을 처음 봤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지금은 보라매공원보다 큰 공원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 지방에서 처음 올라온 나에게 보라매 공원의 크기는 “역시 서울은 공원도 달라”하고 느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였다. 게다가 예상대로 보라매라는 명칭이 공군의 그 보라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왠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후 고시원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신림역 주변에서 살면서 일주일에 최소 1번은 보라매공원을 찾고 있다. 


    보라매공원

     

    보라매공원의 역사

    보라매 공원이 있는 동작구 신대방동은 원래 공군사관학교가 있었던 자리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군사관학교는 1949년 6월 김포공군기지에서 1기 사관생도를 받으면서 출범하였고 6.25가 발발하자 경남 진해로 이전했다가 1958년 12월 이곳 동작구 신대방동(당시 대방동)으로 이전했다. 이후 27년간 이곳에서 전문 공군 장교를 배출하다가 1986년 전두환 정부가 부지를 매입하면서 공군사관학교는 청주로 이전하게 되고 당해 5월 5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공군의 상징인 ‘보라매 공원’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공군사관학교가 청주로 내려간 지 30년이 넘었지만 이 곳 보라매 공원에는 아직 옛 공군사관학교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보라매공원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조깅트랙과 그 사이 잔디밭은 공군사관학교 연병장과 단상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보라매 청소년 수련관은 본부중대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고, 보라매 독서실 건물 역시 군 성당 건물이며 야외 휴식터에 성당 모자이크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보라매 공원의 현재

    보라매 공원은 서울 서남권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총면적이 424,106㎡에 달한다. 공식적인 행정구역은 동작구지만 관악구와 걸쳐있고 영등포구, 동작구와도 가깝다. 게다가 2호선 신림역, 신대방역, 7호선 신대방 삼거리역, 보라매역과 가깝고 시내버스, 마을버스도 많아서 교통이 무척 편리하다.

    운동시설은 조깅트랙, 인조잔디축구장, 일반 운동장,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인공암벽 등반장, 게이트볼장, 농구장, 인라인스케이트장, X-GAME장, 지압보도, 헬스시설 등이 공원 곳곳에 포진되어 있고 일부 시설은 미리 예약을 하면 사용할 수 있다. 

    조경시설로는 조깅트랙 안쪽으로 잔디마당이 있고 연못, 절쭉동산, 무궁화동산 등이 있는데 가장 있기 있는 곳은 동문 입구 쪽의 농촌체험장이다. 작은 과수원은 물론 논밭이 조성되어 있어 가을에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벼가 무르익는 진기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시설로는 놀이터를 비롯해 하계 때만 운영되는 바닥분수, 물놀이형 수경시설이 있으며, 에어파크에는 실제 퇴역한 대한민국 공군 비행기들이 전시되어 있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교양시설로는 시립보라매청소년센터, 독서실, 보라매 안전체험관, 구민회관이 들어서 있으며 특히 청소년센터 건물 안에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당구대, 탁구대가 있어 경쟁이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또한 청소년이 직접 음료를 만들고 운영하고 카페 ‘달다’에서는 수익금 전체를 청소년 문화사업에 재투자한다.

    참고로 2020년 현재 보라매공원 곳곳에 신림선 경전철 공사로 농구장, X-game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농촌체험장 등 일부가 폐쇄된 상태라 공사완료 예정인 2022년 이후에야 본래의 완전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보라매 공원 산책길 이미지
    보라매 공원 산책길

     

    보라매 공원의 소소한 재미들

    내가 느끼는 보라매공원의 장점은 최적의 벚꽃놀이, 단풍놀이 장소라는 점이다. 더울 때는 (지정된 장소에서) 텐트를 치고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멋진 음악분수도 가동된다.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이 있기에 지정된 테이블과 벤치에 지인들과 모여 맥주 마시기도 좋다. 자정이 지나면 노래와 연주를 연습하는 젊은이들의 버스킹 공연이 벌어져 뜻하지 않은 귀호강도 누릴 수 있다. 새벽에는 아침운동댄스를 하러 나온 아줌마들 백여 명이 레크레이션 강사의 지시에 맞춰 특유의 흥으로 칼군무를 하는 진귀한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또한 공원 구석구석에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위한 추모비, 기림비, 동상들이 세워져 있어 보물찾기 하듯 찾아보는 것도 보라매 공원을 즐기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 퇴직한 군용기들의 전시장, 보라매공원 에어파크

    어린 시절의 꿈, 공군 파일럿

    초등학교 시절, 대관령에서 만난 전투기를 잊지 못한다. 하늘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쌍발(엔진이 2개) 전투기 두 대가 저공 비행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머리 위를 지나갔다. 가슴이 쿵쿵 뛰던 그 순간부터 공군 파일럿이 되기로 마음 먹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서 시력이 크게 떨어지고, 항공관련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학과 물리 점수가 낮았던 관계로 꿈은 꿈으로 묻어뒀다. 하지만 여전히 비행기를 보면 그 시절의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서 군대도 공군을 지원했다. 서산에서 F-16을 직접 보고, C-130 수송기를 타보고, 그렇게나 좋아했던 F-4팬텀II를 직접 보고 감격했다. 

     

    보라매공원 에어파크 이미지
    보라매공원 에어파크


    에어파크에서 유년시절의 추억을 만나다

    보라매 공원에 드나든지 6개월, 트랙과 운동장 쪽에서 산책하면서 운동만 하던 어느 날, 보라매 공원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보려고 둘러보다가 북쪽 지역에서 에어파크를 발견했다. 에어파크는 공군에서 퇴역한 비행기들의 야외전시장이다. 에어파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비행기가 전투기 F-4팬텀II다. 팬텀, 즉 도깨비라는 애칭답게 통통하고 독특한 외모를 지닌 전투기인데 나이 드신 분들은 이 전투기를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고 기억하시는 분이 많다. 


    박정희 정권 당시 국군이 월남전에 파병되고 군사적 공백이 생기고 북한 해군에 의해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이 발생하면서 안보위기가 발생하자 미국은 파격적으로 우방국 중에 제일 먼저 대한민국에게만 F-4패텀II를 제공한다. 사실 미국은 현재까지도 자국 군대의 전투력 유지를 위해 우방국이라도 최신무기는 공유하지 않는데, 특별히 대한민국에게 F-4팬텀II를 제공했던 것이다. 물론 새 전투기가 아니라 월남전에 참전해 총알 자국이 박힌 중고품이었지만 이후 잠깐 동안 대한민국은 북한은 물론 중국, 일본을 넘어서는 동북아 최강의 공군전력을 보유하게 된다.

     

    전시된 F-4팬텀II는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으며, 조종석 안쪽까지 볼 수 있는 계단 난간도 설치되어 있다. 에어파크에는 F-4팬텀II 외에도 6.25 때 맹활약한 F-86세이버, 대한민국이 최초로 조립 생산한 전투기 ‘제공호’의 모태가 된 F-5B프리덤파이터, O-2A스카이마스터, T-37C트윗, T-33A슈팅스타, C-123K 수송기와 UH-1B 헬리콥터도 전시되어 있다.


    보라매공원 에어파크

     

    에어파크만이 가지는 매력

    에어파크에선 전투기들을 실물로 볼 수 있다는 점 외에 장점이 많다. 에어파크가 있는 곳은 보라매 공원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한 지역이다. 조깅트랙이나 공원지역은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에어파크 지역은 사람이 있어도 조용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특히 야간에 조용해서 한적하게 둘러보기에 좋다. 게다가 5월 5일 어린이날, 10월 1일 국군의 날 같은 특별한 날에는 비행기의 조종석 캐노피를 열어 비행기 조종석에 직접 타 볼 수 있는 기회도 준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최근까지 비둘기들이 비행기 틈에 둥지를 틀어 배설물이 흘러내려 기체 도색도 벗겨지고 여름에는 악취가 심했는데 최근 비행기 구멍들을 다 막고 날개 위에도 쇠침을 박아 비둘기들이 사라져 깨끗해졌다. 보라매공원을 잘 아는 사람이라도 북쪽에 숨겨진 듯 위치해 있는 에어파크는 모를 수 있다. 방문해서 공군에서도 잘 보기 힘든 다양한 전투기를 구경하고, 아이들에게 공군의 꿈을 심어주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 기사님 영일대 가주세요?! 영일대 호수와 영일대 해수욕장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은 포항시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해수욕장이 아닐까 싶다. 더운 여름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해변에 앉아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음식을 나눠먹기도 한다.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반려견과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게다가 많은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어 ‘불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번화가이다. 밤이면 거리에 버스킹 공연을 하는 사람과 즐기러 모여드는 사람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영일대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왼쪽에는 환호공원이 오른쪽에는 포스코가 있다. 어린시절 친구들 사이에선 포스코 공장 폐수가 흘러나온다는 루머가 돌아 바닷물이 더러울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 어느 곳보다 깨끗한 해수욕장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철강 산업을 주축으로 성장해온 포항이 새로운 도약을 위해 관광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내세우며 영일대 해수욕장을 포항의 랜드마크로 양성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근거로 영일대에 국내 유일의 해상누각을 짓고 포항의 랜드마크로 대대적인 홍보를 했으며 그 주위에 장미정원을 꾸미고, 해변마라톤 등의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여름에는 포항의 가장 큰 축제인 국제 불빛축제도 형산강변과 이곳을 무대로 펼쳐진다. 모래사장에는 모래로 커다란 썰매장을 만들어 방문객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모래로 예술품을 만드는 샌드아트도 볼 수 있다.

    영일대 호수공원 이미지
    영일대 호수공원

    포항 시민들에게는 영일대 해수욕장이 ‘북부 해수욕장’으로 더욱 친숙하다. 북부 해수욕장은 영일대 해수욕장의 이전 이름이다. 오랜 시간 이곳은 북부 해수욕장으로 불렸는데, 많은 해수욕장들이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북부’는 행정지명이기 때문에 이곳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새롭게 이름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근처에 ‘북부 시장’이었던 수산시장을 영일대 시장으로 정비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포항에는 점점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데, 문제는 포항에는 영일대라는 또다른 명소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관광객이 터미널에 내려서 택시를 잡아타서 기사님께 “영일대 가주세요!”하면 기사님이 영일대 해수욕장이 아닌 영일대 호수공원으로 가신다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영일대 해수욕장은 오랜 시간 북부 해수욕장으로 불렸으며, 영일대 호수공원에 있는 영일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있던 오래된 호텔이다. 영일대 호수공원은 벚꽃과 개나리가 예쁘게 피고, 주변에 둘레길까지 정비가 잘 되어있어 포항시민들이 즐겨찾는 휴식공간이기에 외부에서 관광객이 오더라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관광지이다. 그래서 기사님이 오해할만 하다는 것이다.

     

    영일대 호수공원은 단순히 호수공원과 둘레길 뿐만 아니라 포항 공과 대학 캠퍼스와 포스코 사택단지, 스틸하우스 단지와 어우러져 있어서 동네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원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호수 주변에 자리를 깔고 앉아 피크닉을 즐기고, 꽃이 필 때는 꽃구경을 온다. 특히나 이곳은 벚꽃 명소로 유명하다. 호주 주변으로 커다란 벚꽃 나무들이 있고, 도로에도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동네는 큰 도로에서 떨어져있어 주변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둘레길에는 이름모를 새들이 많고 호수 주변에는 오리가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마치 런던의 하이드파크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비슷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영일대 해수욕장 이미지
    영일대 해수욕장

    이른바 지곡동으로 불리는 이곳은 포스코 건립 초창기에 직원의 정착성을 높이기 위해 사원주택단지를 형성했고 사원복지를 위한 여러 투자를 한 결과 동네 안에 여러 편리한 시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효자 아트홀이 손꼽히는데, 이곳 주민 뿐 아니라 포항 시민 전체에게 열린 공간이라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한다. 거의 매주 영화 상영을 비롯하여, 발레, 클래식음악 등의 공연이 있다. 특히나 극장 상영작 혹은 가장 최근에 인기있었던 영화를 상영해주는데, 효자아트홀의 모든 공연은 무료라 객석이 가득 찬다. 


    시작은 포스코 사원을 위한 장소였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모든 포항시민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포항 시민의 문화적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는 곳이다. 이처럼 영일대 호수공원 일대는 포항 시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여가를 보내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혹시나 영일대 해수욕장이 아닌 이곳으로 잘못 찾아온 관광객이 있다면, 이곳도 충분히 즐길만한 공간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 레고 어린이정원이 있는 남양주 삼패 한강 공원

    남양주 삼패 한강공원은 주민들이 쉽게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공원이다. 삼패 야구장부터 인라인장, 풋살구장, 자전거 공원 등의 운동 시설이 갖춰져 있고 음악 분수와 레고 어린이 정원, 공연장에서 다양하게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무료 주차장과 프리 와이파이도 제공하고 있다.

    공원 안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을 수 있으나 지정된 공간과 시간이 정해져 있어 이를 꼭 지켜야 한다. 애견 동반이 가능해 가족뿐만 아니라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많다.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개똥 수거 등의 기본적인 에티켓은 지켜야 한다. 야영이나 취사는 금지된다.

     

    여름,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은 종종 삼패 한강 공원에 방문한다. 이유는 ‘음악 분수’와 ‘물놀이 시설’이 공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음악 분수는 하절기(4월~10월)에만 가동하는데, 주중 1회 주말 1회 운영된다. 음악 소리에 따라 가지각색의 색깔을 띠는 음악 분수는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보면 여름밤의 낭만을 극대화한다. 물놀이장 또한 운영되고 있지만, 공간이 작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이용하기에 좋다. 

