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서점’이라는 평범한 이름의 서점이 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여러 동네에 각각의 동아서점이 자리 잡고 있다. 개중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곳은 강원도 속초의 동아서점일 테지만, 인천 서구 마전동·당하동 인근 주민이라면 인천 서구 완정로 26에 위치한 동아서점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형 서점 및 온라인 서점이 아닌, 동네 한 편 작은 책방이 ‘동네 서점’으로 불리며 소소하게 부흥 중이다. 획일화되지 않고 개성이 살아있는 콘셉트,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도서 큐레이션, 카페를 겸하는 가게 구성 등의 요소가 동네 서점을 ‘힙’하게 만들어주는 경쟁력이다.
하지만 ‘힙’하지 않은 동네 서점도 많다. 오래 전부터 동네의 한 자리를 지키며 주민들의 독서 생활과 공부를 책임지던 서점들. 인테리어가 특별히 예쁘지도, 맛있는 커피를 팔지도 않지만 언제나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동아서점도 그 중 하나다.
어릴 때는 동아서점에 잘 드나들었다. 학업을 위한 교재를 사기도 하고, 좋아하는 만화책과 잡지를 사 모으기도 했다. 대학교 진학 이후에는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을 주로 이용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겼다. 아마 많은 주민들이 같은 노선을 밟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동아서점에 방문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동네에서 만났다가 귀가하는 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몇 년 전에 장소를 이전해 다소 넓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크다고는 할 수 없는 공간에 많은 책이 빽빽하게 꽂혀있었다.
책을 고르는 동안 서너 명 정도의 손님이 서점을 드나들었다. 무협 소설을 고르다가 전화가 오자 “서점이니 나가서 받겠다”라며 조용히 밖으로 나간 중년 남성이 인상적이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녀의 문제집을 사러 온 학부모였다.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하고 서점에 방문했다는 한 손님은 카운터에서 사장님과 담소를 나눴다.
참고서, 문제집을 찾는 학생·학부모는 예나 지금이나 동아서점의 주 고객층이다. 나도 시험 기간이 되면 서점에 방문하곤 했다. 내용 요약과 출제 예상 문제 등이 정리된 시험 대비용 문제집이 그때에 맞춰 출간되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를 사용했기 때문에, 동아서점에서는 각 학교에 맞는 문제집을 과목별로 구성해 준비해두었다. 동네 서점에서만 누릴 수 있는 맞춤 서비스인 셈이다.
교재가 주력 상품인 이곳에서 별 기대 없이 문학 코너를 훑어봤다가 약간 놀랐다. 이제 막 출간된 신간을 포함해 요즘 화제에 오른 서적을 다수 갖춘 트렌디한 구성이었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 페터 한트케의 책도 있었고, 출판사에서 동네 서점 입고를 위해 표지 디자인을 달리 제작한 ‘동네서점 에디션’도 눈에 띄었다.
권수에 비해 책장이 턱없이 작아, 바로 꽂힌 책들 위에는 어김없이 다른 책들이 누워있었다. 대형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겨운 디스플레이였다. 정렬은 모든 책에게 평등했다. 잘 나가는 책을 따로 배치하는 등의 장치 없이, 모든 책이 가나다 순으로 자리했다. 그 흔한 배경음악과 향기도 없었다. 단지 책을 뒤적이는 소리와 책 냄새만이 공간을 조용하게 채웠다.
2001년 4월 개점한 동아서점은 그렇게 오늘을 보내고 있었다. 동아서점에 들른 날, 내가 고른 책은 김세희 작가의 신작 『항구의 사랑』이었다. 2000년대 초 목포에서 여고시절을 보낸 화자가 그때를 회상하며 당시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이야기다. 어릴 때 즐겨 찾다가 멀어진 곳이 아직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그곳에서 2000년대 초를 돌아보는 2019년의 소설책을 사 읽는 경험이 어쩐지 묘하게 느껴졌다. 과거인 줄만 알았던 장소가 실은 나와 똑같이 시간을 보내고 현재에 속해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돼 기뻤다. 종종 들러 책 냄새를 맡고, 계획에 없던 책을 안고 나와야겠다.
