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음식문화 중 주식(主食)의 식재료로는 단연코 쌀이 수위를 차지한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우리나라는 전통 농업 국가였고 삼국시대부터 벼농사를 지은 이래 쌀을 주식으로 삼았다는 말은 수 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쌀을 주식으로 삼았다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제한적인 것이었다. 국토의 약 70% 이상이 산지지형인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어느 시대이든 인구 대비 쌀 생산량이 넉넉한 정도는 아니었다.
옛날의 농사는 지금처럼 농지개량과 농사기술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천수답이 대부분이어서 자연재해라도 들면 쌀은 커녕 초근목피에 의존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특히 봄철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보릿고개는 1960년대까지 이어질 정도였던 상황에서 쌀밥은 더욱 요원한 것이었다. 그래서 전통시대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사회변혁을 도모했던 이들이 구호로 삼았던 “신분의 귀천 없이 누구나 이팝에 고깃국을 먹는” 세상을 외쳤던 것에서도 당대에 쌀밥이 귀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농촌이 고령화되어 농지가 줄고 쌀 생산량이 감소하여도 소비가 되지 않아 쌀이 지천으로 남아도는 요즘 세상에서는 납득하기가 어려운 사실(史實)이다.
그다음 우리 주식의 식재료는 밀가루이다. 사실상 밀가루는 현대 한국사회 음식문화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당장 국민간편식의 대명사인 라면을 비롯한 짜장면, 칼국수 등의 면류와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빵, 햄버거, 피자, 과자류 등이 모두 밀가루가 들어간 식품이다. 그 소비량 또한 쌀에 대비해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쌀과는 달리 밀가루는 거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한 밀을 가공한 것이다. 우린나라의 기후와 풍토는 밀농사에 적당하지 않아서 예로부터 밀가루는 ‘진가루(眞末)’로 불릴 정도로 귀한 식재료로 취급을 받았다.
과거에는 귀했던 밀가루가 지금은 흔한 식품으로 자리 잡은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이다. 한국전쟁 시기부터 1960년대 말까지 미국으로부터 무상으로 원조 받은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바로 밀가루였다. 예전에는 귀했던 밀가루가 전국에 구호물자로 풀리면서 농촌에서 도시에 이르기까지 밀가루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가 즐겨먹는 수제비, 칼국수, 떡볶이 등의 분식문화도 사실상 1950년대 이후 원조 밀가루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요즘도 1960년도 이전에 태어나 보릿고개를 제대로 경험한 세대에서는 수제비나 국수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어른들이 많다. 양념이나 반찬도 넉넉지 못한 어렵던 시절 원조 밀가루로 만든 밍밍한 수제비나 국수, 장떡을 질리도록 먹은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옛날에 선조들은 쌀과 밀 대신에 무엇을 주로 먹었는지 궁금해진다. 예전에 쌀이나 보리와 더불어 주식으로 삼았던 곡물은 좁쌀과 메밀이었다. 좁쌀은 조선시대 여러 재정기록에 ‘소미(小米)’로 표기될 정도로 주요작물이었고, 지역적으로는 쌀농사가 어려웠던 함경도와 평안도, 황해도 북부지방에서는 좁쌀을 주곡으로 삼았다. 찰기가 많아 차좁쌀로 불리는 차조는 쌀밥에 섞거나 그 자체로 쌀밥을 대체할 수 있는 곡물이었다.
메밀은 거친 황무지에서도 잘 자라는 곡종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구황작물로서도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재배한 작물이다. 특히 찰기가 없고 성질이 냉한 메밀은 예전부터 밥보다는 가루를 내어 면의 재료로 주로 사용하였고, 전국 각 지역마다 메밀로 만든 면을 이용한 국수가 발달하였다.
전국 최대의 메밀 생산지역인 제주도는 거친 화산지형으로 인해 논농사가 거의 불가능하여 오래전부터 메밀을 주식으로 삼았고, 메밀을 이용한 음식문화가 매우 발달한 지역이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꿩모멀국수와 모멀조베기(메밀수제비)가 있다. 그다음으로 메밀 생산이 많은 강원도는 막국수ㆍ꼴두국수ㆍ콧등치기국수 등 다양한 메밀국수가 향토음식으로 전해온다. 평안남도와 경상남도는 메밀 면을 사용하는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함경도지방은 너무 척박하고 기후가 낮아서 메밀보다는 감자전분으로 만든 농마국수가 발달하였다.
경상북도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안동분지 등이 옛날부터 주요 메밀 생산 지역이어서 안동을 중심으로 건진국수와 누름국수 같은 ‘국시문화’가 발달하였다. 충청북도는 민물고기를 이용한 생선국수, 어죽국수와 충청도식 막국수인 토리면 등이 있다. 충청남도 지역은 서해안에서 나는 풍부한 해산물과 메밀면을 조화시킨 밀국낙지칼국수가 대표적인 국수이다. 우리나라의 곡창지대인 전라도지방은 콩국수나 팥칼국수 등이 알려져 있다.
서울과 인천을 포함하는 경기지역은 예로부터 팔도의 국수가 모이는 곳이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경기지역은 다른 지방에 비해 고유한 음식문화가 약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경기지역 메밀국수 음식으로는 경기도 양주시의 양주메밀국수,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천서리의 천서리막국수와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메밀칼싹두기가 있다. 그런데 양주메밀국수와 천서리막국수는 꿩고기육수와 동치미국물 사용하는 점에서 평양냉면, 속껍질을 제거하지 않은 메밀가루로 만든 굵은 메밀면을 사용하는 점에서는 강원도의 막국수와 비슷한 음식이다. 그런 점에서 강화도의 칼싹두기는 가장 토속적이고 향토색이 짙은 옛 경기지방의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다.
칼싹두기는 메밀반죽을 칼로 싹둑싹둑 잘라 면을 만든다고 해서 칼싹두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메밀은 점성이 약하여 뚝뚝 끊어지기 때문에 굵직하게 썰고 길이도 들쭉날쭉한 면을 멸치와 바지락으로 우려낸 육수에 끓여 먹는 소박한 음식으로 칼국수와 닮아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멸치와 바지락을 넣고 우려낸 육수에 메밀면을 투박하게 썰어 넣고 끓인 후 잘게 썬 김치와 김을 고명으로 얹어낸다. 메밀을 품고 걸쭉해진 국물을 들이킬 때 뱃속으로 전해지는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칼싹두기만의 오롯한 맛이다.
