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속고기구이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다, 대구 막창구이

    소(牛)는 우리 식생활에서 중요한 단백질공급원으로서 머리부터 꼬리까지 무엇 하나도 내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한국인에게는 대대로 소중한 가축이었다. 소를 사육한 역사도 길어서 삼국시대 우경(牛耕)을 시작한 이래 오랜 세월을 우리 조상들의 경제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산수단이기도 하였다. 전통적으로 농경국가였던 우리나라는 소를 국가적인 생산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우금(牛禁)을 제도적으로 시행하였다. 소를 잡아야 할 경우에는 고을 수령에게 타당한 사유를 보고하여 허가를 받은 후에야 가능했고, 만약 소를 함부로 잡는 경우에는 엄하게 처벌하거나 심지어는 사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는 왕실로부터 일반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식용으로 소비되었고, 소고기의 소비량이 급격하게 증가한 19세기 초에는 소의 밀도살이 성행하여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까지 할 정도였다. 병든 소 혹은 늙거나 다쳐서 노동력을 상실한 소는 잡아먹는 것이 허용되는 점을 이용하여 멀쩡한 소를 높은 곳에서 일부러 떨어뜨려 다치게 한 다음에 잡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만큼 근대시기로 내려올수록 식생활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근현대 시기에 들어서도 소고기를 지금과 같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섭취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30여 년 전후의 일이다. 아마도 농축산물수입자유화 이후 값싼 외국산 소고기가 본격적으로 수입된 이후부터 일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소고기는 연중행사로 먹을 수 있는 귀한 식품이었다. 그래서인지 소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가축이라는 말에 충실하게 소를 먹는 우리 식문화는 외국에서는 식용하지 않는 소나 돼지와 같은 가축의 ‘부속고기’를 먹는 식문화가 발달하였다. 부속고기란 소나 돼지의 살코기와 뼈를 제외한 머리, 발, 꼬리, 내장, 껍데기, 가죽 등의 부위를 총칭한 말이다. 소의 경우 부속 중에서 내장 부위로는 양(䬺)ㆍ벌양ㆍ천엽ㆍ막창ㆍ소창ㆍ대창ㆍ간ㆍ염통ㆍ콩팥 등을 식용한다. 양은 소의 첫 번째 위장이고, 벌양은 두 번째 위장, 천엽은 세 번째 위장, 막창은 네 번째 위장을 말한다. 이에 반해 돼지막창은 돼지 대장의 말단인 직장(直腸)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명칭은 소와 같지만 부위는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이처럼 버릴 것 없는 소의 내장은 언제부터 식용하였을까? 그 기원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꽤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조리서로 알려진 세종 때 어의(御醫)를 지낸 전순의(全循義)가 1450년경 편찬한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양식해[䑋醢]와 돼지껍질식해(猪皮食醢)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䬺(양)’자와 ‘䑋(양)’자는 모두 소의 네 번째 위를 뜻하는 같은 글자이다. 다음으로 조선의 궁중음식에서 소의 부속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만들어졌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궁중의 일상음식은 크게 주식류와 찬품류로 나뉘고, 찬품류는 육류ㆍ어패류ㆍ채소류로 구분된다. 바로 육류 찬품 중에 간구이ㆍ간전ㆍ두골탕ㆍ등골전ㆍ양동구리ㆍ양전유아ㆍ양볶음ㆍ염통구이ㆍ우설찜ㆍ우설편육ㆍ족장ㆍ족편ㆍ천엽전ㆍ콩팥전골 등 소의 부속을 이용한 반찬류가 만들어졌다.

     

    민간에서도 소의 부속고기를 즐겼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7세기 남용익(南龍翼)이 지은 ‘송도가 10절. 수령으로 나가는 매옹을 전송하며(松都歌十絶 送梅翁出守)’라는 시구 가운데 “꿩과 소곱창을 모두 음식으로 차렸네(山梁草袋皆陳饌)”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 한 켠에 개성사람들은 소의 창자를 일컬어 ‘초대(草袋)’라고 일컫는다는 주석까지 덧붙였다. 남용익과 같은 동시대 사람인 안동장씨(安東張氏)의 한글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소의 위 볶는 법ㆍ소의 위 삶는 법ㆍ소의 위로 만든 편ㆍ쇠발곰탕 등의 조리법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숙종 때 어의(御醫)를 지낸 이시필(李時弼)의 『수문사설(謏聞事說)』에는 돼지곱창볶음이 소개되어 있다.

