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 명산물 ‘알밤’의 무한변신, 공주 밤묵

    결실의 계절 가을은 오곡과 과실이 무르익어 수확하는 시기이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과실 중 하나가 밤이다. 봄에 흰 밤꽃을 피우고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 아래 무럭무럭 자라나 가을이 되면 쫙 벌어진 밤송이 안에는 토실토실하게 영근 알밤이 열린다. 어린 시절 대바구니나 키를 뒤집어쓰고 기다란 장대로 밤나무를 털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과실이기도 하다.

     

    밤은 우리나라의 전통 과실로 비교적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밤을 식품으로 이용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 다만 경상남도 창원시 다호리 고분군의 다호리 1호 무덤에서 출토된 사각형과 원형의 그릇에 밤과 감이 각기 담겨진 부장품에서 그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다호리 1호 무덤은 원삼국시대의 고분으로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여 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밤을 식용한 역사도 그 정도로 오래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밤 생산량의 약 22%를 차지하며 그 다음인 중국과 수위를 다툴 정도로 세계 주요 밤 생산국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밤은 옛날부터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마한(馬韓)조에는 마한에서 “큰 밤이 나오는데 크기가 배와 같다(出大栗 大如梨)”고 하였다. 또 1123년(인종 원년) 북송(北宋)의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의 풍속을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제23권 ‘잡속(雜俗)’편에는 “그(고려) 과실 중에 밤은 크기가 복숭아만 하고 달고 맛이 있어서 좋아할 만하다(其果實 栗大如桃 甘美可愛)”고 하였다. 

     

    밤은 현재 우리 식문화에서 쪄먹고 구워먹는 간식 정도로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우리 전통문화에서는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는 중요한 식품 중 하나였다. 우선 밤은 옛날부터 관혼상제에서 제사상이나 혼례상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다음으로 밤은 중요한 구황식품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흉년이나 재해가 들면 밤이 구황식으로 이용되었다. 밤은 견과류에 속하지만 단백질과 지질의 함량이 다른 견과류에 비하여 매우 낮은 대신 탄수화물의 함량이 매우 높아서 쌀이나 보리와 같은 곡식대용으로 적격이었다. 이외에도 밤은 궁중에 바치는 진상품이나 왜(倭)에 하사하는 외교물품으로도 사용되었다.

     

    고려 후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는 「율시(栗詩)」라는 작품에서 전통시대에는 밤이 사람에게 여러모로 이로움이 많다(栗實利人多矣)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잎은 여름철에 나고 열매는 가을철에 익네. 틈이 딱 벌어지면 방울 같고 껍질은 흰 살덩이를 겹으로 감싸네. 제사상에는 대추와 함께 놓이고 여자의 폐백에는 개암과 짝지어지네. 손님만 대접할 뿐 아니요 우는 아이조차 그치게 하는 재주가 있네. 천호의 제후보다 나아서 만인의 굶주림도 구제하기에 족하네. 맛을 탐내어 한 움큼 쥐고 껍질을 쉬 벗기고자 앞니를 날 세우네. 화롯불에 굽고 솥에도 삶는다네(葉生朱夏候 實熟素秋時 罅發呀鈴口 苞重祕玉肌 饋籩兼棗設 女贄與榛隨 不但供來客 偏工止哭兒 堪將千戶等 足濟萬人飢 握重緣貪味 牙銛易褫皮 煨憑爐底火 烹代竈中炊)

     

    충청남도 공주시는 백제의 두 번째 왕도로서 동성왕, 무열왕, 성왕의 삼대에 걸쳐 백제의 중흥을 일구어낸 발판이 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도읍한 기간은 서기 475년부터 538년까지 63년 정도에 불과하였지만, 이 기간 중에 화려한 백제문화의 정수를 꽃 피운 웅진백제시대를 이루었다. 또한 공주시는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관할하는 충청감영이 주재하였고, 정3품 당하관인 목사(牧使)가 다스리는 대읍(大邑)이었다. 