     

    남양주 한강공원 자전거길 이미지
    남양주 한강공원 자전거길

    남양주 한강 공원의 가장 큰 명물을 꼽아보라면, 아마 대부분 ‘레고 어린이 정원’이라고 답할 것이다. 레고 어린이 정원은 대형 레고들로 꾸며진 공원으로 멀리서도 눈에 띤다. 어린이 정원이라는 이름답게 어린 아이들에게 익숙한 레고를 배치하여 공원을 조성하였다. 

    그렇다고 레고 어린이 정원이 꼭 어린 아이들에게만 사용이 국한된 것은 아니다. 10대와 20대들 사이에선 이 공간이 사진 핫 스팟으로 떠오르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더불어 한강 공원에는 레고를 이은 사진 스팟이 있는데, 바로 한강 앞에 있는 꽃밭이다. 이곳에는 수레국화나 금계국, 해바라기 등 여러 꽃들이 계절에 맞게 피고 진다. 멀리 코스모스 축제, 벚꽃 축제를 가지 않아도 삼패 공원에서 다양한 종류의 꽃들을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수레국화를 따라 걷다 보면 자작나무 길이 나와, 자작나무 숲에서 색다른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또한 남양주 삼패 공원에서 운영되는 특별한 행사가 있다. 바로 ‘점프벼룩시장’이다. 점프벼룩시장은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4시까지 열리는 행사로 여러 물품을 판매 및 교환한다. 본인 판매 금액의 10% 이상을 자율 기부 할 수 있다. 또한 각종 문화 공연과 체험 부스가 있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남양주 한강공원 꽃밭 이미지
    남양주 한강공원 꽃밭


    남양주 삼패 한강 공원은 남양주 시민들과 덕소 시민들에게 이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공원에 가면, 아침과 저녁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아침에는 각종 운동 시설과, 자전거 길에서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에는 한강 앞 환하게 펼쳐진 야경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남양주 삼패 공원을 더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시원한 분수가 멋있는 평택 이충분수공원

    나의 고등학교 시절 추억의 5할 정도는 이충분수공원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 학교에서 분수공원은 10분 거리에 있었고, 친한 친구의 집이 공원 바로 앞에 있었다. 그래서 야간 자습 시간이 끝난 뒤, 심심하면 분수공원에 갔다. 불 켜진 아름다운 분수공원에서 친구와 진솔한 고민을 나눈 적도 있고, 남지친구와 손잡고 걸은 적도 있다. 지친 날에는 우리만의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노래를 틀며 치킨을 먹었다. 가만히 누워서 공원의 풍경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공원에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 데이트하러 온 사람, 운동하러 온 사람, 아이와 함께 온 가족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분수공원에 얽혀있는 다채로운 추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택 이충분수공원 이미지
    평택 이충분수공원

    이충분수공원은 분수공원이라는 이름답게 매해 4~9월에 매일 2번 분수를 가동한다.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분수에 들어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옷이 다 젖어도, 사람들이 많아도, 시끄러워도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물을 맞으면 더운 여름이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들어가지 못 할 때에는 가만히 움직이는 분수를 봤다. 시원한 분수를 보고 함께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면 모든 걱정이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분수공원에서는 다양한 행사도 진행했다. 정기적인 행사만 해도 여러 개이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매년 8월에 개최하는 평택 전국밴드경연대회다. 이 행사는 이틀 간 열리는 아마추어 락 밴드대회로 매해 경연이 끝난 뒤 유명한 초대가수가 나와 노래를 불렀다. 고등학교 때는 행사 라인업이 뜨는 순간부터 두근두근했다. 페스티벌 당일 날에는 송탄에 그렇게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몰려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든 비집고 서서 보는 공연은 멋있었고 정말 신났다. 나는 2015년 공연이 다 끝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뼈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너무 웃기게도 그 가게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맨날 먹던 뼈해장국인데도 맛있었다. 아직도 나는 그 뼈해장국 맛을 잊지 못한다. 

     

    평택 이충분수공원 정자 이미지
    평택 이충분수공원 정자


    그 외에도 공원에서는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알뜰나눔장터가 열린다. 만약 물건을 판다면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일찍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늦게 가면 맨 구석쪽에 자리를 잡을 수 밖에 없다. 알뜰나눔장터라는 이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중고물품을 판매한다. 그 속에서 가끔 보석 같은 물건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알뜰나눔장터이지만 중고 물품만 판매하지는 않는다. 평택시의 작가가 운영하는 다양한 공예 체험도 할 수 있으며, 공예 물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행사 날에 맞춰 오는 솜사탕, 닭꼬치, 바이킹 등의 트럭은 알뜰장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 트램펄린이 설치된 별밭어린이공원

    별밭어린이공원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학하동에 위치해 있다. 이곳이 별밭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신라 말의 고승이자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 즉 북극성이 떨어진 곳이라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곳을 ‘추성낙지’ 즉 북극성이 떨어진 곳이라 하였다. 또한 학하동은 학이 내려 앉는 형상의 지세를 지닌 곳이라는 뜻이다. 별이 떨어지든 학이 내려앉든 굉장히 좋은 지명을 가졌다. 그래서 학하동은 임진왜란 당시에도 왜군이 침범하지 못한 곳이라고 한다.

     

    별밭어린이공원에 가면 작은 파고라 정자가 보인다. 어린이와 함께 온 부모님들이나, 지역주민들이 와서 쉬기 좋은 공간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도 많은데, 평소에 보지 못하는 신기하고 독특한 놀이기구들이 많다. 그 중에는 바닥에 설치된 트램펄린도 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도 위에 올라가서 덤블링 할 수 있는 놀이기구이다. 

     

    별밭어린이공원 천명각 이미지
    별밭어린이공원 천명각


    공원 뒤편으로 작은 동산이 있는데 그곳이 성전성봉이다. 작은 동산이지만 이 지역의 상징이라 지역 주민들이 1년에 한번,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때로 이 곳에서 작은 음악회도 열린다고 한다. 동산에는 천명각이라는 전각이 있다. 지붕의 정면 2칸과 측면의 2칸 건물이다. 주춧돌에는 신기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처음 이곳은 크고 웅장하게 지어졌고, 건물 바로 뒤에는 반야단이 있었다고 한다. 가장 높은 곳에는 성단이 있는데, 그 중앙에 별모양의 돌이 13개 놓여 있고, 왼쪽에는 천부경이 돌에 새겨져 있다. 천추성이 떨어진 곳이라는 안내 팻말도 있다.

     

    별밭어린이공원의 총 면적은 4,336.2㎡이다. 그 중 녹지 면적이 3,038.9㎡이다. 군데군데 안전벨이 설치되어 있어 밤에 가도 위험하지 않다. 6차선 대로변에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고 전체 놀이터 바닥이 푹신푹신한 재질로 만들어져 아이들이 뛰어놀아도 위험하지 않다. 

  • 환호공원엔 볼거리가 많아

    포항시민을 위한 환호 해맞이 공원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환호공원은 시립 미술관, 분수대, 전통놀이공원, 물의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장소가 있다. 


    첫번째로 ‘둘레길’이라고 하는 등산코스가 있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전망대쪽으로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오르막길인데 경사가 심하지 않아서 맑은 공기를 맡으며 등산을 할 수 있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환호공원 전망대에 갈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환호공원부터 영일대해수욕장까지 360도로 풍경을 볼 수 있다. 산에서부터 바다까지 모든 풍경을 누릴 수 있는 이곳은 입장료가 없다. 그리 높진 않지만 맑은 날 올라가서 포항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포스코가 보이는 환호공원 이미지
    포스코가 보이는 환호공원

    환호공원 안에 있는 포항시립미술관에서는 매 시즌별로 다른 전시가 진행된다. 주제는 포항의 특징이자 문화인 ‘철’이다. 환호공원이라는 주변 환경을 잘 이용하여 환경과 생태, 예술의 창조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곳에서 진행된다. 반세기동안 발전해온 포항의 철강 산업을 문화적, 예술적으로 해석한 곳이 바로 포항시립미술관이다. 미술관 밖의 조형물부터 내부의 전시까지 하나의 맥락이 있고 연결되는 주제를 가진 전시들의 입장료도 무려 공짜이다. 포항시립미술관은 미래 포항의 꿈과 비전을 미술사적으로 해석하고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곳이다. 

     

    환호공원에서 있는 환호어린이 작은 도서관은 작지만 알찬 공간이다. 광장과 프로그램 분수 옆에 위치한 이곳에는 7천권이 넘는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광장에서 자전거나 킥보드를 즐길 수도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부모들은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영일대해수욕장이 보이는 물의 공원은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해수욕장 바다를 따라서 약 20분정도 걸으면 갈 수 있는 곳이다. 물의 공원을 향해 가다보면 ‘물의 공원’을 나타내는 벽화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의 공원은 작지만 공연장과 분수대까지 갖춰져 있는 알찬 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의 공원의 위로 올라가면 영일대해수욕장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장관이다. 이곳이 숨겨진 명소인 이유는 첫 번째로 ‘벚꽃’ 덕분이다. 봄에 이곳을 방문하면 가로수길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은 벚꽃시즌에 아는 사람은 아는 숨겨진 명소가 바로 이곳이다. 바닷바람과 벚꽃의 흩날림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두 번째로는 포항 국제 불빛축제 때 멀리서 산과 바다 그리고 불꽃을 즐길 수 있는 명당이기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영일대해수욕장의 북적임을 벗어나 공원의 높은 곳에서 펼쳐지는 불꽃축제를 만끽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환호공원에서 보는 풍경 이미지
    환호공원에서 보는 풍경

    환호공원에는 벚꽃과 불꽃축제 이외에도 구경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이곳에는 계절에 따라서 라일락, 동백꽃, 철쭉 등 예쁜 꽃들이 줄지어서 핀다. 또한 환호 공원은 물의 공원처럼 여섯 가지 주제의 소공원들이 있다. 중앙공원, 해변 공원, 전통놀이공원, 체육공원, 어린이 공원 마지막으로 물의 공원이 있다. 각각의 주제별로 체험하고 구경할 수 있는 볼거리가 많다. 토끼, 공작, 원숭이, 토끼 등을 볼 수 있는 작은 공원들도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또한 전통놀이 공원에 있는 전통 그네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환호공원은 산과 바다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 포항의 ‘철’을 문화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벤치에 앉아있기만 해도 포항제철소의 경관과 영일대해수욕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곳곳에 숨겨져 있는 포스코의 철강재를 이용한 조형물은 자연과 어우러져 조형미를 뽐내고 있다. 이번 주말 볼거리, 즐길 거리, 쉼거리가 모두 있는 환호공원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 갈라진 길, 이어질 길 DMZ 평화의 길과 생태평화공원

    금강산 가던 길에 조성된 ‘DMZ생태평화공원’

    “어디, 무슨 목적으로 방문하십니까?”

    20여 년 전, 그러니까 지금의 남편 집에 처음 인사 가는 날. 안 그래도 두근 반, 세근 반 하던 마음에 비상등이 요란하게 켜진다. 길을 가다가도 저녁 6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면 태극기가 있는 방향으로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멈춰서야 했던 경직된 교육을 받았던 70년대생이 총대를 멘 군인과 처음 맞닥뜨린 것이다. 접경지역의 첫인상은 그렇게 낯설고 뭔가 두려운 요샛말로 사람을 ‘쫄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들리던 대남대북방송도 차츰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 시댁으로 들어가던 초입을 막던 초소가 없어졌다. 그리고 그 마을에 ‘DMZ생태평화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남방한계선 철책까지 이어지는 탐방로가 생겼다. 철원의 최북단 마을 생창리가 바로 그곳이다. DMZ평화의 길이 전쟁의 역사와 평화의 가치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면, DMZ생태평화공원은 우리에게 보다 잘 알려진 자연과 생태에 집중하고 있다. 


    생태문화공원 전경 이미지
    생태문화공원 전경(사진출처:문화통신)


    생태평화공원의 탐방로는 ‘용양보 탐방로’와 ‘십자탑 탐방로’로 나뉜다. 용양보는 일제강점기에 금강산 전철 교각을 둑으로 활용해 지은 농업용 저수지이다. 용양보를 지나 화강 상류인 남방한계선 통문까지 갈 수 있다. 보로 막은 저수지에는 금강산 가던 전철 교각을 이어서 만든 출렁다리가 있다. 

    성재산의 십자탑 앞에 서면 맞은편 북한 땅의 오성산이 눈에 선연하게 들어온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일상이 되고 생활이 되면 무감각해지게 마련이다. 늘 가깝게 있었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가치 있게 되는 때, DMZ가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DMZ와 예정된 만남이었을까.

     

    남북의 마음을 이어갈 ‘DMZ평화의 길’

    ‘DMZ평화의 길’은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 때 남북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DMZ를 평화지대로 만들자’고 합의한 데 따라 조성되었다. 걷기 코스는 강원 고성과 철원, 경기 파주로 이어지는 DMZ 공간에 만들어지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유엔사와 협의가 늦어지고 안전대책 미흡에 대한 지적이 있어 강원 고성 DMZ의 걷기 코스만 먼저 공개됐다. 


    ‘DMZ평화의 길’ 출발지점은 고성의 통일전망대다. 금강산 관광이 중지된 이후 금강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도 하다. 고성 DMZ평화의 길은 A코스와 B코스가 있다. A코스는 통일전망대에서 약 2.7km 정도 바닷가를 따라 설치된 이중 철책을 따라 걸어야 한다. 일반인에게는 허용되지 않던 철책문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열린다. 철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곧바로 가파른 철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철계단 위에서 바라보는 해안은 쉬웠던 철문처럼 감탄도 쉽다. 


