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특유의 명물 식품으로 도약하다, 부산어묵

    어묵의 고장 부산, 그리고 '부산어묵'

    부산 어묵


    날씨가 쌀쌀해지면 구미를 당기는 음식이 있다.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과 감칠맛 나는 국물에 익혀낸 어묵이다. 나이 든 어른들에게는 궁핍했던 시절에 따뜻한 위로가 되었던 추억의 음식이자, 지금은 젊은이들의 주전부리로 사랑받는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이다.


    어묵은 어느 가정에서나 어묵볶음으로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국민반찬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어묵은 길거리 포장마차로부터 시장의 음식좌판, 분식집, 어묵전문점, 고급일식집 등 여러 다양한 공간에서 접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널리 보편화된 식품이다. 




    어묵하면 거의 고유명사와 같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부산어묵’이다. 상점이나 마트의 식품코너에는 제조업체는 달라도 ‘부산어묵’이라는 상표를 단 어묵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심지어 어묵꼬치를 파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도 그냥 어묵이 아닌 ‘부산어묵’이라고 붙여 놓은 팻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마도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간에 부산이 어묵의 고장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명성에 기대고자 한 것이다.

     

    부산역에서 내리면 2층 열차대합실에는 다른 기차역에서는 볼 수 없는 대형어묵상점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른바 ‘오뎅’으로 알려진 어묵꼬치를 판매하는 매점은 여느 기차역사에도 있지만 다양한 어묵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는 기차역은 아마 부산이 유일할 것이다. 더군다나 판매하는 어묵제품도 기발한 제품들로 다양하다. 예컨대 다양한 종류의 ‘어묵타르트’ 제품은 어묵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통념을 사라지게 만들 정도이다. 부산이 어묵의 고장이라는 것을 부산역을 나서기 전에 체험하는 순간이다.


    부산어묵, 부산의 명물로 자리잡다

    부산어묵은 1996년부터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를 기점으로 항도(港都) 부산이 국제적인 문화관광도시로 발돋움하면서 부산의 명물로 더욱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영화제 초기에 개막식이 진행되었던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BIFF광장에는 부산어묵과 어묵국물에 익힌 가래떡고치, 씨앗호떡 등 예전에는 부산 특유의 간식을 파는 좌판에는 연중 내외국인들로 붐빈다. 남포동을 지나면 국제시장의 ‘오뎅골목’과 부평깡통시장의 ‘부산어묵골목’ 등지에서는 여러 가지 부산어묵을 맛보고 다양한 어묵제품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부산광역시가 어묵의 고장으로 뿌리내리게 된 배경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다. 부산에서 어묵 생산의 역사는 1907년 11월 대창정(大昌町, 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설립된 야마구치어묵제조소(山口蒲鉾製造所)에서 시작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1920년대까지 수산물통조림 가공공장이 주로 많이 들어섰다가 1925년~1929년 무렵에는 어묵공장들이 다수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 부산에 설립된 어묵공장 15개소 가운데 10여 개가 이 시기에 생겨났다. 어묵공장의 소유주는 대부분 일본인이었지만, 1918년 9월 지금의 범일동에 설립된 정가마보코제조소(正蒲鉾製造所)와 1927년 2월 지금의 보수동에 설립된 산삼가마보코점(山三蒲鉾店) 등 두 곳은 김정선(金正善)과 나경중(羅景中) 등의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1907년부터 1929년 사이에 설립된 부산의 어묵공장들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날 때까지 대다수의 공장들이 영업을 계속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에서 어묵 제조기술을 익히고 귀국한 박재덕 씨가 1950년 영도(影島)에 삼진식품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동광식품, 영진식품, 환공어묵 등 어묵제조업체들이 설립되면서 부산어묵의 전통과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부산어묵은 1940~1960년대까지는 생선을 맷돌에 통째로 갈고 기름 솥에서 튀기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에서 자동화기기를 도입하면서 제조방식의 개선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는 1980년대 외식산업의 성장을 발판으로 새로운 도약기에 접어들었다. 2014년에는 부산의 10대 히트상품으로 부산어묵이 부산국제영화제 등과 함께 선정됐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부산어묵은 어육 함유량 70%의 원칙을 지키면서 맛과 품질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오뎅이 아니라 어묵으로 불러주세요

    어묵은 오래전부터 ‘오뎅(おでん,御田)’이라는 일본어 명칭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오뎅이 어묵이라는 우리말로 바뀌게 된 시기는 1992년 무렵이다. 당시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한 ‘식생활관련순화안’에서 생선묵을 ‘어묵’으로 바꾸면서 교육기관과 방송언론매체를 통해 계도(啓導)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큰 변경사유는 일본어의 잔재를 우리말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원을 먼저 살펴보면 ‘오뎅’으로 불리던 어묵은 사실 ‘오뎅’이 아니다.