     

    백제시대 이래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공주시는 오래전부터 ‘알밤의 고장’으로 유명한 지역이기도 하다. 밤은 전국적으로 생산되었던 과실이지만 밤나무는 조선 초기부터 공주 지역의 주력 유실수였다.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편 공주목(公州牧) 조에는 공주 땅은 “오곡과 닥나무, 왕골, 밤나무, 뽕나무를 심기에 적합하다(土宜 五穀 楮 莞 栗 桑)”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공주 알밤’이 공주시의 명산물로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 이후부터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진행되는 가운데 당시 정부에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여파로 황폐해진 전국의 산에 식목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미국의 원조물자로 들어 온 밀가루를 농민들에게 품삯으로 나누어 주면서 단기적으로는 가장 시급한 땔감용 나무로 아카시아를 심었고, 중장기적으로는 농가소득증대를 위해 유실수를 권장하였다. 1960년대 말부터 공주지역에서는 정안면 일대를 중심으로 밤나무를 중점적으로 식재하면서부터 공주시는 명실 공히 알밤의 고장이 되었다.

     

    밤이 공주시의 명산물인 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밤을 이용한 향토음식도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현재 일반에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알밤 막걸리’가 있다. 약 20여 년 전부터 공주시의 양조업자들이 고된 연구와 개발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알밤 막걸리는 ‘공주 알밤 막걸리’라는 상표로 출시된 이래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와 수요를 일으켰다. 심지어 공주시가 아닌 여러 지역에서 제조한 유사상품까지도 날개 돋친 듯 팔릴 정도였다. 비록 공주시의 양조업자들에게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혔지만 이 또한 공주 알밤의 높은 명성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밤을 이용한 음식으로는 밤갈비ㆍ밤국수ㆍ밤냉면ㆍ밤두부전골ㆍ밤만두ㆍ밤묵무침ㆍ밤묵밥ㆍ밤묵잡채ㆍ밤밥ㆍ밤전 등 실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 중 유독 눈길 가는 식품이 있는데 바로 밤묵이다.

     

    묵은 전통적으로 녹두ㆍ메밀ㆍ도토리ㆍ올방개와 같은 구황작물이나 해초나 생선껍질 등으로 만든 식품이다. 묵은 재료가 단일하고 제조과정도 간단하여 옛날부터 만들어 먹은 우리나라 특유의 전통식품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묵이라 하면 도토리묵과 메밀묵, 청포묵을 떠올리게 된다. 이에 비해 밤묵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밤묵은 사촌지간인 도토리묵이 탄닌 성분이 많아 떫은맛이 강한 반면에 고소한 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밤묵은 그 자체로 식용하거나 밤묵말랭이로 가공되어 묵밥ㆍ묵무침ㆍ전골ㆍ잡채 등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밤은 탄수화물ㆍ단백질ㆍ지방ㆍ무기질ㆍ비타민 등 다양한 영양소를 고르게 함유하고 있다. 탄수화물은 전분 함량이 높지만 소화가 잘 되어 노약자나 환자를 위한 보양식으로 이용가치가 높다. 비타민 B1은 쌀의 4배, 비타민C는 과일류를 제외한 과실 가운데 함유량이 가장 높고 비타민D도 많이 들어 있다. 또한 무기질은 철과 칼슘의 함량이 높아서 특히 여성들에게 좋은 건강식품이다. 밤묵은 밤의 영양성분을 고스란히 응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섭취가 용이하고 소화도 잘 되므로 건강다이어트식으로도 손색이 없는 식품이다. 

     

    밤묵은 다른 묵과 같이 재료도 단일재료이고 만드는 과정도 간단하다. 하지만 준비과정은 여느 묵처럼 녹록지 않다. 일반적으로 많이 식용하는 묵의 재료인 도토리나 녹두, 메밀 등은 껍질이 단단하여 껍질과 알맹이를 분리해 내는 과정이 꽤 번거롭고 힘든 일이다. 밤묵도 도토리처럼 껍데기와 보늬(속껍질)를 일일이 분리해야 하므로, 사실상 묵을 만드는 과정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도 요즘은 상품화된 밤묵가루를 구입할 수 있으므로 준비과정을 생략한 채 바로 편리하게 밤묵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밤묵 만드는 법

    준비과정

    1) 껍질을 제거한 밤을 믹서나 분쇄기에 갈아서 자루에 넣고 물을 부어가면서 전분을 짜낸다.