    탐방로 옆 일제가 1937년 자원수탈을 위해 강원 양양역에서 북한 안변역까지 놨던 철길(동해북부선)이 복원되었지만, 2007년 5월 17일 제진역에서 북한의 감호까지 딱 한 번 열차 시험운행을 끝으로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있다. 종착지점은 추진철책선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인 금강통문이다. 금강통문을 나와 고성 민북 지역의 남한 땅 최북단의 전방 관측소인 7170P에 오른다. OP의 야외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구선봉과 해금강과 감호 일대의 경관이 손에 잡힐듯하다. B코스는 차량으로만 이동해 통일 전망대에서 717OP만 들렀다 나온다. 


    생태문화공원 화살고지 입구 이미지
    생태문화공원 화살고지 입구(사진출처:문화통신)


    이어질듯, 이어질 듯, 아직은 먼 길

    6월 1일부터 철원구간의 길이 열렸다. 철원구간은 철책선 통문을 열고 이제껏 민간인에게는 한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화살머리고지까지 들어간다. 철원 구간의 출발 지점은 백마고지 승전탑이다. 두렵고 쫄게 만들던 첫인상은 아마 삶과 죽음으로 양분되는 전쟁과 그 뒤 이념으로 구분되는 적의와 긴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춰졌던 철원의 깊숙한 속내를 드러내려는 순간이 떨림으로 되돌아오는 건 감정 과잉은 아닐 것이다.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약 1.5km, 백마고지 조망대까지 차량으로 이동 후 공작새능선까지 약 3.5km를 걸어서 이동한다.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은 백마고지 전적지를 관통해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66년만에 처음으로 민간에게 공개되는 화살머리 고지의 GP로 가는 통문이 열렸다. 화살머리 고지는 6·25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고지전이 펼쳐졌던 격전지였다.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죽어갔던 전사자들의 유해는 65년 만에 비로소 발굴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놓기 전까지 그곳엔 사람이 이웃하며 살고 있었다. 길이 있었고, 철길이 있었다. 다시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다지고 다지면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는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 하늘과 바람과 별과 허브천문공원

    사람들은 고민이 많을 때 나가서 걷곤 한다. 한창 걷다 보면 고민은 사라지고 오로지 내 눈 앞에 펼쳐진 길과 지면을 딛고 있는 발에만 집중하게 된다.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찾게 되기도 하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기도 한다. 강동구 주민으로서 근심과 걱정을 잠깐이나마 날려버릴 수 있는 곳 한 곳을 추천해주려고 한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산 94번지 일대에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큰 우주를 그린 공간, 허브천문공원이 있다. 길동 생태공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일자산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경사를 따라 올라가면 허브천문공원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는데 화살표를 따라 올라가면 오르막길 위에 허브천문공원 입구가 있다. ‘아니스 히솝’이라는 보라색 허브가 입구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허브천문공원 입구 이미지
    허브천문공원 입구


    입구로 들어가면 오른쪽 방향으로 차례대로 둥글게 가, 나, 다, 라, 마, 바 6개 구역이 나뉘어져 있고, 120여 종의 허브가 심어져 있다. 

    가 구역은 색의 정원이다. 색의 정원에는 이름처럼 색이 예뻐 눈을 즐겁게 해주는 라벤더, 멕시칸세이지, 파인애플세이지, 체리세이지 등이 심어져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보라색, 빨간색, 연보라색 등 다양한 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 또한 매우 좋다고 하니 계절마다 와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나 구역은 감촉정원이다. 스피아민트, 애플민트, 페퍼민트처럼 우리에게 친근한 허브들도 있고, 직접 손으로 만져서 향기와 촉감을 느낄 수 있는 로즈제라늄과 페퍼민트 제라늄도 있다. 특히 로즈제라늄은 모기를 퇴치해주는 향으로 유명하니 여름철에 가서 즐기면 좋을 것 같다.

    다 구역은 향기정원인데 로즈마리와 레몬버베나를 비롯한 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허브들이 모여있다. 로즈마리 특유의 상쾌한 향과 레몬버베나의 상큼한 레몬 향을 맡으면 피곤이 상쾌하게 씻겨 내려갈 것이다.

    라 구역은 차의 정원이다. 차의 정원답게 차로 유명한 캐모마일, 레몬밤, 와일드 스트로베리 등이 있다. 마 구역은 맛의 정원이다. 향신료 등 식용으로 쓰이는 오레가노, 스테비아 등의 허브들이 있다.

    바 구역은 다양한 허브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에키네시아, 벨가못, 자스민 등 허브 113종이 식재되어 있는 견본원이다. 겨울에도 즐길 수 있도록 온실도 있다. 온실 가운데에 향을 즐기며 쉴 수 있도록 테이블도 있으니 기분전환 겸 앉아있다 오는 것도 좋다.

     

    허브천문공원 이야기 이미지
    허브천문공원 이야기


    이쯤되면 ‘허브천문공원’이라는 이름에 의문이 생길 것이다. ‘천문’이란 두 글자는 왜 붙은 것일까? 별이 잘 보이는 곳이라 중간중간에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관천대가 있다. 올라가서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릴 것이다. 전망대가 있어 잠시 앉아 노을 지는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것도 좋다. 밤에는 공원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 282개의 조명이 별자리를 이룬다.

     

    봄에서 가을 사이에 가면 바깥에도 허브가 피어 있어 허브의 색과 향을 더욱 풍요롭게 느낄 수 있다. 겨울에는 평소보단 삭막하지만 겨울산만의 감성과 풍경이 있고 온실이 있으니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세상이 당신을 힘들게 할 때 허브천문공원에 가보자. 허브의 향기가 당신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주고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이 당신에게 자유의 느낌을 줄 것이고, 해질녘 노을이 당신의 감성을 자극할 것이며 땅에서 반짝이는 별자리가 당신의 앞길을 밝혀줄 것이다.

  • 방죽에서 저수지를 거쳐 공원이 된 오창 호수공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 볼 정도로 바뀐 것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이다. 오창호수공원은 이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다. 내가 태어나 스무 살까지 자란 곳이고 외할머니 댁이 있어 일주일에 한 번은 버스를 타고 가던 곳인데 이제는 예전 모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외할머니댁까지 들어가는 버스가 하루에 몇 번 없는 산골이었다. 버스에 내려서도 10분은 걸어야 갈 수 있었다. 그 산골이 지금은 온데간데없고 수많은 아파트와 상가들만이 있다.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들은 ‘오창, 양청, 호암’같은 명칭들뿐이다. 오창을 떠나 20여 년을 살다가 친정 가는 길에 가본 오창 호수 공원과 호암저수지. 내가 기억하는 호암 저수지는 주변이 모두 논밭이었는데 이제는 도심 속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예전의 호암저수지 이미지
    예전의 호암저수지

    오창 호수공원을 처음 가본 느낌은 ‘깔끔’이었다. 요즘 많은 공원들이 그렇듯이 깔끔하게 지어졌고 잘 관리되고 있었다. 관리가 잘 된다는 것은 화장실을 보면 알 수 있는 법! 호수를 두고 산책로가 있는데 호수 둘레를 한 바퀴 돌면 약 1Km 정도라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다보면 힐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데크로 연결된 길이 있고 그 길의 끝에 가면 호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아이들은 호수에 사는 물고기들에게 물고기밥을 준다. 하나 주의할 점은 물고기 전용 밥을 줘야지 뻥튀기나 일반 과자를 주변 수질이 오염돼 관리가 힘들다고 한다. 과거에 수질 오염 때문에 물을 모두 빼고 갈았던 일이 있다고 하니 주의해야겠다. 공원 안에 있는 광장에는 추억을 남길 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조형물도 마련이 돼 있다. 하트 모양의 포토존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분수를 배경으로, 산책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보면 좋은 추억이 하나하나 쌓인다. 

     

    공원을 둘러보다 오창호수공원의 유래가 적혀 있는 큰 바위를 보았다. 처음에는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만든 방죽이었다가 확장공사를 통해 저수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도심의 호수공원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싶다. 옛것을 잃는다는 건 추억할 일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호수공원의 유래를 열심히 읽고 있는 나의 손을 끌고 아이들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생태놀이터. 공원의 한쪽에는 생태놀이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어린이들의 안전한 이용을 위하여 어린이 놀이시설 설치검사를 완료하였다고 하니 안심하고 이용해도 되겠다.


    왜 생태놀이터인가 했더니 산수국, 조팝나무, 맥문동, 사철나무, 개쉬땅나무, 옥잠화 등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었다. 식물들을 관찰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놀이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나무 움막, 숲 아지트, 나무 건너기, 하늘다리, 미끄럼틀, 둥지 올지, 경사지 오르기, 맨발 체험장 등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반나절 정도 놀기에 알맞은 곳이다. 생태놀이터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근처 주민들을 위한 운동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낮 시간이었는데 할머니, 할어버지들께서 많이 이용하고 계셨다. 일부러 헬스장에 갈 필요 없이 산책도 하고 간단한 운동도 할 수 있으니 주민들의 삶의 행복 지수가 올라가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오창 호수공원 생태놀이터 이미지
    오창 호수공원 생태놀이터

    저녁이 되면 호수공원은 낮 시간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없어지고 주변 건물들과 공원 안의 불빛 덕분에 화려해진다. 낮에는 온통 하양, 투명으로만 보이던 분수도 밤이면 형형색색의 예쁜 옷을 입는다. 보는 즐거움이 더해져서인지 여름이면 근처 주민들이 늦은 시간까지 찾는 장소라고 한다. 호수공원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많기 때문에 근처에 맛집도 여러 곳이 있다. 보는 것만큼이나 먹는 즐거움도 크니 근처 맛집을 미리 검색하고 가면 즐거움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공원은 24시간 개방이고 주차장도 잘 마련되어 있으나 주차 요금은 따로 낼 필요가 없다. 옛 추억이 사라진 아쉬움도 있지만 잘 조성된 오창호수공원을 보니 그 아쉬움이 조금 사라지기는 한다. 과거의 내가 지내던 곳에서 지금은 나의 아이들이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다. 

  • 제주도 빌라촌의 힐링장소 한마음근린공원

    빽빽한 빌라가 가득하고 지금도 비어있는 땅이 안보일 정도로 계속 빌라가 지어지고 있는 곳, 제주시 이도2동은 작은 가게들도 많고, 시끌시끌한 동네이다. 제주종합경기장에서 멀지 않고 제주시청과 정부제주지방합동청사가 포함되어 있는 동네라서 유동인구도 많고 어찌 보면 제주같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 많은 아이들과 주민들이 사는 이유가 하나 있다. 와우! 이런 빽빽한 빌라촌에 이런 오아시스같은 곳이? 싶을 정도로 넓고 어찌보면 이도2동 주민들의 숨겨진 쉼터라고 할 수 있는 곳. ‘한마음근린공원’이다.


    아마도 이도2동 주민들에게 동네 최고의 힐링장소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없이 ‘한마음근린공원’을 말할 것이다. 초록초록하고 쭉쭉 뻗은 긴 나무들이 무성해서 비가 와도 잘 맞지 않을 정도로 숲을 이루고 있고, 멀리 가지 않아도 피톤치드 향을 마음껏 맡을 수 있는 곳, ‘한마음근린공원’은 이도2동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자랑스러워하는 장소이다. 

    이도2동 이미지
    이도2동

    입구가 여러 곳이라 어느 곳에서 들어올 수 있고, 어르신들에게 훌륭한 스포츠인 게이트볼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또 청결한 공용화장실과 식수대, 잘 다듬어진 산책길, 신발 흙 터는 기계, 쉬어가기에 적당한 위치에 놓인 벤치들까지 곳곳이 미소 지어지게 잘 관리되어 있다. 시민들을 위한 운동시설이 다양하게 있어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운동하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배드민턴과 족구를 할 수 있는 네트도 있으며 넓은 공터가 있어 아이들이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기도 한다.


    또 애견을 산책시키는 주민들과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지나가는 이웃들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특히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숲속놀이터에서 꺄르륵 꺄르륵 종일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거대한 미끄럼틀과 그네, 각종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는 이 공원의 놀이터는 언제가도 즐거운 아이들의 최고 놀이장소이다. 


    원래 이곳에는 성인용 운동시설은 설치돼 있었으나, 어린이 놀이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아, 지난 2014년에 사업비 1억9300만원을 투입해 어린이 놀이시설 설치공사를 착공해 놀이시설을 준공했다. 특이하게 거북선 조합 놀이시설 1대, 2인용 시소 1대, 흔들림 놀이시설 4개, 황토칩 탄성포장 279㎡, 수목활용 휴게시설 1식이 갖춰져 있어 ‘한마음근린공원’ 은 가족들이 함께 하는 장소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차량이나 다른 위험한 요소없이 아이들을 풀어놓을 수 있으니 부모 좋고 아이도 좋고. 이 장소에 오면 너나 할것없이 남의 애 구분하지 않고 서로 도와주고 보호해주니 안심하게 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안그랬던 사람도 마음이 넓어지고 풍요로와지는 마법같은 장소이기도 하다. 또 이곳은 비가 오는 날도 비를 막아주는 벤치들 덕분에 운치 있는 공원의 풍경을 즐길 수 있어 비오는 날에도 돗자리를 펴고 소풍하는 가족들을 볼 수 있다.