서점을 좋아해서 제주에 여행 와서도 서점투어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여서 그런지 유독 헌책방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이 반갑다. 헌 책방 입구에서부터 솔솔 풍겨나는 헌 책의 냄새나 그 특유의 분위기에 설레고, 세련된 진열은 없어도 낡은 것들이 자아내는 자태와 고상함에 늘 감탄하곤 한다.
이제 육지에서도 희귀해진 헌 책방. 다행히 제주도내에는 헌 책방의 명맥을 40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책밭서점이 있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헌 책방인 책밭서점은 제주시 중앙로(구주소 : 이도일동 1260-26)에 자리잡고 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책밭서점은 주인아저씨가 도대체 얼마나 책을 사랑하고 있으면 이토록 오랜 시간 한 공간을 지켜낼 수 있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곳이다. 제주의 보성시장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을 지나가다 보면 책밭서점 입구가 보인다. 오래됐지만 아주 크고 선명한 글씨로 적힌 간판이 보이고, 책밭서점에 들어서면 빛바랜 오랜 책들에서 이상하게 어떤 빛과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렇게 사로잡혀서 여기저기 둘러보면 책밭서점 안엔 종류도 다양할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고서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신기하기만 하다. 어릴 적에 보던 만화잡지에서부터 대학교재, 수능특강 교재,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최근의 만화책까지 장르와 연령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책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입구에서 보면 책방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구석구석 내부를 둘러보면 안쪽 공간이 꽤 넓고 엄청난 책의 양에 결코 작게 느껴지는 곳이 아니다. 아주 깊게 진열되어 있는 책을 찾아보며 유레카!를 외치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책 분류는 천장에 해놓으셨으니 놓치지 말길! 유리책장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인데, 바로 고서가 전시 되어 있어 보려면 주인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훼손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쪼그려 앉아 책을 보는 사람들, 책에 푹 빠져 집중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이것도 있네, 어머 저것도 있어” 하면서 책을 집어들다 보면 나올 때 꽤 두툼한 봉지를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곳은 카드결제도 가능하다. 카드 결제를 하려고 카운터에 가니 주인 아저씨가 놓아두신 감귤바구니가 보인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진심과 마음이 느껴진다.
책밭서점은 그렇게 나만의 공간에 콕 처박혀 있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이다. 운이 좋으면 새 책보다 더 깨끗한 책을 저렴한 가격에 득템할 수 있고,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숨어있는 좋은 작가, 좋은 서적을 만날 수 있다. 헌책방이 주는 편안함에 중독되고 주인의 고집스러운 정성에 반하게 되면 떠날 때 발걸음이 아쉬울 정도로 오래오래 있고 싶어진다.
예전엔 주인아저씨가 농사를 지으셔서 오후 3시 이후에 문을 여셨고 2006년 한겨례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문학에 심취하여 신춘문예에도 여러번 응모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 간판엔 ‘일요일엔 농사지으러 갑니다’라고 적혀있기도 했다. 산굼부리 목장 근무를 하시던 중 이 책방에 들른 것이 인연이 되어 아예 인수를 하게 됐고, 농사와 병행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글을 쓰셔서 일까, 아저씨의 손글씨가 예술적으로 멋지게 느껴진다. 요즘은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영업하고, 일요일엔 쉰다.
언제나 묵묵히 카운터에서 책을 읽거나 정리를 하시는 아저씨를 보면 오랜 세월 이곳을 일구고, 책을 수집하며 가꾸어왔을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문을 열고 나설 때마다 주인아저씨에게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를 마음 속으로 외치곤 한다. 주인아저씨가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책밭서점이 몇몇 유명한 제주의 헌책방들과 함께 하며 가장 오래된 제주의 헌 책방 타이틀을 계속 지켜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북적이는 대전 중앙로지하상가를 빠져나와 대전역으로 가는 역전지하상가에 들어서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저 다리 하나를 건너왔을 뿐인데 마치 멀리 떨어진 다른 동네에 놀러 온 기분이다. '지구촌 양말, 양말 천국'부터 가발을 파는 '야누스', '미성모자', '화개장터'까지 이름마저 특색 있는 간판 사이에 '해풍사'가 있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모이는 곳. 이름마저 멋들어진 이곳은 외국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다.
