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안읍성에서 열리는 낙안민속문화축제

    낙안민속문화축제는 1994년 낙안읍성축제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매년 5월 낙안읍성 일대에서 이루어진 지역 축제였는데, 지금은 전라남도 순천시 한마당 축제로 매년 10월에 개최된다. 낙안읍성은 고려시대에 흙으로 쌓아 만든 토성이었다. 태조 6년(1397년)에 일본군 침입 때 김빈길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토성이 석성으로 바뀌었는데 『세종실록(世宗實錄)』에 ‘1424년부터 석성으로 고치기 시작하였다’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석성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낙안 민속문화축제 포스터 이미지
    낙안 민속문화축제 포스터(사진출처:(사)낙안읍성보존회)

    조선 인조 때 임경업(1594~1646)이 군수로 재임하면서 낙안읍성을 중수하였다. 낙안읍성은 1983년에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었다. 낙안읍성 안에는 임경업 장군의 비각, 객사, 동헌, 중요 민속가옥, 낙풍루, 낙민루 등의 문화재가 있다. 낙안읍성은 넓은 평야지대에 쌓은 석성으로 둘레 1,410m, 높이 4m, 너비 3~4m이다. 정사각 자연석을 1~2m 정도로 다듬어 견고하게 쌓아 끊어진 곳이 없어 웅장하게 보인다.


    낙안읍성에는 옛 모습 그대로의 전통마을이 있고,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 전통마을의 가옥구조를 통해 남부지방의 주거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낙안민속마을은 단순 전시용 민속촌과는 다른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곳으로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등과 같이 전통적인 촌락 형태가 온전한 마을이다. 그러나 낙안읍성 그 자체는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지 않다. 성문 가운데 온전한 것은 남문과 동문이고, 서문은 문루 없이 출입구만 남아 있다. 성벽의 방어시설인 여장은 상당부분 무너져 담벼락만 남아있다. 성의 바깥쪽 옹성도 지금은 흔적만 있다.


    낙안민속문화축제는 주민의 삶과 정주 환경. 전통 음식과 민속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축제이다. 낙안민속문화축제는 백중놀이, 낙안읍성 성곽 쌓기 재현, 기마장군 순라의식, 한복패션쇼, 전국사진촬영대회 민속공연, 상설체험, 전통·향토음식 페스티벌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촌형 전통민속놀이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체험이고 전통음식 페스티벌은 맛있기로 소문한 전라도 각 지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6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낙안읍성 주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이들의 정주환경과 전통음식 그리고 민속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축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낙안읍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시는 낙안읍성을 202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 되면 낙안민속문화축제는 또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세계문화유산 등재만이 전부는 아니다. 낙안읍성과 그 일대에 정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도 고려되어야 하고, 축제 스스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잘 지켜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 조선시대 향리가 살았던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낙안읍성 남쪽 마을 남내리

    남내리는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법정리로, 낮은 산지와 평지로 형성된 농촌마을이다. 남내리는 낙안읍성 남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내리의 자연마을로는 남내, 빙깃등, 사정곳마을, 큰새밋걸 등이 있다. 남내마을은 낙안읍성 남문의 안쪽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남문이라고도 한다. 빙깃등마을은 빙고(氷庫)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빙곳등이라고도 한다. 사정곳마을은 옛날에 활터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큰새밋걸마을은 큰 우물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내리의 문화유산으로는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국가민속문화재 제100호)를 비롯하여 순천 낙안읍성(사적 제302호), 순천 낙안읍성 뙤창집(국가민속문화재 제94호), 순천 낙안읍성 들마루집(국가민속문화재 제93호) 등이 있다. 이 밖에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있다.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향리가 살았던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낙안읍성 남문의 서남쪽에 위치한 낙안읍성 향리댁은 19세기 말에 건축된 전통 가옥으로, 앞쪽에 성벽을, 뒤쪽에 길을 두고 있다. 낙안읍성의 초가 중에서 제일 단아하고 사용한 부재도 건실한 초가집이었다. 현재는 왜기와지붕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곽형두가옥이라 불렸으나 ‘향리가 살았던 집’이라 하여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으로 명명되었다.