     

    일본 위키피디아(ウィキペディア)의 오뎅 항목을 인용하면 “가다랑어와 다시마에서 취한 맛국물에 양념으로 맛을 내고 튀긴 어묵(さつまあげ)ㆍ한펜(はんぺん)ㆍ구운 대롱어묵(焼きちくわ)ㆍ동그랑땡(つみれ)ㆍ곤약ㆍ무ㆍ고구마ㆍ유부ㆍ대롱어묵ㆍ소 힘줄ㆍ삶은 달걀ㆍ튀긴 두부 등 다양한 종류를 넣어 장시간 끓인 조림요리의 일종”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먹는 어묵은 일본의 오뎅요리에 사용된 재료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요리명 자체가 어묵의 이름으로 와전된 것이다.

     

    일본의 오뎅요리에 들어간 어묵은 종류만 살펴보면, 우선 사츠마아게(さつまあげ)는 으깬 생선살을 둥글고 납작하게 만들어 튀긴 어묵이다. 한펜(はんぺん)은 으깬 생선살을 삼각형 또는 반달형으로 쪄서 만든 어묵이다. 츠미레(つみれ)는 으깬 생선살을 완자형태로 동그랗게 뭉쳐서 삶은 것이다. 치쿠와(ちくわ)는 대나무에 으깬 생선살을 붙여서 굽거나 쪄낸 어묵으로 완성 후 대나무를 빼내면 어묵 가운데 구멍이 마치 대나무의 빈 속과 같다고 하여 대롱어묵으로 불린다. 이외에도 일본의 어묵은 재료와 가공법, 지역에 따라 무수히 많은 종류가 있다. 이러한 일본의 어묵은 물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 부들의 열매와 닮았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가마보코(かまぼこ, 蒲鉾)로 통칭된다. 


    조선시대 어묵, '가마보곶'

    우리가 어묵으로 부르는 식품은 일본의 가마보코에서 유래한 것이다. 가마보코와 관련하여 우리 고문헌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살펴 볼 수 있다. 18세기에 편찬된 『수문사설(謏聞事說)』이라는 조리서에 ‘가마보곶(可麻甫串)’이라는 음식의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가마보곶’은 바로 ‘가마보코’의 발음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으로 원어와 상당히 유사하다. 

     

    가마보곶. 숭어 혹은 농어 혹은 도미를 잘라서 편을 만든다.

    별도로 소고기, 돼지고기, 목이버섯, 석이버섯, 표고버섯, 해삼 등
    여러 재료 및 파, 고추, 미나리 등 여러 가지 채소를 다진다.

    어편(魚片) 1층에 다진 소 1층, 또 어편 1층에 다진 소 1층으로 이와 같이 3~4층을 만든 후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녹말가루로 옷을 입혀
    끓는 물에 삶아낸 후 칼로 잘라서 편을 만든다.

    그러면 어편과 다진 소가 서로 둘둘 말린 것이 마치 태극모양과 같다.
    비로소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소의 여러 재료가 다섯 가지 색으로 나뉘는데,
    칼로 자른 후에는 무늬의 결이 매우 아름답다.

    (可麻甫串 秀魚 惑 鱸魚 惑 道味魚 切作片 另以 牛肉 猪肉 木耳 石耳 蔈古 海蔘 諸味 等 及 蔥 苦艸 芹 諸物爲末 魚片一層加饀物一層 又 魚片一層加饀物一層 如是三四層後 捲如周紙㨾 以菉末爲衣 以沸湯煮出後 以刀切作片 則魚片及饀物 相捲回回如太極㨾 乃以苦艸醬食之 饀物諸味 分五色爲之 刀切後 紋理尤佳).