    한마음근린공원 정구장 이미지
    한마음근린공원 정구장

    이처럼 ‘한마음근린공원’ 은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가족들이 지친 삶을 내려놓고 마음껏 휴식할 수 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좁고 답답한 빌라에 살지라도 이처럼 넓은 정원이 내 집 앞에 있다는 기쁨으로 늘 이곳을 들린다고 하는 분도 있었고, 이런 공원이 있어 아이들과 대화하며 산책하고 뛰어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는 분도 있었다. 주민들의 말을 듣다보니 단순히 여가를 즐기며 내 집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정도가 아니라 이 공원이 치유와 소통의 공간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참 여유롭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각자 쓰레기를 챙겨가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어 이도2동 주민들이 날마다 더욱더 깨끗한 공원으로 지켜나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우리가 숲을 지켜야하는 이유, 한라생태숲

    바다와 오름 등 관광지로 유명한 제주에는 아는 사람만 간다는 비밀의 숲, 유원지가 꽤 많다. 그 중 한라생태숲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 된 광활한 숲으로 산림청 소유 국유지로 196ha에 달하며 5.16도로변 해발 600고지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1970년대 초부터 1995년까지 개인에게 대부돼 마소의 방목지로 사용했던 곳인데 훼손되고 황폐화된 자연을 오랜 시간에 걸쳐 복원하여 숲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죽어있었던 자연도 수년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다시 초록 풀과 나무가 자라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살아있는 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왜 우리가 숲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고 보여주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제주 숲 명소로 많은 가족들의 유원지이자 아이들의 소풍장소로 유명한데 요즘은 SNS를 통해 알음알음 알고 온 젊은친구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한라생태숲 산책로 이미지
    한라생태숲 산책로
     

    한라생태숲의 백미는 잘 다듬어진 자연친화적인 산책로와 제주 식물의 보고에 걸맞는 산림생물 그리고 난대, 온대, 한대 식물 등 다양한 식물상을 조화롭게 설계하여 333종 288천 그루를 생태복원 시킨 숲이다. 또 잘 깔린 데크길을 지나 흙길도 밟아보고 싱그럽고 푸른 나무들 사이를 걷다보면 친절한 이정표들과 앉아서 쉬기에 좋은 벤치가 나오는데 곳곳에 사람을 배려한 흔적들이 가득하여 눈이 정화되는 것 뿐 아니라 마음이 푸근해지고 평안해지는 공간이다. 오름과 달리 유모차를 밀 수 있어서 젊은 엄마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또 아이들을 위해서 주말숲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여 자연을 관찰하고 설명을 듣고, 만들고 놀이해보기도 한다. 


    한라생태숲은 사계절 색다른 맛이 있다. 봄이 되면 오색찬란한 꽃들이 피는 길을 걷고 억새가 하늘하늘 날리는 모습이 일품인 장소가 가만히 앉아 소리를 기울이기도 한다. 또 여름엔 숲 속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새소리가 거닐다가 운 좋으면 만나게 되는 노루와 인사도 한다. 아이들은 올챙이알과 올챙이를 구경하거나 여기저기서 생태숲 체험을 만끽한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아 숲놀이터는 사시사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도시락을 싸와 자리를 펴고 앉은 부모들과 나무, 흙, 노끈 등 자연친화적인 재료들로 만든 놀이터를 마음껏 즐기는 아이들로 가득한 곳, 모래놀이도 할 수 있고 벌레구경, 지렁이구경, 새구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자연과 놀 수 있는 곳. 숲도 앞으로 자신을 지켜줄 아이들을 더 반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아이들이 이 소중한 자연을 지키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한라생태숲 쉼터 이미지
    한라생태숲 쉼터
     

    한라생태숲 중앙에는 작은 바위와 돌들이 조화를 이루는 생태숲의 축소판 암석원이 있고, 70여 종의 수생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는 수생식물원, 한라산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주차장 끝 전망대, 테마별 산책로 등 구석구석 다양한 구성으로 볼거리, 들을거리가 다양하여 숲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한라생태숲을 곶자왈지대, 천연림 지역을 유전자원 보전지역으로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하니 정말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단풍나무숲, 벚나무숲, 구상나무숲, 참꽃나무숲 등 13개의 테마숲, 생태숲 또한 가볼만한 곳이다.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나무들을 찾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위대한 자연을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알까. 우리의 후손들에게 빌려 온 땅, 그래서 조금 과하다 할 만큼 치유받고 휴식할 수 있는 자연생태계를 관찰하고 지켜나가며 공존해야할 필요성을 늘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인공적으로 조성했지만 극적으로 회복해 작은 한라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수종과 식물들이 사는 한라생태숲이 늘 생명력 넘치는 숲으로 우리 곁에 있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이런 소중함을 공유했으면 한다.

  • 제주에는 도둑과 대문, 거지가 없다하여 삼무(三無)공원

    제주의 서울 같은 노형, 연동같은 도심지는 서울 못지 않은 편의시설과 건물도 많다. 가장 번화가로 알려진 연동에는 도심 속 공원인 삼무공원이 있다. 버스정류장 이름도 삼무공원, 사거리 이름도 삼무공원사거리일 정도로 제주 도심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이곳은 제주 도청에서 가깝고 공항 인근이라 관광객도 많지만 빌딩 속 초록한 숲으로 많은 제주시민이 애정하는 곳이다.


    입구 쪽 계단 옆 거대한 시계를 지나면 보이는 삼무공원은 1978년 도시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2만 2,800㎡ 정도로 크기가 작은 공원이다. 하지만 위치가 좋고 생활체육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볼거리가 있어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 공놀이도 하고 자전거 타는 아이들, 사람들의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사람들이 흔히 제주도는 돌·바람·여자가 많고, 도둑·대문·거지가 없는 삼다(三多)·삼무(三無)의 섬이라 하는데, 여기서 유래되어 삼무공원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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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무공원

    삼무공원의 대표적인 볼거리! 일반적이고 평범한 공원같지만 삼무공원을 특별하게 만든 그것은 바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증기기관차이다. 공원 안에 무슨 뜬금없이 증기기관차냐, 하겠지만 1978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차를 볼 수 없는 낙도의 어린이를 위해 사용이 중단된 기차를 제주도와 흑산도에 보내도록 했다고 한다. 현재 흑산도에는 더 이상 증기기관차를 찾아볼 수 없고 유일하게 삼무공원에만 원형의 증기기관차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 기차는 1944년 일본에서 제작되고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성공장에서 조립한 것인데 미카형 증기기관차 304호로, 전국의 철도를 누비며 다니다가 1967년 8월 디젤기관차의 등장으로 퇴역하게 되었다고 한다. 탄수차(증기기관차 뒤에 연결하여 석탄과 물을 싣는 차량)가 중유용으로 개조되지 않고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증기기관차라고 하는데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414호로 후손 대대로 보존되어야 할 귀중한 문화재이므로 훼손, 낙서 등으로 문화재를 손상시킬 경우 처벌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교육이 되고 역사가 되는 이 기차는 객실은 잠겨 있어 볼 수 없지만 기관실은 개방되어 있어 석탄을 넣어 증기로 운행하는 시스템을 볼 수 있고 객실을 제외한 공간은 가까이서 다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과거를 달리던 증기기관차의 내부도 보고 기관사석에도 앉아보고 아이 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경험이 되는 곳이다.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듯 기차내부도 깨끗하고 뒷부분은 비둘기호라고 부르는 객차1량이 연결되어 있는데 현재는 예전의 감성 그대로를 살린 어린이도서관으로 리뉴얼되어 있다. 평일 1시부터 5시까지 운영되며 토요일, 일요일은 휴무. 많은 아이들이 출입문이 열려 있는 이 기차에 오르락내리락 하며 놀기도 하고 사진도 찍기도 하니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의 목적은 현재에도 충분히 달성되고 있는 것 같다.

    증기기관차 미카 304 이미지
    증기기관차 미카 304

    면적은 넓지 않지만 삼무공원은 베두리오름에 조성된 공원으로, 삼무공원이 곧 베두리오름인 셈이다. 오름 남쪽으로 바위가 별무리처럼 모여 있다 하여 ‘베두리’라 하였는데, ‘베’는 ‘별’의 제주도 사투리 ‘벨’에서 ‘ㄹ’이 없어진 것이고, ‘두리’란 ‘둥글다’는 뜻이다. 옛 지도에는 한자어로 고쳐 별거리악(別豆理岳)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성두악(星斗岳)이라고도 한다.

    베두리오름은 말굽형 화구(火口)가 형성되어 있는 분석구(噴石丘; 화산 쇄설물이 분화구 둘레에 퇴적되어 이루어진 원뿔 모양의 작은 언덕)로서 높이 85m·폭 240m·둘레 617m에 이르는데 현재 공원시설물로 인해 화구의 형태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워 아쉽다.


    삼무공원에는 해송(海松)이 많이 눈에 띄는데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면 어린이놀이터와 배드민턴장, 농구장, 체력단련기구, 산책로, 쉼터, 음수대, 화장실 등이 잘 정비되어 있어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할 뿐 아니라 벚나무가 많아서 봄에는 벚꽃엔딩을 외치며 바람 부는 날 벚꽃비를 맞으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삼무공원의 정상에는 2층 누정 형식의 팔각정자가 있는데 이 정자는 삼무정(三無亭)이라 부르는데 여러모로 볼거리와 쉼이 있는 작지만 알찬 공원이다. 삼무공원에 오면 옛날 기차를 만나는 아주 신기하고 반가운 경험을 할 수 있다.

  • 제주 특유의 돌문화가 집대성 되어있는 곳, 돌문화공원

    검은 현무암과 기이한 모양의 바위, 암석들이 가득한 제주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돌과 뗄 수 없는 섬이다. 제주도의 탄생은 주로 화산폭발로 인해 흩어지는 흙을 모아 섬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흩어진 흙들이 오름이 되었다는 내용 위주이지만 돌문화공원의 배경으로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제주 돌문화공원 이미지
    제주 돌문화공원

    화산이 폭발하는 제주도에 사는 주민들이 몰살 당할 위기에 처했고 이 때 바다속에서 거대한 여인이 솟아올라 이들을 살려내 지금의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360여 개의 오름과 돌로 이루어진 섬 제주는 이런 돌과 연관된 환경을 활용해 삶에 담아낸 모습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제주 돌문화공원은 광활한 부지에 돌 박물관, 돌 문화 전시관 뿐 아니라 전통초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제주의 돌 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곳이다. 실제 돌문화공원은 2006년 문화관광부가 실시한 문화·생태·관광자원 평가에서 전국우수사례 A등급 평가를 받은 바 있는데 이곳을 한번만 방문해 보면 제주 돌 문화의 매력에 흠뻑 빠질 것이라 자부한다.

    제주 돌문화공원 하르방 이미지
    제주 돌문화공원 하르방
    제주 돌문화공원 이미지
    제주 돌문화공원

    제주 돌문화공원의 부지면적은 326만 9,731㎡(100만 평)이고 2006년 6월 3일 개원하였으며 돌, 나무. 덩굴이 어우러져 있는 곶자왈지대이다. 공원조성의 제1원칙을 ‘환경 보존’으로 삼았고, 이 원칙을 토대로 제주의 정체성과 향토성, 예술성이 살아나는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였는데, 공원에는 탐라목석원이 기증한 자료 1만 4,441점을 근간으로 갖가지 돌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다. 제1코스(동선거리 560m), 제2코스(970m), 제3코스(780m)를 돌며 관람하게 되어 있으며, 모두 돌아보는 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암석들이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는 돌문화공원은 만만하게 봐서는 안되는 어마어마한 면적이다. 이곳에서는 제주가 형성된 과정을 배우고 토속신앙이 녹아있는 제주의 돌 문화를 체계적으로 볼 수 있다. 입구의 거석은 불순한 외부인에 대한 경고를 뿜어내듯 매우 위압적으로 서있다.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애니미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 인상적이다.

    제주 돌문화공원
    제주 돌문화공원
    제주 돌문화공원
    제주 돌문화공원
    제주 돌문화공원
    제주 돌문화공원

    돌문화공원은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주제로 자연과 인간 그리고 돌 이야기를 전시한 세 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1코스부터 이동하다보면 웅장하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돌 전시물들을 감상할 수 있고 돌 박물관 나와서 2코스 숲길을 걷다보면 고인돌과 선돌 등 교과서에서만 봤던 돌들도 만날 수 있고 돌하르방, 동자석, 두상석, 호수석, 석부작 등을 볼 수 있다. 동자석은 보통 무덤 앞에 세워놓는데 무덤 주인의 영혼을 위로하며 표정과 자세, 손 모양이 달라 하나하나가 개성이 넘쳐 보인다. 제주에는 오름이나 숲속 무덤가에서 오래 된 동자석들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만나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돌 박물관 옥상에는 인공 연못인 하늘연못이 있는데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센 설문대할망이 바닷 속의 흙을 아들을 위해 죽을 쑤다 빠져죽었다는 전설을 형상화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주변 경관과 매우 잘 어울리고 이곳에서 재미있는 사진들을 많이 찍기도 한다. 

    제주 돌문화공원 전통가옥 이미지
    제주 돌문화공원 전통가옥

    또 3코스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두거리집, 세거리집 같은 제주의 전통초가와 제주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돌도 만든 생활도구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이런 도구들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될 때마다 이 척박한 화산섬에서 살아내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하는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제주의 신들을 돌에 형상화시켜 놓은 곳을 보면 또 경건하고 엄숙해지기도 한다. 돌들은 말이 없지만 다양한 제주사람들의 돌 문화, 생활상들을 엿 볼 수 있는 돌문화공원을 돌다보면 내가 돌에게 지난 세월에 대해 듣고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제주의 뿌리가 되어 온 돌 문화를 집대성한 이 장소는 예술적 가치가 더해진 역사와 문화적인 공간이자 생태공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의 풍광과 돌이 어우어려 날씨가 맑으면 찬란한 햇빛 아래 서 있는 돌과 자연의 맛에 중독되고, 날씨가 흐리면 돌들이 셀 수 없는 시간들을 견뎌낸 그 힘을 느껴볼 수 있는 곳. 제주 돌 문화 공원은 정말 경이롭고 신비로우며 멋지다! 란 말이 저절로 터져나오는 곳이다.