작은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책장에는 오래된 외국잡지를 별다른 순서나 규칙 없이 채워 놨다. 책 한 권을 집어들 때마다 묵은 먼지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손에 쌓인 먼지로 공간이 지나온 시간을 가늠해 본다. 90년대 잡지부터 만화책, 애니메이션 포스터, CD, 지금은 사용할 수 있을까 싶은 비디오테이프 등이 해풍사를 가득 채운다. 판매는 할 수 있는 책인가 싶을 정도로 오래된 책도 더러 보인다. 패션 잡지부터 미용잡지, 드로잉북까지 의외로 다양한 종류의 외국 서적이 속절없이 주인을 기다린다. 중간중간 한국 가수의 일본 앨범도 보인다.
비록 읽을 수는 없지만 잡지 안에 그림과 사진을 보며 어떤 내용의 책이겠거니 짐작해 본다.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일본 패션잡지 한 권을 보면서 역시 유행은 돌고 돈다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힙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책장 앞에 투박하게 쌓여 있는 상자에는 옛날 문방구에서 자주 만나던 장난감부터 카세트용 테이프가 그득하다.
그거는 다 우리 아저씨가 안 버리고 가지고 있다가 찾는 사람 있을까 싶어 갖다 둔 거예요.
여기저기 공간을 살피고 있으면 정이 담긴 말 한마디가 들려온다. 약간의 눈치를 살피며 이것저것 꺼내보는 게 여간 재밌는 일이 아니다. 한참을 살피다 알 법한 연예인이나 캐릭터를 발견하면 괜스레 반가운 마음도 든다. 이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 물건들은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 아직도 찾는 사람은 있나. 공간을 둘러볼수록 물어보고 싶은 질문만 늘어난다.
해풍사는 지하상가가 문을 여는 날이면 어김없이 가게를 연다. 오전 10부터 오후 4시까지는 아내 정혜자 씨가 가게를 담당하고 그 이후 시간은 남편 신동협 씨가 가게를 지킨다. 지금은 일본 서적만 취급하지만, 과거에는 유럽, 미국 등의 책도 판매했다. 무역업자를 통해서 책을 수입하고 배달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해풍사에는 과거의 추억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오다가다 무슨 책을 파나 싶어 들어와 구경하는 뜨내기손님도 더러 있다. 생계이자 일상이었던 이 공간은 도시의 변화에도 끄떡없이 자리를 지키며, 언제나처럼 불을 밝힌다. 작은 공간이 지겨울 법도 한데 몸에 밴 습관은 쉬이 버려지지 않는다. 작은 책상 앞에 의자도 아닌 책장 한 귀퉁이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교대해 줘야 하는 남편이 오지 않자 아내 정혜자 씨는 갈 데가 있다며 짐을 싼다.
저녁 시간 해풍사를 지키는 신동협 씨는 투박하면서도 정 있는 말투로 반겨 준다. 자연스럽게 전과 같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서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와 스물다섯 살부터 해풍사를 운영했다. 장사 수완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늘 재고를 쌓아두기 일쑤였고, 보다 못한 신동협 씨가 팔을 걷어붙이고 서점 일을 맡았다. 꿈이라고 왜 없었겠는가.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당장 생계를 위해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다닌 열아홉 번의 이사와 집 없는 설움은 지금까지 해풍사를 있게 한 힘이기도 하다.
초장기에는 지금처럼 가게가 아닌, 집에서 서점을 운영했다. 따로 서점이라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던 때다. 전화로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을 나가는 형식이었다. 과거에는 3개월에 한 번씩 충남 일대를 돌아야 할 정도로 주문이 많았다. 이후 은행동, 대흥동을 오가며 작은 가게에서 서점을 운영하다 대전 역전지하상가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20년이다. 신동협 씨는 그저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마음 한쪽 어딘가를 건드리는 말이다. 말 한 마디에 담긴 통찰은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이해할 수 있을까. 온전히 이해하는 날이 오기나 할까. “오랜만에 시간 잘 가고 재밌었어.”라는 따뜻한 인사를 뒤로 하고 나섰다.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인생길이 그 어떤 책보다 그립다. 괜스레 마음이 울컥하는 여름밤이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생겨나면서 한때 동네 곳곳에 자리하던 소형 서점들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비워진 그 자리를 대형 자본과 맞서는 개성과 전문성을 살린 동네책방들이 채워가고 있다. 특정 분야의 책만을 다루거나 책방 주인장의 취향이 묻어나는 책들로 가득한 책방, 혹은 책방이면서 문화 공간이 되는 다양한 형태의 동네책방들이 생겨났다.