강화도와 이웃하고 있는 경기도 개풍군 출신의 소설가 고 박완서의 산문집 『호미』에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해 먹던 칼싹두기에 대해 소상하게 추억하고 있다.
우리 집에서 칼싹두기하면 으레 메밀로 하는 걸로 되어있었다. 밀가루로 하는 칼국수보다 면발이 넓고 두툼하고 짧아서 국수보다는 수제비에 가까웠다. 그건 아마 꼭 그렇게 해야 된다는 조리법이 있는 게 아니라 메밀가루가 밀가루보다 덜 차지기 때문에 저절로 그리 되었을 것이다. (중략) 메밀가루도 밀가루도 집에서 맷돌에 갈아 체로 친 거였으니까 요새 우리가 먹는 것보다 훨씬 거칠고 빛깔도 희지 않았다. 그 중에도 메밀은 더 누렇고 거뭇거뭇한 티도 많았다. 그걸 적당히 반죽해 다듬이 방망이로 안반에다 밀어서 칼로 썩둑썩둑 썰어서 맹물에 삶아서 약간 걸쭉해진 그 국물과 함께 한 대접씩 퍼 담는 것으로 요리 끝이었다. 따로 양념장을 곁들이지도 않고 꾸미를 얹지도 않았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무던하고 구수한 메밀의 순수 그 자체였다.
박완서는 “칼싹두기의 소박한 맛에는 이렇듯 각기 외로움 타는 식구들을 한 식구로 어우르고 위로하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고 하였다. 소박하기 만한 칼싹두기는 작가와 그 가족에게 그냥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 진정한 힐링푸드였던 것이다. 칼싹두기는 인공적인 감칠맛이 넘쳐나고 미각을 충동하는 달고 짜고 매운 맛이 미덕인 시대에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찬으로 곁들여 먹는 강화도 특산물 순무김치의 알싸한 맛이 어우러져 다소 텁텁하고 맹맹할 수도 있는 칼싹두기의 맛을 보완해준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는 ‘대선정식당’이라는 향토음식점이 40여 년간 강화도 칼싹두기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더위를 식혀줄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로 시원한 냉면이나 막국수 등이 떠오른다. 살얼음이 설컹설컹하게 언 고기 육수나 김칫국물에 메밀로 만든 면을 말고 그 위에 각종 고명을 얹어낸 냉면이나 막국수 등은 여름철 음식으로 사랑을 받는 식품이다. 그런데 의외로 냉면이나 막국수와 같은 메밀국수류는 옛날에는 여름철보다 겨울철에 주로 먹는 음식이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여름철에 파종하여 늦가을에 수확하는 가을메밀을 주로 경작하였다. 한겨울이 되면 가을에 수확한 메밀가루를 익반죽하여 면을 만들고, 겨우내 먹기 위해 김장으로 담갔던 동치미국물이나 김칫국물에 말아서 먹었다. 엄동설한의 추운 겨울 밤 따뜻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얼음이 살짝 언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서 먹는 맛은 별미였다.
1849년(헌종 15) 홍석모(洪錫謨)가 우리나라의 풍속과 행사를 월별로 정리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편에 “메밀국수에 무김치와 배추김치로 양념하고 돼지고기를 곁들인 것을 냉면이라고 한다(用蕎麥麵沈菁菹菘菹和猪肉名曰冷麵)”고 하여 냉면을 음력 11월에 먹는 시식(時食)으로 소개하고 있다. 음력 11월은 절기상으로 동지(冬至)가 시작되는 양력 12월 20일경부터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 포함된 이듬해 1월 20일 경까지로 동지가 들어가 있어서 ‘동짓달’로 불리기도 한다. 옛날에는 가을추수와 김장이 끝난 한겨울에 들어서면 지금과는 달리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가을에 수확한 메밀과 김장김치로 만든 메밀국수는 기나긴 겨울밤 우리 선조들의 심심한 입과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훌륭한 야식(夜食)이었던 것이다.
메밀은 고온다습하고 수분이 많은 토양에서 생장하는 벼와 달라서 건조한 토양과 서늘한 기후, 비가 적게 내리는 토양에서 잘 자란다. 또한 벼나 보리에 비해 생장기간이 60~100일 정도로 짧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메밀은 옛날부터 흉년이나 재해 때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었으며, 주로 벼농사가 적당치 않은 산간지역에서 많이 재배하였다. 우리나라 메밀의 주산지인 강원도는 지형의 대부분이 산지여서 예로부터 메밀농사를 많이 지었다. 그러다 보니 메밀을 이용한 국수, 수제비, 떡, 만두 등 다양한 음식이 발달하였다. 강원도의 메밀국수 종류에는 메밀막국수와 콧등치기국수 등이 유명하다. 그 중 ‘막국수’로 통칭되는 메밀막국수는 원래 강원도 산간지역의 향토음식이었으나 1960년대 후반 정부의 화전(火田) 정리 사업으로 도시로 나온 화전민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막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이후 현재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강원도에 막국수가 있다면 충청북도에는 오래전부터 메밀로 만든 국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천시의 향토음식인 토리면이다. 혹자는 토리면을 일컬어 ‘충청도식 막국수’라고도 한다. 아마도 재료와 조리법이 유사한데서 그런 별명이 붙은 듯하다. 토리면과 막국수는 메밀면과 동치미국물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같다. 다만 국수에 얹는 고명에서 토리면이 도토리묵ㆍ돼지고기 편육ㆍ동치미무ㆍ삶은 계란 등을 얹어내는 점에서 막국수와 차이가 있다. 토리면이 제천시의 향토음식으로 정착한 데에는 제천의 풍토와 지리가 크게 작용하였다. 제천은 태백산맥에서 분기한 소백산맥과 차령산맥에 둘러싸인 지역으로 백운산, 구학산, 대미산, 문수산, 금수산 등 해발 1,000m를 전후한 12여 개의 산이 사방을 에워싼 산지지형 가운데 제천분지가 위치한다. 특히 북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 동쪽으로는 강원도 영월군과 접경하고 있어서 행정구역상으로는 충청북도에 속하지만 역사와 문화적으로는 예로부터 강원도와 밀접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제천은 강원도 못지않은 메밀의 산지였다. 심지어 지명가운데도 ‘메밀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봉우리가 있을 정도이다. 메밀봉은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에 있는 산으로 월악산국립공원 내 월악산과 대미산의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충주목 제천현 조에 의하면 제천의 풍토는 “땅이 메마르며, 산이 높고 기후가 일찍 추워진다(厥土塉山高 風氣早寒)”고 하였고, 주요 농산물 중 하나로 메밀[麥]을 기록하고 있다. 『국역 조선왕조실록』에는 ‘맥(麥)’을 단순히 ‘보리’로 해석하여 표기하고 있지만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편의 범례에는 ‘맥(麥)’이 보리[眞麥]와 메밀(蕎麥)을 모두 포함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전형적인 산간지형인데다 강원도와 이웃하고 있는 제천은 예로부터 재배했던 메밀로 만든 토리면을 비롯한 제천 특유의 국수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
제천시에는 ‘약초막국수’가 토리면과 더불어 제천 특유의 국수문화를 상징하는 메밀국수로 들 수 있다. 약초막국수는 삶아 낸 메밀 면에 양지머리 고기와 구기자, 산사, 황기 등의 약재를 끓여서 식힌 육수를 붓고 고명을 얹어낸 음식이다. 이 음식도 제천이 조선시대부터 약초의 고장으로 소문난 지역이었던 것과 관계가 깊다. 1757년(영조 33) 영조의 명에 따라 1765년에 완성된 관찬 읍지(邑誌)인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 제천 조를 보면 제천현에서 국가에 바치는 진상품의 대부분이 약재였다. 진상했던 약재의 종류는 황기(黃芪)ㆍ시호(柴胡)ㆍ백급(白芨)ㆍ백출(白朮)ㆍ백청(白淸)ㆍ황백(黃栢)ㆍ강활(羌活)ㆍ오미자(五味子)ㆍ은금화(錦銀花)ㆍ연교(連翹)ㆍ여로(藜蘆) 등 다양하였다.