     

    조선시대에 이미 어묵 만드는 법이 우리나라에 알려졌다는 것도 흥미롭기도 하지만 일본의 가마보코보다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수문사설』의 저자가 숙종(肅宗) 때 어의를 지낸 이시필(李時苾) 혹은 왕실의 종친이었던 이표(李杓) 중 한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두 사람이 모두 궁중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가마보곶’은 궁중음식을 염두에 두고 수록한 것이 아닌 가 한다. 실제로 1902년(고종 39) 고종의 즉위 40주년과 보령 51세를 축하하기 위한 잔치의 전말을 기록한 『임인진연의궤(壬寅進宴儀軌)』에는 대전(大殿)에 올리는 찬품(饌品)에 ‘감화부(甘花富)’라는 음식이 등장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감화부’가 “감화보금을 한자를 빌려서 쓴 말이다.”라고 한 점에서 가마보곶과 비슷한 어묵요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묵보다는 완자에 가까운 음식

    어묵이라는 이름도 엄밀하게 따져보면 그다지 적확한 명칭은 아니다. 어묵은 ‘생선살로 만든 묵’이라는 뜻일 텐데 실제의 묵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묵은 곡식, 열매, 해초, 생선, 가축 등에 들어 있는 전분(식물)이나 콜라겐(동물) 성분을 끓인 다음 식히는 과정에서 젤라틴화 시킨 음식을 말한다. 녹두묵, 도토리묵, 우무, 박대묵, 족편 등이 묵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그런데 으깬 생선살에 전분을 섞고 모양을 만들어 익혀낸 식품에 ‘묵’자가 붙었으니 적절하지가 않은 것이다. 식품의 이름에는 그 식품의 재료와 조리법에 따른 종류를 내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묵이라는 명칭은 오뎅을 우리말로 바꿀 때 적절한 용어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살펴보지 못한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어묵은 우리 전통음식 중에서 ‘묵’보다는 ‘완자(完子)’에 가까운 음식이다. 완자는 소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육류와 생선 등을 재료로 삼는 음식으로서, 다진 고기에 두부를 넣고 둥글게 빚어서 기름에 지진 음식을 말한다. 완자는 국물음식에도 잘 어울려서 조선시대에는 완자로 만든 완자탕이 궁중과 반가(班家)에서 애용하는 음식이었다. 또한 중국에도 ‘유완[어환, 魚丸]’이라는 어묵과 유사한 음식이 있다. 생선살 다진 것에 전분을 섞은 다음 둥글게 빚어서 삶거나 튀긴 음식으로 광동요리에 많이 쓰이며 중국인들이 간식으로 애용한다.

  • 어묵의 새 변화, 고급 간식이 된 어묵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오뎅공장이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가끔 오뎅 심부름을 시키셨다. 골목을 나와 큰길을 건너면 오뎅공장이 보였다. 거대한 통의 흰 어묵을 반죽하던 장화 신은 키 큰 아저씨는 동그란 모양과 길쭉한 모양, 넓적하고 네모난 모양의 오뎅을 섞어 한 봉지 가득히 담아주셨다. 문 앞에 서 있던 나는 따듯하고 말랑한 기름진 오뎅을 가슴에 품었다. 심부름의 보상으로 신선하고 고소한 오뎅을 입에 오물거리면서.


    어묵탕 이미지
    어묵탕

    필자와 오뎅과의 인연은 이게 다가 아니다. 도시락을 쌌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시지보다 오뎅 반찬을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 학원에 다닐 때도 근처 포장마차에서 파는 오뎅을 사 먹었다. 포장마차의 주인아주머니는 손님이 없는 짬짬이 얇고 넓은 오뎅을 삼등분으로 접어서 대나무 꼬지에 주름지게 꽂았다. 그 손놀림이 놀라울 정도로 빨라서 넋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자고로 오뎅은 쫄깃하고 살짝 오동통하여 국물 맛이 배어 있어야 하며 간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했던 그 분홍색 플라스틱 간장통. 지금은 솔을 사용하여 오뎅에 간장을 바르거나 스프레이로 간장을 뿌려 먹지만 그때는 그랬다.