1997년 부산에 문을 연 동네책방 ‘책과아이들’은 어린이전문서점이다. 200군데 넘게 있던 어린이책 전문서점이 이제는 20군데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내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책들, 옆집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한 일이 부산에서 서점으로 이어졌고 20년을 훌쩍 넘겼다. 2만권이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책과아이들은 이제 동네책방의 버팀목 같은 존재가 되었다. 서점, 도서관, 전시관 그리고 널찍한 앞마당이 있는 이곳은 오랫동안 부산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단순 책방이 아닌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아동문학을 지키고 독서를 즐거워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 책으로 가득 찬 사랑방이다.
책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이 신나게 모여 있을 것 같은 이름인 책과아이들 공간의 옆에는 마을 도서관 ‘구름빵’이 있다. 구름빵에서는 읽고 싶은 책을 뒹굴뒹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북 콘서트·축제·강연·연극 등이 진행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면 동백나무 너른 그늘 아래 앉아 책을 볼 수 있다. 커다란 테라스로 이어져 있고 탁자와 소파, 그리고 피아노가 놓여 있어 작은 연주회가 열리기도 한다. 햇살 좋고 쾌청한 날 책을 읽고 있자면 바람이 슬그머니 다가와 책장을 넘겨줄 것만 같은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이다.
책과아이들의 2층 공간은 다양한 모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특성에 맞게 모임이 가능한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5층엔 널찍한 갤러리가 있어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특이하게도 1층과 2층 사이에 ‘중2층’으로 불리는 서가가 있다. 읽을거리가 가득한 구석진 이곳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다. 이렇게 5층 건물은 책과 사람이 어울리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김영수·강정아 공동 대표가 동네책방 책과아이들의 문을 연 이유는 단순하다. “전집이 아닌, 조금이라도 덜 상업적이고 좋은 책들을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책과아이들은 1997년 12월 부산 양정동에서 12평 규모로 처음 문을 열었다. 초창기에는 책방과 육아공동체를 함께 운영했는데 회원이 늘자 공간이 비좁았다. 아기와 엄마들을 위해 2001년 공간을 넓혀 부산교대 근처로 이전했고, 2009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책과아이들은 연중 무휴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리 책방과 약속을 잡으면 유치원이나 학교의 한 학급 전체가 책방 나들이를 올 수 있다. 또한 서점에 오는 손님들 가운데 연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연극모임 ‘두근두근 당당하게’를 만들었다. 수개월 동안 기획하고 연습을 해서 책과아이들에서 선을 보인다. 얼마 전 강정아 대표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레미제라블》을 함께 읽기도 했다. 그러면 프랑스 혁명사와 사회민주주의까지 자연스럽게 공부가 이어진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연도 진행된다. 책과아이들에 터를 잡은 중학생들은 특강 내용이 정해지면 스스로 공부하고 자기들만의 자료집을 만들어 발표회를 한다. 최근에는 《코스모스》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책방 사람들 사이에서 강정아 대표는 책방 큰엄마로 불린다. 책방을 열겠다며 사람들이 찾아오면 프레젠테이션까지 준비할 정도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도와준다. 강정아·김영수 대표는 책방이 우체통만큼, 미용실만큼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한다. 늘어나는 숫자만큼 공간이 많아지면 청소년들과 함께 책을 읽는 일도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청소년들이 많아져야 우리 교육의 미래도 밝다고 믿는다.