약초의 고장 충청북도 제천시의 토리면을 비롯한 약초막국수 등은 비록 이웃하고 있는 강원도의 춘천 막국수처럼 전국적인 유명세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의병사(義兵史)에 큰 족적을 남긴 ‘제천의병(堤川義兵)’이 탄생한 충절의 고장답게 우직하고 묵묵하게 맛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메밀 반죽 한 덩이를 유압기에 넣자마자 보슬보슬한 면들이 줄줄이 떨어진다. 거뭇한 면이 뜨거운 물에 닿자마자 휘휘 저어 채로 건진다. 재빨리 찬물로 옮겨 쭉쭉 당기고 손으로 감아 옆의 찬물 그릇으로 던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줌으로 마무리된 면들을 얌전히 그릇에 담는다. 그 손놀림에 거침이 없다. 메밀 면은 조리시간이 길어지면 안 된다. 따라서 면 뽑는 기술은 메밀 면의 맛을 좌우하는 비법 중 하나이다.
경기도 남한강 부근의 천서리에는 십여 개의 막국숫집이 있다. 천서리란 지명은 신래천(神來川)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천서리 막국수 촌의 메밀국수 맛은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저마다 조리비법을 지니고 경쟁을 하다 보니 각각의 특징이 있다. 개인의 입맛에 따라 국숫집을 선택하면 된다.
여주 천서리에서 처음 막국숫집을 시작한 곳은 강계봉진막국수이다. 평안북도가 고향이었던 부친이 이곳에 막국수의 터전을 잡게 되었다. 입소문이 난 비빔국수의 붉은 양념장을 있는 그대로 비벼 먹으면 입안이 남아나질 않는다. 귀가 놀랄 매운맛이다.
홍원막국수는 명성만큼이나 대단하다. 식당에 들어서서 주문하자마자 5분 만에 음식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면이 불었거나 맛이 덜하지 않다. 그만큼 운영방식이나 조리법이 시스템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입맛 당기는 동치미 육수, 칼큼하게 매운 양념으로 맛을 내는 막국숫집도 있다.
윤희정(남, 60세) 씨는 막국수로 장사를 시작할 때, 다른 식당의 솥에 무엇이 들어있는지가 제일 궁금했다고 한다. 젊은 날, 맛을 내기 위해 남의 집에서 버린 쓰레기 봉지를 뒤져도 보았다. 물맛이 중요하다 하여 정수기로 동치미를 숙성시켜 보기도 했다. 마음이 앞설 때는 손님들이 식중독에 걸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그러나 밤잠을 설쳐가며 메밀국수의 맛을 찾고자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것은 매운맛을 찾는 거였어요. 단맛, 신맛, 매운맛 요거를 지켜야지. 손님 중 3분의 2가 비빔 막국수를 드세요. 양념장에 열네 가지가 들어가는 데 채소가 들어가기 때문에 자주 만들어야 하거든. 그거를 하다 보면 얼마나 땀이 나는지 몰라. 비빔국수는 먹고 나서 뒤끝이 깨끗하고 여운이 남지. 그게 맵지만 개운한 맛이야.
잘 달인 사골국과 익은 동치미 국물. 후루룩 면부터 건져 먹고 남은 국물을 들이켜 본다. 사골, 양지, 무, 배, 다시마, 좋은 소금.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재료가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감히 맛을 낼 수 없는 비법은 그들의 땀이다. 툭툭 던져 넣는 채소와 고기 몇 점에는 그들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 긴 시간이 담겨 있었다. 동의보감에는 메밀이 차가운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체내의 열을 내리고 소화를 도와 오랫동안 쌓인 체기를 없앤다고 기록돼 있다. 그래서인지 속이 답답한 날에는 그 집의 동치미 막국수가 생각난다.
■ 도움 주신 분
윤희정(남, 60) 씨가 '천서리막국수'의 명성을 30년째 지키고 있다.