    오뎅 바람이 서울에서 강하게 불어댄 것이 1990년대 즈음이었던 것 같다. 종로와 을지로 등 거리마다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었고 특히 붉은 페인트로 ‘부산오뎅’이라고 쓴 포장마차에서는 연실 흰 수증기를 뿜어댔다. 그런데 우리에게 추억이 되고 있는 ‘오뎅(おでん)’은 일본요리의 이름이다. 어묵과 우무, 무 등을 넣고 끓인 냄비 요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뎅이 아닌 어묵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1935년 9월 18일 매일신보를 살펴보면 ‘「熬뎅」집 出入도 學生은 안된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중략) 최근 표면으로는 오뎅집이라고 하고 비밀히 二三명의 식녀급(女給, 카페나 다방, 음식점 따위에서 손님의 시중을 드는 여자)을 두어서 학생생도들을 끄터들이는 오뎅집들이 잇서서 오뎅집에도 학생생도들의 출입을 금하게 되엇다(기사내용 그대로 인용).


    어묵 제조과정 이미지
    어묵 제조과정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통영과 부산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어묵공장이 생겼다. 전문가들은 1907년 야마구치어묵제조소(山口 蒲鉾製造所)에서 시작되어 해방 직전까지 대략 15개 내외의 어묵공장들이 부산에서 운영되었다고 전한다. 이후 1940년대 말과 1950년대를 전후해서 동광식품과 삼진식품이 영도 봉래시장 입구에 들어선다. 한국인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어묵공장이다. 한국전쟁 이후 부산은 갈치와 조기, 노가리(어린 명태) 등 어묵의 재료 조달이 수월하여 호황을 맞게 되고 연이어 이와 같은 업체들이 생겼다. 그리고 공동 브랜드로 부산오뎅이 탄생한다.


    2013년 12월 19일 본점 개장한 날이 제가 입사한 날이에요. 삼진어묵이 1953년에 설립했으니까 64년(2018년 기준) 됐지요. 삼십 년 전에는 어묵이 백 원도 안 했어요. 봉래시장에서 사 먹었지요. 여기서 배출한 상인들이 꽤 많아요.


    삼진어묵 본점에서 흰 모자를 쓰고 어묵을 판매하는 황영옥(여, 60세) 씨의 이야기이다. 일하는 내내 웃는 얼굴인 그녀는 직장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 보였다. 3대를 이어 운영하는 이곳의 대표는 박용준 씨이다. 그는 어묵 경영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다. 메뉴만 해도 40종이 넘는다. 예전처럼 국물에 불려 간장에 찍어 먹거나 반찬으로 먹는 어묵이 아니다. 빵처럼 음료수와 먹는 고급 간식이 되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시절, 사원 두 명이었던 삼진어묵은 현재 16개의 직영점을 운영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변함이 없는 것은 ‘좋은 재료’를 써야 한다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운영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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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묵고로케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어묵의 종류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필자는 빵을 고르듯 신중한 고민 끝에 몇 가지를 쟁반에 담았다. 다양한 어묵의 모양만큼 맛도 가지가지이다. 제일 인기가 좋다는 어묵 크로켓(korokke). 소리까지 바삭한 크로켓의 표피가 부서지면서 신선한 생선살이 부드럽게 혀에 와 닿는다. “음~” 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도움 주신 분]

    삼진어묵은 1953년 박재덕 씨가 창업하여 박종수 씨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박용준 씨가 3대째 운영하고 있다. 삼진어묵의 영도 본점에서 사원으로 근무하는 황영옥(여, 60세) 씨가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 요리 이름에서 재료 이름이 된 오뎅

    한국땅에 정착한 일본식 오뎅과 어묵

    오뎅은 일본말로 おでん이라 표기한다. 오뎅은 일본에서 만든 요리로 여러 가지 어묵을 무, 곤약 등과 함께 국물에 삶아낸 요리이다. 즉 요리의 이름인데 한국에서 오뎅은 그 요리의 재료(어묵)를 지칭하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오뎅 즉 어묵은 흰색의 물고기살을 으깨어 소량의 소금·설탕·녹말 등을 섞어 반죽한 것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가열, 응고시킨 음식이다. 어묵도 일본에서 만들어 한국에 들어온 것인데 일본말로 가마보코(蒲鉾)라 한다. 1700년대 역관 이표(李杓)가 쓴 『소문사설(謏聞事說)』에 가마보곶(可麻甫串)이라는 요리가 나오는데 물고기살을 으깬 것이 아니라 얇게 저민 것이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또 덴부(デンフ)라는 어묵도 있는데 이것은 도미살 등을 잘게 찢어 설탕, 간장, 미림으로 조리한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시장에서 분홍빛 물을 들인 덴부를 팔았다고 한다.(『동아일보』1930.03.07. 「부인의 알아둘 봄철 요리법(2)」)