    2) 짜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뽀얀 전분이 빠져 나오는데 물과 전분이 분리되도록 가라앉힌다. 

    3) 윗물이 말갛게 될 때까지 여러 번 물을 갈아 준 후 전분을 분리하여 건조시키면 밤묵가루가 완성된다. 밤묵가루 제품을 사용하면 준비과정은 생략한다.

    제조과정

    4) 밤묵가루와 물을 1:5의 비율로 잘 섞어 주걱으로 저어가면서 묵을 쑨다.

    5) 센 불에서 20분 정도 저어가면서 끓이다가 묵이 응고가 되면, 불을 중불로 줄이고 10분 정도 저어주면서 더 끓인다.

    6) 불을 끄고 10분 정도 뜸을 들인 후 그릇에 옮겨서 식힌다.

  • 추운 겨울날 새벽까지 파는 군밤

    밤은 밤나무의 열매로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밤을 먹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700년 전 중국이 위, 촉, 오 삼국으로 나뉘었을 때의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 마한조(馬韓條)에서 마한에서 굵기가 배만한 밤이 난다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에도 마한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큰 밤을 생산하는데 굵기가 배만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밤나무가 자라지만 일제강점기 맛있다고 평가받은 밤은 평양밤, 양주밤이었다. 이 중 평양밤은 속껍질을 벗기기 쉽고 단맛이 강해서 평양율이라 칭하여 중히 여겼다. 평양을 중심으로 함종, 강서, 용강, 성천, 순안이 주요한 산지다. 구전으로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함종읍 부근까지 바닷물이 깊히 들어왔는데 산동방면에서 밤을 싣고 가던 배가 함종 부근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부근에 표류하며 밤을 이식한 것이 평양률의 시초라고 한다. 이 밤은 조선 내에서도 어지간히 수용이 잇스나 일본인의 기호에 적당함으로 연년 다수히 이출되야 대정 십일년(1922)에는 삼십일만관을 넘었다고 하였다.(『동아일보』1924.02.14. 「평양율의 이출액」) 평양밤은 함종군 특산품으로 크기는 도토리처럼 작지만 맛이 달아 유명하였다.


    군밤
    군밤
    군밤
    군밤


    반면 양주밤은 크고 맛있기로 유명한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양주의 특산물로 기록될 정도로 역사가 오랜 맛있는 밤이다. 1970년대 이후 양주 지역이 개발되면서 밤나무가 많이 벌목되어 현재 양주밤의 명성은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계곡 주변에 자생하는 밤나무에서 나오는 밤 정도만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밤을 간식으로 먹을 때 흔히 만드는 것이 군밤이었는데, 군밤장수는 일제강점기의 야식을 담당했다. 충무로 일본인 백화점 인근 군밤장수에 대한 회고가 있다. 


    충무로 일본인 백화점 인근 군방장수에 대한 회고


    충무로 입구에서 미나카이(일본인이 경영한 백화점 이름)로 가기 전에 오른쪽에 이층 건물 기다란 가게가 있었다. 히라타(平田)라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식품과 부엌살림을 파는 백화점이었다. 이 근처에는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확 풍긴다. 길 건너편에서 밤을 볶는 냄새다. 밤은 조금 잔 편으로 평양밤이라고 했다.

    가게 문간에서 아가리가 넓은 솥에다 밤을 볶는데 그 냄새가 풍기는 것이다. 솥에다 굵은 모래알 같은 새까만 알갱이에 밤이 섞여 있다. 열을 받아 뜨거워진 그 알갱이가 밤을 익혔던 것 같다. 밤이 타지 않도록 주걱으로 저어야 했는데 배의 키 같은 것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도 구경거리였다. 볶은 밤은 먹기도 편했다. 군밤은 까먹으면 손이 까매지는데 볶은 밤은 꼭 누르면 겁질이 톡 깨지고 노란 밤알이 쏙 나왔다.
    (어효선, 『내가 자란 서울』, 대원사, 2000)


    이렇게 기계로 밤을 익혀서 팔 수도 있었지만 이 시기 군밤장수는 대부분 화로에 밤을 구워 팔았다. 그리하여 군밤장수는 가을부터 봄까지 모습을나타냈고 늦봄부터 여름까지 군밤장수는 아이스크림장수로 변신하였다. 추운 겨울 군밤장수가 군밤을 파는 풍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기도 했다. 