평창의 메밀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보면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다. ‘산허리가 모두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고 표현한 문장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예로부터 평창은 우리나라 최대의 메밀 산지였다. 메밀은 이미 조선 시대 세종 때 펴낸 『구황벽곡방』에 구황작물로 기록될 만큼 오래전부터 재배해 온 작물이다. 강원도지역에서는 예부터 즐겨 먹었던 메밀전에 돼지고기나 오징어, 당면, 신김치 등을 소로 넣어 말아 먹었다. 이 음식이 바로 메밀전병인데, 돌돌 말아놓은 모양이 총대처럼 길다고 해서 ‘총떡’이라고도 불린다. 메밀전병은 1680년경에 쓰인 저자 미상의 요리책 『요록』을 보면, ‘견전병’이라고 나와 있고, 1938년 『조선 요리』에 ‘총떡'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
기름에 지지는 떡을 뜻하는 유전병에 속하는 메밀전병은, 메밀의 주 생산지인 강원도와 경상북도 지방에서 주로 즐기는 이색적인 떡이다. 강원도에서는 메밀총떡, 혹은 메밀전병, 경상북도에서는 총떡, 혹은 메밀전이라고 한다. 메밀전병의 속 재료는 오랜 역사만큼 각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강원도에서는 무뿐만 아니라 배추김치나 갓김치, 돼지고기, 오징어와 같은 재료를 양념해 넣으며, 경상북도에서는 버섯과 실파, 무채를 넣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제주도의 빙떡도 소의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방법으로 만드는 떡인데, 떡이라기보다는 부침개에 가까우며 속 재료로는 채 썰어 삶은 무를 넣는다.
메밀의 본고장, 평창 봉평면의 음식점에서는 바삐 구워대는 메밀전병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메밀꽃이 절정인 가을에는 봉평 메밀 축제가 열린다. 전국 각지에서 온 많은 관광객이 메밀의 추억과 정취에 잠겨 다양한 메밀 음식을 즐기며 메밀밭의 정취를 만끽하며 메밀 음식을 맛본다. 가난한 시절 메밀은 쌀보다 고마운 식량이었지만, 요즘에는 많이 먹어도 부담 없고 낮은 열량의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메밀가루, 소금, 물, 식용유, 돼지고기 또는 오징어, 배추통김치, 다진 파, 다진 마늘, 생강, 참기름, 깨소금, 후춧가루
조리과정제주에는 궂은 사람이 없다. 섬이라는 지역 특성 때문일까? 기쁜 일이 생기거나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서로의 마음을 챙겨주는 부조 음식문화가 발달하였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지 못했던 섬이었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련이 많았던 역사가 제주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주 부조 음식 중에 대표적인 것이 빙떡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웃이나 친척이 큰일을 당하면 빙떡을 한 바구니 담아 부조하였다. 지금은 제사와 모임이 있을 때, 지역 축제 장소에서 주로 준비한다. 빙떡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준비하는 시간만 꼬박 이틀이 걸린다. 1972년에 생긴 제주 보성시장에는 빙떡을 전문으로 만드는 식당이 있다. 필자가 먹어본 제주도 빙떡 중에 제일 그리운 맛이다.
새벽 네다섯 시면 고정주 할아버지(75세)는 80~90개의 무를 채 써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강정희(73세) 할머니는 무채를 삶는다. 무를 잘 익히는 것은 기술이다. 손으로 무채를 만져서 축축 처질 정도로 익히면 되는데 설익으면 맛이 없다. 삶을 때 소금 간을 살짝 할 뿐 다른 조미료는 들어가지 않는다. 시간과 공이 가장 많이 드는 것은 이제부터이다.
익은 무채를 식혀 물기를 잘 빼야만 먹기 좋고 보기 좋은 빙떡을 만들 수 있다. 무채를 물이 빠지는 바구니에 몽실몽실하게 담아서 자연스럽게 물기를 뺀다. 일부러 짜게 되면 무의 맛이 사라지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선풍기를 틀어야 한다. 고르게 물기가 빠질 수 있도록 가끔씩 무채를 뒤집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선선한 바람 아래에 하루를 둔다.
빙떡은 제주도 내에서도 그 이름이 다르게 불린다. 남서쪽에서는 빙빙 돌려 만든다고 해서 ‘빙떡’이라고 한다. 동쪽에서는 멍석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멍석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귀포 지역에서는 전기떡, 쟁기떡이라고 부른다. 할머니는 빙떡을 부치면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여기 겨울 무는 인삼 하고도 안 바꿔. 제주 무가 맛있고 좋거든. 옛날에는 솥뚜껑에 기름 발라서 익혀 먹었지. 솥뚜껑에 따라 크게도 하고, 작게도 하고, 크기는 달라질 수 있지. 이건 겨울에 먹는 음식이라서 얼음 빙(氷), 빙떡, 빙빙 말아서 빙떡, 식어도 맛있는 빙떡. 여름에는 안 먹었지. 여름에는 무가 쉬잖아. 그래서 못 먹어. 그리고 무를 식히지 않으면 무가 뜨거워서 빙을 말 수가 없어. 빙떡하고 옥돔 구워서 같이 먹으면 더 잘 어울려. 최고의 대접이야.
여기는 예전에 원나라 지배로 백 년을 살았어. 그때 메밀이 들어왔어. 메밀이 독성이 있는 거야. 처음에 이것만 먹으면 독성이 있는데, 이것저것 섞어 먹다 보니 무가 궁합이 제일 맞는 거야. 제주도 메밀이 우리 몸에 굉장히 좋아. 예전에 병원이 없을 때는 산모들에게 메밀가루를 물에 타서 몸조리용으로 먹였거든. 피를 깨끗하게 만들어주니까.
옆에서 신문을 보시던 할아버지도 제주도 메밀에 대해 한 말씀 거들어 주신다.
할머니께서 번철 위에 메밀반죽을 한 국자 돌려 얇게 부치고 메밀전병을 솜씨 좋게 걷어낸다. 무채를 다소곳하게 올리고 빙빙 돌려 메밀전병의 양 끝을 꼭 누르면 완성. 필자에게 일회용 비닐장갑을 주시며 빙떡은 손으로 들고 먹어야 맛있다고 하신다.
입을 크게 하고 빙떡을 한 입 베어 물자, 생각지 않은 무의 공격에 깜짝 놀랐다.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메밀전병 사이로 냉정한 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맛을 음미해 보자. 고소한 기름 향기와 무의 달달함, 감칠맛이 조용하게 속살거린다. 이 맛이 제주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주는 시가 되었구나.
[도움 주신 분]
보성시장 입구의 제주 토속은 빙떡을 잘 만들기로 소문이 났다. 고정주(75세) 할아버지와 강정희(73세) 할머니의 정성이 그대로 빙떡에 담겨있다.
막국수는 메밀로 만든 국수를 국물에 넣어 먹거나 양념장으로 비벼먹는 음식이다. 메밀의 알맹이 외에 껍질도 국수반죽에 넣어서 색깔이 갈색인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 덕분에 고급음식으로 치지는 않았다. 메밀은 모밀이라고도 하는데 원산지는 동아시아 온대 북부의 바이칼호·만주 등에 걸친 지역이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의 분묘에서 메밀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파되었다. 일본에서는 8세기 경 메밀 재배를 권장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 의서인 『향약구급방』에 처음 나온다.
