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의 대부도(大阜島)는 서해안에서 강화도를 제외한 가장 큰 섬으로 섬의 명칭도 ‘큰 언덕’을 뜻하는 ‘大阜(대부)’라 하였다. 대부도는 선감도ㆍ불도ㆍ탄도ㆍ풍도ㆍ유도 등 5개의 유인도와 중유도ㆍ장도ㆍ큰가리섬ㆍ작은가리섬ㆍ할미섬 등 12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도에는 남사리를 비롯하여 섬 전역에 분포된 패총유적을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고, 개펄에 서식하는 굴이나 조개, 그 외의 다양한 해양생물들을 채집하면서 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대부도는 매우 넓은 개펄이 발달해 있어서 인근의 오이도갯벌, 시화갯벌 일대와 더불어 우리나라 서해안 조개의 최대 주산지 중 하나였다. 대부도에서는 바지락ㆍ동죽ㆍ대합ㆍ맛조개 등 다양한 조개류가 생산된다. 이렇게 대부도 갯벌에서 풍부하게 채취하는 조개류를 재료로 이용하여 만들어진 대부도의 대표적인 명물이자 향토음식이 바지락칼국수이다.
칼국수는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기록된 조리서 중 가장 오래된 17세기 경상도 영양의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에 ‘차면법(着麵法)’으로 소개될 정도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면음식이다. 칼국수는 만드는 방식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우선 만드는 방식은 ‘건진국수’와 ‘제물국수’의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건진국수는 면을 따로 삶아서 물에 헹군 다음 준비된 육수를 붓고 고명을 얹어 내는 국수이다. 제물국수는 칼국수 면을 따로 삶지 않고 육수에 함께 끓여 낸 국수를 말한다. 제물은 음식을 익히기 위해 처음부터 끓여 둔 국물을 말한다.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내륙지역에서는 지역에 따라 닭 육수ㆍ사골 육수ㆍ멸치 장국 등으로 칼국수를 끓인다. 해안지역에서는 바지락 장국을 비롯하여 다양한 어패류를 이용한 육수로 칼국수를 끓이기도 한다.
바지락칼국수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 밀가루가 대량으로 보급된 이후 대부도와 같이 바지락이 많이 생산되는 해안지역에서 만들어 먹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대부도에서는 시화방조제가 한창 건설 중이던 1980년대 후반 대부도의 시화방조제 연결지점 인근에 위치한 방아머리를 중심으로 바지락칼국수 전문식당이 들어서면서 대부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등장하였다. 바지락칼국수가 점차 유명해지면서 소문이 퍼지자 1990년대 이후에는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남도 등 서해안의 연안지역에서도 각기 고유한 조리법과 맛을 지닌 바지락칼국수들이 등장하였고 현재에 이르러는 전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안산 대부도의 바지락칼국수는 다시마와 멸치를 우린 육수에 바지락을 넣고 끓이다가, 바지락을 건져내어 살을 분리해 내고 국물을 걸러 바지락육수를 만든다. 칼국수 면은 밀가루ㆍ 날콩가루ㆍ계란ㆍ소금ㆍ물을 섞어 만든 반죽을 얇게 썰어 육수에 넣고 끓인다. 준비해 둔 바지락살과 납작하게 썬 호박, 굵게 채 썬 양파, 실파 등을 넣고 끓이다가 다진 마늘과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이에 비하여 충청남도와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북어ㆍ다시마ㆍ대파ㆍ양파 등으로 육수를 만든다. 우려낸 육수에 바지락, 채 썬 당근과 애호박 등을 넣고 끓이다가, 밀가루로 반죽한 면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익혀낸 다음 양념장을 곁들인다.