  • ‘표해록’의 저자 장한철 산책로가 있는 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애월 바다는 언제봐도 감청색에 에메랄드빛이 묘하게 섞인 것이 황홀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 중에서도 애월의 끝자락에 위치한 한담마을에서 곽지해수욕장까지 펼쳐진 1.2km의 한담산책로는 언제 가도 풍성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걷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특히 한담산책로는 수석전시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모양의 돌들의 운치를 느끼며 제주의 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필자 역시 늘 감탄하며 걷는 길, 짧은 거리지만 구불구불한 해안산책로는 긴 감동과 여운이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만큼은 눈부신 바다를 온전히 느끼며 산책의 기쁨이 배가되곤 한다.

    제주 애월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그동안은 풍경에 젖어 눈여겨보지는 않았는데 몇 번 가보니 눈에 들어왔다. 한담공원에는 장한철 기념비가 있고 장한철 산책로, 라고 이름 붙여진 길도 있다. 찾아보니 장한철(張漢喆)은 고등학교 때 읽었던 『표해록(漂海錄)』의 저자였다! 게다가 장한철은 제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서 태어난 장한철은 1770년 12월 25일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로 가는 장삿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고 류쿠제도(琉球諸島)(오키나와)에 표착을 한 이듬해인 1771년 1월 2일 일본으로 가는 상선을 만나 구조되어 1월 6일 흑산도 앞바다에 이른다. 그러나 다시 풍랑을 만나 청산도(靑山島)에 표착하여, 밤중에 상륙하다 동료들을 잃고 지도(智島)를 거쳐 15일 강진에 이른 장한철은 일행이 모두 제주로 돌아가는데도 혼자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한다. 그러나 낙방을 하여 귀향해 보니, 먼저 귀향한 7명 중 4명은 죽고 2명은 병중이라 감회를 이기지 못하였다고 한다.

    제주 애월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표해록(漂海錄)』은 장한철이 이 때 쓴 책인데 당시의 해로와 해류(海流), 계절풍 등에 관한 해양 지리서로서 문헌적 가치가 높고, 제주도의 삼성(三姓) 신화이야기, 백록담과 설문대 할망의 전설, 유구 태자에 관한 전설 등 당시 제주도의 전설이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어 설화집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당시 문 닫은 나라 조선에서는 장한철의 표류 기록은 귀중한 것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표해록』의 원본은 현재 국립제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1959년 정병욱 교수에 의해 ‘해양문학의 백미’로 평가 받아 번역본으로 출간하면서 알려졌다.


    최근에는 장한철의 고향에 그를 기억하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제주시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원을 받는 애월읍 농촌중심지 활성화 정책 사업 중 하나로 애월리 한담동 장한철 생가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초가 신축 공사를 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2019년 12월 시작돼 2020년 12월 완공 예정된 이 사업은 장한철과 '표해록'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되었다. 여기에 제주시는 제주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표해록' 복사본 전시, 문학 등 소모임 운영 등 시설을 외부에 개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제주 애월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제주 애월한담공원

    사실 한담마을은 이제 소박한 해안가 마을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일찍이 원주민들이 떠난 자리에 많은 카페와 음식점 등이 들어선 해안마을이고 또 잘 알려진 관광지이다. 그동안 장한철에 대한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애월읍과 지역민을 중심으로 장한철과 한담마을의 인연을 알리는 일을 벌여왔다고 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장한철의 호를 딴 '鹿潭居士 張漢喆 先生 漂海紀蹟碑(녹담거사 장한철 선생 표해기적비)'가 건립됐고 배에 돛을 단 독특한 모양으로 세워진 이 기적비는 장한철 선생의 8대손인 고(故) 장시영 회장이 ‘표해록이 제주의 문화유산으로 남아 후손들에게 도전의식을 길러주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세운 것이라고 하니 의미가 깊다. 2013년에는 한담과 곽지를 잇는 해안길을 '장한철 산책로'로 명명하고 애월읍에서 '표해록' 표지석을 세웠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보니 요즘은 장한철 산책로를 가게 되면 애월 한담마을 주민들의 후대들을 향한 애정과 표해록에 담긴 도전정신이 부디 잘 전해지길 바라며 걷게 된다.

  • 녹지 부족한 영통의 쉼터 수원어린이교통공원

    교통안전 교육을 하는 어린이 공원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에 위치한 수원어린이교통공원은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이 운영하는 어린이 전용 공원으로, 5세 이상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통안전 교육을 하는 곳이다. 1998년에 조성되었고, 30,470m₂면적에 교통 안전 교육을 위한 시설물과 교육관·쉼터·간이무대·자전거도로 등을 갖췄다. 어린이들은 교통 신호 준수에 대한 영상 교육을 받고 소형 미니카를 운전해볼 수도 있다.

    수원어린이 교통공원 교육센터 이미지
    수원어린이 교통공원 교육센터

    영통으로 이사를 와서 처음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공원이 도심 교차로 코너에 위치한데다, 교통안전 교육을 위해서 각종 도로·인도·신호등·교통 표지판·횡단 보도·육교 등을 설치해 놓아 공원인줄 모르고 지나쳤다. 이 공원의 특이한 점이라면 공원이 지나가는 길목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딱히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늘 드나들게 된다는 점이다. 공원의 구조 자체가 지역민이 공원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사이의 소중한 녹지

    그렇게 수시로 다니다 보니 이 공원이 지역주민의 삶에 얼마나 잘 스며들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대열을 이뤄 교통안전 교육을 받거나 뛰노는 모습, 정자에 앉아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들을 보며 도시 속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담한 크기의 공원은 상당히 관리가 잘 되어 있는데 특히 봄에 벚꽃, 목련, 철쭉, 콩배나무, 이팝나무 등 차례로 화사한 꽃이 필 때면 공원의 정취가 정점에 달한다. 공원 주변은 전형적인 신도시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주거 공간이 아파트 단지 단위로 블록을 형성하면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공용의 공간이 지극히 적다. 도시 계획의 일부로 드문드문 조성해 놓긴 했지만 녹지 자체가 귀하다.


    「아파트 문화사」(박철수 저)에서는 현대 도시의 공간 구조를 ‘분할된 공간의 편리성에만 주목하는 아파트 단지’ 내지는 ‘공간의 배타적 반목’이라고 표현한다. ‘공공공간의 사유화’로 인해 지역민간의 소통이 단절된다는 뜻이다. 미세먼지와 황사,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세상은 아이를 키우기 더 어려워졌다. 최근 ‘노 키즈 존’까지 늘면서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하는 아이들의 본질을 그대로 수용해줄 공간이 너무나 부족해졌다. 그래서 수원어린이교통공원은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모두의 공간’이다.

    수원어린이 교통공원 전경 이미지
    수원어린이 교통공원 전경


    축구장 건설 계획에 주민들이 반대

    이런 주민의 마음을 반영하는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수원시에서 수원어린이교통공원을 축구장으로 리모델링한다는 구상을 발표하자 주민들이 전격 반대한 것이다. 시의 계획은 도심 공원을 없애고 주차 200대가 가능한 국제 규격의 축구 경기장과 체육시설을 짓겠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는 내 생각보다 거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반대 서명지가 붙고, 반대 청원까지 나와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나는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써 사회적 의제에 대해 소통했던 경험이 별로 없었던지라 이런 적극적 의사표시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축구장 신설 시 주변 상권이 활성화 되는 등의 장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반대하는 걸 단순한 지역민의 이기심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건 생활의 편리뿐 아니라 공공의 공간, 그리고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지키고 싶다는 열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시에서는 2020년 7월 중 동 대표의 의견을 접수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모쪼록 소통의 장으로써 수원어린이교통공원이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서해안 지역 대표적인 유적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오이도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육지에서 약 4km 떨어진 외딴 섬이었지만 일본이 침략했던 시절 갯벌을 염전으로 이용하면서 육지와 연결이 되었다. 1980년대 말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뒷살막, 신포동, 고주리 등의 이름을 가진 자연마을이었지만 이후 시화지구가 개발하면서 그 모습은 모두 뒤바뀌었다. 지금은 오이도 서쪽해안을 매립하여 조성한 이주단지와 조개구이 회를 맛볼 수 있는 먹거리타운 그리고 바다 이렇게 세 가지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작은 도시가 되었다.


    현재 작은 도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오이도. 하지만 오이도는 2002년 4월 섬 전체가 국가사적 제441호 시흥 오이도 유적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저마다 오이도 하면 서울에서 가까운 바다, 신선한 회와 조개구이를 즐길 수 있는 곳, 가족나들이 하기 좋은 곳 정도로 떠올리겠지만, 오이도는 소중한 유적을 간직한 공간이기도 한다. 특히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은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남북관계 흐름을 알 수 있으며, 서해안 갯벌지대의 신석기시대 해안 적응과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시흥 스마트허브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 다다르면 바로 맞은편에 경치 좋은 공원을 만날 수 있다. 공단 맞은편에 위치해서 언뜻 보면 환경을 생각하여 만들어진 공원으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입구에 들어서게 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넓게 드리워진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자꾸만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이곳! 안으로 향할수록 생각하지도 못한 진귀한 풍경에 도시의 모든 것을 잠시 잊게 된다.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은 오이도 입구 너른 자리에 약 8천 제곱미터로 분포하고 있으며, 서해안에서 규모가 가장 큰 패총(조개무지)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만 하더라도 신석기시대 토기, 석기, 수혈주거지, 야외노지, 화덕을 비롯하여 청동기패총에서 발굴한 초기 철기시대의 덧띠토기, 삼국시대 두드림 무늬토기, 도장무늬 토기, 주거지 및 온돌 등 상당하기 때문에 가는 곳곳마다 선사시대 유적을 엿볼 수 있다.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풍경 좋은 너른 공간과 함께 신석기시대 움집이 보인다. 휴일 나들이 삼아 방문하게 되면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래쪽은 드넓은 평지라서 아이들과 함께 가족나들이 하기 좋은 공간이다.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은 하나의 산 모양으로 조성이 되어 있는데 위로 향할수록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길은 저마다 특색을 지니고 있어 하나하나 감상하는 재미도 좋다.

     

    산책하기 좋은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예쁜 언덕과 함께 패총전시관이 나온다. 패총전시관은 관람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관람시간 안에는 누구든 자유롭게 들어가서 살펴볼 수 있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선사시대에 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사방이 온통 선사시대 모습으로 가득하다. 특히 패총전시관 안쪽 바닥은 유리로 조성되어 있는데 유리바닥 위에 앉으면 마치 신석기시대 움집 안에 그대로 들어가 있는 착각이 든다. 처음에는 살짝 무서운 느낌도 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신석기시대에 나들이를 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패총전시관을 지나 조금 더 위로 향하면 오이도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오이도의 상징 빨강등대를 비롯하여 황새바윗길, 오이도회센터 등 오이도의 모습도 보이고 새롭게 조성된 배곧신도시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오이도는 낙조가 유명한 만큼 해넘이를 감상하기 딱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갈대숲길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갈대숲길

    전망대까지 모두 감상하고 나면 이제 반대편 길을 이용해서 아래로 내려온다.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은 아주 넓고 모든 길이 특색이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은 공간이 없을 정도로 예쁘게 조성되었다. 그리고 단체로 방문할 경우에는 미리 신청을 하면 다채로운 체험수업을 할 수도 있다. 과거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선사시절 사람들이 입던 옷을 입을 수도 있고 시간여권과 돌도끼도 받을 수 있다. 선사시대 유물을 감상하면서 선사야외체험도 할 수 있다. 주로 역사공원에서 체험이라고 하면 아이들만 즐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에서의 체험은 어른도 충분히 흥미로워할 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단체로 방문하게 된다면 꼭 미리 체험을 신청하시는 것을 추천한다.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은 아직 완성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간이지만 직접 가게 되면 이렇게 멋진 공간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배울 것이 많은 공간이다. 인생샷도 남기고 풍요로운 가족나들이를 만끽할 수 있는 곳, 서해안의 멋진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는 곳, 선사시대 옛 자취를 느끼면서 체험까지 즐길 수 있는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 온 가족 힐링 쉼터 안산 갈대습지공원

    아이를 키우다 보면 풍경이 아름다운 곳보다는 자연스럽게 체험 위주의 나들이를 하게 된다. 체험을 하고 나면 아이들에게 뭔가 해준 것 같아서 하루가 풍성한 느낌이 들지만 한 편으로는 ‘나도 즐기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부모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 나들이의 참맛을 즐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안산 갈대습지공원을 아이와 함께 찾는 이유는 아이에게는 체험을 -나에게는 휴식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온 가족이 모두 행복해지는 나들이 공간이기 때문이다. 휴일 아이와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면 안산 갈대습지공원을 추천한다.