메밀은 서늘하고 적당한 강우량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잘 자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태백산 지역이 최적지로 알려져 있다. 봄 파종인 여름메밀은 70-85일, 여름 파종인 가을 메밀은 80-90일 정도 자라면 수확한다. 토질을 가리지 않고 생육기간이 짧아 산간 지역에서 많이 경작하여 예로부터 흉년때 구황작물로 언급되었다.
메밀을 이용한 대표적인 요리가 국수인데 우리나라의 막국수와 평양냉면, 일본의 소바가 유명하다. 막국수는 강원도 영서지방의 향토음식이다. 북한강 유역의 춘천, 화천, 양구, 남한강 상류인 홍천, 인제, 횡성, 평창지역을 영서지역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 메밀을 많이 재배하여 국수로 만들어 먹었다. 막국수는 문헌에 기록이 없어서 유래를 알기는 어렵다. 일반 밀국수를 만드는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 밀가루가 귀했기 때문에 국수하면 메밀국수였다. 일제강점기까지 강원도 지역의 향토음식이었던 막국수는 한국전쟁 이후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이 된다.
1960년대부터 춘천지방의 메밀막국수가 유명했는데 순메밀막국수는 냉면처럼 질기지 않고 국수를 입에 넣으면 흙맛이 느껴져 별미이다. 농가에서는 메밀을 맷돌에 막 갈아 체로 쳐서 반죽을 한 다음 나무로 만든 국수틀에 눌러 국수를 뽑았다. 이걸 끓는 물에 삶은 뒤 김치국물이나 막간장을 섞어 먹었다. 막국수 식당에서는 꿩고기나 돼지고기로 고명을 하고 간장에 참기름, 설탕 등으로 비빔장을 만들어 넣는다. 이후 막국수는 춘천의 명물이 되어 1990년대에는 강원대 부근 효자1동의 별당막국수집과 춘천공단이 있는 후평동 부안막국수집 등이 널리 알려졌다. 1996년에는 제1회 춘천막국수 대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막국수는 196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인기있는 외식메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메밀경작율은 점점 떨어졌다. 메밀경작이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메밀은 뿌린 것에 비해 수확량이 적고 탈곡이 심하다. 황무지에 뿌리고 잘 손질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대신 수확량이 적었던 것이다. 중국이나 캐나다로부터 수입량이 많아진 것도 한 원인이다. 1986년에는 11195톤을 생산하였으나 1990년에는 4945톤을 생산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가짜 메밀국수 문제도 생겼다. 1989년 9월 보사부가 태운 보리가루를 메밀가루와 밀가루에 섞어 가짜 메밀국수를 팔아온 식품제조업체를 단속하였다. 이 시기 시중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메밀국수가 소량의 메밀에 밀가루, 태운 보리가루를 넣은 것이었다. 태운 보리가루가 인체에 해가 되는데다 쫄깃한 맛을 위해 공업용 소다를 넣었기에 단속 대상이 되었다.
메밀경작이 줄자 소설가 이효석의 고향이자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마을사람들이 메밀을 다시 심기도 하였다. 메밀은 섭씨 17도의 시원한 기온에서 가장 잘 자라, 해발 550m가 넘는 고랭지인 봉평이 예부터 메밀의 주산지였다. 그러나 도로 사정이 좋아지면서 서울 등지로 나가는 무나 배추가 고소득작물로 인기를 얻게 되어 메밀밭이 많이 사라졌다. 이에 봉평주민들은 1993년 초 ‘메밀작목반’을 만들고 1만여 평의 땅에 메밀을 심어 우리메밀 지키기에 나섰다. 봉평농협에서 이 메밀을 전량 수매하여 평창군 메밀가공공장에서 막국수, 메밀묵등을 생산해 유통시켰다.
막국수는 공장에서 라면의 한 종류로 대량 생산되기도 하였다. 한국야쿠르트에서 1996년 춘천막국수를 집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팔도라면 ‘춘천막국수’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쫄깃한 면발과 매콤달콤한 액상스프로 간편하게 막국수를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메밀은 일모밀・메물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한자어로는 교맥(蕎麥)이라 한다. 학명은 Fagopyrum esculentum MOENCH이다. 원산지는 동아시아 온대 북부의 바이칼호・만주・아무르강변 등에 걸친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의 분묘에서 메밀이 나오고 있다. 7∼9세기의 당나라 때에 일반에 알려져서 10∼13세기에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7~8세기 경에는 들어와 재배된 것으로 보인다.
메밀은 생육기간이 60∼80일로 짧고 서늘한 기후에 알맞으며, 한발이나 추위에 잘 견디면서 생육기간이 짧아서 흉년 때의 대체작물이나 기후 토양이 나쁜 산간 흉작지대의 응급작으로의 적응성이 크고 영양가가 높으면서도 저장하기도 용이하다. 그 탓에 일찍부터 구황작물로 주목받았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이나 『구황벽곡방(救荒辟穀方)』에도 구황작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메밀은 산지(山地)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다. 평야지대에서도 이모작을 할 때 각종 작물과 번갈아가며 재배한다. 잡곡류 중에서는 옥수수 다음으로 재배면적이 많으며, 전국적으로 비교적 고르게 분포, 재배되고 있다. 봄 메밀-논벼, 단옥수수-여름 메밀, 봄채소-여름 메밀, 봄 메밀-가을 채소, 참깨-여름 메밀, 수박-여름 메밀, 담배-여름 매밀, 봄 감자-여름 메밀, 봄 메밀-가을 감자 등의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메밀은 보통메밀과 달단메밀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메밀이 재배되고 있다. 달단메밀은 중국, 네팔을 비롯한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재배되고 있다. 보통메밀은 주로 메밀국수, 빵, 묵, 수제비, 부침, 전병, 떡 등을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달단메밀은 메밀죽, 빵을 만드는데 주로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쓴맛을 개선하기 위하여 보통메밀, 보리, 밀, 잡곡가루를 섞어 메밀 먹거리를 만든다. 음료수나 술을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부드러운 메밀잎은 녹채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종실을 수확하고 남은 메밀짚은 가축사료와 침대 재료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메밀종실의 껍질을 베갯속 재료로 이용하고 있다. 메밀꽃은 관광과 꿀벌사육용으로 유명하며, 메밀 꿀은 건강식품으로 으뜸이다.