어린이문학의 정신을 지키고 실천하는 길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지 23년. 그동안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고 지금도 사정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더 한적한 시골로 들어갈까 생각도 해봤다. 많은 고민을 하지만 그래도 늘 같은 결론을 내린다. “책방이 사람들 곁에 있어야지!” 강정아·김영수 대표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앞으로의 20년을 다짐한다. 책과아이들은 단지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책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고, 생각과 생각을 잇는다. 책이 있어 편안한 곳, 아이들의 생각이 자라는 곳이 책과아이들이다. 부산에 간다면 꼭 한번 들러보자. 새로운 동네책방을 만날 수 있다.
“낮은 바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고, 독립기획자이며, ‘소년의 서’란 작은 책방을 꾸리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임인자(43)씨. 그의 이력인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광화문 공공극장 ‘블랙텐트’ 운영위원, 형제복지원 생존자모임 총무 등의 직함에서도 그녀가 겪어온 시공간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녀가 서 있는 곳, 해 온 일들의 주소는 거개 ‘변방’이었다. 떠밀려난 변방이 아니라 스스로 택한 변방.
지리적 위치도 때론 그렇다. 흥행이란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영화들을 고집하며 8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단관으로 생존하고 있는 ‘광주극장’의 옆구리 골목에 들어서 몇 번 굽이돌면 작은 책방이 뜬금없이 나타난다.
문을 열면, 책의 밀도가 확 느껴진다. 일고여덟 평의 공간에 책들이 집적돼 있다. 이 책짐을 떠메고 곧 이사가거나 방금 이사온 것 같은, 무질서의 질서가 에너지가 되어 흐른다. 인문사회과학예술서점인 이 서점에 들어오는 책의 자격은 무엇일까.
“광주 오월 관련 책들, 형제복지원 사건처럼 차별과 배제에 관련된 책들, 여성에 관련된 책들, 연극에 관한 책들, 도시에 관한 책들 등등. 출입문 쪽은 신간이고 안쪽엔 지금은 구하기 힘든 책들이 많아요. 판매는 안하지만 보여드리려고요. 일종의 도서관 같은 역할이랄까요.” 서점을 하면서도 꼭 읽어야 할 책, 있어야 할 책을 신중히 발굴하고 전하려는 산책자로서의 자세가 보인다. 변방을 “제도권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거점”으로 바라보듯, 서점 역시 그에겐 함께 읽고 알아가며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실천하려는 작은 씨앗 같은 공간인가 보다.
이상호 작가가 그린 녹두장군 전봉준의 얼굴 너머로 불끈 쥔 주먹과 함께 ‘We Will Not Be Silent’란 구호를 새긴 포스터가 보인다. 2016년 가을에 문 연 ‘소년의 서(書)’. 하지만 자주 문이 닫혔다. 그녀가 서점 바깥 세상에 나설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대적인 급박함 속에서 서점이 운영되다 보니까 뭔가 서점으로서 성실하지 못한 느낌이 있었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 중 1인이기도 한 그녀는 국가폭력인 블랙리스트 사태에 맞서 싸우면서 ‘김기춘 재판’을 꾸준히 방청했다. 또한 서점 문을 열고 얼마 안돼서 광화문 블랙텐트 활동 때문에 광화문에서 겨울을 났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오늘 서점 문 닫음’이란 소식이 올라온다는 것은 그녀가 서점에 부재한 대신 무언가 긴박한 현장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년의 서’에 닿으려면, 골목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도 또 하나의 짧은 여행이 된다. 하지만 깊숙한 골목에 서점을 열면서 일말의 걱정은 없었을까. 그녀는 ‘아니오’라고 즉답한다.
“골목을 좋아해요. 광주극장에 영화 보러올 때 행복했던 기억들 때문에도 이 골목이 맘에 들었고, 소위 ‘핫하다’는 동네들과 달리 광주에서 숨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팔아보니 문화로서의 책 판매도 있고 상업행위로서의 책판매도 있는데 대로에 있으면 상업행위에 더 충실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애초에 서점을 연 의도와도 멀어질 것 같아요.”
임인자 씨가 서점을 열게 된 것은 2013년 서울변방연극제에서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란 작품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년의 서’란 간판은 잊혀진 과거, 소외된 진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하지만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않은 존재가 소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붙인 이름이다. 책방 진열장에는 한종선의 「살아남은 아이」가 진열되어 있다.