    대문으로 들어서 정면에 있는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의 ‘ㅡ’자형 집이다. 안채는 부엌·방·창고방·건넌방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앞쪽으로 반 칸의 툇마루가 있고, 건넌방 오른쪽에도 반 칸의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다만 안방과 창고방의 뒤쪽으로 난 툇간에는 마루를 깔지 않은 흙바닥의 보관 장소이다. 이것은 추수 등으로 인한 수입이 굉장했음을 의미한다. 방은 흙벽인데 창고방은 판벽을 설치한 후 문짝을 달았다. 방은 모두 띠살창호를 달았다. 부엌 앞에 장독대가 있고, 대문 옆 구석진 곳에 화장실이 있다. 마당 중앙에 네모반듯한 모양의 연못이 있다.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안채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안채

    유서 깊은 성곽을 따라 조성된 낙안읍성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읍성으로,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의 남내리, 동내리, 서내리 일대에 있으며, 성벽 길이는 1,468m, 내벽은 1,351m이다. 성벽의 높이는 3~5m로 조금씩 다르다. 현재 순천 낙안읍성 동문, 서문, 남문이 복원되어 있다. 당시 기록에는 해자가 없었으나, 현재는 성벽 외곽 쪽에 설치되어 있다. 현재 낙안읍성 안에는 민가와 관아 시설, 우물 2곳, 연못 2곳이 있어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마을의 풍경과 생활 모습을 간접적으로나 경험할 수 있다. 전통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남문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남문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남문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남문

    순천 낙안읍성은 1984년 복원공사를 진행하여 지금과 같은 성곽과 내부 시설을 갖췄다. 건물은 300여 동이 설치되어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가옥 9개동, 객사, 노거수, 임경업장군비각 등이 있다. 순천 낙안읍성은 비록 복원된 것이기는 하지만, 읍성 중에서 보존 상태가 좋은 유적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전기의 양식을 고대로 간직했을 뿐만 아니라 평지성이라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순천 낙안읍성 향리댁

  • 정월대보름날 낙안읍성에서 즐기는 낙안큰줄당기기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낙안읍성에는 무궁무진한 볼거리와 문화가 숨겨져 있다. 특히 이곳이 지닌 가치는 오래전의 마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도시 생활에서 밀려오는 답답함을 잠시 달랠 수 있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 읍성 전해오는 여러 가지 놀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줄다리기이다. 이 놀이의 정확한 명칭은 낙안큰줄당기기이다.


    줄다리기가 전승되는 전라도 지역의 여러 곳이 그러하듯 이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날에 행해진다. 낙안면에 속한 남대리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낙안큰줄당기기는 본래 마을의 제사인 당산제와 관련이 깊은데 당산제가 끝난 뒤에 행해지기 때문이다. 낙안큰줄당기기처럼 당산제와 관련된 줄다리기는 전라도 여러 지역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부안의 돌모산을 비롯해 전라도 지역의 적지 않은 지역의 줄다리기가 대부분 마을 제사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실제로 이 놀이가 행해지는 남대리의 당산제는 이웃마을인 동대리의 당산제와 함께 매우 규모가 컸다고 한다.


    낙안큰줄당기기는 동편과 서편으로 나눠 진행된다. 개별 팀마다 각각 줄을 만든 다음 줄을 당기는 장소로 가져와 결합을 하여 놀이를 즐겼다. 예전에는 원님이 이 놀이를 주도하였다고 하는데 줄을 당기는 장소는 원님이 편하게 관람을 할 수 있는 낙민루 앞이었다. 하지만 이 놀이는 일제강점기 때 중단이 된다.


    이 놀이의 시작은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애기줄부터이다. 애기줄은 말 그대로 아이들(애기)들이 하는 줄놀이를 말하는데 보통은 추수가 끝난 뒤에 열 살 전후의 아이들이 짚을 모아 직접 줄을 만들어 줄을 당겼다. 이러한 형태의 놀이가 끝나면 좀 더 나이가 많은 청소년들로 옮겨 간다. 낙안 지역에서는 이것을 중줄당긴다고 표현한다. 중줄 당기기가 끝나면 본 행사라 할 수 있는 어른들의 줄다리기로 이어진다.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는 줄다리기 행사를 위해서는 며칠 전에 줄을 꼬아야 한다. 보통은 정월 10일부터 줄을 꼬기 시작한다. 줄다리기에 참여하는 마을의 주민들은 미리 제작해 둔 작은 줄을 가지고 줄을 만드는 장소로 온다. 낙안면을 중심으로 두 편으로 구분을 하는데 동쪽이 숫줄, 서쪽이 암줄이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면 동편은 낙안면의 교촌리, 이곡리, 동대리 등이고, 서편은 남대리 성북리, 하송리 등이다. 본격적으로 줄을 당기기 전에 풍물패가 앞장을 서고 만들어 놓은 줄을 어깨에 메고 낙안읍성을 돈다. 이 과정에서는 관련된 노래를 부르며 행사장의 분위기를 띄운다.


    줄다리기의 승부는 단판으로 결정된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이 낙안큰줄당기기의 특징인 셈이다. 그리고 시합에서는 무조건 서편인 암줄이 이겨야 좋다고 하는데 그래야 마을이 편안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낙안큰줄당기기는 지역을 대표하는 민속놀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승 과정에 있어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던 당산제 등이 약화되면서 자연스레 이 놀이 역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다행스럽게 낙안읍성에서 행해지는 축제를 통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쪼록 어려운 과정에서도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