화산토양으로 이루어진 제주도는 벼농사가 적합하지 않아 메밀, 조, 보리 등 잡곡의 밭농사가 행해졌고, 이를 이용한 조배기(수제비의 제주방언) 형태의 분식문화가 발달하였다. 꿩메밀칼국수는 이러한 제주의 풍토를 배경으로 탄생한 꿩고기 특유의 고소함과 메밀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향토음식이다.
예로부터 제주도 서귀포 지역에서는 메밀 수확을 마친 늦가을이나 겨울에 마을 남자들이 함께 모여 꿩 사냥을 나가는 풍속이 있었다. 제주 사람들의 가을철 꿩사냥이 오래되었다는 것은 옛 문헌에서도 확인된다. 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은 제주도 전 지역을 순력한 사실을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라는 화첩으로 남겼다. 그 중에 「교래대렵(橋來大獵)」이란 그림에는 1702년 10월 11일 지금의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橋來里) 일대에서 산짐승을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과 포획한 산짐승의 종류와 숫자를 열거하였는데, “꿩은 22마리를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주의 꿩은 산란기인 봄부터 여름까지는 맛이 떨어지다가 가을로 접어들면 맛이 있어진다. 예전에는 겨울에 꿩을 잡으면 눈 위에서 그대로 얼렸다가 가슴살은 육회로 먹고, 다른 부위는 포를 떠서 건조시켜 육포로 만들어 먹었다. 그 외 꿩고기는 만두나 칼국수, 수제비 등을 만들어 먹었고 제주도의 특산품인 꿩엿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메밀은 추운 지방과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랄 뿐만 아니라 파종하고 나서 다른 작물보다 비교적 짧은 60∼100일이면 수확을 할 수 있는 곡물이다. 거친 환경과 특히 재해에도 강한 특성 때문에 메밀은 옛날부터 구황작물로 많이 재배되었다. 그런 까닭에 전통적으로 쌀이 부족했던 제주의 음식은 구황식품의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다. 제주의 메밀 재배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15세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제주목」편에 기장, 밭벼, 보리, 피와 함께 메밀을 재배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제주 한라대학교의 오영주 교수에 의하면 꿩메밀칼국수의 원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제주도 음식에서 칼국수는 없고 칼국이 있다. 보통 칼국수와 만드는 방법은 같지만 칼국수 보다 두껍고 넓으며 길이는 짧다. 즉, 육지의 수제비와 칼국수의 중간 형태이다. 먹을 때도 젓가락으로 먹지 않고 국처럼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꿩메밀칼국수는 ‘칼국수’가 아니라 ‘칼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꿩을 사냥하는 풍속이 없어지면서 농장에서 사육한 꿩고기를 사용하여 일부 향토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정도이다. 면의 형태도 밀가루와 메밀을 혼합하여 만든 육지식 칼국수로 변하였다.
꿩메밀칼국수는 저지방 고단백 식품인 꿩고기, 칼슘이 풍부한 꿩뼈에서 우려낸 육수, 루틴 성분이 풍부한 메밀의 전분과 단백질 그리고 비타민이 풍부한 무 등으로 구성된 음식이다. 풍부한 단백질과 더불어 현대인의 영양에서 부족하기 쉬운 칼슘과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어 성장기의 어린이, 노약자 등에게 적합하다.
꿩, 메밀가루, 물, 계란, 깨소금, 무, 소금, 참기름, 청장, 파
조리과정화산성 토양으로 이루어진 제주도는 토질이 투박하고 물을 흡수하지 못해 논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 대신에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비교적 재배하기 쉬운 메밀이 구황작물로서 주식의 빈자리를 메꾸어 주었는데, 그 역사는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밀은 쌍떡잎식물 마디풀목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로 단백질과 라이신·시스틴·트립토판과 같은 아미노산, 비타민 P와 B1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보리나 쌀에 비해 영양가가 높고 동맥경화를 비롯한 혈관계통 질환과 당뇨병을 예방하는데 효능이 있다.
통상적으로 메밀하면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 강원도를 연상하지만, 실제적인 메밀 생산량과 사용량을 놓고 보면 제주도가 단연코 메밀의 고장이다. 제주에서는 메밀로 만든 다양한 음식이 발달하였는데, 그 중 메밀범벅은 제주도에서 흔히 만들어 먹었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메밀범벅은 메밀가루에 고구마, 톳, 무, 호박, 게 등의 부재료를 넣어 고체 상태에 가깝게 조리한 음식이다. 범벅은 본래 곡식가루를 된풀처럼 쑨 음식을 말한다. 그러나 제주도의 범벅은 다른 지방과는 달리 중산간 지역의 목장에서 일하는 ‘말테우리’(목동의 제주방언)나 해안지역에서는 해녀들이 물질하러 바다로 나갈 때 휴대하기 좋게 고체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통적으로 메밀, 보리, 조 등을 주식으로 삼았던 제주도는 예로부터 분식문화가 발달되었다. 제주 한라대학교 오영주 교수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제주의 향토음식 320품목 중 가루가 들어간 분식은 떡, 범벅, 개역, 분말, 국, 죽, 탕, 묵, 적, 지짐, 발효식품 등에 걸쳐 종류가 다양하고 149품목에 이른다. 그중에서 떡류를 제외한 음식으로 품목 수가 가장 많은 것은 범벅으로 37가지나 된다고 한다. 범벅은 곡류만으로 만든 범벅과 곡류에 부재료를 넣어 양을 불린 두 가지의 종류로 구분된다. 대표적인 범벅으로는 감제범벅(고구마범벅), 깅이범벅(게범벅), 모멀는쟁이범벅(메밀속껍질범벅), 모멀범벅(메밀범벅), 톨범벅(톳범벅), 호박범벅 등이 있다.