    해산물이 풍부한 부산에 어묵공장을 세우다

    일본식 어묵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한국땅에 정착했다. 1908년 통영에 정착한 일본인 핫토리 겐지로는 1920년 3월 통영통조림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통조림과 함께 덴부를 생산했다. 통영에는 일본인 어부들이 많이 이주하였는데 이들이 발달된 장비로 많은 물고기를 잡으면서 이 해산물을 대규모로 가공하게 된 것이다.(핫토리 마사타카 엮음, 우정미 옮김, 차철욱 역주 및 해제, 『식민지 조선의 이주일본인과 통영-핫토리 겐지로』, 국학자료원, 2017.)

    부산 물떡과 오뎅
    부산 물떡과 오뎅

    부산에도 일제 강점기에 많은 어묵공장이 생긴다. 부산 지역 어묵에 대해서 김승의 연구(김승, 「식민지시기 부산의 수산가공업과 수산가공품 현황」, 『역사와경계』101, 2016.)를 바탕으로 알아본다. 부산에서 어묵 생산은 1907년 11월 설립된 야마구치어묵제조소(山口 蒲鉾製造所)에서 시작되어 해방 직전까지 대략 15개 내외의 공장들이 운영되었다. 식민지 시기 15개의 어묵공장 중 10여 개는 1925~1929년 사이에 생겨났다. 이들 공장들은 대부분 폐업없이 해방전까지 어묵을 제조하였는데, 부산의 어묵공장 폐업률이 낮았던 것은 원료로 사용되었던 수산물 종류가 풍부했고, 소비지가 부산에 한정되지 않고 다른 지역에도 판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31년 1월 함흥지방에서 소비되던 어묵 중 상당량은 부산과 통영에서 생산된 어묵들이었다. 당시 부산어묵과 통영어묵은 인천을 통해 함흥으로 공급되었다. 부산에서 함흥으로 경부선과 경원선을 통해 어묵이 유통되는 경로 이외에, 부산에서 뱃길로 통영을 거쳐 인천으로 수송된 뒤 인천에서 경인선과 경원선으로 함흥까지 운송되는 교통로가 있었던 것이다. 1931년 함흥 지역민들은 해가 갈수록 부산어묵의 품질과 맛이 떨어진다고 평하고 있다. 따라서 함흥 지역민들은 부산어묵보다 통영어묵을 선호하였다.


    이 어묵공장은 대부분 일본인들이 운영했다. 김정선(金正善), 나경중(羅景中) 등 조선인들이 운영하는 공장도 있었으나 극히 소수였다. 1922년 부산지역의 민족별 어묵생산을 보면 일본인 어묵 생산은 69,928원, 조선인의 어묵생산은 6,892원으로 조선인이 차지한 비율은 10%도 되지 않았다. 1931년에는 더 벌어져 일본인 어묵생산액은 157,760원, 조선인 어묵 생산액은 10,000원으로 조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6% 로 감소되었다. 공장의 위치는 해안에서 벗어나 있는 지역(부평정, 보수정, 토성정, 범일정)에 흩어져 있었다.


    우리의 삶으로 들어온 어묵

    어묵 생산량이 많아짐에 따라 어묵을 술안주로 파는 오뎅집이 많이 생겼다.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 초반부에 오뎅집에 대한 묘사가 있다. 주인은 일본 여인으로, 유리컵에 노란 술을 담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오뎅접시가 안주였다. 술집의 여주인과 여종업원이 손님에게 술을 따라주며 술시중을 들었다. 이러한 서비스외에 전화 서비스를 하는 오뎅집도 있었다. 종로 2정목 뒷골목 어느 오뎅집은 ‘이 가게에 오시는 손님에게는 전화를 무료로 제공합니다.’라는 문구를 가게 벽에 붙이고, 벽이나 다른 장소에 전화를 설치하였다. 그러니 홀연히 전화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나 장차 쓸 필요가 있는 사람은 그 가게로 갈 것이었다.(『동아일보』1938.04.23. 「상점에 특징이 있도록 사입에 주의가 긴요」) 오뎅집은 해방 후에도 서민들을 위한 술집으로 자리잡았다.