    안산 갈대습지공원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해안로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수자원공사가 시행한 면적 314,000평의 국내 최초의 대규모 인공 습지공원이다. 사실 탄생 배경을 엿보자면 시화호로 유입되는 지천(반월천, 동화천, 삼화천)의 수질개선을 위하여 갈대 등 수생식물을 이용하여 자연정화처리식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하수를 처리하기 위한 시설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를 지닌 시설물이기 이전에 도심 속 자연공원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수많은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생태계를 이루는 생물들이 어떻게 서식하는지를 관찰하고 학습할 수 있는 생태공원이기도 하다.

    안산 갈대습지공원

    사계절 모두 제각각 다른 빛깔을 띠고 있어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안산 갈대습지공원은 가는 곳곳마다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 발길 닿는 곳마다 거니는 걸 추천하지만 아이와 함께 갔을 땐 꼭 미리 정보를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갔을 때 어떻게 즐기면 좋은지 자세히 알려 드리려고 한다.


    안산 갈대습지공원은 한적하게 산책하면서 사진찍기도 좋고 새나 곤충을 관찰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크게 A코스와 B코스로 나뉘는데 A코스는 야생화 탐방로를 따라 걷는 코스로 소요 시간은 약 40분 정도이다. 습지에 있는 갈대와 연꽃 등 수생식물과 곤충들을 만날 수 있으며, 야생화가 드리워져 있어 데이트하기 좋은 공간이다. B코스는 관찰데크를 따라서 인공섬, 물고기길인 어도와 새를 관찰할 수 있는 조류관찰대가 있으며, 소요 시간은 약 20분이다. 주로 아이들과 방문했을 때 찾는 코스이기도 하다.


    우선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을 경우에는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안산 갈대습지 환경생태관부터 둘러 본다. 안산 갈대습지 환경생태관은 현장에서 생태해설사와 함께 습지탐방을 할 수 있으며, 사전예약을 할 경우 우선으로 탐방이 진행된다. 환경생태관 1층에서는 환경적인 문제 때문에 시련을 많이 겪은 시화호의 어제와 오늘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안산 갈대습지공원의 생태계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생태해설사와 함께하면 이 모든 것을 더욱 자세하게 들을 수 있다. 아주 신기한 점은 환경생태관 안에서 정말 살아있는 것과 같은 동물과 곤충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모두 우연히 혹은 안타깝게 죽은 동물과 곤충들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이다.


    환경생태관 1층을 모두 둘러본 다음에는 2층 전망대로 향한다. 만약 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싶다면 1층에서 신청을 하게 되고 아이들이 체험을 진행하는 동안 어른들은 전망대에서 풍경을 감상하면 좋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안산 갈대습지공원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고 망원경으로 다양한 물새를 자세하게 관찰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망원경을 통해 본 물새 관찰을 좋아하고 어른들은 탁 트인 전망을 더 선호한다. 모두 동시에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안산 갈대습지공원

    환경생태관을 모두 둘러본 다음에는 길을 따라 산책코스로 향한다. 산책을 하면서 주변의 다양한 식물과 곤충을 만난 다음 자연에너지 체험교육장에서 또 다른 체험을 한다. 안산 갈대습지공원은 정말 넓기 때문에 모든 곳을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린다. 그래서 운동화 끈 질끈 동여 메고 시간을 길게 잡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다양한 체험을 하고 어른들은 자연을 벗 삼아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기에 모두가 만족스러운 힐링 쉼터이다.


    도심 속에서 일상에 지칠 때 잠시 쉬었다 가기 좋으며, 아이와 함께 다양한 자연학습과 생태체험을 하기 좋은 곳. 그리고 여유롭게 산책하면서 인생샷 남기기 더없이 좋은 안산 갈대습지공원은 안산의 대표적인 자연공원이다.

  • 행복한 유년 시절을 선물해준 특별한 곳, 남산농원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중앙대로1985번길에는 남산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주택지가 분포해 있고 남산 하이츠타운이라는 큰 아파트 단지와 상가건물을 볼 수 있다. 이 곳에 신록이 푸르른 대규모 농원이 있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21세기 현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자취를 파악할 길 없지만,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위치한 이 큰 터에 농원이 있었다.


    이름은 남산농원. 부산의 한 재력가가 소유했던 곳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처음에는 돌산에 불과했던 부지를 개발해 돌은 팔고 땅을 가꾸어서 꽃과 나무를 심고 판매하는 농원을 완성했다. 남산동에 지하철역이 처음 생겼을 때 1번 출구에는 ‘남산농원’이 안내되어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초록색 철조망이 쳐진 나무숲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곳이 바로 남산농원이었다. 현재의 아파트 단지와 상가건물만 봐도 이 부지가 얼마나 거대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데, 단순히 꽃과 나무만 빼곡이 심겨진 곳은 아니었다. 이 곳에는 사람들이 살았고, 당시에는 보기 힘든 서양식 주택과 정원이 있었다. 

     

    남산농원에는 두 관리인이 있었다. 이들은 주문된 꽃과 나무를 뽑아 운반차량에 싣는 업무 외에 조경을 했고, 농원 전체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농원에는 총 3채의 집이 있었는데 그 중 2채에 관리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맨 아랫집은 작은 대문이 연결되어 외부로의 출입이 가능했고, 개와 거위, 닭 등을 함께 키웠다. 또 다른 관리인의 집 사이에는 채소를 가꾸거나 비료를 만드는 비닐하우스 세 채가 마련되어 있었다. 두 번째 관리인의 집은 작은 규모였고 이 집을 지나 약 1분 가량을 걸어가면 거대한 서양식 주택이 나왔다.


    이 집은 소유주의 별장 격이었으나, 1980년대 초 그의 조카네 가족이 거주했다. 네 식구가 살기에는 몹시 큰 크기였는데, 거실의 두 면은 모두 유리문으로 둘러싸여 바깥에서도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빨간색의 뾰족 지붕이 특징인 집으로, 커다란 옥상에서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놀 수 있었다. 인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집이어서 동네 아이들은 ‘귀신집’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가족은 농원이 철거되기 직전인 1991년 10월 이 집에서 나갔다. 

    원형 정원 농원
    원형 정원 농원
     

    농원에 공식 출입 가능한 커다란 대문을 따라 걷다보면 거대한 원형 정원이 나오고 바로 이 붉은 지붕집으로 이어졌다. 붉은 지붕집에서 좁은 잔디길을 따라 걷다보면 소형 저수지가 나왔고, 각종 채소를 심어 먹을 수 있는 중형 크기의 밭도 있었다. 여기서는 배추, 무, 강낭콩, 깻잎, 더덕 등 다양한 채소들을 심었다고 한다. 농원에는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존재했다. 농원을 감싼 벽을 따라 엄청난 크기의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향나무가 가장 많이 분포했고, 감나무, 자두나무, 대추나무, 은행나무, 치자나무, 수선화, 목련, 영산홍, 천리향, 참나리, 개나리, 철쭉 등이 있었다.


    1987년 설립된 남산 초등학교에는 나무가 미비했는데 매해 식목일이 되면 붉은 지붕집의 아이들을 통해 남산농원으로부터 나무 한 그루씩을 기증받기도 했다. 농원에는 동물들도 많았다. 남산 초등학교가 생기기 전이었던 1980년대 초중반까지 인근이 모두 산이었기 때문에 꿩과 토끼들이 내려왔다. 농원 내부에서 뱀 허물이 몇 번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때까지는 뱀도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산농원은 1992년 허물어졌고, 이후 ‘남산하이츠빌라’라는 이름의 아파트 단지가 세워졌다. 상가 역시 이때 세워졌는데, 2층에는 남산볼링센터가 문을 열었다. 매주 일요일 오후 12시에 부산 MBC를 통해 방영되었던 볼링 경기가 이곳에서 자주 촬영되기도 했다. 또한 상가 오픈 기념으로 1993년 경 한석규, 김수미 등의 인기 연예인 사인회가 열리기도 했다.

  • 평택시민의 봄나들이 장소, 평택시 농업생태원

    어느 도시마다 봄이 찾아오면 꽃구경을 하러 가는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택시에는 뛰어난 봄나들이 명소가 존재한다. 바로 평택시농업기술센터에 있는 농업생태원이다. 농업생태원은 평택시에서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져 도농교류를 촉진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농촌테마공원이다. 설립 목적에 맞게 농업생태원은 평택시민의 휴식처이자 축제, 농업교육, 체험의 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농업생태원은 다양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넓은 잔디광장인 어울마당에는 잔디마당과 야외무대가 있으며, 주변에는 테이블 등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을 위한 그늘 휴게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봄에는 평택꽃 봄나들이 축제의 주요 행사들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건강체험놀이터인 도담마루는 마운딩, 지형놀이, 꿀벌 모래놀이를 활용하여 다양한 놀이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농업기술센터의 성격에 걸맞게 지형놀이는 농사관련 조형물로 구성되어 있다.


    텃밭체험장인 여름지는 텃밭체험을 통해 자연을 느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다. 장애인 등의 배려계층을 위한 치유공간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군, 가족, 어린이집 등의 단위로 분양되고 있다. 또한, 야외 피크닉장이 조성되어 있어 주말마다 나들이를 온 가족들로 인산인해다. 꽃의 언덕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는 내음달은 사계절 내내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봄에는 튤립언덕을 볼 수 있으며, 가을에는 코스모스 언덕을 볼 수 있다. 마운딩 경사를 활용한 미끄럼틀이 있으며, 겨울에는 눈썰매장으로 탈바꿈된다. 농사체험장인 오성뜰은 농업인들의 역사성을 기념하는 기념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모내기 체험, 탈곡기 체험 등 다양한 농촌 체험을 제공하며, 묵답, 둥범을 활용한 자연 상태 관찰 기회도 제공한다.

    평택시 농업생태원

    이외에도 다양한 구역들이 존재한다. 꽃의 정원인 바람원은 해바라기 경관단지로 아름다운 해바라기를 볼 수 있다. 또한, 유채꽃 축제 때는 포토존이 되기도 한다. 펫놀이터인 모두마루는 목줄 없이 반려견과 보호자가 자유롭게 뛰어 노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미르내는 용을 뜻하는 ‘미르’와 하천을 뜻하는 ‘내’의 합성어로 농업생태원 내에 있는 천이다. 아람산은 밤, 상수리 등 충분히 익음을 뜻하는 ‘아람’이 있는 산이다. 농업생태원 옆의 테마식물원에서는 다양한 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선인장부터 귤, 수 많은 꽃들이 있으며, 평택시민들을 위해 항상 열려있다.


    농업생태원에서는 매년 4월 말 경 평택시민을 대상으로 평택꽃 봄나들이 축제를 개최한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개최하지 못했으나, 2019년에는 4월 13일(토)부터 4월 21일(일)까지 9일간 개최하였다. 봄나들이 축제에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2019년에는 슈퍼오닝쌀 가래떡 뽑기, 티브로드 ‘도전가요열전’, 평택 꽃나들이를 주제로 한 사진콘테스트 등이 개최되었다. 이외에도 버스킹 공연, 지역예술공연, 평택농악, 초대가수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이 마련되었다. 또한, 화분만들기, 플라워캔들 만들기, 페이스페인팅, 바람개비 만들기 등의 체험들이 제공되었으며, 슈퍼오닝 농특산물, 로컬푸드 등의 뛰어난 상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평택시 농업생태원

    도시와 농촌을 융합한 공간으로 평택시민들의 쉼터가 되어 준 평택시 농업생태원은 현재까지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 충주 동락리전투

    1950년 7월 초 한강방어선이 무너지면서 7월 4일 국군과 미군은 한미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순차적으로 경부축선(京釜軸線), 차령산맥선, 울진-영해선, 금강-소백산맥선 등의 방어선을 펼쳐서 적의 남하를 지체시키는 지연작전을 전개하였다. 제1차 방어선에 해당하는 경부축선에서 미군이 북한군 제1군단의 공격을 저지하는 동안 그 동쪽에서는 국군 제1군단이 북한군 제2군단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에 북한군은 제1군단을 경부축선에 투입하는 동시에 제2군단을 내륙 쪽으로 집중하여 위력적인 공격을 계속하였다. 당시 중서부 내륙지역으로 집중된 북한군의 병력은 제2사단이 진천 방면, 제15사단이 음성 방면, 제1사단이 충주 방면으로 진출하였다.


    충주 동락초교 원경
    충주 동락초교 원경


    한편 한강방어선에서 물러난 국군은 안성-죽산-장호원-목계-신림을 잇는 차령산맥 북쪽에 제2차 방어선을 펼쳤다. 그러나 북한군의 선봉부대가 지역 내로 밀려들고 서부전선의 방어를 담당하던 미 제24사단이 오산에서 철수하면서 소백산맥과 차령산맥의 중앙지대에 새로운 진지를 편성하여 진천을 기준으로 국군은 그 동쪽지역의 방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 국군의 방어선은 진천-음성-충주-단양이었다.


