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외식문화는 최근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음식한류의 선풍을 일으키며 그 명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 외식문화는 단순히 음식의 종류와 맛뿐만이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지구촌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특히 24시간 온갖 종류의 음식을 소비자가 원하는 장소로 가져다주는 이른바 ‘배달문화’로 통칭되는 음식배달서비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배달되는 여러 가지 음식 가운데 가장 많이 사랑받는 음식은 바로 돼지족발이다. 양념과 향신료를 넣고 푹 삶아 기름기를 제거한 돼지족은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하고 담백한 맛으로 인해 남녀노소 부담 없는 야식이자 최고의 안줏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돼지족을 이용한 음식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조선왕실의 연회(宴會)를 기록한 『진연의궤(進宴儀軌)』와 근대 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 등에는 돼지족을 푹 고아서 만든 ‘족편’이 알려져 있다. 또한 현재의 족발과 같은 유형의 음식으로는 19세기 말에 편찬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돼지족을 무르게 삶아 뼈를 추리고 양념하여 굽는 ‘족구이’의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돼지족발은 기본적으로 돼지족의 털을 제거한 후 마늘ㆍ생강ㆍ파ㆍ물ㆍ청주 등을 넣고 푹 삶아 낸 다음 간장과 설탕, 물을 넣어 다시 조린 음식으로 본래는 우리나라 이북지역의 음식이었다. 돼지족발이 현재와 같은 형태로 상품화된 것은 6.25전쟁 때 월남한 이북 실향민들이 고향에서 즐겨 만들어 먹었던 족발음식을 응용해서 개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특히 1950년대 중반 이후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는 ‘장충체육관’이 건립되면서 다양한 실내 스포츠경기가 열렸고, 이때 스포츠 관람객들의 간식거리로 등장한 것이 바로 돼지족발이었다. 처음에는 좌판을 벌여놓고 판매를 시작하던 것이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족발식당들이 하나씩 들어서면서 지금의 ‘장충동족발’이라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른바 ‘장충동족발’로 알려진 일반 돼지족발요리는 통념적으로 돼지족을 양념을 한 육수에 푹 삶아낸 다음 썰어서 새우젓에 찍어 먹거나, 상추와 깻잎 등에 싸서 마늘과 쌈장을 얹어 먹는 따뜻한 음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일반적인 육류요리가 그러하듯이 고기는 식으면 육질이 딱딱하게 굳거나 기름기가 져서 식감이 떨어지므로 보통 따뜻한 상태에서 섭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쪽 최대의 항구도시에 부산에서는 기존 족발요리의 통념을 깨는 음식이 탄생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냉채족발이다. 냉채족발은 음식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돼지족발과 우리 전통음식인 냉채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Hybrid)음식이라 할 수 있다.
냉채족발은 재료와 먹는 방법에서 기존의 족발과는 전혀 다르다. 우선 얇게 썬 족발과 삶은 해파리에 겨자소스와 굴소스를 붓고 당근ㆍ양파ㆍ오이를 썰어 얹어 먹는다. 냉채족발은 살코기만을 장이나 새우젓에 찍어 먹는 일반 돼지족발에서 오는 다소 느끼하거나 텁텁한 식감을 톡 쏘는 겨자소스의 맛으로 잡아준다.
또한 해파리의 쫄깃함과 오이와 같이 상큼하고 아삭한 야채는 깻잎이나 상추에 싸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식감을 제공한다. 따라서 냉채족발은 돼지족발을 차갑게 먹는다는 점에서 기존 돼지족발과 가장 큰 차이가 나는 혁신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냉채족발은 1980년대 초반 현재의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에서 탄생하였다. 당시만 하여도 중구 부평동과 남포동 일대는 인근의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부평시장 등과 부산시청을 비롯한 관공서와 회사들이 운집한 부산의 도심으로서 많은 회사원과 젊은이들이 모이는 번화가였다.
현재의 BIFF거리에서 부평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원조부산족발, 한양족발, 한성족발, 오륙도족발 등의 족발집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부평동족발골목’을 형성하였다.