    동지 섣달 설한풍에 종로 네거리 한모퉁이에서 화로불을 끌어안고 치운 목소리로 떠러가며 「설설이 끌엇소. 군밤이오. 물으니 물으니 군밤이요. 물컹하기는 채돌갓고 뜨겁기는 아이스크림갓소. 시어머니 잇는 집 며누리 이불 속에서 먹기 좃소……」 하고 외워치는 군밤장사의 더벙머리 총각 아희를 보면(…)


    (『별건곤』22, 1929.8, 107면)


    군밤
    군밤


    이들은 대개 새벽까지 장사를 했는데 가장 싸게 파는 가격은 10전이었다. 군밤장수들 중 어린 소년 군밤장수에 대해 동정한 신문기사가 있다. 


    어린 군밤장수에 대한 동정


    ... "설!서리 끝엇소이다. 군밤이요. 뜩근뜩근한 군밤사료. 시어머니 몰래 이불 속에서 먹기좋고 젊은 아가씨 길가면서 입속에서 우물거리기 좋은 군밤이요. 설서리 끓었소이다. 군밤을 사쇼!" 그들의 불으는 이 소리가 지나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유모어적으로 들리우나 부르는 그 사람은 아모 의식이 업시 일종의 기계적으로 나오는부산작용임에 틀림없다. 아츰부터 밤 서너시까지 목이 갈러지는 듯한 아니 그들의 목은 이미 갈러졌으리라.

    그 소리가 사람이 지나거나 아니 지나거나 그 자리 그곳에서 흐르고 잇나니 이것이 또한 단장비곡의 일절이 아니고 무엇일가? 손은 뜨거운 밤껍질 벗기기에 허물이 다 벗겨지고 얼굴은 등잔불 그을음에 검둥이가 다 되고. 이러한 어린 군밤 장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또한 드렁장수나 두부장수임에 틀림없으니 그에게 따듯한 어머니의 품이 잇슬리 업고 다정한 어버이의 손길을 맛볼 수 업스리니 밤새도록 주림과 추위에 떨다가 돌아가는 그 어린 군밤장수의 주머니가 가벼울 적에 그는 얼마나 울 것이랴? 몇 번이나 암공에 번뜩이는 잔별들을 바라보면서 어린 넋은 느꼈을 것이냐?

    비가 오거나 눈이 퍼붓는 날이면 처마를 차저 옹크리고 안저서 웨치고 잇는 그의 모양! 또박또박 늦은 거리를 거닐든 절문이들의 발자욱 소리가 그곳을 지나며, "나리, 십전어치만 파라줍쇼, 네."하며 애걸하는 그에게 돌아가는 보수가 한낫 고갯짓이라면 너무나 그것은 애처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날 또 그날. 낮으로 밤, 밤으로 낮. 도시의 뒤 거리는 어린 군밤장수의 웨치는 소리 속에서 저물고 밝는다.
    (『동아일보』1932.12.07. 「도회의 비가(2) 밤거리에 사모치는 어린 군밤장수의 넉」)


    오늘날에는 공주 정안밤이 유명하다. 정안에 밤나무가 심어진 것은 1960년대 말인데 일본에서 온 품종을 심었다고 한다. 이 품종이 정안 지역에서 잘 자라 오히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으로 역수출하게 되었다. 정안면에서도 특히 밤이 많이 나는 곳이 소랭이 마을인데 옛날 대장간이 많아서 쇠랑이 마을이라고 불리던 것이 소랭이 마을로 변했다. 소랭이 마을은 80%가 산인데 거의 밤나무를 심어 공주 정안밤의 주 생산지로 이름이 높다. 매년 6월 밤꽃축제를 열고 가을에는 밤줍기 체험 프로그램, 겨울에는 군밤만들기 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문화일보』2014.10.17「[경제] 국민건강 농업인 행복찾기 예전 대장간 많다고 해 '쇠랑이' ... 임야 밤나무 빼곡 정안밤 유명」)