바지락칼국수의 주재료인 바지락은 백합과의 연체동물로서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갯벌에 주로 서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천광역시 선재도ㆍ충청남도 안면도ㆍ전라북도 줄포만ㆍ전라남도 강진만ㆍ경상남도 사천만 등지가 바지락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바지락은 지역에 따라 바지라기ㆍ반지락ㆍ반지래기ㆍ빤지락ㆍ빤지래이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바지락이라는 이름은 바닷가에서 바지락 껍데기가 켜켜이 쌓인 곳을 밟을 때, 바지락 껍질이 서로 부딪치며 나는 소리 때문에 ‘바지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혹은 바지락이 모여 있는 바닷가에서 밤새 바닷물이 출렁일 때에도 바지락들이 서로 부딪치며 나는 소리 때문에 ‘바지락’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바지락은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천합(淺蛤)’, 속명으로는 ‘반질악(盤質岳)’으로 소개되어 있다. 바지락은 살이 풍부하고 맛이 좋다고 하였다. 바지락을 껍데기째 삶으면 시원하고 감칠 맛이 나는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바지락 국물의 감칠맛은 글루탐산ㆍ베타인ㆍ이노신산ㆍ호박산 등의 아미노산 성분이 어우러져 내는 맛이다. 바지락은 예로부터 간의 기능이 약해서 황달기가 돌거나 쉽게 피로를 느끼는 사람을 위한 식품으로 권하였다. 이는 바지락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타우린과 함황아미노산 성분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의 월곶포구와 오이도해양단지를 지나면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 속한 대부도까지 연결되는 총연장 12.7㎞에 이르는 시화방조제가 놓여있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7년에 걸친 공사기간을 통해 건조된 시화방조제는 2010년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되기 전까지 동양 최대의 방조제였다. 옛날에 섬이었던 대부도는 시화방조제의 건설로 연륙지화 되면서, 1990년대 이후 시화방조제와 대부도를 연결하는 관광코스를 많은 외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2005년 경기도는 대부도 방아머리 먹거리타운을 음식문화 시범거리로 지정하여 바지락칼국수를 비롯하여 생선회, 조개구이 등 이 지역에서 나는 다양한 수산물을 맛볼 수 있다.
봄내음이 콧가를 살랑거릴 무렵이면 서해안을 간다. 나른한 봄볕이 달궈지기 전에 서둘러 출산준비를 하는 바지락을 만나기 위함이다. 이 시기에는 조개를 좋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칼국수를 즐기는 사람들도 서해안으로 몰려든다. 전국적으로 바지락이 생산되고 있지만, 서해안의 바지락이 제일 맛있다. 바지락은 껍데기가 두껍고 동그란 모양이다. 황갈색의 다양함도 그렇지만 줄무늬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감히 누가 따라 할 수 있을까.
필자가 처음 제부도를 갔을 때는 바닷길이 열리는 시간을 몰라 송교리 끝자락에서 허망하게 바다만 바라보아야 했었다. 제부도는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작은 섬(면적 0.98㎢)이다. "저비섬", "접비섬"이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조 중엽 이후에는 "제약부경(濟弱扶傾)"을 몸으로 실천하는 곳이라 하여 ‘제’자와 ‘부’자를 따서 제부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부도로 가려면 송교리를 지나야 한다. 지금이야 제부도로 가는 길이 시멘트 도로로 포장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바다가 밀려 나가는 시간에 맞추어 갯고랑(조류의 통로)을 이용해야 했다. 발이 쑥쑥 빠지고 미끄러운 갯벌을 넘어지지 않고 걷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어린이는 업고 노인은 부축해서 건네주어야만 제부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제부(濟扶)’, 참으로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이름이다. 자연환경이 ‘효’를 선양(煽揚)한 셈이다.
제부도 모세의 길이 하루에 두 번 열리면 4~5m 깊이의 바닷물이 양쪽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바닷속에 잠겨 있던 2.3km의 길이 마법처럼 드러난다.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도 좋다. 바다에 깔린 붉은 우뭇가사리가 단품처럼 곱다. 바다 위에 떠 있던 작은 배들도 갯벌 위에 얌전히 앉았다. 제부도를 찾던 날은 운 좋게 하늘이 맑았다. 마치 바닷물이 하늘로 올라간 듯 갯벌 너머로 하늘이 푸르다. 제부도는 지하수 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물맛도 음식 맛도 좋다. 갯벌체험 장소로도 유명하다. 갯벌이 깊지 않고 부드러워서 어린이가 놀기 좋고 조개와 게, 쏙, 고둥도 캘 수 있다. 섬은 북쪽의 자갈밭과 해수욕장을 제외하면 모두 갯벌이다. 20년 전만 해도 바지락을 캐서 팔았다. 바다에 들어가기만 하면 갯벌에 숨은 바지락을 한 양동이씩 캐왔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삽과 갈퀴, 양동이면 족했다. 낙지도 많았다. 지금은 바지락도 낙지도 그전만 못하다.