    당시 충청북도 음성지역에는 육군본부 직할의 국군 제6사단 제7연대와 제1사단이 7월 4일부터 13일까지 북한군 제15사단과 이를 지원하는 제1사단의 진격을 저지하였다. 제7연대는 음성 북방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 제15사단이 여주-장호원을 따라 남진하는 것을 막는 한편 음성으로 진출하는 국군 제1사단을 엄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국군 제7연대는 가엽산과 부용산 일대에 진지를 편성하고 북한군 제15사단을 무극리와 동락리에서 저지하였다. 특히 7월 5∼6일 동락리 전투에서 제7연대는 북한군 제15사단 제48연대를 기습 공격하여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충주 박격포 조형물
    충주 박격포 조형물


    당시 북한군 제48연대는 국군이 차를 타고 후퇴하였다는 주민의 말을 듣고 동락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국군 제7연대는 동락초등학교 김재옥 교사의 제보와 정찰대의 활동으로 북한군이 동락리에 주둔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북한군을 기습한 것이다. 7월 5일 제3대대가 적의 차량대열이 나타나자 선두를 공격하여 상당수를 격멸하였고, 제2대대는 7월 6일 15시경 기습공격을 개시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에서 적 사살 2천186명, 포로 132명, 트럭 60대, 탱크 4대, 짚차 15대, 무기 1천200여 점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특히 이때 북한군에게 노획한 무기가 소련제로 확인되면서 유엔 16개국이 한국전에 참전하는 결정적 물증과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동락리전투의 가장 큰 의의는 6•25전쟁 일어난 이래 국군이 최초로 승전을 기록한 전투이다. 이 전투로 인해서 북한군은 음성 진출이 1주일이나 지연되었고, 국군은 진천-음성-충주로 이어지는 방어선을 형성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동락리전투의 통쾌한 승리는 열세한 병력과 장비로 패퇴를 거듭하던 아군에게도 적을 격퇴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전공으로 제7연대는 대통령 부대표창과 전 장병 1계급 특진을 받았다.


    동락리 전승비는 국군 최초로 북한군과 싸워 승리한 동락리전투의 전승을 기념하여 1973년에 최초로 전승비가 세워졌다. 이후 2016년 충주시가 동락전승지 성역화 사업을 신니면 송암리에 마무리하면서 전승비를 다시 건립하였고 이외에 전승지에 상징조형물을 건립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충주 동락전승비 정면
    충주 동락전승비 정면
    충주 동락전승비 정측면
    충주 동락전승비 정측면

    충주 동락리전투 잔디광장
    충주 동락리전투 잔디광장

  • ‘식민지 근대’ 국가폭력의 맨얼굴, 구 서울구치소


    조선 시대에도 전옥서(典獄署)라는 감옥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전옥서는 죄수를 가두어 두던 공간이 아니라, 압송된 혐의자의 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대기하던 장소였다. 5대 형벌인 태형·장형·도형·유형·사형이 결정되면, 죄인은 전옥서에서 나와 형벌을 받았다. 조선 왕조는 인정(仁政)을 표방했기에 전옥서가 비어 있는 상태를 이상으로 삼았다. 전옥서의 수용 규모는 100명 정도에 불과했다.


    1907년 한성 인왕산 기슭에 근대적 개념을 도입한 감옥이 지어졌다. 1,584㎡(480평) 규모 목조 건물에 50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경성감옥’이다. 경성감옥의 신축은 갑오개혁에 따른 근대 사법과 형벌제도 수용의 연장선상에 있기는 했으나, 근대 도입의 시급성보다는 가두어야 할 사람이 급증했다는 이유가 컸다. 바로 의병이다. 전국 각지에서 잡혀온 정미년(1907년) 의병이 넘쳐났다.


    1908년 10월 21일 전옥서(현 광화문우체국 자리)에 수감되어 있던 기결수를 옮겨 경성감옥이 운영되기 시작한 날 의병장 허위(許蔿)가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기록은 경성감옥의 성격을 말해준다. 허위는 1908년 1월 전국 의병 부대의 서울 총진격 작전을 지휘했다. 경성감옥의 수감 인원은 수용 규모인 500명보다 네 배 이상 많은 2,019명이었다.

    1909년 일본은 이른바 ‘기유각서’를 통해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감옥 사무를 완전히 빼앗았다. 물론 이전에도 통감부가 설치된 이래 거의 모든 사무는 일본의 손아귀에 있었다. 일본의 침탈에 저항하는 ‘대한 사람’이 많아 수감 인원은 점점 더 늘어났다. 1912년 경성감옥이라는 명칭은 서대문감옥으로 바뀌었다가 1923년부터 서대문형무소라 불리게 되었다.


    서대문형무소 공장
    서대문형무소 공장


    명칭은 변했으나 ‘불령선인’을 가두고 핍박하는 장소라는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1911년 105인 사건 관련자를 비롯해 독립운동 관계자들이 속속 잡혀 들어왔다. 1918년 말 수감 연인원은 1만2,249명이었다. 3·1 운동의 해인 1919년에는 1만5,725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광복 전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연인원은 총 9만4,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서대문형무소에 남아 있는 수형자 카드는 6,000여 장이고, 이 가운데 중복된 인물을 추리면 수형 기록이 있는 인물이 4,600명 정도다. 이 가운데 99.6%가 사상범이었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는 태생부터 일반 죄수를 가두는 곳이 아니라, ‘해방의 꿈’ 자체를 원천봉쇄하려는 곳이었다는 얘기다.


    형무소는 인원이 넘치면서 거듭 증축되었다. 1916년에는 여자 옥사(獄舍)가 지어졌고, 1923년에는 중요 정치사범을 모아두기 위해 9호 옥사가 완성되었다. 1907년 신축 당시 1,500㎡에 불과했던 감옥은 1937년에는 5만5,000㎡로 35배나 커졌다. 초기 목재 건물과 아연 담장은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지은 위압적인 건물과 4m 높이의 담장, 10m 높이의 감시탑으로 변모했다. 50㎡ 규모의 사형장과 일명 ‘유관순 굴’로 알려진 지하 체벌 방도 있었다.


    서대문형무소 격벽장 내부
    서대문형무소 격벽장 내부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내부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내부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입구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입구


    수인들의 생활은 참혹했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으로 통제하기 위해 수감자들을 1~9등급으로 나눠 식사량에 차등을 두었다. 식판 밑바닥 두께를 달리해 밥 양을 달리 했다. 고문과 체벌도 서슴지 않았다. 근대 형벌 제도에 따라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전면 폐지된 태형(笞刑)을 조선에서는 아예 1912년 법령으로 실시했으니, 교도소 내에서는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짐승 우리 같았다”는 표현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다. 수용 밀도도 일본 본토나 대만에 비해 3배나 높았다.


    서대문형무소 12옥사 징벌방
    서대문형무소 12옥사 징벌방
    서대문형무소 복도
    서대문형무소 복도


    일제 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하거나 병사한 사람은 확인된 인원만 200명이다. 하지만 형무소에서 병을 얻어 석방 직후 사망한 경우 등을 포함하면 사망자는 크게 늘어날 듯하다. 일례로 광복 직전인 1945년 6~7월 두 달 사이에만 해도 360명가량이 굶주림으로 숨졌다는 증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 생활을 한 소설가 심훈(沈熏)은 옥중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눈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야만적 폭력으로도 꿈은 결코 가두거나 빼앗길 수 없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서대문형무소 방 내부
    서대문형무소 방 내부


    해방 직후 이른바 ‘불령선인’과 ‘불순분자’는 대부분 석방되었다. 대신 한때나마 반민족 행위자와 친일세력이 수감되기도 했다. 하지만 좌우대립의 격랑 속에서 서대문형무소에는 좌익계열 인사가 대거 수감되었다. 1950년대 수감자의 70%가 좌익 인사였다는 기록도 있다. 진보당의 조봉암(曺奉岩), 민족일보 조용수(趙鏞壽) 등의 인물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 폭력을 독점한 국가가 지배세력에 위협이 된다고 규정한 대상을 무자비하게 처벌하는 식민지 감옥의 유산은 계속 되풀이되었다. 1970년대에도 인혁당 사건 관련자가 사법 절차를 무시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서대문형무소는 1961년 서울교도소가 되었다가, 1967년에는 미결수를 수감하는 서울구치소로 바뀌었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고 난 뒤, 당시 옥사 15개 동 가운데 9옥사 등 5개 동과 사형장 등 일부 시설을 보존하기로 하였다. 서대문형무소는 1988년 사적 324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2년에는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개원했고, 1998년에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개관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안내판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안내판

  • 관악산 호수공원과 석구상

    철쭉이 아름다운 관악산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관악산은 관악구민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가볍게 찾게 되어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산이다. 관악산은 철쭉꽃이 만발하여 1987년부터 관악산 입구에서 관악문화원 주관으로 철쭉제를 개최했다. 철쭉제를 즐기는 구민들과 등산객들이 함께 즐기던 이 축제는 지금은 없어지고, 강감찬축제가 생기면서 그 화려했던 시간은 추억으로 남게 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축제는 없어졌더라도 관악산의 아름다운 자연은 여전하기에 계절마다 그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다.

     

    1997년에 조성된 호수공원과 석구상 

    관악산 입구에서 30분쯤 걸어가다 보면 호수공원이 또 한 번 우리를 반겨주는데 주위에는 정자, 분수, 파고라, 석고상 및 시비, 화계 등이 있어 관악산을 찾는 많은 사람이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공호수는 1997년에 지어졌는데, 과거에 폐쇄했던 수영장 부지를 새로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특히 호수공원 입구에는 관악산 줄기인 호암산 정상 부근(해발 320m)에 위치한 한우물터 인근의 석구상을 그대로 재현하여 건립하였다.

    관악산호수공원(한국사진작가협회 관악지부 지부장 제공)
    관악산호수공원(한국사진작가협회 관악지부 지부장 제공)
    관악산호수공원 입구 석구상
    관악산호수공원 입구 석구상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한 석구상 

    호암산에 있는 석구상은 안내문에 따르면 “석구상의 유래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경기읍지(京畿邑誌)」의 「시흥읍지(始興邑誌)」에 있다. ‘호암(虎巖)’이라는 바위가 현의 진산인 금지산(금주산, 지금의 호암산)에 있는데, 그 모양이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닮아서 한양을 도읍으로 삼을 때 이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바위의 북쪽에 돌로 만든 사자를 묻고 남쪽에는 돌로 만든 개를 묻었다고 전한다. 과거에 해태상이라 부르기도 했으나 그 형태가 개에 가깝다고 하여 석구상이라고 부른다. 석구상의 크기는 길이 1.7m, 폭 0.9m, 높이 1.0m가량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발과 꼬리 부분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라고 한다. 

    관악산호수공원 입구 석구상
    관악산호수공원 입구 석구상

     

    한우물과 함께 화재 예방의 의미로 세운 해태상

    또한 「冠岳(관악)의 어제와 오늘」에 “관악산은 예로부터 서울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화산(火山)으로 알려져 왔다. 관악산 줄기인 삼성산의 서쪽으로 뻗은 산마루에 길이 22m, 폭 12m 되는 사시사철 변함없이 물이 고여 있는 큰 우물이 있으니 속칭 한우물, 용보라고 한다. 한우물 동북쪽 100m 떨어진 돌성벽 안쪽에 돌로 조각한 해태상이 있는데, 그 조각 솜씨가 고졸하여 매우 귀여운 모양새인데 북쪽을 향해 앉아 있다. 1990년 제1 우물지(한우물) 발굴조사 당시 조선시대 건축물에서 석구지(石狗池)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재가 확인되었다.”라고 하는 걸 보면 방화신인 해태(석구상)를 우물 곁에 세운 것도 한우물과 함께 방화를 상징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처럼 석구상은 여러 문헌에 나온 것처럼 조선 창건부터 경복궁의 해태와 시대를 함께 한다고 볼 수 있으며, 우리 민족의 안위를 지키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우리 민족의 해학을 보여주는 관악산 명물 중의 하나로 관악산을 찾는 시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 양재2동 주민들의 쉼터, 양재근린공원

    양재 시민의 숲에서 고인돌 공원까지 

    서울 서초구 양재2동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이 있다. 먼저 누구나 좋아하는 아름다운 양재 시민의 숲이 떠오른다. 조각공원 뿐 아니라 기획전시장과 야외공연장을 갖추고 있어 문화자치구다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서초 문화 예술 공원도 자랑거리다. 

    그뿐 아니다. 자줏빛을 띤 붉은 갈색의 작은 가지에 타원 모양의 잎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밤나무와 푸른 솔잎이 질서정연하게 늘여져 있는 소나무가 멋스러운 고인돌 공원도 자리 잡고 있다. 공원 언저리에 이름에 걸맞는 고인돌 구조물이 있고 옛 멋이 느껴지는 정자까지 곁들여져 있다.

    양재근린공원 단풍
    양재근린공원 단풍

     

    노인, 청소년, 직장인, 육아인들의 쉼터

    그중 단연 최고인기를 누리는 곳은 바로 양재 근린공원이다. 이름 그대로 생활권 거주자들의 건강과 휴식과 정서안정에 쓸모가 많은데다 공원 주변에 초중고가 한 자리에 있고 주민 센터나 우체국 같은 공공장소와도 멀지 않아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대화하며 간식도 나누는 커다란 정자는 사랑방이 되기도 하고,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나온 보호자들이 육아의 고충을 나누는 상담소가 되기도 한다. 직장인에겐 식후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되기도 하고 학교를 마치고 나온 아이들에겐 신나는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교복 입은 청소년들에겐 아지트가 되기도 한다. 

    때론 그림그리기 대회장이고, 쓰던 물건이지만 함께 나누는 녹색 장터이고 주민들의 멋진 공연과 체험부스가 있는 축제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나무와 숲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 

    공원에서 봄에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을 만나고, 여름에는 푸르른 녹음 속에서 정겨운 매미소리를 듣게 되고, 가을에 울긋불긋한 낙엽을 보며 사색에 잠기게 되고, 눈 덮힌 겨울 설경마저 느끼게 되니 계절마다 아낌없는 선물을 받고 있는 셈이다. 