     

    조선시대 국가의 동량(棟梁)을 양성하였던 국립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 수학하는 유생들에게도 특별반찬으로 소의 부속요리를 제공하였다. 18세기 중엽에 태어나서 19세기 초반까지 서울에서 활동한 문인이었던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가 남긴 ‘반중잡영(泮中雜詠)’이라는 시에는 “매월 1자와 6자가 들어가는 날 아침마다 특별한 반찬이 제공되었는데, 모두 소고기로 차린 그릇에 양탕(䬺湯)과 염통구이(心炙)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필요한 바대로 사기그릇에 가득 담아왔다(大別味供一六朝 全牛列鼎不蕭條 䬺湯心炙諸般品 沙碗盛來隨所要)”는 내용이 실려 있다. 나라에서 미래의 국가 엘리트인 성균관 유생에게 특별한 반찬[大別味]으로 소의 양탕과 염통구이를 제공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소의 양이나 염통 부위가 귀한 식품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저술한 어휘연구서인 『아언각비(雅言覺非)』에는 소의 맛있는 부위 가운데 위와 양지머리, 소갈비의 세 가지를 언급하면서 “소의 위가 맛이 진하여 먹는 것 중 가장 맛이 좋다. 우리나라 풍속에는 소의 위를 양(䬺)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만든 글자이다”라고 하였다. 정약용과 동시대 인물인 19세기 서유구(徐有榘)의 『임원십륙지(林園十六志)』 정조지(鼎俎志)에는 양볶음,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의 『규합총서(閨合叢書)』에는 소곱창찜ㆍ소꼬리곰ㆍ족편의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한국사회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음식으로서 부속고기요리의 대표적인 지역을 꼽자면 단연코 대구광역시일 것이다. 대구광역시는 수년 전부터 전국적인 열풍을 일으킨 소 막창구이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한편 대구광역시는 소고기를 이용한 향토음식의 메카이기도 하다. 2006년 대구광역시는 대구를 대표할 향토음식 10가지를 선정하여 ‘대구10미(味)’라는 브랜드로 발표하였다. 그중에서 막창구이ㆍ뭉티기ㆍ육개장ㆍ동인동찜갈비 등 4종의 대표 향토음식은 소의 막창, 사태살, 쇠고기 국거리, 사골, 소갈비 등 모두 소를 이용한 음식이다. 대구에는 이외에도 소에서 얼마 나오지 않는 소의 힘줄을 구워먹는 오드레기구이라는 향토음식도 있다.

     

    대구광역시가 소를 이용한 향토음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의 우시장이 있었던 지역이라던 점이 큰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대구는 조선시대부터 경상도 감영이 주재하면서 지금의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전역을 통괄하는 대읍(大邑)이었다. 행정과 군사, 경제의 중심지인 만큼 많은 인원이 왕래하고 물산이 집화되면서 대구에는 조선 중기 이후 ‘대구장(현 서문시장)’, ‘대구약령시’와 같은 3백여 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지닌 대규모 장시가 섰다. 큰 시장이 서는 지역 인근에는 소시장이 서기 마련이다. 대구에는 19세기 중엽 지금의 달성공원 인근에 우시장이 형성되었고 해방 무렵까지 삼남지역의 소가 집결되어 전국은 물론이고 만주지역에까지 소를 무역할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우시장으로 성장하였다. 


    대구 막창


    대구 막창구이를 비롯한 내장구이의 역사는 도축장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1969년 4월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 두류수영장 자리에 ‘신흥산업’이라는 도축전문법인이 설립되면서부터이다. 이듬해인 1970년에는 시립도축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대구 막창구이의 시대가 열린다. 도축장에서 소와 돼지의 부산물이 많이 나오자 내장을 이용한 음식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대구에서 막창구이를 가장 처음 선보인 식당은 1970년대 초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위치하였던 ‘황금막창’의 김연순 씨이다. 처음에는 ‘막창탕’과 같은 곱창전골과 유사한 음식을 선보였다. 주로 술손님들인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지 못하자, 연탄불 위에 석쇠를 얹고 구이로 전환하면서 단번에 인기안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대구광역시 남구 옛 미도극장 옆에서 남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에 막창구이 식당이 생겨나기 시작해 대구광역시의 여러 지역에 막창골목이 형성되었다. 현재 남구 안지랑시장과 서부정류장 옆, 중구 내당네거리와 로데오거리, 달서구 대구호텔 옆, 북구 복현 오거리와 원대동 복개천 일대, 수성구 지산동과 두산동 등지에 막창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대구막창골목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전국 5대 음식 테마거리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명성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