범벅에 사용하는 곡물가루는 메밀, 밀, 보리, 수수, 조. 피 등을 사용하나 주로 메밀가루를 많이 사용한다. 제주도에서는 같은 메밀이라도 ‘모멀가루’와 ‘는쟁이가루’의 두 종류를 사용한다. 모멀은 메밀, 는쟁이(‘나깨’라고도 함)는 메밀 속껍질의 제주 방언이다. 메밀을 방아나 맷돌에 갈아서 체에 내린 후에 다시 한 번 고운 체로 치면, 밑에 떨어진 고운 가루가 '모멀(메밀)가루'이고 그 위에 남은 것을 ‘는쟁이’라고 한다. 아마도 곡물이 귀했던 제주에서 곡식의 속껍질도 버리지 않고 음식의 재료로 활용한 지혜의 소산인 듯하다. 그래서 같은 곡물재료라도 모멀범벅과 모멀는쟁이범벅, 밀범벅과 밀기울범벅이 따로 존재한다.
메밀가루(는쟁이가루), 고구마, 물, 소금
조리과정메밀이 언제 한국으로 전해 내려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고려 고종 대의 『향약구급방』 에 기재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나 백제 유적지에서 탄화된 메밀이 발굴된 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서는 5세기 이전에 전파되어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메밀은 단백질이 많고 독특한 맛이 있어 국수, 냉면, 묵, 만두 등의 음식에 널리 쓰인다. 특히 메밀의 생육조건에 적합한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지방에서는 수확량도 많고 질이 좋아 메밀로 만든 막국수나 냉면이 향토음식으로 발달하였다.
메밀의 생산이 많은 강원도에서는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는데 처음에는 반죽을 만들어 칼로 썰어서 만들던 것이 차츰 기계화되면서 간단한 국수틀로 눌러서 만들었다. 국수틀은 거의 가정마다 설치하고 있어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국수 음식이었다. 메밀은 열을 가하면 쉽게 끊어져서 국수를 만들 때는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7:3 정도의 비율로 섞는다.
막국수라는 이름의 유래도 '막 만들어서 막 먹는 국수'로 통용되지만, 주문 들어오자마자 ‘막 만든 국수’라는 의미에서 막국수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일제 강점기 쌀 수탈량이 증가하여 국내 식량 사정이 악화하자 일제는 그 해결책으로 만주에서 상당량의 메밀을 수입하였다. 그에 따라 메밀국수 식당도 번창하였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메밀국수는 급속도로 사라져 갔는데 결정적 이유는 미국의 구호물자로 들어온 밀가루 때문이었다. 거기에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값이 저렴한 밀가루 음식이 성행하였다.
춘천에서는 메밀국수의 명맥을 웬만큼 유지하였는데, 춘천이 강원 지역의 곡물 집산지였던 것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강원도의 메밀이 모이여 제분 산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또 메밀국수 식당도 유지되었다. 1965년 춘천댐, 1967년 의암댐,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되면서 춘천은 호반 도시란 낭만적인 이름을 얻었고, 서울 시민들의 하루 관광 코스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특히 1970~80년대 경춘선 기차를 타고 춘천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은 춘천의 메밀국수를 맛보았고 이 메밀국수를 막국수라 부르는 것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춘천에 오면 막국수를 먹는 것이 당연한 일인 듯이 여겼고 춘천의 막국수는 닭갈비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메밀국수 사리, 오이, 김칫국물, 깨소금, 김치 썬 것, 고춧가루, 고추 양념
조리과정메밀은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다. 화산섬인 제주도는 토질이 투박하고 물이 고일 수 없어 논농사가 발달하지 못한 대신에 예로부터 메밀을 재배했다.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제주 메밀 재배면적은 전국 재배면적의 24.5%인 622㏊, 생산량은 29.7%인 473톤으로서 메밀의 전국 최대 주산지”로 조사됐다고 한다.
메밀의 생산량이 높은 만큼 예로부터 제주도에는 메밀을 이용한 향토 음식이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메밀 칼국수, 메밀조베기(메밀 수제비), 메밀 범벅, 메밀묵, 메밀 만두, 빙떡 등이 대표적이며, 이 중 가장 유명한 음식이 바로 빙떡이다.
빙떡은 제주를 대표하는 떡인 만큼 그 명칭도 빙떡 외에 정기떡, 쟁기떡, 전기떡, 멍석떡으로 다양하다. 우선 빙떡의 ‘빙’은 떡을 뜻하는 한자 ‘병(餠)’이 빙으로 되었다는 설과 메밀 반죽을 국자로 빙빙 돌리면서 부치거나 둘둘 말아서 먹는 모양에서 유래됐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정기떡은 ‘정지’(부엌의 방언)에서 만들어 먹는 떡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제주도 내에서도 빙떡을 부르는 명칭이 지역마다 다양하다. 옛 제주목(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과 대정현(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덕면, 중문 일대) 지역에서는 빙빙 돌려 말거나 빙철(번철의 제주방언)에 지진다고 해서 ‘빙떡’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의현 남원(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지역에서는 빙떡의 모양이 말아 놓은 멍석의 모습과 같다 하여 ‘멍석떡’이라고도 불렀고, 정의현 서귀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서는 전기떡 (쟁기떡)이라 불렀다고 한다.
제주에는 메밀의 전래에 관한 설화가 전한다. 고려 시대 몽골인들이 제주도에 메밀을 전했다는 것이다. 삼별초의 마지막 항전지였던 제주도를 침공한 몽골군이 삼별초의 전력을 약화시켜 섬멸할 의도로 독성이 있는 메밀을 퍼뜨린 것이 제주에서 메밀을 재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친족 또는 이웃에게 경조사가 생기면 부조 음식을 ‘차롱’(대나무로 짠 바구니 형태의 뚜껑이 있는 납작한 그릇)에 담아 보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빙떡은 제주도의 관혼상제에 빠지지 않는 부조 음식이었다.
빙떡의 주재료인 메밀은 루틴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동맥경화를 비롯한 혈관계통 질환과 당뇨병을 예방하는데 효능이 있다고 한다. 반면에 메밀은 그 성질이 차고 껍질이 단단하므로 소화가 잘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또한 메밀은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껍질에 벤질아민과 살리실아민이라는 독성물질이 있다. 도정(搗精)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메밀의 독성과 차가운 성질을 보완하기 위하여 성질이 따뜻하고 해독작용이 있는 무를 이용하였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메밀을 이용한 음식에는 무를 많이 사용한다.