초록색의 동그란 원이 겹겹을 이루는 간판도 직접 만들었다. 동그란 원은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광장을 생각하면서 디자인했다. ‘소년의 서’ 위층인 2층엔 ‘원앙자수’가 세들어 있다.
“드륵드륵 소리가 나죠. 일상의 배경음으로.”
‘원앙자수’는 전기세를 같이 내는 사이다.
“작년에 제가 제때제때 못내서 미안했죠. 참고 기다려주셔서 늘 고마웠고요.”
또 긴밀한 이웃으로는 광주극장이 있다. 서점 문을 열지 못할 때도 책 택배상자가 오면 받아주는 사이다.
작년 ‘소년의 서’의 목표는 책 판매로 월세를 내는 것이었고, 목표를 달성했다. 2018년 판매 결산은 1300권 정도. “한 달에 100권은 되잖아요. 열심히 판 결과, 책을 파는 즐거움도 알게 됐고 책과 사람을 잇는 재미도 누렸어요.” 북토크나 독서회도 부지런히 꾸리면서 사람들이 점점 연결되고 연대의 씨앗들도 움트고 있다. 골목이란 공간적 자산을 활용한 행사들도 자주 해볼 생각이다.
올해 목표는 바깥 일을 많이 줄이고 서점에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과 사건들이 해결돼야죠. 서점에도 나에게도 일상이 돌아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연대하고 있어요.” 골목 안 작은 책방 역시 그녀에겐 변방이고 광장이고 거리이다. 억눌리고 사라지고 삭제된 목소리들을 불러오고 ‘모두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의 키를 넘는 높은 책장에 가득 꽂혀 있는 헌책, 책을 내리기 위해 세워둔 사다리, 헌책방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묵은 종이 냄새.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책만’ 판다면 헌책방에는 ‘책과 책을 둘러싼 것’들이 있다.
광주 동구 광주고등학교 앞에 있는 ‘계림동 헌책방 거리’는 1960~1970년대를 주름잡던 중고 책방의 메카였다. 가난한 고학생이 책을 도둑질하고, 그 마음을 아는 책방 주인은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책으로 성공한 고학생이 책방 주인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미담은 서점마다 있는 흔한 일이었다. 고학생이 중고 책도 없어서 쩔쩔맨 기억이 있다면, 서점 주인은 물량이 모자라 못 판 기억이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해방 직후에서 시작된 헌책방 거리에는 1980년대만 해도 헌책방이 60곳 넘게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인터넷을 통해 책을 팔고 사게 되면서,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한 주인들이 장사를 포기하기도 하고 경영난도 있어. 지금은 달랑 몇 곳(유림서점, 백화서적, 학문당, 광일서점, 대교서점, 광주 고서점, 문학서점 등)이 남아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마저도 언제 문을 닫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손님이 뜸해 종일 가게를 지키다 들어가는 날이 더 많아 한숨 세월을 보내지만, 계림동 헌책방 거리의 몇몇 가게들이 우리의 추억을 붙잡아 주고 있다.