    1938년 4월 23일 상점에 특징이 있도록 사입에 주의가 긴요
    1938년 4월 23일 상점에 특징이 있도록 사입에 주의가 긴요(사진출처:동아일보)

  • 부산 어묵의 자존심, 삼진식품

    어묵의 메카, 부산

    부산의 개항과 더불어 부산어묵의 역사가 시작된다. 부산어묵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의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부평시장은 쌀, 어묵, 채소, 청과물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라는 기록이다. 우리나라 어묵의 시작은 조선시대 숙종 45년(1719년)에 편찬된 『진연의궤』에 등장하는 ‘생선숙편’을 그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현재의 부산데파트 자리에는 일본인이 1936년 세운 어묵공장이 있었다. 이 어묵공장은 1945년 광복이 되면서 공장장이었던 박동원이 이어받았다.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최초의 어묵공장은 부평동시장에 이상조가 설립한 동광식품이다. 삼진식품을 세운 박재덕은 일본에서 어묵제조 기술을 배워 영도 봉래시장 입구에서 1950년 초 상호없이 어묵을 판매하다 1953년 삼진식품 가공소를 세웠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으로 많은 피난민이 들어오게 되어 부산의 어묵 생산은 호황기를 맞았다. 이즈음 삼진식품과 동광식품 출신의 공장장이 환공어묵을 세우면서 부산의 어묵시장은 동광식품·삼진식품·환공어묵의 3자구도가 형성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이들 식품회사에서 기술을 익힌 기술자들이 독립을 하면서 부산어묵 시장은 춘추전국시대가 되었다. 영진·미도·대원·효성 등이 이때 생겨난 공장이다. 3각 구도를 형성했던 동광식품은 잠시 맥이 끊어졌지만 중앙시장에서 최근 창업주의 손자가 이어가고 있다. 환공어묵은 1990년 부도가 난 이후 새 주인이 경남 김해로 본사와 공장을 이전하였다. 삼진식품은 영진식품과 더불어 어묵시장의 부침 속에서 부산어묵의 전통과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부산어묵의 자존심, 삼진식품

    삼진식품은 박재덕이 1950년 초 상호없이 판잣집에서 어묵을 가공하여 판매하면서 시작되었다. 박재덕은 일본에서 어묵제조 기술을 배워와 가게를 꾸리기 시작한 것이고, 1953년 삼진식품 가공소라는 상호를 내걸었다. 현재의 삼진식품이라는 상호는 1980년대 중반에 변경하였고, 1983년부터는 박재덕의 아들인 박종수가 가게를 이어서 운영 중이다.


    1950년 6·25전쟁 직전 박재덕은 봉래시장에 터를 잡았는데, 그 이유는 시장 주위에 인구가 많고 어묵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의 수급이 쉬웠기 때문이다. 당시 어묵 주원료는 연근해에서 잡히는 '풀치'와 '깡치'였다. 현재의 롯데백화점 광복점 자리는 '큰 도가'라 하던 제1수산시장이 있었고, 남포동주민센터 자리는 '작은 도가'라 하던 제2수산시장이 있었다. 어묵의 품질은 재료의 선도가 결정한다. 때문에 운송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에 부평동시장이나 영도는 어묵 제조의 메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삼진식품은 어묵 제조 시 어육과 밀가루의 함량비율을 75:25를 고집한다. 박종수는 


    “밀가루 함량이 높으면 절대로 이런 탄력이 안 나온다. 때로는 생산원가보다 재료비가 더 높을 때도 있지만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의 경쟁 속에서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품질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삼진식품은 2011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일본에 어묵을 수출하였다. 그 비결은 ‘선대부터 고집해온 어묵에 대한 장인정신’과 ‘자동화 생산시설을 갖춘 공장’이었다. 박종수는 “어묵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밀가루 함유량이다. 일본은 생선을 70~80%정도 넣는다. 우리도 생선 함유량을 75~80%정도 고집하고 있다. 심지어 90~100%까지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삼진식품은 “지금까지 어묵을 만들어오면서 생선함유량이 75% 이하로 내려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한다.