  • 부여의 달콤한 밤과 알밤막걸리

    대폿집의 대포는 큰 잔 

    세계의 술잔을 보면 그 나라 술의 도수뿐만 아니라 마시는 문화까지 볼 수 있다. 작은 잔에 소량으로 마실수록 도수가 높은 술을 즐기는 것이고, 큰 잔에 마실수록 도수가 낮은 술을 즐긴다. 보드카나 위스키 같은 독주는 샷(shot)잔이라고 하는 작은 잔에 마시고, 우리나라의 막걸리 잔을 보면 그 몇 배의 크기로 마신다. 심지어 그들은 병에서 따라 마시지만 우리는 아예 주전자에서 콸콸 내어 마신다. 예전에 막걸리집을 대폿집이라하고, 막걸리 문화를 대포 문화라고 했다. 여기서 대포는 큰 술잔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커다란 술잔에 막걸리를 콸콸 부어 나누어 마시며 함께 잔을 나눈 사람들의 의리를 다지는 술 문화가 있기도 했다. 

     

    세조는 여진족을 토벌하러 함경도로 떠나는 체찰사(體察使) 신숙주를 편전에 불러놓고 궁벽(宮壁)을 타고 오르는 박덩굴을 가리키며 저 덩굴에 박이 여물 때까지 오랑캐를 평정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그 덩굴에 달덩이 같은 박이 여물었고 세조는 그 박으로 대포를 만들어 막걸리를 가득 붓고 한잔술에 입을 번갈아 대며 취하도록 마셨다고 한다. 이처럼 동심일체를 다지는 의례의 술잔으로서의 대포문화는 다양하게 발달하고 있다. 

    -이규태, 막걸리의 한국학  

     

    오늘날에는 달덩이 바가지마냥 큰 대포잔에 나눠마시지는 않지만, 그래도 막걸리 잔을 함께 기울이는 사람들끼리 우정을 나눈다는 면에서 한국인의 막걸리 사랑은 여전하다. 근래 들어서는 전국 각 지역의 특산물을 담아낸 막걸리들이 지친 하루를 달래주고 있다. 우리 술과 우리 특산물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낸 지역 특산 막걸리들은 지역 특산물에 대한 기억과 사랑을 환기시켜준다.


    고소하고 목넘김이 부드러운 알밤막걸리

    예로부터 술은 독하지만 그 속에 녹아내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독주와 약주로 나눈다. 좋은 것으로 만든 술은 피를 빨리 돌게 하여 응어리진 곳을 풀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응어리까지 함께 쑥 내렸다. 현대인에게 가장 큰 응어리는 무엇일까? 바로 만병의 근원이라고 부르는 스트레스가 아닐까? 이런 응어리들은 그대로 두면 위험하다. 뭉칠 때마다 바로바로 풀어주어야 한다. 


    이럴 때는 알밤막걸리가 제격이다. 시큼하고 탄산미가 느껴지는 일반 막걸리와는 다르게 부여 알밤으로 만든 밤 막걸리는 탄산미가 적고, 고소하고 부드럽게 목에 넘어간다. 때문에 막걸리를 즐겨 마시지 않는 사람도 쉽게 술술 넘어가는 맛에 반할 것이다. 밤막걸리를 더 맛있게 먹으려면 밤부침개나 밤묵과 함께 즐기면 된다. 


    전국 밤생산량의 23%를 차지하는 부여 알밤

    밤은 충청남도 부여군을 대표하는 10미(味)에 들 정도로 우수한 농산물이다. 부여 밤은 국가브랜드 대상을 8년 연속으로 수상한 부여군 공동 브랜드 ‘굿뜨래’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써, 2018년을 기준으로 전국 생산량의 23%을 차지하고 있는데, 워낙 밤으로 유명한 공주를 따라잡기 위해 부여군이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품질을 높여온 탓이다. 이런 것을 두고 바로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는 것일까?


    공주 밤막걸리와 부여 알밤 막걸리가 대표적 밤막걸리들이다. 양조장에 따라 약간씩의 맛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밤으로 만들었기에 달콤하다. 스트레스 받는날이면 색다른 막걸리를 찌그러진 양은 막걸리 잔에 따라 “너도 오늘 이리저리 치였구나.”하며 위안삼아보자. 밤 막걸리 특유의 달콤함이 달콤한 내일을 기원해줄 것이다.