이곳에서 탄생한 냉채족발은 부산을 방문하는 외지인들도 들려서 먹어 보아야 하는 부산의 명물음식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돼지족발요리 외식업의 기본식단에 오를 정도로 전국적인 음식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냉채족발은 그 역사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탓에 2009년 부산광역시에서 지정한 부산을 대표하는 13가지의 향토음식에는 들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탄생의 기원은 한국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장충동족발이 한국전쟁 이후 북한 실향민들이 상품화한 음식이었던 것처럼, 부산의 냉채족발도 한국전쟁 이후 서울 못지않게 부산에 많이 자리 잡은 이북 실향민들의 향토음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부산의 경우에는 이북음식이 부산 특유의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 비단 냉채족발에 그치지 않는다. 부산에 정착한 이북 실향민들이 전쟁통에 구하기 어려운 메밀가루 대신 원조 밀가루를 이용하여 만든 ‘밀면’, 미군부대 근처에서 구한 돼지 부산물로 만들기 시작한 ‘부산돼지국밥’이 그러한 종류이다. 부산의 냉채족발도 단순히 원형의 유지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부산지역과 부산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고유한 음식으로 개발된 것이다.
돼지족은 간식이나 술안주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옛날부터 민간에서 젖이 잘 안 나오는 산모에게 돼지족을 고아 먹이면 모유분비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삶은 돼지족의 젤라틴에는 콜라겐 성분이 풍부하여 여성의 노화방지와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다. 또한 비타민 B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피로회복에 좋고, 풍부한 불포화지방산은 혈관 내의 콜레스테롤 축적을 방지해 준다. 그뿐만 아니라 간 기능에 작용하는 메티오닌과 시스테인, 글루타티온 등 양질의 아미노산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알코올분해와 숙취해소에도 효과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형태의 족발의 원형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서울로 대거 유입되면서 장충동 일대에 일본인들이 남기고간 적산가옥이 많았는데 이곳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피난민촌이 형성이 되었다. 이후 생계를 위해 피난민들은 음식장사를 했는데 이 때 평안도 실향민들이 돼지족도 함께 삶아 판 것으로 보인다. 추운 겨울이면 고향에서 꾸덕꾸덕 말린 돼지고기를 즐겨먹던 이들이 생계유지로 족발을 만들어 팔았던 것이다. 그래서 장충동에는 아직도 평남할머니집 족발, 평남원조족발 등 이북지방이름간판의 상호들이 눈에 띈다.
다만 이들 족발은 중국 장육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다. 이것을 한국화 하는 과정에서 향을 많이 약화시키기는 했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음식인 장육처럼 강한 팔각향이 나는 족발이 흔했다. 특히 족발의 색상은 검은색이 진한 중국 전통 간장인 노두유의 빛깔이 난다. 중국의 축제 음식인 장육과도 유사한 것으로 보아 족발의 기원은 중국식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음식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족발이 이북음식이고 이북은 중국과 연결되는 지리적 환경으로 중국 음식 유입의 통로가 된다. 따라서 족발요리는 중국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북 사람들이 즐겨 먹다가 6·25전쟁 이후 남쪽으로 피난 내려온 이북 사람들에 의해 음식점 장사메뉴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족발가게 들은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집들과 비교해 양념의 맛과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으로 유행에 맞춰 변화했다고 평한다. 이에 반해 원조를 표방하는 오래된 가게들은 담백한 맛이 특징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각 나라마다 돼지의 다리를 이용한 요리가 있는데, 일본의 오키나와 요리인 테비치소바(てびちそば), 독일의 요리 아이스바인(Eisbein) ·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 체코의 꼴레뇨(Koleno), 오스트리아의 슈텔체(Stelze), 폴란드의 골롱카, 스페인의 하몬 그리고 태국 요리 카오카무(ข้าวขาหมู)와 아일랜드 요리에도 크루빈스(Crubeens)라는 유사한 음식이 있다.
지금은 족발을 이용한 다양한 메뉴들이 개발되어 냉채족발, 불족발, 오향족발, 족골뱅이, 족발국밥 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즐기고 있다. 나아가 배달음식을 즐겨하는 세태는 양장피와 족발을 함께 즐기면서 ‘족장피’라는 신조어로 진화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