  • 명품 수제어묵을 만드는 부산 효성어묵

    어묵과 오뎅

    어묵과 오뎅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묵과 오뎅은 조리 방법이 조금 다르다. 어묵은 우리말, 오뎅은 일본 어원으로 구분한다. '어묵'은 생선 살코기에 전분이나 양념 등을 더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익힌 식품이다. 부산어묵은 주로 국내 연근해장에서 잡히는 어린 갈치인 '풀치'와 원양어업에서 잡히는 명태와 도미 그리고 광어 등을 주재료로 만든다. ‘오뎅’은 무·곤약 등에 에 계란·유부·어묵을 함께 국물에 삶은 일본식 요리 ‘니코미 오뎅’의 줄인 말이다.

    부산 효성어묵 외관
    부산 효성어묵 외관
    부산 효성어묵
    부산 효성어묵

    부산연구원은 2016년 『부산어묵의 역사』에서 어묵과 오뎅의 특성이나 차이 등을 전문가와 시민에게 물어 조사했으나 특별한 차이점을 설명하지 못하였다. 다만 맛에 있어 ‘어묵은 식감이 탱탱하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간장 등으로 간을 해 독특한 맛을 낸다. 반면 오뎅은 재료의 식감이 부드럽고 간이 센 편이라서 부산 오뎅에 맛을 들인 미식가들의 입맛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하였다. 통칭으로 불리는 ‘부산어묵’은 각각 제조방법, 제품구성 등이 다양할 뿐 아니라 업체간에도 제조법이 다르다. 일제강점기 온천장 일대에는 주로 일본인 관료들이 거주했다. 이곳에서는 일본인들의 까다로운 식성으로 인하여 일본인들이 고향에서 먹었던 맛에 맞춘 고급 어묵이 만들어졌다.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1960년, 성명섭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있는 온천시장에서 온천식품을 세워 어묵 제조와 판매를 시작하였다. 이후 1984년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동에 선우식품을 만들어 어묵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1992년 성명섭의 딸 성재란과 사위 김천환이 선우식품을 이어받아 효성식품을 세웠고, 2009년 상호를 (주)효성어묵으로 변경하였다. 2015년 성명섭의 손녀인 김민정이 효성어묵을 이어받았다. 효성어묵은 2009년 부산 지방 식품의약품 안전청의 HACCP 인증을 받았다. 2016년에는 이노비즈 인증을 받았고. 당해 9월에는 여성기업 인증을 받았다.

    부산 효성어묵 본사
    부산 효성어묵 본사

    1923년 출생한 성명섭은 청년 시절부터 부산 온천장과 일본을 오가며 무역에 뛰어들었다. 광복 후 성명섭이 생각한 사업은 명품 수제어묵을 만드는 것이었다. 신선한 재료와 숙련도 높은 성형기술은 어묵의 핵심이다. 주재료인 생선이 신선생육인지 국내외 가공된 냉동어육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신선식품의 물류과정도 중요한 요인이다. 효성어묵은 이 세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효성어묵은 1997년 수제어묵업계 최초로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 입점하였다. 그리고 2008년 미국 수출을 시작으로 일본 등 전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전국 KTX 역사와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2010년부터 납품하기 시작하였고 대중적 브랜드로 편의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3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효성어묵 김민정은 피아노와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했다. 김민정은 효성의 목표를 “천천히 가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어묵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부산의 어묵 산업은 부산의 풍부한 수산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생산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어묵 산업이 발전했다. 효성어묵은 ‘여의도장어’와 공동협력하여 ‘부산 장어어묵’을 개발하여 수출에도 나섰다. 효성어묵은 해양관리협의회(Marine Stewardship Council)의 MSC 인증도 획득하였다. MSC 인증은 MSC 에코라벨(Eco-Label) 사용 권한이 주어지며, 수산물의 어획과 가공·유통 기준에 있어 국제적으로 신뢰도와 인지도가 높아졌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