바지락은 해감(바닷물 따위에서 흙과 유기물이 썩어 생기는 냄새나는 찌꺼기)을 빼는 것이 중요한데 해감을 잘 못 하면 먹을 때 불편하기도 하고 국물맛이 텁텁해진다. 해감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흐르는 바닷물에 4시간을 담가두면 된다. 깨끗하게 조개껍질도 닦아야 한다. 물속에서 껍질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바지락 거리며 청명하다. 통통한 바지락으로 육수를 내는 것은 대파와 호박이면 된다. 바지락의 통통한 속살이 뽀얗게 부풀어 오를 때 쫄깃하게 잘 뽑은 칼국수를 살살 풀어 넣는다. 뽀얀 국물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칼국수 면발이 설설 끓는 국물 위로 올라온다.
먹는 순서가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먼저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맛보아야 한다. ‘이야~’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깊은 바다에 풍덩 빠졌다가 떠오른 기분이다. 뜨거운 것을 잘 못 먹는 필자도 바지락칼국수는 작은 그릇에 덜어 먹지 않는다. 국물을 절반쯤 홀홀 마시면서 바지락 향기로 온몸을 적신 후 칼국수에 젓가락을 댄다. 이때 주의할 점은 바지락 향에 빠진 칼국수를 실컷 맛본 후 다른 반찬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바지락 때문에 밍밍해진 입안을 얼큰하고 시원한 김치로 달래고 싶겠지만 참는 것이 좋다. 그래야 바지락칼국수의 맛을 가슴에 남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혹 어떤 이들은 칼국수에는 김치를 싸서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바지락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맨 나중에 한 점으로 마무리하면 어떨까? 단무지가 나온다면 그것으로 대신해도 좋다.
바지락칼국수는 양념이 과하지도 않고 조리방법이 어렵지도 않다. 먹는 방법도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그러나 제부도의 바지락칼국수가 특별한 이유는 신선한 바지락과 좋은 물, 그리고 신비한 갯고랑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제부도가 건강하게 유지되길 바란다. 멀리 갯벌체험을 하는 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 도움 주신 분
'중앙횟집' 김수남(남) 제부도에서 식당을 한 지 20년 되었다. 바지락 어획량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다.
우리나라 서해 갯벌은 지구상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다양한 갯벌생물들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2010년에 완공을 본 새만금방조제와 같은 개발은 전라북도 군산시 비응도동으로부터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까지 이어진 서해안의 갯벌이 사라지고 말았다. 서해안의 갯벌은 개발 및 해양오염 등으로 인하여 바다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전라북도 부안군은 1988년 곰소만에서 대화리까지 이어지는 부안군의 갯벌이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0년에는 고창군의 고창갯벌과 부안군의 줄포만갯벌을 잇는 고창·부안갯벌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 더 이상의 무분별한 개발과 훼손으로부터 청정갯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본래 부안군은 김제평야와 변산반도가 인접하여 예로부터 물산이 풍요로운 고장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이 1751년(영조 27)에 저술한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 변산은 물고기와 소금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하여 농사짓기에 좋으며, 조개와 땔감은 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넉넉한 고장으로 서술하였다. 그래서 부안은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을 의미하는 생거부안(生巨扶安)으로 불렸다. 부안군은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땅으로 각광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장차 미륵불이 도래하여 부조리한 세상을 바로 잡는다는 민중들의 미륵신앙의 성지로서 조선 민중들의 사회변혁 참여에 사상적으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또한 조선시대 민간의 예언서였던 『정감록(鄭鑑錄)』은 부안의 변산을 난리와 전쟁이 나도 화를 면할 십승지의 하나로 예언하였다.