광주에서 공부 좀 한 나이 지긋한 어른이라면 광주고 오거리에서 계림오거리에 이르는 700m 구간의 이 길목에 ‘보물찾기의 기적’을 체험했던 숱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무질서하게 꽂혀 있는 책들 사이에서 기가 막힌 재주로 원하는 책을 찾아주던 책방 주인, 잃어버린 교과서를 사려고 애쓰던 학생, 희귀한 고서적을 찾는 어른이 책방과 함께하던 풍경이 남아 있다. 헌책도 인터넷으로 사는 젊은이들은 이 골목의 존재조차 모른다. 옛날에 책을 팔러 왔던 까까머리들이 어른이 돼 자녀들 손을 잡고 다시 찾아온다는 유림서점 주인장의 말처럼 어른 손에 이끌려 와야 이 보물창고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림서점 주인장은 아이 낳기 전부터 지금껏 헌책방 일을 하셨다. 50년 가까운 세월이다. 처음엔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책에 둘러싸여 종일 일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 감옥살이 같다고 하셨다. 그나마 단골이 꾸준히 와 주기 때문에 그들과의 신의로 가게를 이어가고 있다고. 그런데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곳에서 딸은 희망을 찾았을까. 유림서점 2세대인 딸 유수진 씨는 몇 년 전 서점 옆 창고 공간에 핸드드립 커피집을 열었다. 조금 느리지만 손수 커피를 내려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유수진 씨는 올 초에 헌책방을 찾는 젊은 단골인 책문화기획자 유휘경 씨와 공동기획으로 이 오래된 헌책방 거리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도 시도했다. 광주고서점, 광일서점, 문학서점, 유림서점 등 1970년대부터 이곳에서 꾸준히 장사를 한 헌책방 주인들이 ‘계림동 처방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헌책방을 둘러싼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헌책방 단골 네 명이 결성한 시민밴드 보크콰르텟은 공연을 했다.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경로가 책밖에 없던 시절의 영화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추억을 함께 하고, 또다른 미래를 꿈꾼다면 이루어지지 못할 이유도 없다.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나 관광명소로 지정된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처럼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광주 계림동의 헌책방 거리도 미래를 꿈꾸고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현대식 인테리어로 손님을 유혹하는 대기업의 대형 중고서점이 헌책방 골목에 자리잡았지만, 세월은 그냥 쌓이는 게 아니지 않은가?
동네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세상이 변화되고 인터넷서점이 부상하면서 추억어린 동네 서점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동네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이들이 귀한 세상이라 동네책방 지키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상황이다. 그만큼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동네서점 중에서 한자리를 60여년 지켜온 곳이 있다고 하여 울산을 찾았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서점이고 언양읍에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동네 서점인 ‘하나서점’이다.
언양읍의 중심가에 위치한 ‘하나서점’은 한 자리에서 오롯이 60년이 넘는 세월을 지키고 있는 언양의 터줏대감이다. 서점 주인인 김충열 씨는 일년 중 하루도 서점 문을 닫지 않는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녀들이 결혼식을 올린 날도 결혼식이 끝나고 오후에 서점 문을 열만큼 고객들과의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통이 불편했던 옛날에는 인근 마을에 사는 학생들이 책 한권을 사기위해 차도 없이 걸어 와야 했고, 그처럼 힘들여 왔다가 헛걸음 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도 안타깝고 처연해서 매일 책방 문을 열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언양읍도 점점 옛 건물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고층건물들이 하나 둘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오랜 세월 제 자리를 지켜온 ‘하나서점’은 주인장의 나이만큼이나 건물자체도 오래되고 역사가 깊다. 언양읍 농협과 나란하게 자리잡은 작고 아담한 단층의 건물인 하나서점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적산가옥이다. 지금의 주인이 서점을 하기 전에는 방앗간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김충열 씨는 지금의 건물을 인수받아 책방을 차리고 책방을 운영하며 1남 4녀를 키워냈다.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해방과 함께 한국에 넘어와 두서국민학교를 졸업한 김충열씨는 당시 방송국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큰 형 덕분에 언양중학교를 다니게 된다. 학구열이 높았던 형의 도움으로 형에게 개인 과외까지 받아가며 열심히 공부했고, 언양중학교에서 전교1등을 하고 급장을 할 만큼 우수한 인재였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책을 사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던 김충열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한의사가 되고자 대학에 진학했지만 가난한 형편이라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울산에서 지금의 하나서점 자리에 책 몇 권을 쌓아 놓고 책방을 시작했다. 당시엔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라 책이 귀했고 울산에 서점이 없었기에 유일한 서점이었던 ‘하나서점’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책방이 한참 잘 될 때는 수입도 괜찮은 편이었다. 김충열 씨는 책방에 앉아서 오는 손님에게만 책을 팔지 않았다. 한참 참고서가 필요한 새 학기에는 직접 학교마다 찾아가서 참고서를 주문받아 배달해주기도 했다. 본인이 조금만 수고하면 여러 학생들이 편하게 책을 받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의 규율담당인 선도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살아온 그였기에 건강에 좋지 않은 담배를 어려서부터 시작하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담배 피는 학생들을 직접 선도했다. 때로는 호랑이 선생님처럼 동네 아이들이 바른 인성으로 자라나도록 지도했으며, 때로는 마음 아파하며 가난한 학생들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줄 만큼 인정 많은 마을 어른이었다.