메밀가루, 무, 쪽파, 깨소금, 소금, 돼지기름, 참기름
조리과정강원도의 대부분 시장에서 메밀로 만든 부침개와 전병, 국수 등을 볼 수 있다. 이들 음식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며, 세 음식의 주요 재료는 메밀이다. 우리나라에서 메밀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되었다고 한다. 씨앗을 뿌린 후 그 결실을 거두는 기간이 60∼80일로 여느 식량작물에 비해 짧은 편이다.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병과 벌레가 잘 붙지 않는다. 그렇기에 메밀은 강원도 사람들이 버티고 살 수 있었던 데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구황작물(救荒作物)은 기후가 불순한 흉년에도 비교적 수확을 얻을 수 있는 작물을 가리킨다. 메밀을 비롯해서 조, 피, 기장, 고구마, 감자 등이 포함된다. 봄에 작물을 심었다가 자연재해로 거둘 것이 없을 지경이 되면 바로 논밭을 갈아엎고 메밀을 심었다. 구황작물로서 메밀을 사용했기에 메밀을 강원도 산골의 가난한 농가에서나 먹는 음식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메밀은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남부지방에서 많이 재배하였다. 메밀의 주산지로 강원도가 굳어진 것은 경사지고 거친 산간지가 대부분인 강원도 땅에 재배할 만한 작물로 메밀 외에 다른 작물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1980년대 들어서면서 메밀부침개, 메밀전병, 막국수 등이 강원도의 대표음식으로 자리 잡으며 강원도에서의 메밀 수요가 많아져 메밀의 주재배지가 되었다.
강원도에서는 ‘부침개[걸죽한 반죽을 기름에 얇고 넓적하게 부쳐 낸 음식]’를 ‘부치기’라고 한다. 메밀을 주재료로 한 것은 ‘메밀부치기’ 또는 ‘메물부치기’라고 한다. 강원도 대부분 시장에서 메밀부치기를 부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주문과 동시에 그 자리에 메밀부치기를 만들어 준다. 메밀반죽 위에 배추김치나, 각종 채소를 올리기도 한다.
메밀전병은 얇게 지진 묽은 메밀 반죽에 각종 채소를 넣고 말아 부친 음식이다. 지지는 떡을 뜻하는 유전병에 속하며, 강원도에서도 지역에 따라 ‘메밀총떡’으로 부르기도 한다. 메밀전병의 속 재료는 오랜 역사만큼 각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무뿐만 아니라 배추김치나 갓김치, 능쟁이[명아주] 등을 마늘, 참기름, 깨소금 등으로 양념해 넣기도 한다.
메밀가루를 더운 물로 반죽하여 국수틀에 넣고 압착하여 국수를 뽑아낸다. 국수를 끓는 물에 삶아서 냉수에 헹군 다음, 맑은 장국이나 김칫국 등에 말아서 먹는 것을 ‘막국수’ 도는 ‘메밀국수’라고 한다. 칼로 썰어서 만들던 것이 점차 기계화되었다. 메밀국수 가운데 정선군에서는 면이 쫄깃쫄깃하고 탄력이 좋아 후루룩 빨아들이면 면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콧등치기국수’를 먹는다. 본래는 '메밀로 빚은 반죽을 칼국수처럼 눌러서 늘여 만든다.'는 뜻에서 '느름국'이라 불렸다. 또한 영월군에서는 어려웠던 시절에 너무 먹어서 꼴도 보기 싫다고 ‘꼴뚜국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 콧등치기국수나 꼴두국수는 막국수와 달리 장국에 끓여 먹는다. 꼴두국수의 경우 김치를 함께 넣고 끓인다.
서부시장의 역사는 한국전쟁 이후 영월군 사람들이 점차 경제를 회복할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월 인근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매일 이른 아침마다 자신이 농사지은 것을 가지고 나와서 팔고는 했다. 아침에만 열린 시장이라 서부아침시장이라고도 불렀다. 서부아침시장을 중심으로 먼저 상권이 형성되자, 농산물뿐만 아니라 공산품을 비롯한 다양한 생필품들을 가져와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서부시장을 이루었다. 1959년 강원도로부터 서부아침시장과 서부시장이 일반 등록시장으로 허가를 받았고, 160개의 점포가 있다.
1960~1970년대 서부시장과 서부아침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인접해 있어서 교통도 편리했을 뿐만 아니라 영월군 석탄 산업이 발달한 덕분에 시장이 번성할 수 있었다. 영월군에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서부시장과 서부아침시장은 영월군 상권의 중심으로 크게 번영했다.
오늘날에는 1985년 문을 연 주상복합상가인 영월종합상가와 함께 영월 서부시장으로 부른다. 1980년대 후반 폐광과 1990년대 유통구조의 변화로 시장이 침체되어 왔지만 2000년대부터 각종 시설 개선 사업을 도모해 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부공설시장, 서부아침시장, 영월종합상가를 영월서부시장으로 묶었다. 서부공설시장은 농수산물과 청과를, 서부아침시장은 메밀전병과 부침을, 영월종합상가는 의류 및 공산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영월 서부시장은 맛있는 음식이 많기로 유명하다. 순대와 닭강정, 올갱이 국수도 맛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인기 있는 음식으로는 메밀전병과 메밀부침개를 들 수 있다. 영월 서부아침시장의 메밀전병과 메밀부침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어서 부침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2000년대 말, 영월군이 향토음식으로 홍보하고 전국적인 입소문을 타다 보니 오늘날에는 전국망으로 메밀전병을 판매 중이다. 상인들은 기름에 부침개를 부치랴, 택배를 보내랴 새벽부터 분주하다.
메밀전병은 메밀가루를 물에 넣어 묽게 반죽한 것을 들기름을 둘러 얇게 부치고, 김치와 콩나물, 당면 등을 볶아서 만든 소를 얹어 말아 만든다. 매콤한 것 같지만 메밀이 감싸서 맵지 않다. 누가 부치느냐에 따라서 기름과 김치의 맛, 전병의 두께와 색깔이 다르다. 백년초, 호박, 부추, 곤드레, 도토리, 녹차 가루를 넣어서 집집마다 색과 맛을 달리 하기도 한다. 김치 대신 나물을 무쳐 넣는 집도 있다.
메밀이 생산되는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의 별미로 알려져 있다. 경상북도에서는 강원도와 달리 버섯, 실파, 무채를 넣어 만든다. 메밀부침은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배추김치와 실파를 놓고 메밀반죽을 한 국자씩 얇게 펴서 두른 뒤 지진다. 고소하게 부쳐낸 부침개를 양념장과 함께 먹는다. 메밀전병과 메밀부침은 영월동강막걸리와 궁합이 좋아 영월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