한편 부안의 우반동(愚磻洞, 현재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은 허균(許筠)이 『홍길동전』을 집필했던 장소이자 조선 중기 반계 유형원(磻溪 柳馨遠)이 종신토록 거주하면서 양란(兩亂)을 거치면서 피폐해진 나라를 다시 세울 경세사상을 집대성한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유형원의 사상과 저작은 조선 후기 성호 이익으로부터 다산 정약용에 이르는 실학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중환의 표현대로 바다와 땅의 물산이 풍요로웠던 부안에서는 굴냉국, 대합구이, 대합찜, 들깨탕, 마른 복어탕, 무왁저지, 삼합산적, 섞박지, 오이뱃두리, 장대찌개, 전갱이찌개, 콩나믈잡채, 콩나물짠지, 토하 실가리찌개, 호박오가리 들깨탕, 홍어 어시육 등 다양한 향토음식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러나 부안갯벌에서 채취한 신선한 조개를 재료로 하여 만든 바지락죽과 백합죽이야말로 부안군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향토음식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부안갯벌에서 잡히는 여러 종류의 조개 중 바지락은 수확량이 가장 높을 정도로 풍부하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바지락의 명칭을 ‘포문합(布紋蛤)’, 속명은 ‘반지락’이라 하여 “큰 놈은 지름이 두 치 정도이고 껍질이 매우 얇으며, 가로 세로 미세한 무늬가 있어 가느다란 세포(細布)와 비슷하다. 양 볼이 다른 것에 비해 높게 튀어나와 있을 뿐 아니라 살도 또한 풍부하여 맛이 좋다”고 하였다. 반지락은 바지락의 전라도 방언으로 ‘바지라기’라고도 한다. 바지락의 명칭은 갈퀴처럼 생긴 바지락호미로 갯벌 바닥을 긁을 때 바지락과 부딪히는 소리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바지락이 바닷물결에 서로 부딪히며 나는 소리에서 유래하였다는 두 가지의 설이 전한다.
바지락은 우리나라의 해안 갯벌에 골고루 서식하는 백합과에 속하는 조개이다. 바지락은 주로 모래가 있는 얕은 바다에 서식하면서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는다. 바지락은 한곳에 머물러 사는 습성이 있어 양식이 가능하다. 주로 봄이나 가을에 갯벌에 바지락 치패(稚貝)를 뿌렸다가 이듬 해 4월부터 수확한다. 2014년 이후로는 부안군에서도 바지락 치패를 70~100만 마리씩 갯벌에 방류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우선 바지락의 남획이 가장 큰 원인이고, 인근지역의 간척사업으로 인한 바다 생태환경의 변화와 해양오염도 바지락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지락에는 글루탐산과 베타인, 이노신산, 호박산이 들어 있어 특유의 감칠맛이 풍부한 식품이다. 필수 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이 많이 들어 있어 간장 질환과 황달에 효과가 있으며 타우린 성분도 풍부하여 피로회복에 좋다. 베타인 성분은 간장의 기능이 저하되어 지방이 간장에 축적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비타민B12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성장촉진과 조혈작용에 도움이 된다.
군산방향에서 새만금방조제를 통과하면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 일대에는 바지락죽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모여 있는 ‘새만금 바지락죽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바지락살에 쌀과 채소를 넣고 끓이다가 녹두, 당근, 인삼채 등을 넣어 익힌 바지락죽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바지락죽 외에도 매콤하고 담백한 맛의 바지락회무침과 고소한 맛이 일품인 바지락전 등을 맛볼 수 있다.
멥쌀, 바지락, 녹두, 표고버섯, 당근, 인삼, 다진 파, 다진 마늘, 간장, 참기름
조리과정정약전(丁若銓, 1758-1816년)이 저술한 『자산어보』에서 바지락을 천합(淺蛤)이라 하며 "큰 것은 지름이 두치 정도이고, 껍질이 매우 얇으며, 가로, 세로 미세한 무늬가 있어 가느다란 세포와 비슷하다. 양 볼이 다른 것에 비해 높게 튀어나와 있을 뿐 아니라 살 또한 풍부하며, 빛은 희거나 혹은 청흑색으로 맛이 좋다.”라고 기록했다.
황도는 1979년에 연륙교가 착공되기 이전까지는 안면도의 부속섬이었다. 일찍이 안강망 어선이 발달해 600명이 거주할 정도로 번성했다. 안강망어업을 중단하면서 새로운 벌이로 바지락 양식을 시작했다. 황도 앞쪽 윽섬까지 넓게 갯벌이 펼쳐져 있는데, 사질토가 많아 바지락 양식의 최적지이다.
윽섬은 소나무가 빼곡한 작은 섬으로, 썰물이 되면 섬 주변에 4㎞ 이상 갯벌이 펼쳐진다. 이와 더불어 서산 AB지구 방조제를 건립한 후 한동안 오염방지를 위해 뿌린 황토의 영향으로 한동안 바지락 생산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곧 민물과 오염수를 쏟아내면서 바지락이 일시에 폐사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황도 주민들은 안강망 어선 운영을 중단한 후 1970년대 말부터 바지락 생산을 했다. 한동안은 1년 내내 바지락을 채취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지금은 5~7월에만 바지락을 캔다. 과거에는 100㎏을 캤으나, 지금은 30~40㎏ 정도만을 채취한다. 어촌계원들만이 바지락을 캘 수 있으며, 각 계원은 일정량만을 캘 수 있는데, 가족이라면 2명이 1명의 작업량을 채우면 된다.