지금도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김충열 씨를 기억하고 찾아와서 용돈을 건네주는 언양 출신의 사람들이 있다는데 그 이야기만 들어도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지 지난 시간들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이제는 백발이 내려앉은 머리와 아픈 다리, 흐릿해진 기억이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는 나이가 되었지만 “서점은 책을 통해서 지식을 배우는 것 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추억을 쌓아가는 곳이다.”라고 말하는 김충열 씨의 서점 인생이 100세까지도 계속 되길 응원한다. 더불어 울산 언양읍의 유일하게 남은 ‘하나서점’의 밝은 불이 꺼지지 않기도 바라본다.
어느 덧 독립서점이란 말이 우리에게 익숙해지는 지금, 대형서점과 독립서점의 중간 정도에 있는 대중 서점이라 불리기 원하는 서점이 인천 연수동 상가 골목을 25년 지켜온 세종문고이다.
2대째 서점을 맡은 젊은 부부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새로 들어온 참고서들이 서점 한 켠에 쌓여있다. 이 곳 서점 1층엔 흔히 대형서점에서 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 코너 대신 참고서와 잡지들이 가득하다. 주로 근처 중고등 학생들이 손님이기 때문이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야만 일반 단행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은 요즘들어 흔히 볼 수 있는 서점의 풍경은 아니다.
서점이 호황기를 누렸던 1990년대에 연수동은 교육열이 높은 탓에 참고서를 파는 서점들이 연수구 안에만 30군데가 넘게 있었다. 주 매출이 참고서였고,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온 가족이 총출동해 가게 일을 도와야 할 정도로 바쁘고 매출도 높았다. 하지만 대형 프랜차이즈와 온라인 서점의 활성화로 5년 전에 비하면 지금 매출은 반 토막에 불과하다. 또한 책을 사서 보는 문화가 점점 줄어들어감에 따라 참고서가 아니고선 동네 서점들은 자리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이들 젊은 부부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이 서점을 오늘도 성실함으로 이끌어간다. 아침 9시 30분부터 밤 10까지 일 년에 추석과 설날 당일만 쉬고 항시 열려있는 생계형 자영업 사장님들이다. 이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주변에 있던 동네 서점이 2군데나 문을 닫은 탓에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인근 스퀘어원에 입점한 대형서점도 부담으로 다가왔고, 최근 새로운 트렌드에 따라 생겨난 독립서점들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정체성의 문제였다. 큐레이션의 전문성과 공간의 독특성과 개성을 지닌 소규모 독립서점들이 생겨나면서, 참고서를 주로 팔았던, 대부분의 모든 책을 취급하고 있는 이곳 서점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기존의 대중서점이 장점인 모든 서적들을 판매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나름의 개성을 지닌 서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했고 그에 맞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은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취미있는 책모임도 열었다. ‘취미있는 책모임’이란 바느질, 뜨개, 자수, 그림 등의 취미 활동을 책과 함께 해나가는 모임이다. 즉 수공예 도서를 가지고 함께 뜨개나 자수를 배워나가는 프로그램이다. 재료비와 음료 등은 모두 무료로 제공되고, 책만 한 권씩 구입해서 진행되는 문화 교실이다.
이런 노력들은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서 세종 문고만의 정체성과 이곳을 찾는 또 다른 이유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동네를 거점으로 한 서점들을 살리기 위한 정책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좋은 분위기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서점 학교’, 경기도의 ‘북적북적 경기서점학교’ 등이 있고, 춘천과 용인시에서는 원하는 책을 각 지역의 도서관 홈페이지에 신청하고 동네서점에서 직접 구매, 대여하는 시스템인 ‘희망도서 바로대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올 하반기에는 인천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반갑다.
이런 정책들에 더 힘을 실어주는 출판사들도 있다. 전국 동네서점과 협업하여 문학동네에선 동네서점 에디션을 출간하고, 민음사에서는 ‘쏜살문고X동네 서점 에디션’을 출간했다. 이런 기획들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혹은 모르고 있었던 우리 동네 서점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이끌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