    세월의 흐름에도 공원은 변함없이 아이들과 청소년들과 어른들과 노인들의 쉼터가 되었고 이제는 반려견마저 즐거워하는 공간이 되었다. 예전에 없었던 놀이기구도 생겨났고 앙증맞은 분수대에서 분수가 피어올라 여름엔 더욱 인기 절정이 되었다. 이 아름다운 공원에서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세월만큼 쌓은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세계 어린이의 그림들로 꾸민 순천만국가정원 ‘꿈의 다리’

    순천만국가정원의 양쪽을 잇는 ‘꿈의 다리’ 

    전라남도 순천시는 2013년 4월 20일부터 2013년 10월 20일까지 184일간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였다. 국제정원박람회는 정원의 다양한 가치와 문화를 알리고 즐기며 공유하는 국제행사로 우리나라에서는 순천시가 처음으로 행사를 유치했다.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통로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통로

    순천만국가정원은 전라남도 순천시의 중앙부를 통과하는 동천이 바다를 향해 내려가다가 순천만습지와 만나는 지점에 있다. 동문을 통해 들어가면 세계전통정원, 꽃의정원, 호수정원, 한방체험센터가 있고 서문을 통해 들어가면 한국정원과 국제습지센터, 어린이놀이정원, 수목원, 생태체험장 등이 있다. 도심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며 조성된 여러 테마정원과 부대시설들이 동천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펼쳐지고 ‘꿈의 다리’를 통해 이어져 있다.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입구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입구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세계 아이들의 그림을 받아 만든 꿈의 다리 

    ‘꿈의 다리’는 설치미술가 강익중이 디자인한 작품이다. 강익중 작가는 세계 어린이들에게 편지를 보내 꿈을 주제로 한 그림을 보내주면 멋진 벽화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답장을 보낸 아이들의 그림을 나무토막에 붙여 다듬은 후 특수보호제를 입혀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후 각계각층의 자원봉사자들이 설치과정에 참여하여 의미있는 예술작품으로 완성되었다. ‘꿈의 다리’는 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그 꿈을 응원하는 작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약속을 지켜 만들어낸 우리 모두의 예술 공간이다.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터널 내부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터널 내부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아이들의 그림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아이들의 그림

    한글 글자 타일 외벽과 아이들의 그림 내벽

    다리는 컨테이너 30여 개를 이은 두 개의 기다란 터널과 중간에 통로를 내어 터널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있다. 컨테이너 터널의 외벽에는 ‘가을바람에흔들리는코스모스가가장예쁘다’, ‘솔직히말해서라는말을들을때가장민망하다’ 등의 문구들이 한 글자씩 조립하듯 가득 채워져 있어 문구를 발견해 읽는 즐거움이 있다. 터널의 내벽에는 중국, 일본, 캐나다, 세이셸 공화국 등 16개 나라 14만여 명의 어린이들이 자신의 꿈을 담아 그린 그림이 3인치 정사각형 작품으로 제작되어 부착되었다. 세계 각국 어린이들의 다양한 그림을 살펴보며 감동받고 동심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다리 사이 물과 하늘을 내다볼 수 있는 창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내벽 창문
    순천만국가정원 꿈의다리 내벽 창문


    내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이들의 작품을 꼼꼼히 감상하면서 다리를 끝까지 건너려고 하면 아마 조금은 지칠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이 175m의 터널을 가득채운 그림이 무려 14만여 점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런 피로함을 고려한 것처럼 작가는 다리 중간 중간에 쉼표를 찍어두었다. 전시작품들 사이에 꿈의 다리 아래를 흐르는 동천의 물을 바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작은 창이 있다. 이 작은 창을 통해 하늘 한 뼘과 잔잔하게 흐르는 물길 위를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서 가벼워지는 발걸음을 느낄 수 있다.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관광지,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국가정원 입구
    순천만국가정원 입구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국가정원

    작가는 10년, 20년 후에도 작품이 설치된 곳에서 언제든지 우리의 꿈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는데, 순천만국가정원은 박람회 개최 이후로도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정원의 나무가 자라나는 것처럼 아이들의 꿈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관광지로 꼽히면서 더욱 그 멋을 드러내고 있는 순천만국가정원이 다시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한다. 시민이 함께 만드는 박람회로 도시 전체가 정원이 되고 정원이 시민들의 일상이 되는 순천만국가정원에서 휴식과 미래의 희망을 발견해보자.

  • 호랑이를 감복시킨 효자 이평의 마을, 경남 고성 삼계마을의 충효공원

    대문도 달지 않고 인심이 좋은 삼계마을 

    삼계마을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경주 이씨가 마을에 맨 먼저 정착한 이후, 성주 배씨, 경주 김씨, 전주 최씨 순으로 들어왔다. 삼계라는 마을 이름도 예전에는 ‘각계(覺溪)’나 ‘객기’라 불렀으나 산에서 내려오는 세 개의 냇물이 합친 곳이라 하여 ‘삼계(三溪)’로 부르게 되었다. 마을의 지세가 옆으로 기어가는 ‘게’의 형상이기 때문에 항상 ‘게’가 잘 드나들 수 있도록 막히지 않아야 한다며 집집마다 대문을 달지 않을 정도로 후한 인심과 협동심이 유별난 마을이다. 

     

    수령 300~400년의 노거수로 이루어진 마을숲

    효자 이평에 대한 기실비
    효자 이평에 대한 기실비

    삼계마을에는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다. 수령 3~4백년은 되어보이는 느티나무·팽나무·서어나무 수십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마을숲을 조성한 취지를 설명해놓은 안내문에 따르면 “이 숲 나무들은 마을 뒤 당산 정자나무 및 느티나무 군락지와 함께 이 마을의 선조들이 남긴 자연문화유산으로 대외적인 자랑거리이며 마을의 안녕을 위해 잡귀를 없애고 풍해를 막는 노거수로 수령은 약 300~400년으로 추정된다. 수종은 고목 40여 주가 띄엄띄엄 서서 마을 남쪽을 감싸 풍치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4계절마다 변모하는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짙푸른 녹음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하니 소중한 보물이다.”라고 한다.

     

    오륜을 새겨놓은 충효공원

    이 숲 아래 충효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공원 이름을 ‘충효’로 지은 연유는 이 마을이 배출한 보기 드문 효자 이평(李平)을 때문이다. 빗돌에 큰 글씨로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는 오륜(五倫)을 크게 새겨 놓았고 빗돌 앞에는 부모에게 절을 올리는 자식들을 형상화한 석물조각이 놓여 있다.

    충효공원 내 삼강오륜을 새긴 빗돌
    충효공원 내 삼강오륜을 새긴 빗돌

     

    시묘살이 중 묘막이 불타자 맨땅에서 시묘살이

    이평은 1803년 삼계마을에서 태어나 1874년까지 살다간 경주 이씨로,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마을에서 1㎞ 떨어진 봉화봉(烽火峰) 기슭에 장례를 지내고 묘 앞에 초막을 지어 시묘살이를 하였다. 시묘란 부모의 상을 당한 상주가 무덤 옆에서 여막(廬幕, 짚으로 만든 오두막)을 짓고 3년 동안 사는 것을 말한다.

    이평은 시묘살이 뿐만 아니라 밤이 되면 인근의 산골짜기마다 1개씩의 돌을 져 모아 묘성을 쌓기 시작했다. 효행담이 소문이 나자 마을에서 10여리 떨어진 큰서당 학생들이 이평의 행실을 확인하고자 묘막에 와보니 막은 텅 비어있고 효자는 없었다. 이들은 “소문만 난 엉터리 효자다.”하며 묘막에 불을 지르고 가버렸다. 이평은 선친의 묘를 둘러보던 중이라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뛰어왔지만 이미 타버린 뒤였다. 이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고 이평은 묘막도 없이 맨땅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묘살이를 계속하였다. 

     

    이평과 호랑이의 우정

    효자 이평에 대한 기실비
    효자 이평에 대한 기실비
    그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어느 밤부터 돌을 져다 나르는 이평 뒤에 호랑이 한 마리가 늘 따라 다녔고 끝내 호랑이와 친해져서 같이 시묘도 하고 묘성도 쌓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묘에 불을 지르고 갔던 서당 학생들이 다시 찾아와 보니 봉분 옆 한평 남짓한 시묘터에는 눈이 전혀 내리지 않았으며 그 주위에는 사람 발자국과 나란히 호랑이 발자국이 있었다. 과연 소문대로 호랑이와 함께 시묘살이를 하는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감탄하여 태워버린 묘막을 새로 지어주었다. 그러나 이평은 그 묘막에 거처하지 않고 3년간을 그대로 맨땅에서 시묘를 했다. 

     

    호랑이를 구해준 이평

    시묘를 끝낸 뒤 어느 날 밤에 꿈을 꿨는데, 통영 원문재의 함정에 호랑이가 빠져있는 모습이 보였다. 깨어나 즉시 원문재로 달려가 보니 이미 날은 밝기 시작하는데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나고 몽둥이와 창을 갖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둘러싼 함정 속에는 그 호랑이가 빠져 있었다. 효자는 사람들에게 “이 호랑이는 나와 같이 시묘살이를 한 호랑이요, 이 호랑이는 예사 호랑이가 아니니 해쳐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요구가 무엇이든 다 들을 테니 호랑이를 살려 내게 돌려주시오.”하며 사정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했다. 그러자 이평은 그 호랑이가 내 호랑이라는 걸 증명해보이겠다며 함정으로 뛰어 내려가 “아이구, 네가 어찌하여 이런 곳에 빠졌느냐?”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랑이가 이평을 반기고 따르니 주민들이 놀라 감동하고 호랑이를 구해 주었다. 3년 간의 시묘살이 중 호랑이와 같이 쌓아올린 묘성은 지금도 봉화산 기슭에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때의 시묘터에는 1평가량 잔디가 나지 않고 있다. 그 후 이평이 세상을 떠나자 유림 백사람이 뜻을 모아 효행비를 건립, 지금까지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 고성 의병장 이달 장군을 기리는 운포(雲圃) 공원

    이달 장군의 후손이 조성한 운포공원

    경남 고성군 고성읍 우산리 마을 입구 오른쪽 동산에 ‘운포공원’이 있다. 운포는 임진왜란 때 고성의 의병장이었던 이달 장군의 호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혼연히 일어나 일족인 최강, 최균 장군을 도와 왜군을 격퇴한 그의 충절을 기리고자 함안 이씨 문중의 이정수 씨가 조성한 공원이다. 이달 장군은 임진왜란 때 세운 공으로 선무원종공신과 증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책록되었다. 

     

    우산리 마을 입구 운포공원을 새긴 입석
    우산리 마을 입구 운포공원을 새긴 입석
    운포공원 정상에 이달장군의 행적을 새긴 비석
    운포공원 정상에 이달장군의 행적을 새긴 비석

    아버지의 묘를 파헤친 왜적을 처단

    임진왜란 때 의병을 창의했던 이달(李達 1561~1618)장군의 자는 명숙(明叔)이고 호는 운포(雲圃)였다. 본관은 함안이다. 그는 당시 고성 마암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는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무예에도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문무에 두루 능통했던 이달은 부친의 상을 당해 집에 칩거하고 있었다. 왜적들은 조선의 묘에 진기한 도자기가 묻혀 있다는 것을 알고 유달리 봉분이 큰 묘를 파헤쳐 약탈을 자행했다. 연안에서 노략질을 하던 왜군들이 이달 부친의 묘를 파헤치고 도자기 등을 약탈해 간 것을 알게된 이달은 격분을 참지 못하고 배둔에 주둔했던 왜군의 진지로 홀홀단신 숨어들어가 왜군 몇의 목을 베어죽인다. 그리고 이들을 토벌하고자 의병을 일으킨다.

     

    의병을 조직해 진주성 전투에서 활약

    당시 고성 구만 땅에는 최강(崔堈) · 최균(崔均) 형제가 의병을 일으켜 세를 규합하고 있었다. 때맞추어서 고성 마암에 거주하던 이달이 향병을 조직하여 최강에게 합류했다. 최강 · 최균을 비롯한 함안의 안신갑과 이달은 서로 집안이었다. 이달은 최강의 백부 운걸(云傑)의 외손이고, 안신갑은 함안 사람이나 외삼촌 최강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1592년(선조25) 고성의 의병장 최강은 이달을 선봉장으로 하여 곽재우를 도와 진주성 전투와 진해 웅천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이 공으로 이달은 특별히 훈련원정(訓練院正)에 임명되었고 원종공신 2등에 올랐다. 이어 권무과(勸武科)에 급제하여 절충장군이 되었다. 

     

    광해군의 패륜에 항명하여 낙향

    1603년(광해군6) 양산군수로 나가 목민관이 되었다. 그 후 선전관에 제수되어 서울로 가던 중 판교에 이르러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비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는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광해군의 행동은 인륜에 반하는 짓이었기에 일종의 항명이었다. 같은 해 가을 삼도통제우후(三道統制虞侯)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615년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사후 고성의 도산서원에 배향되었다가 유촌서원으로 옮겨졌다. 

    고성군 동해면 장좌리 상촌에는 그를 기리는 철산정사가 있다.

    고성 의병장 이달 장군을 기리는 운포(雲圃) 공원
    고성 의병장 이달 장군을 기리는 운포(雲圃) 공원

     

    우산 숲과 연못이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

     운포공원 입구에는 운포공원을 조성해 놓은 취지를 아래와 같이 설명해 놓았다.

     “우산 숲과 연못을 앞에 두고 임란 선무원종공신 의병장 운포 이선생의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고 본 마을의 수호신으로 수백 년 동안 동신제를 모시는 석단이 있으며 마을 주민의 휴식처입니다. 임란 당시의 의병장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무찌르고 나라를 구하신 위엄과 충절을 후세에 전하고 충효정신을 고취코져 본 공원을 조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