어촌계는 평등하고, 공평하게 운영하기에 지금껏 갈등이 없었다. 가을과 겨울에 모래를 넣고, 청소도 하고, 봄에는 바지락 치폐를 넣어 바지락 생산환경을 가꾸고 있다. 황도 주민들은 다른 지역과 달리 자연산 생산을 고집하고 있다. 천혜의 갯벌을 갖고 있기에 품질 좋은 바지락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황도에서 바지락은 양력 5월 초부터 7월 말까지 채취하는데, 5월에 채취한 것이 가장 품질이 좋다. 7월이 지나면 바지락이 산란하므로 채취하지 않는다. 9월에는 가을 바지락을 캐는데, 봄철 바지락과 달리 살이 빠져 알이 작다. 황도 주민들은 어촌계장의 지시에 따라 바지락을 채취한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큰 황도 앞 갯벌이 열리면 경운기와 트랙터를 타고 갯벌 안까지 들어간다. 외떨어진 윽섬 주변의 45만평 갯벌에서 바지락이 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갈퀴와 바구니를 들고 나가 갯벌을 긁어 바지락을 채취한다. 갓 채취해온 바지락으로는 젓갈을 담거나, 수출용으로 판매한다. 바지락을 판매하는 수협 입찰은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금요일에 진행된다.
선재도는 갯벌어업과 연근해 어업으로 번성했던 유인도였다. 2000년에 대부도와 연결한 선재대교가 가설되면서 선재도는 연륙되어 뭍이 되었다. 선재도의 섬 동남부 일대의 넓은 간석지는 서해 최대 바지락 양식장이다. 선재도의 바지락 양식장은 1926년에 바지락 ‘생산 허가권’을 취득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에는 선재도 어촌계에서 버려진 갯벌을 양식장으로 개발해서 소득증대를 했다고 하여 당시 어촌계장이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선재도의 바지락 주요 서식장은 바지락의 양이 적어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 어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바지락은 갯벌 중 모래가 많이 섞이거나 자갈이 많은 곳에 주로 서식한다. 이런 지형을 선재도 주민들은 ‘작지’라고 부른다. 펄이 적어 땅이 질지 않아 바지락 양식장까지 먼 거리를 운반도구인 경운기가 드나들 수 있어 편리하기도 하다. 가장 넓은 양식장은 '우꾸지'로, 과거에는 투석 후 굴을 양식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굴이 나지 않아 바지락 양식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우꾸지 어장은 여전히 바지락 생산이 많은 곳 중 한 곳이다.
선재도에는 590가구가 있는데, 주민은 960명이다. 이중 어촌계에는 231가구만이 가입되어 있다. 어촌계에 속한 가구의 모든 주민은 바지락 채취에 참여할 수 있다. 가구당 하루에 일정량만을 채취할 수 있는데, 만약 이 규정을 어긴다면 사흘 동안 바지락 채취를 금지한다.
또한 계절별로 갯벌 이용현황이 다르므로 채취량도 다르다. 봄철에는 갯벌의 물이 잘 빠지지 않으므로 30㎏을 기준으로 삼고, 물이 많이 빠지는 여름부터는 40㎏을 기준으로 삼는다. 바지락을 채취하는 날에는 어촌계 사람들이 경운기를 타고 모여서 함께 이동한다. 날이 긴 바지락 채취용 호미를 사용해 채취한다. 채취한 바지락은 나일론 줄로 엮은 바구니에 담는다. 알이 작은 것은 채취하지 않아 성장하도록 둔 후 굵은 것만을 캔다.
선재도는 1994년 이후 자연환경의 변화와 개발 등으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1994년에 시화호 방조제가 완공되었고, 영흥화력발전소가 2004년에 건립되면서 선재도 주변 조류와 수온이 변화되었다. 그래서 옹진군과 인천 수산기술지원센터 등이 어장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7년부터 10여 년 동안 바지락은 사라지고, 대신 쏙이 번성했다. 변화한 수온이 쏙의 서식환경에 적합해서인지 바지락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2015년에 어장에 사석을 설치한 후 쏙이 사라졌고, 반대로 바지락이 늘고 있다. 그러나 해양환경 및 자연환경의 변화로 바지락 어장은 예전과 달라졌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바지락 채취량은 조금씩 늘고 있는 상황이다.
안면도 지역은 기본적으로 농업이 우세하고 어업이 미약한 편이나, 바다와 인접한 마을이기에 전통적으로 어업과 함께 패류를 채취하는 것이 경제 활동에 있어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풍어를 기도하던 당제와 달리 패류 채취에 대해서는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신앙적, 문화적 장치가 마땅히 없었다.
그리하여 패류를 주요 소득원으로 삼는 마을에서는 조개와 굴 등의 생산을 높이기 위한 조개부르기제, “또는 굴부르기제가 자연스럽게 행해졌다. 이 명칭은 처음에는 ‘조개 부른다’, ‘굴 부른다’ 정도로 불리다가 조개부르기, 굴부르기로 명사화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마을의 자생적 차원에서 시작된 신앙적 놀이고 지역문화행사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제’가 된 것이다.
안면도는 섬이지만 지역에 따라 지형과 자연환경이 각기 다르다. 동쪽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천수만이, 서쪽에는 넓은 서해가 자리하며, 남쪽에는 천수만과 서해를 잇는 좁은 해역이 형성되어 있다. 동쪽 천수만 일대는 파고가 낮고 넓은 갯벌이 있어 다양한 어종의 서식처 역할을 한다. 반면 서편은 모래사장과 바위가 많은 지형이다.
안면도 동쪽과 서쪽은 자연환경이 다른 만큼 서식하는 어패류도 차이가 난다. 동쪽 해안에서는 바지락, 굴, 김 등이 많이 나고, 서쪽 해안에서는 해삼, 전복 등이 난다. 이는 어민들의 생업과 전통적인 풍습에도 영향을 미쳤다. 천수만 일대의 어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바지락, 굴 등을 채취하며 생계를 이어왔으나, 서해안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이주해 온 제주도 해녀들이 해삼, 전복 등을 채취하였다. 천수만 일부 어촌에서 조개, 굴, 홍합 등의 패류가 번성하길 기원하는 전통적인 풍습이 전해 내려오는 이유다.
조개부르기 등이 행해진 시기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 특정 지역 내에서도 이러한 풍습이 존재하는 마을이 있고, 아닌 마을도 있다. 안면도 내에서도 패류가 나고, 또 그것이 경제 활동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마을에서만 조개부르기 풍습이 존재하는 것이다. 안면도 동부 해안의 간월도, 황도, 대야도, 그리고 안면도 서부 해안의 신야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신야리를 기준으로 북쪽 해안에는 이러한 풍습이 없다.
누동리의 경우에는 당제 날, 당제 뒤풀이의 한 과정처럼 조개부르기를 행했다. 당제가 끝나고 용왕제까지 마치면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개부르기를 하였다. 패류 채취는 기본적으로 부녀자들의 일이었다.
반대로 안면도 최남단 고남리에서는 당제를 지내기에 앞서 바닷가 장벌에서 홍합제를 지냈다. 고남리에 있는 옷점은 고남면 내에서 바지락으로 가장 큰 수익을 얻는 마을이다. 오래전부터 바지락 채취는 주민들의 주요 생업이었다. 마을 앞 갯벌에는 씨조개의 양이 매우 풍부하여 일찍부터 바지락 어장을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종자를 뿌리지 않아도 바지락 수확량이 일정하게 늘었다. 10여 년 전부터는 일본 등지로 판로를 개척하여 수익이 더 늘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 전날이면 조개가 많이 들길 기원하는 뜻에서 조개부르기제를 지냈다. 군에서도 지원하는 지역의 주요 행사였기에 옷점을 조개부리마을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옷점의 조개부르기를 기록한 최초의 자료는 <서산민속지>이고, 1990년대 후반에 발간된 도서지에서도 유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전자는 홍합제, 후자는 조개제로 표기하였을 뿐, 전체적인 절차와 내용은 비슷하다.
다음은 고남4리 옷점 마을 주민의 조개부르기제에 대한 증언이다.
이렇듯 조개부르기는 고남4리 옷점 마을의 전통적인 풍습이었다. 이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여 현재는 조개부리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